충청남도 금산군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학교 건물은 정부의 지원 없이 학생과 교수들이 노력해 직접 지었다. 인근 도시에 버려진 빨간 우체통을 재활용해 담벼락을 만든 학교 부지에 강의동, 식당, 카페테리아가 자리한다. 학교 정원에 나란히 선 민승규 교수(왼쪽)와 농업협동조합중앙회김병원 회장(오른쪽).
10여 년 전, 도쿄대 출신의 경제학 박사이자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던 민승규 교수는 서울 강남 고급 백화점 앞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부인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농업이 소중하세요?” “소중하죠. 우리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니까요.” “혹시 따님 있으세요? 따님이 어느 날 농부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유, 그건 좀 곤란하겠네요.”
국민이 존경하는 농업의 공적 가치
“농업은 생명 산업입니다. 5천만 국민의 건강을 담보하는 특별한 산업이지요. 예전에 농촌은 시설이 낙후하고 농민은 소득이 적다고 폄하하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사회가 성숙했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벼가 자라는 아름다운 논, 온 국민이 공유하는 그 자연 작품이 농민의 땀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죠.” 늦여름 해가 기우는 충청남도 금산군 산자락. 주말에 문을 여는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 만난 민승규 박사와 김병원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은 농업과 농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기술 개발은 고성능 컴퓨터와 사람의 두뇌만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협업 가능하지만, 농업은 사정이 다르다. 농민은 토지와 자연환경이라는 제약된 조건까지 운용하며 자신의 산업을 일궈야한다. 농민이 성공하기 위해 다루어야 할 대상은 우주의 태양과 달, 비바람 같은 대자연,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의 식습관과 라이프스타일, 디지털 기술의 발달 로 국경이 사라진 유통과 판촉 환경이라는 그야말로 초우주적 경쟁 환경이다. 그래서 세계 선진국들은 이와 같은 우주적 경쟁에서 자국 풍토의 근간이 되는 농촌과 농민이 선전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다양한 정책을 연구·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면 2백조 원이 넘습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70%에 이르는 국민이 이러한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공감했고, 이를 개정 헌법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농민이 만드는 공익적 가치를 화폐로 계산해서 받는 시대가 도래하면 5천만 국민이 마음의 고향인 농촌을 매력적인 산업,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기게 되겠지요.” 5년 전 조합장 시절에 우연히 한국벤처농업대학에 특강을 하러 온 김병원 회장은 이곳에 애정을 느꼈다. 수업이 이어지는 사이 산 언덕에 있는 학교 건물에서 전국 농산물로 맛난 식사를 준비했는데, 식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이웃에서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졸업생들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농업의 벤처 정신을 배우려는 후배들을 위해 저 멀리 완도에서부터 배 타고 차 타고 부러 자신의 생산물을 가져와 풍성한 식사를 차려준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어떤 학교이길래 다들 이 멀리까지 찾아와 밤늦게까지 공부에 열을 올리는 걸까.
벤처농업대학 교수가 된 회장님
매력은 그뿐만 아니었다. 자정이 넘어도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수업과 토론. 계속해서 솟아나는 질문과 식견을 총망라한 응답에 매료되어 김 회장은 이 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농가를 방문하는 농가 탐방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이 나라 농민 중 성공한 농민집은 다 가본 것 같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농민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장점을 관찰했으며, 어려움과 안타까움도 알게 되었다. 농산물 패션쇼같이 특이한 아이디어로 창의성을 발휘해보는 공부도 했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강의를 수강했다. 단 한 번의 결석없이 엄격한 출석률과 논문 조건을 다 채우고 졸업한 후 전임 교수가 된 지 벌써 5년째. 달님이 뜨는 저녁 8시 강의 담당 교수인 김 회장의 이날 수업 주제는 ‘매력적인 농부가 되는 법’이었다. “이곳은 농민의 마음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키워주는 학교입니다.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는 많지만 이런 교육을 하는 곳은 드물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농민들이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자신들의 장점을 나누고 동아리 활동과 토론을 합니다. 농장을 서로 방문하고 함께 유통하고 기술을 공유하는 그런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매력이지요.” 김병원 회장의 정의에 따르면 매력적인 농부는 농사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농사를 나의 전부라 생각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에너지를 쏟는 사람 중에서 새로운 생명 산업의 틀을 만드는 사람이 나온다. “스스로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아주 독창적으로 응용하는 등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벤처 정신을 지닌 농민들. 스마트팜을 통해 기술을 결합해 농사짓는 농민도 꽤 많습니다. 저도 6차 산업 기술을 연구하는 학교를 만들었는데, 그 학교와 이곳 학생들을 연결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으로서 수업에서 수많은 사례를 알려줍니다. 주로 도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도약은 애달픔, 어려움, 유통과 수출의 막막함이라는 디딤돌을 딛고 이루어진다. 그래서 김병원 회장은 실제 강의하는 시간은 한두 시간이지만 온종일 학교에 머물며 학생들과 상담을 한다. 특히 6차 산업을 하는 농민들의 제품을 살펴보고 조언을 많이 한다. 김병원 회장뿐 아니라 전임 교수 일곱 명 모두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존경받는 농업경제 학자를 꿈꾸는 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제학 박사로 주말을 이용해 전국을 돌며 농민들을 만난 후 자립형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해 20여 년간 이끌어온 민승규 교수는 몇 해 전에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직위를 내려놓고 농업 강국 네덜란드로 유학을 다녀왔다. 젊은 농부가 많아지고 학생들의 질문이 다방면으로 확장되면서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첨단 농업 강국인 네덜란드의 농업 관계자들은 5~10년 후를 위해 무얼 고민하는지 탐구하기 위해 기업 CEO까지 포함한 60여 명을 인터뷰하고 돌아왔다. 농업 관련 밸류체인상의 다양한 관련기업을 인터뷰했고,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빅데이터가 우리 농업의 미래라는 내용의 보고서도 썼다. 이후 중국에도 다녀왔고 2주에 한 번씩 일본에 가서 공부한다. 네덜란드는 서양이니 중국과 일본 등 동양의 농업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디지털 농업의 흐름은 오히려 농부들에게는 제3의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약자인 한국 농업이 강자인 선진 농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시대가 스마트 시대죠. 우리의 새로운 상상과 창의력이 농업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내니까요.” 1995년, 도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민승규 교수에게 일본의 지도 교수는 기업보다는 농촌진흥청에 가서 현장을 먼저 돌아보라고 했다. 우리나라 농업 현장이 지금보다 많이 낙후하던 시절, 1년간 전국 농진청의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며 전국을 돌아본 그는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원 농진청 경내를 산책하다가 그곳에 묻힌 우장춘 박사의 묘지를 보게 되었다. “이분은 농업가이자 과학자로서 큰일을 했구나. 그래서 묘지가 여기에 있구나. 순간 마음에 꿈이 들어오고 가슴이 뛰면서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어요. ‘훌륭한 농업경제 학자가 되어보자.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한 농업인이 많이 나오게 해서 나도 이런 곳에 묻히고 싶다’라고 다짐했어요. 삼성경제연구소 입사 면접에서는 장래 희망이 농업경제를 연구해서 우장춘 박사 옆에 묻히는 것이라고 했죠.” 면접관들은 크게 웃었지만, 소문이 퍼져서 동료 연구원들이 해외 경제 미디어와 논문을 보다가 농업 관련자료가 있으면 복사해서 그에게 전해주곤 했다. 연구소에서의 본업은 일반 경제정책과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연구였지만, 동료들 덕분에 선진 농업경제 관련자료도 축적할 수 있었다.
한국 와인메이커스 디너에 참석한 민승규 박사. 우리나라 농가 일곱 곳에서 생산한 대표 와인을 강레오 셰프의 요리와 마리아주해 한국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의 강의 모습. 교수들이 직접 시각 자료를 준비해 열성적으로 지식 나눔을 이어간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졸업생의 추천과 면접을 거쳐 입학하고, 엄격한 출석률과 논문에 필적하는 사업 계획서 제출 기준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민승규 박사는 네덜란드 연수 시절 화훼 농장을 비롯해 농업 전문가 60명을 인터뷰 해 첨단 농업의 미래 방향을 탐구했다.
식문화 동아리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생산한 호박잎, 감태, 노랑호박, 옥수수 등으로 만든 건강한 농촌식 육가공 제품.
한국벤처농업대학 앞산의 일몰 전경. 졸업생이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불을 밝힌 강의실에서 자정까지 학습을 이어간다.
정부 지원 없이 학생들이 자금과 노동력을 모아 직접 설립한 한국벤처농업대학 캠퍼스 전경.
논리보다 중요한 농촌 경험과 공감
이후 수입 농산물 개방에 대해 연구원에서도 토론을 했는데, 수요와 공급 그래프와 논리로는 우리 농촌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연구원들과 같이 사과를 따러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점심 시간 한 시간외에는 꼬박 사과 접목하는 일을 하고 온 동료 박사들에게서 “다시는 사과 먹으며 비싸다는 이야기를 안 할게요”라는 이메일이 왔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컴퓨터를 교체하던 시기, 구형 컴퓨터 20대를 받아 깨끗이 닦고 화성군 농협에 부탁해 김치 공장 한편을 빌려 토요일마다 동료 박사들과 함께 컴퓨터 교실을 시작했다. 이들이 동네 식당에 가면 밥값도 안 받을 정도로 지역의 최고 인기 강사가 되었다. 농촌을 위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원들의 육체 노동 대신 각 분야 박사들의 지식과 학식을 나누는 게 낫겠다는 생각의 결실이었다. 3년을 꼬박 이어간 그 수업에서, 민승규 박사는 농촌의 ‘보석’들을 만났다. 그 일은 그가 지난 20여 년을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과 운영에 매진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했는데 하나를 알려주면 열 개를 아는 보물 같은 농민이 세 분이나 계셨어요. 놀라웠죠.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갈 수 없던 분,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자신을 희생한 분 등 세 분이 아주 탁월했습니다. 이 세 분이 나중에 다 대학에 갔어요. ‘환경 때문에 다듬어 지지 못한 원석이 우리 농촌에 이렇게 많구나. 한 지역에 세 명이나 있는데 전국엔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는 전국에 닷컴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 붐이 일던 때였다. 농업으로 회사를 키워 상장시키는 벤처학교가 아닌, ‘벤처 정신’을 배우는 농업학교를 만들어보자고 민승규 박사는 결심했다. 전국 농촌의 보석을 다 찾아서 도전·열정·에너지를 심어주는 벤처농업대학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컴퓨터 교실을 공공 기관에 맡기고 동료 박사들과 주말마다 전국을 다니며 농업 심포지엄을 열었다. 전국에서 여든일곱 명의 원석을 찾았고, 대덕밸리에 있는 벤처기업가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랬더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한 표정의 농민들이 뒤풀이 자리에서 민승규 박사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학습하고 도전하는 매력적인 농부들
“벤처기업가라고 해서 폼 나는 사무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창고 같은 사무실에 컴퓨터 몇 대 놓고 밤을 새우며 일하네요. 우리 농장은 3천 평, 5천 평이나 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있지요? 박사님, 우리한테 경영이 뭔지, 마케팅이 뭔지 가르쳐주세요!” 그날의 뜨거운 마음으로 설립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설립 철학에 따라 자리도 건물도 운영도 자급자족해 18년째 2천7백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전국 각지에서 고속도로로, 국도로, 산길로 찾아와야 하는 학교이지만 출석률과 사업계획서 형태의 졸업 논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능하다. 1기는 60명이 낙제했고, 2기는 90명 중 40명만 겨우 졸업했다. 졸업생의 70%가 농민이고 30%는 농업 관련 종사자다. 졸업생 추천을 받은 농민 이나 농업 관계자가 지원할 수 있고, 면접 심사가 까다로워 탈락자가 많지만 별다른 홍보 없이 경쟁률이 해마다 3:1에 이를 만큼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주말에 모여서 공부하니 초기에는 새벽 1시까지 수업을 하거나, 한미 FTA가 타결된 후로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1년에 한 번씩 철야 수업도 했어요. 그러다 새벽에 동이 트니까 어떤 여성 농민은 감정이 북받쳐 울기도 했고, 어떤 남성 농민은 밤새워 고스톱은 쳐봤지만 밤새워 공부하기는 처음이라며 껄껄 웃기도 했지요. 이제는 우리 교수들이 나이가 들어 자정쯤 수업을 끝내요. 하지만 그 이후에 찜질방 토론회를 이어가요.”
강의실 앞 서가에 선 김병원 회장. 농업협동조합중앙회로 쉴 새 없이 전국 농촌 지역을 방문하는 그는 학생 시절에도, 교수가 되어서도 최고 출석률을 유지하며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민승규 박사. 학교의 수장인 그는 수업 시작 전 학생들과 가장 존경받는 벤처 농업가가 되겠다고 선서하는 것을 학교의 전통으로 만들었다.
매력의 근원은 신뢰와 존경
전임 교수는 일곱 명이고 국내외 석학과 전문가를 외부 강사로 초빙한다. 다른 학교에서는 교수들이 강의만 하고 가지만, 이곳에서는 김병원 회장과 민승규 박사 같은 전임 교수들이 1박 2일간 함께 토론한다. 지역의 고수를 자부하며 입학한 학생이 다른 지역의 고수를 만나 겸손과 도전,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경험도 이 곳에서 하게 된다. 다른 농가 방문 수업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관심 높은 수업 방식이다. “한 주는 주로 경영, 마케팅, 전략, 농업 이념, 왜 친환경 농업을 해야 하는지, 이런 방식의 도전 정신 등 농심農心을 배웁니다. 나머지 3주는 가정 방문이에요. 다른 농가를 방문하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지요. 현장을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게 많으니까요. 농심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단어입니다. 농부는 쌀농사를 짓다가 태풍이 불어와서 다 쓰러져도 다음 날 물을 빼고 쓰러진 벼를 세웁니다. 그리고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이것이 신뢰지요. 우리 학교에서는 수업할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벤처 농업가가 되겠다’라고 선서합니다. 도전정신과 신뢰, 이 두 가지를 지닌 농민을 사회와 국민이 존경합니다.” 요즘은 세계적 경제지에서도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를 발표한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지난 18년간 국민에게 존경받는 농부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친환경, 유기농, 관행 농법 등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느냐보다 소비자와 약속한 농법의 룰을 정확히 지키는게 신뢰고, 존경받는 농민은 그 신뢰를 토대로 도전 정신과 아이디어 개발을 이어간다. 1기 졸업생인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를 비롯해 대한민국 식품 명인의 3분의 1 이상과 농촌진흥청이 주는 농업기술명장 3분의 2가 한국벤처농업대학 졸업생이다. 최근에는 졸업생의 2세가 다수 지원해 젊은 학교로 변모하고 있다. 나만의 먹거리를 주는 농부, 소비자에게 휴식처가 되어주는 농촌. 미국 농업 규모의 1백30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한 농업. 가격과 품질은 물론 서비스와 소비자 감동 같은 제3의 노력으로 성공한 농부. 넘버원 대신 온리 원의 역발상으로 사회에 감동을 주는 농부. 한국 벤처농업대학이 지칭하는 매력적인 농부는 이런 특성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특수한 직업군을 뜻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딸이 ‘벤처 정신으로 사회에서 공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강소 농부’ 의 아내가 된다면? 백화점 앞의 부인들이 이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좋지요”라고 대답하는 첨단 시대를 위해 충청남도 금산군 산자락에서 주말마다 도전 정신과 열정의 벤처 정신을 수확하고 있다.
- 한국벤처농업대학 민승규, 김병원 교수 당신의 사랑하는 딸이 농부의 아내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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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국민에게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국민은 농부에게 공익적 존경을 표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은 국민이 농민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에 도전·열정·에너지라는 벤처 정신을 더해 한국의 농민들이 좀 더 넓고 깊은 시야와 높은 자신감을 지니도록 이끄는 민간 교육기관이다. 그 기관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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