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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PD, 스타 셰프를 만나다 야생으로 돌아간 창조적 이단아 레네 레제피
과거 불모와 야만의 땅이던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미식이라 부를 수 있는 제대로 된 요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노르딕 푸드’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전 세계 미식가가 덴마크의 레스토랑 노마를 찾아오게 만든 것은 2003년 혜성처럼 등장한 레네 레제피 셰프 덕분이다.

엘 부이에서 요리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 레네는 덴마크로 돌아와 노마를 열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덴마크 토종 식재료와 창의적 플레이팅으로 전 세계 미식가를 사로잡았다. 척박하다 못해 미식의 불모지라 불린 덴마크 코펜하겐을 노르딕 푸드의 출발점에 올려놓았다.

레네는 시장 대신 숲과 해변을 뒤지며 야생식물과 해초 등을 채집한다. 최근에는 페로 제도에서 공수해 온 바다우렁이로 요리를 시작했다.

야생의 땅에서 미식을 외치다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오랜 세월 제대로 된 요리가 존재하지 않은, 불모와 야만의 땅이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일컫는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잔혹 무도하던 해적 바이킹의 소굴이었다. 지겹도록 긴 겨울과 농사 짓기 어려운 척박한 풍토로 먹을 것이 늘 부족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원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유럽 대륙은 수시로 출몰 하는 바이킹의 침략에 치를 떨어야 했다. 북유럽 전통 음식은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고 토속성도 강해 오랜 세월 세계인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소금에 절인 연어, 크네케브뢰드 같은 건빵, 그리고 지독한 악취로 이름난 청어절임 수르스트룀밍 등 풍미보다는 저장성이라는 생존 목적을 위한 거친 가공법이 주류였다. 그러다 보니 현대에 들어와서도 스칸디나비아 요리는 변두리 취급을 받았고, 북유럽인도 자국 음식에 큰 자부심을 갖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코펜하겐이나 오슬로의 고급 레스토랑은 프렌치 요리이거나 이탤리언 요리가 대다수였고, 셰프들은 자기땅에서 나는 재료에 관심이 없었다. 바다 건너온 푸아그라, 송로버섯, 올리브유로 요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200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 판을 뒤집을 한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마케도니아 태생의 스물다섯 살 요리사 레네 레제피Rene Redzepi였다. 어머니는 덴마크인,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무슬림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레네는 일반적인 덴마크 아이들과는 다른 음식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열 살이 되기 전까지 코카콜라를 마셔보지 못했을 정도로 벽지 마을의 자연 속에서 재료를 얻고 요리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제가 살던 마케도니아 동네에는 자동차도 냉장고도 드물었고 모두가 농부였어요. 젖소에서 직접 짠 우유를 마셨고, 닭고기를 먹으려면 키우던 닭을 잡았지요. 집에 TV도 없어 밥을 먹을 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어요.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죠. 제가 열다섯 살 때 요리학교에 들어가 처음 시도한 요리도 가족과 즐겨 먹은 캐슈너트 소스와 밥을 곁들인 마케도니아 가정식 요리였어요.” 덴마크에서 요리학교를 나온 레네는 이후 프랑스, 스페인의 유명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견습생 시절을 보냈다. 그는 페란 아드리아 셰프의 ‘엘 부이’에서 요리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엘 부이에서 생각하는 자유를 배웠어요. 흔히 엘 부이는 분자 요리를 하는 식당이라고 말하지만 아니에요. 이전까지는 재료를 고르거나 조리법을 구상할 때 학교에서 배운 틀 안에 갇혀 있었지요. 엘 부이는 그 한계를 깨뜨려주고 새로운 영감을 주었지요. 그때 결심했어요. 코펜하겐으로 돌아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요리를 시작해야겠다고.”


야생의 날것, 자연의 식재료로 요리하다
덴마크로 돌아온 그는 외딴 부둣가 창고 건물에 테이블 열두 개의 작은 식당을 오픈하고 이름을 노마NOMA(노르딕 푸드라는 뜻)라 지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해괴하게 보일 수도 있는’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식재료를 사러 시장에 가는 대신 코펜하겐 인근 라메피오르덴Lammefjorden 숲과 해변을 뒤지며 야생식물과 해초, 나무 수액, 곤충 등을 채취했다. 북유럽판 신토불이 요리의 시작이었다. “저희가 채집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좋은 맛’을 위해서입니다. 숲에 가서 작은 식물을 채취해 맛보면 ‘우아, 맛있다!’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식물과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가둬’ 기른 똑같은 식물의 맛을 비교할 때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요. 야생 재료는 자연과 싸워 이겨내고 모든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반면 농장에서는 농부가 있고 적합한 토양 조건이 갖춰져 있으며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종자가 생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 재료가 더욱 생기 넘치고 맛있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노마의 모든 스태프는 노마와 레네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말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자연이 내준 재료로 요리하며, 그것에 대한 경외심을 배워나간다. 야생의 것으로 요리하는 것, 이를 미식으로 창조하는 것은 노마를 발전시키는 철학과도 같다.

노르웨이 북부에서 공수한 조개로 만든 요리.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노마의 플레이팅. 페로 제도의 바다우렁이와 장미를 곁들인 샐러드에 다시마로 만든 버터를 곁들였다.

부둣가 근처에 자리한 노마 레스토랑.

레네는 요트 위에 노르딕 푸드랩을 만들어 야생 식재료의 본질과 발효를 연구한다.
자연에서 재료를 구해야 하는 노마의 요리사는 자연의 순환에 따라 그 맛이 완숙될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요리사는 천연 상태의 참맛을 알게 되고 생명의 존엄성을 배운다. 이를보면 산과 바다에서 캔 나물과 해초로 요리해 밥상을 차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한식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지녔는지 잊어서는 안 될 듯하다. 세 시간 가까이 스무 접시가 넘는 노마의 코스 메뉴를 맛보는 것은 스칸디나비아의 해변과 청정 숲을 산책하는 듯 오감을 자극한다. 시그너처 아뮈즈부슈 중 하나인 파슬리로 감싼 맛조개 요리는 서양고추냉이와 조개즙으로 만든 소스가 곁들여진다. 뿌리채소는 몰트와 헤이즐넛 가루로 만든 흙이 담긴 화분에 담겨 나오고, 성게는 냉동 분말 형태로 북해산 심해 새우와 함께 바닷가의 돌 위에 던져 진 듯 플레이팅된다. 산자나무로 만든 시트 위에 오렌지 베리를 올린 애피타이저는 농장에서 기른 얌전한 산미가 아니라,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렬하다. 야생에서 채취한 재료는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잘 가꾼 인공 정원이 아닌 원시림을 맨발로 걷는 느낌이랄까. 노마가 시도한 아방가르드적 요리법은 오픈 후 수년 동안 현실의 차가운 벽에 부딪혀야 했다. 프렌치 퀴진에 익숙한 손님들과 평론가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독특한 허브와 해조류, 심지어는 신맛 나는 개미까지, 게다가 잘 익히지도 않고 요리라고 내놓는 노마를 괴짜 취급하기 일쑤였다. “오랫동안 덴마크인은 감자와 청어와 함께 먹으면서 프로테스탄트교도처럼 절제하며 살았죠. 덴마크만의 특별한 음식 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았고, 우리 주변의 자연 속에 놀랄 만한 식재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어요.” 노마의 요리는 현지 재료의 창의적 활용뿐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재료를 찾고자 한 신선한 해석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북유럽 감성의 플레이팅의 결합은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미지의 재료와 모던한 디자인, 자연 친화적인 스토리텔링의 ‘미친’ 조합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아성을 뒤흔들고도 남을 정도의 강한 폭발력을 지녔다. 노마는 영국의 레스토랑 매거진이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최정상 자리를 거듭 차지했고, 레네는 <타임> 커버 인물로 두 차례나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북유럽이라는 미식의 불모지에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비주얼과 콘셉트의 퀴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끊임없는 실험 정신, 발효로 이어지다
노마를 촬영하면서 몇 가지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전 스태프가 노마에 갖는 거의 절대적 믿음과 열정이었다. 레네에 대한 존경심은 거의 종교에 가까워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였다. 음식을 서빙하는 스태프들은 메뉴를 막힘없이 설명했고, 손님이 특정 메뉴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도 주목했다. 디너 다음 날 오전에 내가 많이 남긴 메뉴를 기억하고 그 이유를 슬쩍 물어올 정도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레네가 칼을 잡고 요리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점. 서비스로 바쁜 시간의 주방에서도 그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레네가 몇 년 전부터 빠져 있는 주제는 발효다. “노마를 시작하고 주로 날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불로 익히는 인류의 요리법이 시작되기 전부터 자연의 재료를 생으로 먹는 법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요즘 제 관심사는 발효입니다. 발효는 한마디로 미생물이 요리하는 것이에요. 인간이 고안한 요리법과 달리 미생물의 요리법은 거의 무한대입니다. 한마디로 무궁무진한 것이죠. 한국인은 발효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를 형성하고 있어요. 한국의 된장과 김치처럼 말입니다.”

노마가 위치한 부둣가에는 노르딕 푸드랩이라는 이름의 요트가 정박해 있다. 선상 연구실로 개조한 이곳에 들어가보면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냄새가 풍긴다. 바로 메주다. 레네 셰프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 재래 된장 담그는 과정을 보고 감탄해 귀국하자마자 연구진을 한국으로 보내 메주 만드는 법을 배워오게 했다. 간장에 대한 실험도 진행 중인데 메주 대신 메뚜기 같은 곤충을 이용한 간장을 만들기도 한다. 맛을 한번 보라고 권해서 먹어보았는데, 모르고 먹는다면 일반 간장 맛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괜찮았다. 우리가 한식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을 때 레네 셰프 같은 서구의 창의적 셰프들은 오히려 장류에 열광,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마의 요리를 벌거벗은 임금님의 보이지 않는 의복에 비유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색다른 트렌드와 스타의 강림에 굶주린 서구 평론가들과 미디어가 과대평가했다는 의견도 들린다. 2013년 일어난 식중독 사고로 노마는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으나, 몇 년 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 자리를 다시 거머쥐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마는 분명히 오랜 세기 주방을 지배해온 여러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기성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프렌치 퀴진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리고 좋은 식재료는 시장과 농장만이 아닌 가까운 수풀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친환경적 철학의 메시지였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인간에게 요리란 무엇인가? “요리는 우리를 살아 있을 수 있게 하고, 요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글에서 나무를 타고 다니는 영장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제 말은, 요리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리는 제게 있어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은유입니다. 슬픈 순간이나 행복한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음식을 먹고 요리를 합니다. 불행히도 요즘 사람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소중한 경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갑니다. 이제는 가족이나 연인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TV를 켠 채 밥을 먹습니다. 저는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지켜내고 싶어요.”

글을 쓴 이욱정 PD는 푸드멘터리의 선두 주자이자 국내 음식 문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미식 탐험가다.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음식 다큐멘터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셰프 못지않은 요리 솜씨로 인기를 얻은 그의 낙은 진미를 맛보고 세계 최고의 스타 셰프를 만나는 일이다. 대표작으로는 <누들 로드> <요리 인류> <요리 인류-도시의 맛>이 있다.



글 이욱정 | 레스토랑과 음식 사진 제공 NOMA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