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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와 영국 디자이너 맥스 램이 협업한 벤치 시리즈. 섬유 보드를 활용하는 다채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지난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브레라Brera 전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브랜드가 있다. 바로 ‘리얼리Really’. 물음표를 떠올리게하는 회사명만큼이나 그들이 선보인 가구는 흥미로웠다. 영국 디자이너 맥스 램Max Lamb이 디자인한 열두개의 벤치. 평소 소재에 대해 학구적이고 수사적으로 접근하기로 유명한 그는 보드를 활용해 다채로운 벤치를 선보였다. 그런데 단순 보드가 아닌, 패브릭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처음 보면 이게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거예요.하지만 패브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겁니다. 패브릭이 지닌 따스함과 포근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어떤 재료로도 흉내 낼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섬유 보드는 굉장히 흥미로운 자재입니다.”

기본 길이가 3m, 네 가지 색깔의 보드를 서로 끼워 맞추기도하고, 홈을 파거나 레이저 커팅해 문양을 내는 등 실험적 디자인으로 완성한 열두 개의 벤치는 섬유 보드의 내구성과 심미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를 선보인 리얼리는 세계적 텍스타일 제조사인 덴마크 크바드랏Kvadrat의 자회사로, ‘순환’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다.

친환경적으로 제작한 리얼리의 섬유 보드들.

버려진 면과 양모 원단을 곱게 간 뒤 바인더와 압축하면 섬유 보드가 된다.

보드에 홈을 내면 곡선형 가구도 제작할 수 있다.
‘순환’을 위한 재료 설계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서는 방대한 양의 폐기물이 버려진다. 그중에는 수명을 다한 면과 양모도 섞여 있다. 일반 가정이나 패션ㆍ섬유 산업ㆍ산업용 세탁소에서 버리는 패브릭을 비롯해 크바드랏에서 버린 불량 제품까지! 이들은 주로 매립하거나 소각하는데,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리얼리는 이들을 재활용해 고밀도 섬유 보드를 생산했다. 버려진 원단을 곱게 갈아서 텍스타일 가루 70%, 바이컴포넌트 바인더 30% 비중으로 섞어 고밀도의 얇은 보드로 압착하고, 고강도의 코어 솜 양옆에 붙여 7.8mm 두께의 보드를 만든 것. 기본 규격은 3000×1100mm이며, 색상은 코튼 블루와 코튼 화이트, 울 슬레이트와 울 내추럴 네 가지다. 이 보드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생산과정에서 염료나 독성 화학물질을 일절 사용하지않아 환경친화적이다. 표면은 왁스와 멜라민 포일, 수성 래커로 마감했는데, 목재에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쯤이 되면눈치챘겠지만, 리얼리의 섬유 보드는 목재만큼 내구성이 뛰어나다. 섬유 보드로 가구를 제작할 때는 전통적 목공 기계를 사용하고, 목재 또는 복합재와 함께 사용하면 건축물에도 사용 가능하다. 그야말로 기존 소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어쿠스틱 섬유 펠트는 흡음재로, 바이컴포넌트 바인더 대신 데모플라스틱 바인더thermoplastic binder를 30% 넣어 압착해 섬유 보드와 동일한 공정으로 제작하지만, 부직포처럼 부드럽고 좀 더 직물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섬유의 수명을 연장시키다
리얼리의 진짜 미션은 지금부터다. 섬유 보드를 만드는 것보다 섬유 보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리얼리가막스 램이 디자인한 벤치 열두 개와 함께 브랜드를 론칭한 이유는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나가겠다는 뜻. 섬유 보드를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사용법과 구조를 짜는 법, 하중을 받게 하는 법 등을 매뉴얼화해 공유한다. 버려진 패브릭으로 보드를 만들고, 디자이너와 제조업체에 보드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주며, 소비자에게는 자체 제작한 가구를 판매함으로써 섬유의 수명을 연장시킨 리얼리. 훗날 가구는 다시 회수해 원재료 상태로 복원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지구와 환경을 생각한 순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