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세진 작가의 작업에는 시간이 담겨 있어요. 옹기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와 현재의 옹기 작가들은 모두 이런 수련 과정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왔습니다. 배세진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학고재 갤러리 <오늘의 옹기> 특별전에서였어요. 흙 띠를 쌓는 전통적 옹기 기법을 흙 조각을 쌓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의 작품을 보고 옹기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옛 장인들의 기법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그만의 조형성이 뛰어나 10년, 20년 후의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_ 이강효(도예가)
의상 협조 두 가지 셔츠가 두 개 겹쳐진 듯 보이는 독특한 셔츠와 블루 컬러 재킷, 팬츠는 모두 장광효 카루소(02-542-2314)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이 차고 넘치는 시대다. 그렇기에 전통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배세진은 전통 옹기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제시하는 작가다. 10여 년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한 그의 작품은 긴박하게 흘러가는 현시대에 전통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작품의 제목이 모두 ‘고도를 기다리며’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좋아한다. 희곡에선 주인공이 고도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도자기 역시 반복적 작업으로 완성이라는 게 없어 희곡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가 적힌 작은 도자 조각을 쌓아 올린 모양이 마치 작은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도예의 가장 기본인 판 성형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두께 0.7~1cm, 폭 3~4cm의 흙 판을 숙성시킨 후 잘라서 벽돌을 쌓듯 하나씩 쌓아 올리기 때문인 것 같다. 작업을 시작한 10년 전부터 숫자를 적어왔다. 현재 193,826번이다. 자연스럽게 반복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쌓인 숫자를 보면 그간 부지런히 작업했다는 성취감도 느껴진다.
작품 만드는 과정이 일종의 수련처럼 보인다. 오랜 노력으로 결실을 얻은 경험으로, 어딘가에서 자신의 재능을 단련하고 때로 좌절하는 이에게 조언을 한다면?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 있다. 그게 노력의 부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항상 좌절한다. 많은 공모, 지원 프로그램에서 탈락하고, 작품을 한 점도 못 팔고 돌아온 전시도 많다. 하
지만 계속 단련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기회가 생겼다. 불안함은 작가가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런 불안함을 내 일부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진다.
도예보다 오브제에 가깝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품도 만들 계획이 있는가?
그릇 작업은 항상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간 해오던 작업을 더 단단히 하고 천천히 도전할 예정이다.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관심이 더 큰 덕분에 해외에서 판매가 수월하게 이뤄지고 있다. 9월에 열리는 스위스의 공예 비엔날레에 초청됐고, 파리에선 일본 작가와 2인전을 연다. 11월엔 뉴욕 전시가 예정되어 있고, 12월엔 벨기에 도자 비엔날레에 참여한다.
- 흙으로 시간을 쌓다 도예가 배세진
-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