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테이트 트렌드 포럼 전시 당신의 누樓는 무엇일까?
각박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는 무엇일까? 두 건축가는 이에 대한 답을 우리 조상의 풍류와 낭만이 있는 ‘누樓’에서 찾고, 이를 세계적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현대 공간과 우리 마음속에 들여놓을 수 있는 새로운 휴식처, 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특별 전시인 ‘힐스테이트 트렌드 포럼관’ 에서 건축가 로베르토 셈프리니와 박재우 씨가 21세기 누의 모습을 제안한다.
“경회루에서 트렌디한 파티를 즐기다”
_건축가 박재우
전통 공간으로서 누의 의미는?
한자어 ‘樓’란 ‘누각, 다락’이란 뜻이다. ‘누’는 땅 위로 올라서서 자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지어졌다. 한국의 건축은 땅과의 만남을 인연으로 삼고 소중히 여겨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거기에 터를 만든다(자연과의 조화). 한쪽으 로는 산이나 숲이 보이도록 하고 반대편으로는 물이 흘러내리도록 하여 항상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한국의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건물을 만든다. 이것이 한국 전통 공간이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누다. 사람들은 누에서 자연과 함께 연회를 열고, 시와 문학을 논했다. 자연의 삼라만상을 경험하고 정신적인 안식과 치유를 하는 곳. 연못 속을 노니는 물고기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자연의 향기, 피부 속 깊숙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 누는 자연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누는 무엇인가?
누라는 물리적 공간이 어떤 모습을 띠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누를 현대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은 잊고 있던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오늘에 맞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더 큰 세상 밖으로 나아가 가치를 인정받길 원한다.
2007년 선보이는 누의 모습은?
‘조선시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누에서 파티를 즐긴다.’ 2007년 누의 모습은 바로 이렇다. 디지털이라는 빠르고 감각적인 문화 속에서 사는 현대인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과거의 전통과 향수를 동경한다. 그러나 체험하지 못한 과거와 전통은 막연한 동경, 허무함으로 되돌아온다. 알베르토 알레시는 디자인을 할 때 감각, 기억, 상상이란 터널을 통한다 했다. 나 역시 누를 오늘날 현대 공간에 끌어들이기 위해 누가 존재했던 과거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누는 생각만큼 화려하지도, 접근하기에 어렵지도, 소유하기에 먼 대상도 아니다. 자연 속에 겸허하게 자리한 누, 누구에게나 개방된 누는 풍류와 운치, 여유가 있는 지극히 평화로운 곳이다. 우리가 모르던 누의 참 의미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경회루 못지않은 멋진 누를 갖게 된다.
“한국의 누는 세계의 휴식처다”
_건축가 로베르토 셈프리니
외국인으로서 보는 누의 의미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한글과 건축,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으로 시작되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느꼈다. 막연한 이야기 같지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긍정적 의미의 허무함, 아니면 빈 듯한 느낌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는 여운, 여백의 미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 전통 건축을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된 점은 내가 느꼈던 그 여백의 미가 바로 ‘누’라는 것이다. 실제 텅 빈 듯한 공간 아닌가.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길 수 있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한국의 누는 나로 하여금 인류 건축 역사를 되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천 년 전 유럽의 기원을 보면,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바닥을 높인 공간attico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한국의 누와는 다른 의미이지만, 놀랍게도 그 건축 양식이 비슷한 점을 보면 분명 한국의 누는 세계적인 공감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현대적 개념으로서의 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젠 ‘집’의 개념이 ‘친구’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풍류와 휴식, 자연과 함께 있는 놀이 공간으로서의 누는 예나 지금이나 그 의미는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오히려 이를 오늘날 공간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원전의 아고라agora(그리스어로 ‘광장’이라는 뜻)라는 공간 또한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감정을 교류하던 곳이었다. 아고라가 철학적인, 진중한 교류의 장이었다면, 누는 이처럼 심각한 소통을 풍류와 낭만으로 풀어냈던 공간이라 생각한다. 결국 동서양의 문화가 다른 것 같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비슷하다고 본다. 나는 이런 상대적 시각에서 한국의 누를 보다 세계적인 공간으로 표현하려 한다.
전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누의 모습은?
역사와 현재의 공존이라는 미학을 전해주고 싶다. 가장 모던한 곳에 재해석된 전통 공간을 조화시키고, 이를 통해 고유의 정서, 문화를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기간 중 3월 23일 오후 3시에 로베르토 셈프리니와 박재우씨가 진행하는 세미나 ‘힐스테이트, 글로벌 디자이너와 ‘한국의 누’를 재해석하다’가 열린다. 문의 02- 2262-7191~9
1, 2 나무의 따스한 인간미를 담담하고 단아하게 연출한 최병훈의 최신작, ‘태초의 잔상’ 작품 시리즈.
아메리칸 하드우드 포럼 예술로 표현한 고향, 마음의 나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제안하는 ‘네오 노스탤지어’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별 전시는 바로 미국활엽수수출협회에서 마련한 아메리칸 하드우드 포럼, ‘나무로 재해석한 네오 노스탤지어’다. 인류의 오랜 동반자이자 마음의 고향인 자연을 대변하는 나무. 아메리칸 하드우드 포럼에서는 네오 노스탤지어의 의미를 나무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는 국내 최고 아트 퍼니처 작가 1세대인 최승천 씨와 2세대 최병훈 씨가 만든 다양한 목공예 가구 작품으로 표현된다. 오랫동안 나무라는 소재를 갖고 예술 세계를 펼쳐온 작가들이 제안하는 ‘노스탤지어’는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던 나무의 순수한 매력 그 자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가 모두 나무를 가구의 재료로서가 아닌, 하나의 생명이자 영혼으로 보고 이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기 때문. 나무가 지닌 빛깔과 촉감, 향기와 숨소리까지 들릴 듯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디자인한 아트 퍼니처의 세계는 위대한 자연을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3, 4, 5 자연의 서정성을 수채화처럼 은은하고 평화롭게 표현한 최승천의 작품.
이 전시에서 최승천 씨는 새와 나무, 꽃을 주제로 서정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아트 퍼니처를 선보이며, 최병훈 씨는 나무가 지닌 부드러운 물성의 특성을 통해 단아한 형태미를 강조한 미니멀리즘의 작품을 제안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듯하지만 한국의 서정성을 담아 공통분모를 지닌 두 작가의 작품은 나무를 활용한 공간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현재 감각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디자이너 윤영권 씨가 나무를 갖고 공간을 연출, 그 안에서 최승천·최병훈 씨의 작품이 나무와 자연, 그리고 생활 공간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도록 한다고. 나무를 중심으로 자연과 예술, 공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아메리칸 하드우드 포럼 전시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찾던 이상향을 보여줄 것이다.
*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기간 중 3월 23일 오후 1시 30분에 최승천·최병훈·윤영권 씨가 진행하는 세미나 ‘나무로 재해석한 네오 노스텔지아’가 열린다. 문의 02- 2262-7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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