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레스토랑이 즐비한 파리 벨빌 지역에 있는 마탈리 크라세의 사무실은 일터와 가정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복층 구조의 건물에서 사무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주방을 겸한 넓은 거실과 침실들이다. 마치 그의 인생에서 가정과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저는 일하는 곳에서 살아요. 사는 곳이 일하는 곳이고, 일하는 곳이 또 사는 곳이죠. 엄마로서의 삶에서 이 두 가지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공간 또한 분리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 아이들과 함께 일해요.”
프랑스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집에서 쉬기도 하고 저마다 취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주요 과목 학원은 보기 힘든 풍경이다. 덕분에 마탈리의 아이들은 아침 내내 승마 클럽에 가 있단다. 하지만 그 시간이 훌쩍 지나면 점심때쯤 이곳은 또다시 놀이터로 변한다. 그 때문인지 마탈리는 수요일 오전에 찾아온 방문객에게 서둘러 자신의 작업을 설명해나간다.
상상과 현실 사이의 대화가 만든 마탈리 스타일
프랑스 디자이너 마탈리 크라세를 설명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얘기가 바로 필립 스탁과 그의 특이한 헤어스타일이다. 필립 스탁과 함께 5년 동안 디자인 작업을 했던 마탈리는 스탁의 이름으로 유명해진 디자인 제품들 뒤에 숨어 있던 일등 공신이었다. “스탁과 함께 일할 땐 주로 전기 멀티미디어 관련 제품을 디자인했어요. 1년에 1백20개의 제품을 디자인했지만, 한 번도 스탁의 아이디어로 작업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냈고 스탁이 조언을 하는 정도였 죠. 그래서 독립을 할 때도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제 디자인의 연장이었고, 단지 그 영역이 훨씬 방대해진 것뿐이었죠.”
필립 스탁과 함께하면서 마탈리 크라세는 자신의 디자인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때처럼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면서 작업한 적이 없었다고 회상하는 그는,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단연 필립 스탁을 꼽았다. 덕분에 1998년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마탈리의 디자인 감각은 마치 새장에서 뛰쳐나온 새처럼 세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펼쳐 보인 노트북 속에서는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다양한 작업들이 쏟아져 나온다. 상공간과 개인 주택의 인테리어는 물론 주방용품과 가구, 조명에서부터 가상 공간의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제안하는 디자인 세계는 설치미술가의 작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마탈리의 작업은 그 범위를 규정짓기 어렵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니스의 ‘하이 호텔Hi Hotel’은 지금껏 가장 애착을 가졌던 작업이라고 한다. 38개의 호텔 룸을 파스텔 톤으로 꾸민 파격적인 시도는 2003년 당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1 프랑스 파리에 있는 ‘뤼우 코민Lieu Commun’은 일반 옷 매장이 아니라 매장 전체가 손님의 동작에 따라 음악과 조명 등이 반응을 하는 공간이다. 물론 옷을 판매하기 위한 상공간이지만, 마탈리는 이곳에서 손님과 매장이 어우러져 기분 좋게 소통하는 인간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2 하이 호텔의 심장이라 불리는 ‘해피 바’는 낮에는 자연광을 받아들여 강한 파스텔 톤이 돋보이지만 밤에는 또 다른 조명 연출과 음악이 곁들여지는 색다른 공간으로 변신한다.
3 하이 호텔의 ‘인도어 테라스Indoor Terrace’라 불리는 이 객실은 모든 가구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으며, 실제 대나무를 오가닉 커튼으로 사용해서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4 마탈리의 가장 최근 작업이 전시된 ‘발루가Balouga’는 어린이들을 위한 의류와 디자인 작품 갤러리로 이곳에 놓인 책상과 옷을 갈아입는 캡슐을 디자인했다.
“하이 호텔이 오픈했을 때 유럽 호텔 업계는 ‘내 집처럼 편안한 호텔’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었어요. 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편안함을 강조한 거죠. 하지만 제 디자인은 집처럼 평범한 공간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했어요. 비싼 가구와 중후한 내장재로 인테리어를 했던 기존의 럭셔리 호텔이라는 개념과는 상반된 럭셔리 공간이었죠. 아마 그래서 이슈가 되었던 것 같아요.”
마탈리 크라세의 예견은 적중했다. 하이 호텔이 오픈한 이후 우연치 않게 유럽의 호텔 업계는 ‘디자인 호텔’ 열풍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앞 다투어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내세워 리노베이션을 시작했고, 심지어는 ‘유럽 디자인 호텔 가이드’까지 등장했다.
열린 마음으로 보는 세상, 세계가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다 그의 직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는 구속된 이름보다 예술가라는 이름을 좋아한다는 그는 파리는 물론 런던과 밀라노, 뉴욕 등의 유명 미술관에서 다양한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추상적인 공간 디자인에서부터 심지어는 비둘기집 캡슐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상상력은 다양한 분야와 제품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1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공간은 다름 아닌 마탈리 크라세 프로덕션 사무실이다. 단 세 사람뿐인 이곳에서 세계적인 디자인이 탄생된다.
2 마탈리가 디자인한 꽃병에는 굳이 꽃을 꽂지 않아도 유리와 스테인리스가 조화된 꽃으로 인테리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3 하이 호텔의 ‘스트레이츠Strates’ 객실은 모든 디자인이 횡선 위주로 되어 있어 조금은 낯선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미래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긴장감이 들게 만드는 곳이다.
4 석조로 제작된 커다란 욕조가 인상적인 하이 호텔의 ‘랑데뷔Rendez-vous’ 객실은 개인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무 공간과 욕실이 강조된 인테리어가 특징으로 출장을 위해 이곳을 찾는 비즈니스맨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제 작업은 모든 오브제를 통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있어요. 그것이 디자인 제품이든 아니면 설치 작업이든 가능한 모든 재료를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하려고 하죠. 모든 작업의 주된 개념은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인간과 공간, 인간과 사물 간의 의사소통이 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가 얘기하는 의사소통의 개념은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공간보다는 사물이나 공간이 인간과 서로 이야기나눌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을 지닌 디자인을 뜻한다. 이제 더 이상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식상하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가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인테리어를 했다는 아파트는 즐기면서 작업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재미있는 프로젝트였다. 이미 구조상으로는 완벽하게 신축된 아파트 건물을 세계 각국의 유명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참여, 저마다 자유로운 주제 아래 한 가구씩 인테리어를 했다. 일반인들이 이를 둘러보고 자기 기호에 맞는 방을 구입하도록 했다.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모델하우스에서 탈피한 과감한 시도였다. 중국에서 이런 디자인 이벤트와 상술이 복합된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니 더욱 흥미롭다.
“아직 한국엔 가보지 못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상하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죠. 아마 미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까다롭게 주문하는 사람도 없이 제가 자유롭게 인테리어하고 이를 공감한 일반인들이 구입을 하겠다고 하니, 재미있었습니다. 전시장이었다면 그냥 둘러보고 지나쳤을 공간인데, 이들이 몇십 년, 아니 평생을 두고 살겠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어요.” 물론 그가 디자인한 공간을 선택한 사람들은 중국에서도 부유층에 속하는 이들이겠지만, 빌딩 내부 인테리어는 전시장처럼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었다. 상하이의 풍경과 바다에 비친 상하이의 그림자 대신 파리의 풍경이 조화를 이룬 아파트 홍보 포스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상하이와 닮은 파리의 모습에 중국인들이 환호를 했다는 후문. 이 역시 두 도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아시아와 유럽 간의 상호 관계를 상징하고 있단다.
세계적 디자인은 가정에서 탄생한다
그칠 줄 모르는 마탈리의 작업 설명은 첫째인 딸 포플린Popline과 둘째인 아들 아르토Arto가 돌아올 때쯤 되어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아빠를 닮은 포플린은 엄마가 자리를 뜬 사이 마탈리 크라세 서적을 펼쳐 보이면서 엄마의 작업을 설명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의 디자인 세계는 사뭇 다른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먼저 제가 작업한 걸 보여준 다음 아이들의 의견부터 듣죠.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냥 아이들의 느낌부터 물어봐요. 그럼 정확해요. 아이들이 느끼는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간단 명료하죠. 그게 가장 위대한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포플린은 제가 조금 약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꼭 지적해내요. 놀랍죠?”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일곱 살 포플린은 의젓하기만 하다. 엄마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거실에 앉아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하지만 둘째 아르토는 낯선 손님이 왔다는 생각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고양이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의 무릎을 점령하고야 만다.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아이를 껴안고 잠시 놀아주더니 디자인 작업을 계속한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 엄마는 화면 속에 있는 가상 공간에 대해 설명하느라 열심이다. 아르토 또한 엄마가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으레 ‘내가 만약 어른이 되면…’으로 시작되는 상상의 세계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쩌면 마탈리가 영감을 얻는 곳이 바로 이 아이들의 맑은 상상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마탈리 크라세는 누구인가?
1965년 생. 파리 국립고등산업미술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1991년 졸업과 동시에 밀라노에 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데니스 산타 치아라, 프랑스의 필립 스탁과 함께 일했으며, 1997년에는 파리 디자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후 1998년 자신만의 디자인 프로덕션 ‘마탈리 크라세’를 오픈하고, 2003년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니스의 하이 호텔을 디자인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1 사무실과 거실 사이에 벽과 출입문을 두지 않고 키 높은 책장을 설치, 언제든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일지라도 아이들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다.
2 놀아 달라고 보채는 아르토를 무릎에 앉힌 채 작업을 하는 마탈리는, 자신의 작업 모두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작업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 자상하게 대해준다.
“아이들의 상상은 예측 불허랍니다. 그래서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제겐 자극이 되죠. 하지만 한창 바쁠 때 아이들이 함께 놀아달라고 하면 당연히 힘들어요. 그럼 그때마다 지원군이 나타나요. 바로 남편이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마탈리 크라세 프로덕션의 로고에는 세 사람의 얼굴이 등장한다. 마탈리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한 얼굴과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이다. 사무실에도 직원은 이 세 사람이 전부이다. 한 사람은 기술적인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자이너 마크,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회사의 마케팅과 마탈리의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는 남편 프란시스Francis다.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를 따로 두지 않는 이유도 바로 남편 덕분이다. 1인 3역을 하는 남편의 스케줄이 때론 아내보다 더 분주하다. 흔히 내조의 힘보다 외조의 힘이 더 위대하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보다 더 유명한 부인을 위해 전천후 지원군이 되어주는 프란시스는 육아는 물론 요리까지도 책임지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만, 포플린과 아르토는 줄곧 엄마에게 달려간다. 책을 보다가 질문이 생겨도, 놀다가 손가락을 다쳐도 두 아이 모두 아빠보다는 사무실에 있는 엄마를 찾는다. 몇 차례 반복되다 보면 귀찮을 만도 한데 마탈리는 한결같이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준다.
“사실 가끔 방해받기도 하죠. 하지만 일 때문에 외국 여행이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절실해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일할 때만큼은 아이들 편을 들어줘요. 제겐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데요. 일과 아이들 웃음을 함께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굳이 사무실을 따로 두려고 하지 않아요.”
3 오늘의 점심 메뉴는 삶은 야채를 곁들인 소시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수요일 점심 식사 준비는 남편 프란시스의 몫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식사하기 전까지 1시간 정도 ‘주방 작업’을 마친 프란시스는 <미슐랭 가이드> 셰프에 대적할 만한 요리 실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4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핑거 푸드 레스토랑 르 부두아르 Le Boudoir를 위해 제작한 이 식기는 모든 음식이 한 접시 안에서 해결되는 친환경 디자인이다.
솔직히 ‘워킹 맘’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한두 가지 약점을 들춰보려 했지만, 마탈리의 일상은 그런 여지마저도 주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다. 이 세계적인 디자이너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도 그리 뜨겁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이들에 대한 얘기로 웃음이 오갈 무렵 처음부터 유난히 궁금했던 질문을 어렵게 꺼내 들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헤어스타일이다. 유럽 언론들에서도 단연 화두는 그의 중성적인 ‘기이한’ 헤어스타일이다.
“모두들 궁금해하죠.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부터 헤어스타일에 관한 질문부터 해요. 이 스타일은 꽤 오래됐어요.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해봤지만 이것만큼 만족스러운 게 없었어요. 이렇게 자르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막혔던 숨을 내쉬는 것처럼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데요. 단골 미용실이요? 그냥 동네 중국 미용실에서 잘라요.” 한 차례 시원한 웃음이 쏟아진다. 그러자 아이들도 덩달아 함께 웃는다. 마탈리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파리 벨빌의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웬지 가슴이 벅차다. 옆에 누가 있지도 않건만 마치 목 주변으로 깃털이 스쳐 가듯 간지러운 느낌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두 아이의 엄마도 모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구나…. 상쾌한 자극에 즐거운 용기를 덤으로 얻었다.
“저는 일하는 곳에서 살아요. 사는 곳이 일하는 곳이고, 일하는 곳이 또 사는 곳이죠. 엄마로서의 삶에서 이 두 가지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공간 또한 분리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 아이들과 함께 일해요.”
프랑스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집에서 쉬기도 하고 저마다 취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주요 과목 학원은 보기 힘든 풍경이다. 덕분에 마탈리의 아이들은 아침 내내 승마 클럽에 가 있단다. 하지만 그 시간이 훌쩍 지나면 점심때쯤 이곳은 또다시 놀이터로 변한다. 그 때문인지 마탈리는 수요일 오전에 찾아온 방문객에게 서둘러 자신의 작업을 설명해나간다.
상상과 현실 사이의 대화가 만든 마탈리 스타일
프랑스 디자이너 마탈리 크라세를 설명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얘기가 바로 필립 스탁과 그의 특이한 헤어스타일이다. 필립 스탁과 함께 5년 동안 디자인 작업을 했던 마탈리는 스탁의 이름으로 유명해진 디자인 제품들 뒤에 숨어 있던 일등 공신이었다. “스탁과 함께 일할 땐 주로 전기 멀티미디어 관련 제품을 디자인했어요. 1년에 1백20개의 제품을 디자인했지만, 한 번도 스탁의 아이디어로 작업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냈고 스탁이 조언을 하는 정도였 죠. 그래서 독립을 할 때도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제 디자인의 연장이었고, 단지 그 영역이 훨씬 방대해진 것뿐이었죠.”
필립 스탁과 함께하면서 마탈리 크라세는 자신의 디자인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때처럼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면서 작업한 적이 없었다고 회상하는 그는,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단연 필립 스탁을 꼽았다. 덕분에 1998년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마탈리의 디자인 감각은 마치 새장에서 뛰쳐나온 새처럼 세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펼쳐 보인 노트북 속에서는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다양한 작업들이 쏟아져 나온다. 상공간과 개인 주택의 인테리어는 물론 주방용품과 가구, 조명에서부터 가상 공간의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제안하는 디자인 세계는 설치미술가의 작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마탈리의 작업은 그 범위를 규정짓기 어렵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니스의 ‘하이 호텔Hi Hotel’은 지금껏 가장 애착을 가졌던 작업이라고 한다. 38개의 호텔 룸을 파스텔 톤으로 꾸민 파격적인 시도는 2003년 당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1 프랑스 파리에 있는 ‘뤼우 코민Lieu Commun’은 일반 옷 매장이 아니라 매장 전체가 손님의 동작에 따라 음악과 조명 등이 반응을 하는 공간이다. 물론 옷을 판매하기 위한 상공간이지만, 마탈리는 이곳에서 손님과 매장이 어우러져 기분 좋게 소통하는 인간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2 하이 호텔의 심장이라 불리는 ‘해피 바’는 낮에는 자연광을 받아들여 강한 파스텔 톤이 돋보이지만 밤에는 또 다른 조명 연출과 음악이 곁들여지는 색다른 공간으로 변신한다.
3 하이 호텔의 ‘인도어 테라스Indoor Terrace’라 불리는 이 객실은 모든 가구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으며, 실제 대나무를 오가닉 커튼으로 사용해서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4 마탈리의 가장 최근 작업이 전시된 ‘발루가Balouga’는 어린이들을 위한 의류와 디자인 작품 갤러리로 이곳에 놓인 책상과 옷을 갈아입는 캡슐을 디자인했다.
“하이 호텔이 오픈했을 때 유럽 호텔 업계는 ‘내 집처럼 편안한 호텔’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었어요. 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편안함을 강조한 거죠. 하지만 제 디자인은 집처럼 평범한 공간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했어요. 비싼 가구와 중후한 내장재로 인테리어를 했던 기존의 럭셔리 호텔이라는 개념과는 상반된 럭셔리 공간이었죠. 아마 그래서 이슈가 되었던 것 같아요.”
마탈리 크라세의 예견은 적중했다. 하이 호텔이 오픈한 이후 우연치 않게 유럽의 호텔 업계는 ‘디자인 호텔’ 열풍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앞 다투어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내세워 리노베이션을 시작했고, 심지어는 ‘유럽 디자인 호텔 가이드’까지 등장했다.
열린 마음으로 보는 세상, 세계가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다 그의 직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는 구속된 이름보다 예술가라는 이름을 좋아한다는 그는 파리는 물론 런던과 밀라노, 뉴욕 등의 유명 미술관에서 다양한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추상적인 공간 디자인에서부터 심지어는 비둘기집 캡슐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상상력은 다양한 분야와 제품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1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공간은 다름 아닌 마탈리 크라세 프로덕션 사무실이다. 단 세 사람뿐인 이곳에서 세계적인 디자인이 탄생된다.
2 마탈리가 디자인한 꽃병에는 굳이 꽃을 꽂지 않아도 유리와 스테인리스가 조화된 꽃으로 인테리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3 하이 호텔의 ‘스트레이츠Strates’ 객실은 모든 디자인이 횡선 위주로 되어 있어 조금은 낯선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미래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긴장감이 들게 만드는 곳이다.
4 석조로 제작된 커다란 욕조가 인상적인 하이 호텔의 ‘랑데뷔Rendez-vous’ 객실은 개인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무 공간과 욕실이 강조된 인테리어가 특징으로 출장을 위해 이곳을 찾는 비즈니스맨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제 작업은 모든 오브제를 통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있어요. 그것이 디자인 제품이든 아니면 설치 작업이든 가능한 모든 재료를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하려고 하죠. 모든 작업의 주된 개념은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인간과 공간, 인간과 사물 간의 의사소통이 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가 얘기하는 의사소통의 개념은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공간보다는 사물이나 공간이 인간과 서로 이야기나눌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을 지닌 디자인을 뜻한다. 이제 더 이상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식상하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가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인테리어를 했다는 아파트는 즐기면서 작업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재미있는 프로젝트였다. 이미 구조상으로는 완벽하게 신축된 아파트 건물을 세계 각국의 유명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참여, 저마다 자유로운 주제 아래 한 가구씩 인테리어를 했다. 일반인들이 이를 둘러보고 자기 기호에 맞는 방을 구입하도록 했다.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모델하우스에서 탈피한 과감한 시도였다. 중국에서 이런 디자인 이벤트와 상술이 복합된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니 더욱 흥미롭다.
“아직 한국엔 가보지 못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상하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죠. 아마 미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까다롭게 주문하는 사람도 없이 제가 자유롭게 인테리어하고 이를 공감한 일반인들이 구입을 하겠다고 하니, 재미있었습니다. 전시장이었다면 그냥 둘러보고 지나쳤을 공간인데, 이들이 몇십 년, 아니 평생을 두고 살겠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어요.” 물론 그가 디자인한 공간을 선택한 사람들은 중국에서도 부유층에 속하는 이들이겠지만, 빌딩 내부 인테리어는 전시장처럼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었다. 상하이의 풍경과 바다에 비친 상하이의 그림자 대신 파리의 풍경이 조화를 이룬 아파트 홍보 포스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상하이와 닮은 파리의 모습에 중국인들이 환호를 했다는 후문. 이 역시 두 도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아시아와 유럽 간의 상호 관계를 상징하고 있단다.
세계적 디자인은 가정에서 탄생한다
그칠 줄 모르는 마탈리의 작업 설명은 첫째인 딸 포플린Popline과 둘째인 아들 아르토Arto가 돌아올 때쯤 되어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아빠를 닮은 포플린은 엄마가 자리를 뜬 사이 마탈리 크라세 서적을 펼쳐 보이면서 엄마의 작업을 설명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의 디자인 세계는 사뭇 다른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먼저 제가 작업한 걸 보여준 다음 아이들의 의견부터 듣죠.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냥 아이들의 느낌부터 물어봐요. 그럼 정확해요. 아이들이 느끼는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간단 명료하죠. 그게 가장 위대한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포플린은 제가 조금 약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꼭 지적해내요. 놀랍죠?”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일곱 살 포플린은 의젓하기만 하다. 엄마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거실에 앉아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하지만 둘째 아르토는 낯선 손님이 왔다는 생각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고양이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의 무릎을 점령하고야 만다.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아이를 껴안고 잠시 놀아주더니 디자인 작업을 계속한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 엄마는 화면 속에 있는 가상 공간에 대해 설명하느라 열심이다. 아르토 또한 엄마가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으레 ‘내가 만약 어른이 되면…’으로 시작되는 상상의 세계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쩌면 마탈리가 영감을 얻는 곳이 바로 이 아이들의 맑은 상상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마탈리 크라세는 누구인가?
1965년 생. 파리 국립고등산업미술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1991년 졸업과 동시에 밀라노에 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데니스 산타 치아라, 프랑스의 필립 스탁과 함께 일했으며, 1997년에는 파리 디자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후 1998년 자신만의 디자인 프로덕션 ‘마탈리 크라세’를 오픈하고, 2003년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니스의 하이 호텔을 디자인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1 사무실과 거실 사이에 벽과 출입문을 두지 않고 키 높은 책장을 설치, 언제든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일지라도 아이들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다.
2 놀아 달라고 보채는 아르토를 무릎에 앉힌 채 작업을 하는 마탈리는, 자신의 작업 모두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작업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 자상하게 대해준다.
“아이들의 상상은 예측 불허랍니다. 그래서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제겐 자극이 되죠. 하지만 한창 바쁠 때 아이들이 함께 놀아달라고 하면 당연히 힘들어요. 그럼 그때마다 지원군이 나타나요. 바로 남편이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마탈리 크라세 프로덕션의 로고에는 세 사람의 얼굴이 등장한다. 마탈리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한 얼굴과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이다. 사무실에도 직원은 이 세 사람이 전부이다. 한 사람은 기술적인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자이너 마크,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회사의 마케팅과 마탈리의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는 남편 프란시스Francis다.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를 따로 두지 않는 이유도 바로 남편 덕분이다. 1인 3역을 하는 남편의 스케줄이 때론 아내보다 더 분주하다. 흔히 내조의 힘보다 외조의 힘이 더 위대하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보다 더 유명한 부인을 위해 전천후 지원군이 되어주는 프란시스는 육아는 물론 요리까지도 책임지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만, 포플린과 아르토는 줄곧 엄마에게 달려간다. 책을 보다가 질문이 생겨도, 놀다가 손가락을 다쳐도 두 아이 모두 아빠보다는 사무실에 있는 엄마를 찾는다. 몇 차례 반복되다 보면 귀찮을 만도 한데 마탈리는 한결같이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준다.
“사실 가끔 방해받기도 하죠. 하지만 일 때문에 외국 여행이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절실해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일할 때만큼은 아이들 편을 들어줘요. 제겐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데요. 일과 아이들 웃음을 함께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굳이 사무실을 따로 두려고 하지 않아요.”
3 오늘의 점심 메뉴는 삶은 야채를 곁들인 소시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수요일 점심 식사 준비는 남편 프란시스의 몫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식사하기 전까지 1시간 정도 ‘주방 작업’을 마친 프란시스는 <미슐랭 가이드> 셰프에 대적할 만한 요리 실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4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핑거 푸드 레스토랑 르 부두아르 Le Boudoir를 위해 제작한 이 식기는 모든 음식이 한 접시 안에서 해결되는 친환경 디자인이다.
솔직히 ‘워킹 맘’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한두 가지 약점을 들춰보려 했지만, 마탈리의 일상은 그런 여지마저도 주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다. 이 세계적인 디자이너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도 그리 뜨겁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이들에 대한 얘기로 웃음이 오갈 무렵 처음부터 유난히 궁금했던 질문을 어렵게 꺼내 들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헤어스타일이다. 유럽 언론들에서도 단연 화두는 그의 중성적인 ‘기이한’ 헤어스타일이다.
“모두들 궁금해하죠.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부터 헤어스타일에 관한 질문부터 해요. 이 스타일은 꽤 오래됐어요.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해봤지만 이것만큼 만족스러운 게 없었어요. 이렇게 자르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막혔던 숨을 내쉬는 것처럼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데요. 단골 미용실이요? 그냥 동네 중국 미용실에서 잘라요.” 한 차례 시원한 웃음이 쏟아진다. 그러자 아이들도 덩달아 함께 웃는다. 마탈리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파리 벨빌의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웬지 가슴이 벅차다. 옆에 누가 있지도 않건만 마치 목 주변으로 깃털이 스쳐 가듯 간지러운 느낌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두 아이의 엄마도 모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구나…. 상쾌한 자극에 즐거운 용기를 덤으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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