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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한옥 정거장 여행객을 위한 카페 연緣
삼청동의 이 아담한 한옥 카페는 매일 저녁 방랑객들의 발길로 들썩거린다. 10년 동안 여행을 다닌 주인장이 세계 각지에서 만난 이들과 바야흐로 자신의 아지트에서 뭉친 게다. 외국인 여행객은 물론 반복되는 일상을 유랑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쾌한 정거장이 되어주는 카페 ‘연’을 소개한다.

1 사랑방에 손님이 한번 들면 뜨끈뜨끈한 온돌의 마력에 빠져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힘들다. 창문을 열면 주위에 한옥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2 대문에서 바라본 카페. 안마당은 야외 파티나 연주회 등에 다용도로 쓰인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어떤 카페나 술집이 의외로 중요한 거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론 이름난 유적지나 빼어난 자연경관보다 더 유혹적으로 나그네의 감성 촉수를 건드리기도 한다. 이 공간이라면 어쩐지 잠시 행장을 푼 뒤 두 다리를 뻗어도 될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유를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여행이란 본디 머리보다는 가슴이 발길을 인도하곤 하니까.

삼청동의 아담한 한옥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카페 ‘연緣_Traveler’s Hangout’을 운영하는 이인식 씨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해 10년간 30여 개국을 유랑한 여행 마니아. 오랜 여행 경력 덕에 그는 여객들이 마음의 여장을 풀 수 있는 쉼터에 대한 ‘감’이 있는 남자다. 이인식 씨는 ‘나그네의 본능’에 의지해 2년 전부터 손수 이 카페를 꾸려오고 있다.

귓속말이 더욱 달콤하게 전해지는 다락방 이인식 씨가 카페로 한옥을 택한 것은 건축 구조가 흥미진진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옥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어요. 이왕 앞으로 몸담을 새로운 둥지가 ‘탐험의 대상’이 된다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 선뜻 한옥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도 특별한 체험일 듯도 싶었고요.” 이인식 씨는 낡은 한옥을 구입해 기단과 주춧돌만 남기고 허문 뒤 그 위에 새로 대지 25평에 건축면적 15평의 아담한 한옥을 지었다. 북촌에 새 한옥 짓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송인호 교수가 설계를 맡았다. 송 교수는 카페 연을 두고 “작지만 단단하게 여문 한옥”이라고 평가했다. 규모는 작지만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공간 곳곳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응접실 벽면을 가득 메운 사진에서 주인 이인식 씨와 손님들의 여행 발자취가 묻어난다. 보통 한옥에서 노마드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렇듯 여행 사진을 한 장씩 덧붙여놓으니 한옥에서도 슬슬 다이내믹한 기운이 느껴진다.
4 다락방은 손님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한 공간이다. 다른 곳과 분리되어 있어 밀담을 나누기도, 잠깐 눈을 붙였다 가기에도 그만이다. 낮게 위치한 창문을 열면 앉은 채로 안마당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할 수도 있다.

카페 연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님들은 왼쪽의 사랑방에 들어앉거나 정면의 메인 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메인 홀은 안방과 대청 그리고 건넌방을 하나로 터서 마련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바와 테이블을 놓아 다른 공간과 달리 입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엌과 다락 및 지하 창고를 입체적으로 구성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부엌 위에는 다락이 있는데, 이 다락은 사랑방을 통해 오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부엌 뒤편에는 사랑방 밑에 위치한 지하 창고로 들어가는 일자형 계단을 놓았다. 창고는 늘 서늘하기 때문에 카페에서 쓰이는 각종 식자재를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하기에 유용하다. 다락방은 이곳을 찾는 단골 손님들 사이에서 모종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공간이다. 다락에 올라보니 과연 나지막한 천장과 조그만 창문 덕분에 어릴 적 소꿉놀이를 하던 ‘소굴’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마주 앉은 이가 건네는 귓속말이 더욱 달콤하고 또렷하게 들릴 것 같다.


1 여행은 무수한 인연을 담담히 응시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스치듯 지나간 이와 다시 조우한다면 인연 때문이고, 새로 누군가를 사귄다면 그 역시 인연 때문이다. 
2 한지를 이용해 찍어낸 카페 연의 명함과 이인식 씨가 여행을 다니며 모은 기념품. 
3 창틀 위의 좁은 공간에 조명등을 달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나는 장식장으로 활용했다.

여행에서 엮은 인연의 매듭으로 카페가 들썩들썩 카페 곳곳에는 이인식 씨가 거쳐온 여행의 관록이 묻어 있다. 벽면 장식이나 인테리어가 모두 여행 사진이나 기념품 등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카페 연에는 인도, 남미, 아프리카 등의 이국적인 음악이 하루 종일 나긋나긋하게 흐르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김미나 씨의 선곡 덕분이다. 이인식 씨가 카페를 연 지 6개월 만에 여행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김미나 씨는 요리부터 음악 선곡, 디스플레이까지 재주가 많아 카페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친구다. 한때 바텐더로 활동했던 일본 친구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함께 각종 퓨전 칵테일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때 만든 레시피를 응용해 만든 이곳의 야심작은 바로 ‘유자 칵테일’. 향긋하면서도 시원한 목 넘김이 일품이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늦봄부터 가을까지 카페 안마당에서 펼쳐지는 세계의 전통 악기 연주회가 이곳에 독특한 색깔을 더한다. 이 연주회 역시 주인장이 그간 여행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일이다. 국내 유일의 시타르(기타보다 큰 인도의 현악기) 연주가인 박재록 씨는 1년 째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한옥에서의 야외 공연은 색다른 맛이 느껴지기에 그의 인도 음악 선율이 기와지붕을 타고 넘는 날에는 카페 마감 시간이 새벽녘을 훌쩍 넘는다.

단출한 영양식처럼 소박하지만 요긴한 쉼터 이곳의 인기 메뉴는 무슬리Musli와 계란말이다. 무슬리는 오트밀과 우유, 꿀, 건포도, 계절 과일 등을 넣어 만든 발효식품이다. 스위스 음식으로 영양이 풍부하고 만들기가 간편해 전 세계 여행객들이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 메뉴다. 당면이나 치즈를 넣은 계란말이는 외국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인식 씨는 주로 단출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내는데, 가만 보면 메뉴가 격식을 모르고 담박한 주인의 품성을 닮았다.

3  티베트 등지에서 아낙들이 손수 만든 액세서리를 이곳에서 전시 겸 판매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지인들이 여행을 하며 수집한 각종 기념품을 진열해두기도 한다.
4 문간채는 이인식 씨의 사무 공간이자 낮잠을 자거나 때때로 숙식을 해결하는 방이다. 카페가 손님들로 가득 차 빈자리가 없을 경우에 이곳은 그의 친구들 차지다.

이인식 씨가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손님에게 애써 다가가지 않지만 한번 관계를 튼 손님과는 금세 돈독해진다. 손님이 먼저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면 ‘거참 무심한 주인도 다 있군!’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만큼 최소한의 친절만 베푼다. 그러나 주인장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의 타래가 풀리기라도 하면 그 손님은 이인식 씨의 눈에서 반짝반짝하는 열기를 발견할 것이다.

“여행을 다닐 때는 훗날 카페를 열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돌아보면 파키스탄의 라호르에 있던 ‘리갈’이라는 게스트하우스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신문사를 하던 동네 유지가 빈 건물을 인터넷 카페로 개조해서 꾸려오다가, 여객이 많아지자 게스트하우스로 확장했지요. 그 도시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이다 보니 전 세계 사람들이 모조리 모이게 되어 연일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습니다.” 숙박객들이 알아서 ‘공동 구역common area’으로 불리는 다용도 공간을 조성해 한데 모여 자기네 나라의 토속 음식도 해 먹고, 비디오도 보고, 여행 자료도 공유했다. 주인장이 여객들과 함께 원반 던지기, 연날리기도 하고 때때로 소소한 이유를 빌미로 파티를 연다거나 근처 농장에 데려가기도 했단다. “한 달 내내 그곳에서 머물렀는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그때의 기억이 이곳에 조금쯤 물들어 있을지 몰라요. 카페 연도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넉넉한 정거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카페 연은 오후 2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데, 연장 영업도 자주 한다. 문의 02-734-3009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