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최태지・박슬기
발레리나라는 운명
최태지는 1959년생으로 일본 가이타니 발레 학교, 프랑스 프랑게티 발레 학교, 미국 조프리 발레 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국립발레단 프리마돈나로 입단했다. 정동극장 극장장, 제3대ㆍ6대 국립발레단장을 지냈다. 2011년엔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국립발레단 명예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박슬기는 1986년생으로 2006년 바르나 국제무용콩쿠르 동상과 헝가리 부다페스트 월드 갈라 시티즌즈 초이스상ㆍ비평가상을 수상했고, 2007년 제1회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금상, 2009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금상을 수상했다. 2007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후 현재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잠시 발레단을 떠나 있다가 국립발레단장으로 재부임한 것이 2007년이에요. 그해 슬기가 준단원으로 입단했지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입단한 박슬기(32세)는 그해 말 최태지 단장(59세)의 발탁으로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 클라라로 분했다. 최태지 명예 예술 감독은 김지영, 김주원 등 현재 국내 정상급 스타 무용수를 키워낸 장본인으로, 37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립발레단장으로 취임해 ‘해설이 있는 발레’를 선보이며 발레 대중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용수를 봐왔어요. 슬기는 처음부터 ‘나는 프리마돈나가 되고 말 거야’라는 눈빛을 지닌 아이는 아니었지요. 그 순수함과 맑은 품성, 성실함을 높이 사요.” 박슬기 수석 무용수에게 최태지 명예 예술 감독은 하늘 같은 선생님 그 이상이다. “2007년 단장님께서 주역 데뷔를 시켜주셨는데,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늘 같은 부분에서 넘어지곤 했어요. 매일 울었죠. 나중에 단장님께서 저를 불러 밥을 사주시며 다독여주셨어요. 덕분에 그때 기억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무용수로서 테크니컬한 기량이 돋보이는 <돈키호테>의 키트리 역이나 <백조의 호수>의 흑조 역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박슬기에게 뜻밖의 문을 열어준 것도 최태지 감독이다. “주역으로 데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데렐라> 주인공 역에 김지영 선배와 더블 캐스팅되었어요. 결국 무대엔 서지 못했지만 단장님께서 기회를 한 번 더 주셔서 이듬해 <신데렐라> 주역으로 무대에 섰죠. 제게 ‘백색 발레’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처음 알려주신 분이 바로 단장님이에요.” 박슬기는 이후 <지젤>로 또 한 번 변신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 서른두 살,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스파르타쿠스> 등으로 연이어 성숙한 기량과 연기력을 펼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프리마돈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엔 외로움과 두려움 또한 ‘발레리나 박슬기’를 항상 따라다닌다. “일인자의 자리는 늘 위태롭고 불안하죠. 단장님은 여자로서 삶에서도 제 롤모델이에요. 아이를 둘 낳고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본받고 싶어요.” 최태지 감독은 “사람이기 때문에 예술을 하는 것이지, 예술가이기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발레에 전부를 거는 무용수보다 발레 이외의 삶또한 충실하게 사는 무용수가 무대에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관객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최태지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자신을 향해 보내는 러브콜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제주도에서 ‘최태지와 함께하는 탐라나들이’라는 공연을 올렸는데, 관객들이 무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제 능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더 많은 관객에게 발레를 알리고 싶습니다.” 최태지 감독은 한국발레협회가 오는 9월 무대에 올리는 창작 발레의 총감독을 맡았고, 박슬기 수석 무용수는 2월 초 벨기에에서 <스파르타쿠스> 주역으로 무대에 선 후 돌아와 직접 안무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최태지 감독은 주변에서 “박슬기의 춤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슬기야, 내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셨어. ‘발레의 신이 네 곁에 있는 이상, 너의 춤을 사랑하는 관객이 있는 이상 결국은 발레의 길을 걷게 될 거다’라고. 무대 위에서 춤추는 너를 오랫동안 보고 싶다.”
“단장님은 제게 롤모델이에요.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것 자체가 놀랍고 존경스러워요. 앞으로 단장님이 걸어가신 그 흔적을 따라 밟고 싶어요.” _박슬기
“슬기를 보면 현역 무용수 시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너는 발레리나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야.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네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하단다.” _최태지
글 유주희 기자
- 문화 예술계 선후배의 공감 30년 차이 발레리나라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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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간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행복>은 문화 예술계 각 분야에서 오랜 기간 대체할 수 없는 내공과 업적을 쌓아온 대선배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각광받는 젊은 후배의 만남을 함께했다. 그들의 나이 차 30년. 시대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며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온 선후배 예술가들은 서로가 살아온 시대의 차이에 새삼 놀랐고, 변하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두고 서로 존중하며 때로 격렬히 공감하기도 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