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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반 김영일 대표 ‘소리의 집’을 짓다
우리가 매일 듣는 음악이 어떤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알 수 있는 공간. 소리가 좋아 음악을 듣다 보니 음악이 빛나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싶은 욕망으로 ‘소리의 집’을 지은 소리 기록의 장인을 만났다.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지은 악당이반의 파주 스튜디오. 건물 3~4층 높이의 천장고를 자랑하는 메인 스튜디오 홀은 연주자 스무 명이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장르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음향판과 온습도 시스템을 갖추었다.

오로지 소리만을 위한 건축
레이디 가가의 앨범 프로듀서이자 W호텔 북미 지역 뮤직 디렉터로 활동하는 폴 블레이는 음악 제작을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작업하다 급기야 호텔 안에 음악 스튜디오를 들이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이 엉뚱한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고, W 발리-스미냑 리조트에 자리한 ‘사운드 스위트’는 뮤지션이 가장 편안하게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각종 악기와 첨단 장비를 갖춘 데다 라운지와 녹음 부스까지 한마디로 음악을 위한 호텔인 셈. 이런 공간, 오로지 소리를 위한 집이 우리 나라에도 생겼다.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가 만든 소리 창고, ‘스튜디오 파주’가 그 곳이다. 파주 출판단지에 자리한 스튜디오는 겉모습은 평범한 빨간 벽돌 건물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특별함이 숨어 있다. 건물 자체에서 나는 소리 울림을 최소 화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도 설치하지 않고, 전기와 보일러 등의 시설을 모두 땅속으로 집어넣었다. 벽 두께도 1m에 가깝다.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울릴 수 있어 땅속에 기둥을 박아 건물을 약간 띄워 시공했다. 설계와 시공은 김 대표의 평창 스튜디오도 함께 작업한 사이SAAI 건축의 이진오 소장이 맡았다.

3층에 자리한 마스터링룸. 울림을 제어하는 기능성 전용 패널로 마감했다. 
건물은 총 3층 규모로 1층 A 스튜디오는 컨트롤룸과 메인 스튜디오가 있다. 컨트롤룸에는 스위스에서 공수한 아날로그 방식의 릴 녹음기를 설치했다. 녹음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니 테이프 머신도 필요해 얼마 전에 공수했다. 컨트롤룸 옆의 메인 스튜디오는 이 건물이 오로지 소리를 위한 건축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 공간이다. 14m, 즉 3~4층 건물 높이의 천장고를 자랑하는 홀은 공중에 매달린 물결 형태의 음향판을 원격조종해 소리의 방향과 울림을 조절할 수 있다. 사운드 체크를 하면서 마이크 종류나 배치를 바꿔 최선의 녹음 지점을 찾는다. 녹음을 하기 전 뮤지션이 원하는 온도와 습도를 요청하면 악기 아래 와이파이 장치를 연결해 0.01%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맞춘다. “가야금 소리는 천장이 낮은 우리 한옥에서 가장 아름답게 들려요. 오케스트라는 심포니 홀처럼 웅장한 공간에서 연주해야 하고요. 소리는 장소의 태생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건축 음향에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리코딩을 하더라도 각 악기와 장르에 맞는 풍부하고 섬세한 음향을 담아낼 수 있지요. 소리 커튼부터 음향판, 온습도계까지…. 유난스러워 보이겠지만 녹음에 가장 적합한 홀을 만들어야 궁극적으로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1층 A 스튜디오.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할 수 있도록 콘솔, 테이프 머신 등을 갖추었다. 
붉은색 패널로 마감한 2층 B 스튜디오는 완벽한 디지털 공간이다. 일곱 개의 부스가 각각 나뉘어 서로의 소리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각각의 룸에서 동시 녹음이 가능하다. 최신 디지털 콘솔이 있어 엔지니어가 더욱 편하게 쓸 수 있다. 3층은 마스터링룸을 세팅 중이다. 전체적 패팅, 밸런스, 노이즈 등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톤마이스터(소리 장인)를 위한 공간이다. 김 대표는 인터뷰 중 작은 부속품을 보여줬다. 기계와 기계 간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커넥터로 납땜 장인이 현장에서 일일이 구멍 하나하나에 은랍을 채워 만든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커넥터의 바늘들이 뭉툭하게 잘려 있고 그중 하나에 작은 구멍이 보인다. 은랍으로 작은 구멍을 채울 때 한 개의 커넥터에 들어가야 하는 양이 정해져 있는데, 간혹 1g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이렇게 잘라 비어 있는 곳을 확인한단다. 작은 구멍 하나 비어 있다고 소리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 오차조차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이곳에서는 무수히 벌어진다. “쉽게 얘기해서 오디오를 연결하려면 기계와 기계 간의 케이블이 필요합니다. 약 2백 채널을 구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케이블을 약 2.8km 정도 작업했어요. 오디오, 스피커는 얼마든지 좋은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됐어요. 하지만 똑같은 컴퓨터를 사도 어떤 프로그램을 쓰는지에 따라 달라지듯 오디오도 어떤 부속품을 어떻게 연결해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납니다. 보이지 않는 부속품 하나까지 디테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죠.”


뮤지션이 행복하게 음악을 담을 수 있도록
김영일 대표의 원래 직업은 사진가다(<행복> 2013년 2월호 ‘귀 기울여 들어보니’). 중앙대학교 사진과를 나와 인물 사진을 찍으며 그루 비주얼이라는 사진 에이전시를 운영한다. 국악 전문 음반 회사 악당이반의 대표로, 국악으로 그래미상 월드 뮤직과 녹음 기술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의 역사에서 음반 리코딩은 흘러가는 소리를 저장했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사진이 기록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리코딩 덕분에 음악 산업이라는 것이 생겼지만, 한 세기를 지배한 이런 흐름은 인터넷 환경에서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웬만한 녹음은 홈 리코딩으로 가능한 데다 음악 자체가 사양 산업이 돼버린 지금, 굳이 리코딩이라는 분야에 엄청난 사재와 수고를 들여 이런 공간을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도 아날로그 녹음 방식을 고수하면서! “안타깝지만 지구 상에서 생산하는 산업물 중 가장 값싸게 만드는 게 음악이에요. 디지털 음원화가 되면서 레이블이 없어지고, 뮤지션 역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죠. 음악은 행복하라고 듣는 건데,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지않다면 모순 아닌가요? 이곳은 오로지 뮤지션을 위한 공간이에요.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자신의 음악을 담을 수 있는 공간, 뮤지션이 지닌 재능을 극한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소리 창고의 역할이지요.”


2층 B 스튜디오는 디지털 방식으로 일곱 개 룸으로 나뉘어 밴드가 각자 방해받지 않고 녹음할 수 있다. 
소리는 현재 많이 발전한 듯하지만 발전이라기보다는 디지털화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디지털 음향은 다이내믹하지만 인간미가 없다. 그는 “눈은 속이기 쉽지만 고막은 속이기 쉽지 않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디지털 사진은 합성이나 리터칭으로 쉽게 속일 수 있지만, 음악의 경우 소리를 뗐다 붙였다 하는 디지털 작업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것. 아날로그로 녹음한 음악은 종일 틀어도 거슬리지 않고 부드럽게 들리는 반면, 디지털 음악이 간혹 소음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셀린 디옹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와요. 할머니가 노래를 다 부르고 울어요. 각자 헤드폰을 쓰고 들어가서 녹음을 하면 그런 눈물이 안 나오거든. 함께 노래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기쁨의 눈물, 그게 바로 음악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동 아닐까요?”

옛 창고 느낌을 주기 위해 벽돌 단면을 잘라 사용했다. 
그가 최근 관심을 갖는 것은 소리 채집이다. 평창에서는 ‘사운드 오브 네이처’, 즉 자연의 소리를 담는 작업을 한다. “캐나다는 자연의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레이블이 많아요. 고래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소리부터 파도치는 소리, 바람 소리까지…. 우리나라도 고유한 자연의 소리가 있지요. 담양 소쇄원의 대나무 소리, 시골 오일장의 활기찬 소리, 농번기의 농기구 소리…. 점점 사라지는 고향의 소리를 기록하는 사운드 아카이브로서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자연의 소리로 사람들을 쉬게 해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오픈 소스로 공유할 계획입니다.” 오로지 좋은 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목표로 소리의 집을 지은 김영일 대표. 뮤지션에게 공간을 대여하고 받는 비용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신 최근 음원 사이트 오대오닷컴을 오픈했다. 그동안 녹음한 국악 음원을 시작으로 음원을 판매, 연주자에게도 고르게 분배하는 공정 음원 개념을 도입한 사이트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을 맛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여유가 있다고, 풍족하다고 해서 좋은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게 아니에요. 좋은 소리를 계속 들으면 귀가 열리고 좋은 음악의 수요가 많아지고, 더 좋은 소리를 만드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겠죠.”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454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