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솔거미술관에 전시한 자신의 작품 ‘솔거의 노래’ 앞에 선 박대성 화백. 작업실 뒤뜰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지명의 유래가 궁금해 물으니 절 배拜를 써서 배동이라 했다. 고개 돌려 어디를 바라보아도 오래고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빼곡한 이곳 산중엔 크고 작은 석불도 즐비해, 매일 부처에게 절하는 동네라 해서 배동이다. 경주 남산 자락, 신라 왕릉이 모인 배동 삼릉에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의 작업실이 자리한다. 촬영 팀과 함께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로 10m가 넘는 대작 ‘불국설경’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즈넉한 불국사의 겨울 풍경이 먹으로 다시 탄생했다. “천지창조 때, 세상은 온통 검었습니다. 모든 색을 합쳐야 검은색이 나오지요. 지난 50년간 먹의 깊이에 천착했습니다. 먹만큼 깊고 오묘한 재료가 없으니까요. 양감과 질감, 무게까지 그 모든 것이 먹 안에 있는데 무슨 색을 더해야 할까요? 추사 선생은 먹을 삼라만상이 다 있는 정신의 핵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천지인’, 종이에 수묵 담채, 240×300cm, 2011
1966년 등 단 후 화업畵業 50년,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박대성 화백의 발성과 눈빛, 악수하는 손아귀엔 생생한 힘이 넘쳤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짧게 자른 머리도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박대성 화백은 1945년 태어난 해방둥이다. 전쟁통에 모친을 여읜 것이 세 살 때, 이듬해 빨치산에게 아버지와 자신의 한쪽 팔을 잃었다. “여섯 살 적 일로 기억합니다. 매달 집안 제사를 지냈지요. 하루는 제삿날 병풍 뒤에 놓인 지필묵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걸 본 집안 어른들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칭찬하시더군요.” 화가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그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땅바닥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다 위대한 화가가 된 신라시대 솔거의 이야기가 꼭 자기 같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충실하게 익혔다. 스물 남짓에 등단, 10여 년 무명 생활 끝에 안개가 자욱한 들녘을 그린 수묵 담채화 ‘상림’이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가나아트센터(당시 가나화랑)가 1984년 전속 화가 제도를 실시한 후 최초로 계약한 작가이기도 하다.
“2015년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에 초청받아 전시했을 때 강연을 부탁받았습니다. 한 시간쯤 이야기한 후 질문을 받았는데 ‘제도권에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다른 점이 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좀 생각하다 인삼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삼이라는 것은 자연에서 얻은 씨앗을 개량해서 키우는 것인데, 아무리 공을 들여도 6년 이상 키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 우연히 싹을 틔운 산삼은 1백 년도 넘게 자라지요.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 함께 한 동료가 많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거의 없습니다. 남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기 세계를 형성해야지요.” 시커먼 먹을 들이부은 듯 힘이 넘치는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는 기존 동양화에 없던 조형 감각 또한 남다르다.
한국화가 박대성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1966년 등단,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부터 경주에서 생활하며 자연과 옛 유물을 그리는 그는 2015년 경주시에 자신의 작품 8백여 점을 기증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내솔거미술관 건립을 도왔다.
독수리의 시점으로 금강산을 내려다본 ‘천지인’, 물고기가 되어 오목렌즈로 바라본 듯 금강산을 동그랗게 표현한 ‘금강화개’ 등 한눈에 놀라운 작품들. 히말라야 산맥과 중동의 사막을 여행하며 마주한 원시 그대로의 자연, 그 압도적 자연 풍경이 그의 조형 감각을 일깨웠다. “한국화 실경 산수를 독보적 화풍으로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하던 박 화백은 1999년 별다른 연고가 없는 경주 삼릉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는 자연 풍광뿐 아니라 소박한 꽃과 풀, 아름다운 옛 유물을 서정적 채색화로 그리기도 한다. 2월호 표지작인 ‘고미 3’도 그중 하나. “살면서 그림 소재가 많이 바뀌는데 최근엔 옛것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습니다. ‘고미古美에 발을 딛고 현대를 산다’는 뜻으로 그린 그림이지요. 종이로 만든 상자를 자개로 장식한 조선시대 지자개함인데, 부조화 속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지난 20년간 매일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씩 정진한 서예를 통해 물체의 내면을 바라보는 망원렌즈를 지니게 되었다는 박대성 화백. 그는 또한 사람을 위한 그림, 누가 보아도 좋은 그림을 추구한다. 50년 화업으로 이룩한 압도적 깊이와 폭의 예술 세계. “세월이라는 게 참 묘합디다. 노력한 만큼 보답을 하거든요.” 과연 그의 말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