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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꽃무늬는 사랑입니다
예스러운 취향으로 취급받던 ‘꽃무늬’를 사회 참여의 아이콘으로 승화시킨 브랜드가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는 디자인 제품과 관련한 콘텐츠 및 프로젝트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한 동반자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 더 멋진 사회를 만들려 한다. 별다른 꿈 없던 젊음이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기까지,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를 만났다.

성수동 마리몬드 라운지에서 만난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벽을 수놓은 꽃무늬는 가장 최근인 2016 가을・겨울 시즌에 마리몬드가 발표한 동백 패턴이다.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에 제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듯하네요. 그 미소 더 오래 보았으면 해요 :) 온 마음 다해 오늘 하루따스하고 포근한 하루가 되시길 바랄게요.”(인스타그램 ID: eternity728) 지난 11월 22일,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 공식 계정이 길원옥 할머니의 89세 생일을 기념하는 SNS 포스팅을 올린 후,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2천여 개의 ‘좋아요’와 1백 개 이상의 따뜻한 축하 메시지가 달렸다. 마리몬드 공식 홈페이지(www.marimond.com)에는 ‘더 넓은 곳으로 퍼지는 빛, 메리골드’ 라는 제목으로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가 노란색 선명한 메리 골드꽃과 함께 올려져 있다. 1928년 평양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열세 살 때 감옥에 간 아버지를 빼낼 20원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만주와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소 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 돌아온 할머니는 콩고, 베트남 등에서 전시 성폭력으로 아픔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나비 기금’을 만들어 인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할머니들을 위한 팬클럽
마리몬드는 2012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작한 압화 작품을 응용한 플라워 패턴으로 의류와 액세서리 등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고, 생활용품을 만드는 여러 브랜드와 협업한다. 걸 그룹 미스에이 수지의 스마트폰 케이스와 배우 박보검의 티셔츠에 마리몬드의 꽃무늬가 있었고, 8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제품 구매, SNS 구독, 행사 참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리몬드의 활동에 공감과 지지를 표시했다. 마리몬드가 그간 수익의 일정 부분을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와 기금에 기부한 금액이 5억 원을 돌파했다. 설립 4년 만에 뚜렷한 실적을 내는 사회적 기업으로 마리몬드를 키워낸 윤홍조 대표의 나이는 불과 33세. 그는 학창 시절 봉사 동아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그분들이 만든 압화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전까지 그는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야지’라는 생각 외에 별다른 꿈도 없던 청춘이었다. 마리몬드 로고가 그려진 스웨트 셔츠 차림의 윤홍조 대표는 여전히 학생처럼 앳된 얼굴로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마리몬드는 성수동 ‘마리몬드 라운지’에서 플라워 패턴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마리레터’ 등 프로젝트와 연계한 오프라인 모임을 주최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이야기한 문구로 패널을 만들어 제품 사이에 놓았다. 

마리몬드의 제품과 콘텐츠에서 ‘위안부’라는 단어는 꼭 작은따옴표로 묶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작은따옴표를 붙이지 않은 일반명사 위안부는 ‘안식과 위안을 주다’라는 뜻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의미로 일본 측에 서 만든 표현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 등 관련 단체에서 고유명사화하기 위해 정한 표기법을 가져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만나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빚을 졌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사업을 해서 할머니들을 더 잘 돕고 싶었지요. 그래서 졸업할 무렵 동아리 친구 세 명과 함께 창업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 관련 단체 활동가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나 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돕는다’라는 제 생각이 무척 주제넘고 오만한 거였더군요. 오히려 저희가 할머니들에게 굉장히 많이 배우고 있었습니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요. ‘도움을 주는 이들’이 아닌 ‘팬클럽’의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팬클럽과 사업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프로페셔널한 팬클럽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마리몬드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 중 기부가 주로 알려지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물론 그 비중과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릴 예정이지만, 기부에만 초점을 맞추면 할머니들을 객체로, 도움받는 대상으로만 인지할 테니까요. 전쟁 피해자가 아닌, 예술 작품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예술가, 자신의 상처를 뛰어넘어 다음 세대를 위해 평화를 외치는 인권 운동가로서 기꺼이 존경할 만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에 의해 훼손된 할머니들의 존재 자체로서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걸 ‘존귀함의 회복’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보다 명확해진 것이지요.

길원옥 할머니를 모티프로 제작한 메리골드 패턴과 그 패턴으로 만든 에코백. 

공감과 기억의 플랫폼
마리몬드는 압화 작품을 응용해 패턴을 제작하는 방식을 넘어 2015년부터는 할머니들과 어울리는 꽃을 시기별로 선정, 플라워 패턴을 새로 제작해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함께 알리고 있다. 해로운 동물과 곤충을 물리치고 상처를 치유하는 메리골드와 인권 운동에 힘쓰는 길원옥 할머니를,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동백의 생명력과 10년 넘게 진행된 재판에 참여해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법적으로 증명한 이순덕 할머니를 연결하는 식이다. 이렇게 개발한 플라워 패턴으로 만든 다양한 디자인 제품의 주요 고객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의 여성이다.

젊은 여성은 사회문제와 역사에 관심 없고, 개인 문제에만 몰두한다고 손쉽게 비판받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모티프로 한 제품을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창업할 무렵 저희는 전혀 전문적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저희 제품이 예상보다 잘 팔리는 게 신기했지요. 제품을 올려놓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등에서 자료를 받아 분석해보니 주요 고객층이 15~25세 여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나오더군요. 그들이 사회문제나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겁니다. 저희 제품을 구매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등 참여하는 자체가 멋지고 ‘쿨’한 일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헬조선’ ‘삼포세대’ 등 자조적이고 부정적인 요즘 젊은 세대 인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군요.
여전히 젊은 세대가 훨씬 희망적이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 훨씬 더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일례로 저희가 운영하는 ‘마리레터(maryletter.com)’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익명으로 고민을 받아서 작가들이 시로 편지를 써주는 플랫폼입니다. 나아가 그들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수동 마리몬드 라운지에서 모임을 갖는데, 이런 공간을 전국 여러 곳에 만들 계획입니다. 젊은 세대가 나만을 위한 각박한 삶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 말이지요.

마리몬드는 매년 3월 아웃도어 액티비티 스타트업 ‘프렌트립’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을 표현하는 10km 달리기 이벤트를 개최한다. 

제품 생산과 SNS 콘텐츠 개발 외에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합니까?
대형 생활용품 브랜드와 플라워 패턴을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협업도 성과가 있지만, 스타트업 기업과 새로운 방식으로 협업하는 일이 즐겁고, 의미도 더 있습니다. 2015년부터 매년 3월 아웃도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프렌트립’과 함께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마라톤’이라는 주제로 진행해온 10km 달리기 이벤트가 대안 활동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트리플래닛’과 함께 상암 월드컵 경기장 근처 공원에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숲’을 조성하기도 했지요. 반응이 좋아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서 중국 난징에도 만들 계획입니다. 물류 스타트업 ‘두손 컴퍼니’와의 협업도 사회적 기업 간의 성공적 협업 사례로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미스에이 수지 씨가 마리몬드 핸드폰 케이스를 든 사진이 공개된 후 주문 물량이 갑자기 폭증했어요. 사무실 바닥에 찢어진 송장이 수북이 쌓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배송을 대신해줄 업체를 고민하다 노숙인과 일거리 없는 어르신들에게 배송을 맡기는 두손컴퍼니에 부탁했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수익이 많이 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거의 다 중단되었고, ‘대상이 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일 중 잘된 사례가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마리레터가 그런 경우인데, 게시판에 올린 고민에 작가들이 짤막한 시나 편지로 답하는 간단한 서비스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좋습니다. 직원이 많지 않던 초기에 주문이 밀려 항의 전화를 받은 일이 많았는데, 항의하다 오열하는 분도 있더군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이런 분들을 같이 위로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마리레터를 시작했지요. 누군가의 행복을 고민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동백 패턴의 모티프가 된 이순덕 할머니. 올해로 99세,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중 최고령으로 10년 넘게 진행된 시모노세키 판결을 통해 ‘위안부’의 역사를 증명했다. 
"수익이 많이 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거의 다 중단되었고, ‘대상이 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일 중 잘된 사례가 많습니다."


못다 핀 꽃을 피우기 위하여
마리몬드라는 이름은 나비라는 뜻의 라틴어 ‘마리포사’와 새 생명과 부활, 회복의 메시지를 담은 고흐의 그림 ‘꽃 피는 아몬드 나무’의 ‘아몬드’를 합한 것이다. 못다 핀 꽃에 나비가 날아와 앉으면 그 꽃은 만개할 수 있다. 그렇게 활짝 핀 꽃이 또 다른 나비가 되어 또 다른 세상의 못다 핀 꽃을 향해 날아갈 것이라는 소망으로 지은 이름. 마리몬드는 편부모 가정이 많은 구로구 어린이집에 매달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 빈곤 아동을 돕는 국제기구 세이브더칠드런과도 연계 사업을 구상 중이다. 할머니와 아이 다음으로 이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동반자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존재, ‘어머니’다.

왜 어머니입니까?
어린 나이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많은 분이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십니다. 많은 아버지 역시 경험과 직급 덕에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고요. 그런데 우린 유독 어머니가 하는 모든 것은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머니들이 하는 일이 경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들의 꿈도 들어주고,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선 지난 12월, 불광동에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했습니다. 어머니들이 숙박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취미 활동도 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저희 어머니가 예전에 “너희 아버지랑 싸우면 갈 데가 모텔이나 찜질방밖에 없다”고 하신 말씀에 마음이 아팠어요. 어머니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라는 개념을 그때 처음 생각했고, 나중엔 그곳에서 배운 것으로 창업하는 일도 돕고 싶습니다.

동백 패턴으로 만든 탁상 달력과 노트, 핸드폰 케이스. 마리몬드는 제품과 이벤트를 통해 발생한 수익의 절반을 일본군‘위안부’ 관련 단체와 기금에 기부한다. 2016년 12월 현재 총 기부 금액이 5억 원을 돌파했다. 


현재 마리몬드는 어떤 단계입니까?
중국 진출을 준비 중이고, 내년엔 여러 브랜드와 협업해 한정 생산한 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모바일/온라인 마켓도 열 계획입니다. 큰 기회 앞에 서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조금 두려울 정도입니다. 제가 할 일은 경험 많은 인재를 영입하고, 조직 문화를 점검하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역할 모델이 될 만한 브랜드나 기업가가 있습니까?
다양한 사례를 모아서 참고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도 많지만, 가장 흥미로운 곳은 스타벅스였습니다. 누구나 들어와서 이야기 나누고 싶도록 잘 꾸며놓고,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했습니다. 공간을 플랫폼으로 커피에 대한 신념과 문화를 퍼뜨린 것이지요. 마리몬드는 동반자들과 공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기억하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 플랫폼은 디자인 제품일 수도, 이곳 마리라운지 같은 공간일수도, SNS 콘텐츠일 수도 있겠지요.

“이런 브랜드가 존재해줘서 고맙다”라는 피드백이 가장 짜릿했다고 말하는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그는 감성적 접근과 참신한 아이디어, 세련된 디자인으로 젊은이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사회적 기여가 ‘쿨하고 멋지고 자랑할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 그는 마리몬드가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파리 등에 진출할 미래에도 브랜드의 시작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계속 기억하고, 확산할 계획이다. 윤홍조 대표의 말처럼 마리몬드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오랫동안 ‘존재해줘서 고마운’ 브랜드가 되기를.


취재 협조 마리몬드 라운지(070-4245-8865)

글 정규영 기자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