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개의 성격을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든 개를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사람이 그렇듯 동물의 성격 형성 또한 교육 외 몇 가지 요소가 관여하니까요. 바로 유전과 환경입니다. 물론 셋 중 가장 중요한 건 교육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의 행동에는 서열이 결정적이다”는 주장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동해 ‘무서운 사람인 척 연기하기’에 심취해본 적이 있다면, 지금 당장 제대로 된 반려견 교육법을 상담받길 바랍니다. 그러나 개의 성격이 후천적 교육만으로 결정된 다면 다음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반려인들은 개를 입양하기 몇 달 전부터 개라는 동물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기도 합니다. 강아지 사회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서 개가 태어난 지 3개월이 되기 전 끊임없이 좋은 기억만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엄청난 인내심을 바탕으로 개의 잘못된 행동에 화내기보다 얼마 안 되는 잘한 행동을 기다렸다가 칭찬해주곤 하죠.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산책을 시키는 건 기본이고요. 하지만 때때로 현실은 잔인해서 어떤 분은 ‘어째서 우리 개는 나의 이런 노력에 응답하지 않는지’ 답답해하곤 합니다.
그렇게 유전적 요인은 우리 앞을 막아섭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반려견의 엄마와 아빠, 더 나아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까지 미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우리의 노력이 개의 타고난 품종적 특성까지 완전히 바꿀 수도 없습니다. 몰티즈를 교육하는 것과 시바견을 교육하는 것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개의 성격형성에 유전이 얼마만큼 관여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동물 행동 학자도 유전의 영향을 완전히 부정하진 못합니다. 개의 성격 형성에 관여하는 세 가지 요인 중 유전적 영향이라는 이슈에서 벗어나 환경적 요인과 올바른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개의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뭔가를 변화시킬 두 번째 기회(첫 번째는 물론 교육입니다)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대는 문제 많은 개였지만, 분리 불안에서만큼은 자유로웠습니다. 혼자 있을 땐 사료를 먹거나, 편하게 엎드려 자는 걸 즐겼고, 때로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건대가 여섯 살 되던 해, 이사를 하며 모든 게 변했습니다. 집은 전보다 조용해졌고, 더 넓어졌습니다. 우리는 건대 또한 새집을 마음에 들어 하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달 후 이웃이 문 앞에 붙여두고 간 메모를 읽고 나서였죠. “개가 혼자 있을 때 많이 울어요. 조금 더 신경 써주세요.”
반려견의 분리 불안을 처음 인지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저 또한 믿기 힘들었습니다. 건대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을뿐더러, 집에선 거의 짖지도 않았으니까요. 가족이 나간 뒤 홀로 남은 건대의 행동이 담긴 영상을 보고 나서야 “많이 울어요”란 이웃의 메모를 이해했습니다. 영상 속 건대는 가족 중 마지막 한명이 나가자, 정말 서럽게 하울링을 시작하더군요. 평소라면 눈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을 간식도 옆에 그대로 둔 채 말이죠.
영상 속 건대는 명백히 분리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익숙한 환경이 낯설게 변하면서 건대에게 새롭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저였다면 새로운 집에 이사한 후 건대를 혼자 두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변화한 환경이 개의 행동과 성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했던(또 분리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 질환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저는 건대의 삶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집을 나간 가족이 혹여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매일을 보내야 한다니. 저로선 이보다 불행한 반려견의 삶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굳이 건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어릴 때는 없던 심각한 아토피 증세가 생긴 후 공격적으로 변한 개, 한적한 시골에서 복잡한 도시로 이사 온 후 작은 소리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는 개, 보호자의 생활 패턴이 바뀌자 불면증에 시달리는 개도 생각보다 흔합니다. 설령 유전적 문제가 없고, 제대로 교육받은 개라 해도 환경 변화는 반려견의 행동과 성격 형성에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개의 환경 변화에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지금껏 우리가 반려견을 맞이하는데, 반려견과 함께 보내는 일상 자체를 너무 안일하게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주변의 환경을 반려동물의 눈높이로 둘러보며 한 번쯤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오영욱 건축가는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작가로, 오다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베들링턴 테리어 암컷을 키우는 그는 초보 개 아범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 수의사와 초보 개 아범의 동물 행동 심리 이야기 개가 혼자 있을 때 많이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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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링턴 테리어라는 동물 가족을 입양한 건축가와 동물행동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열다섯 살 몰티즈와 함께 사는 수의사의 그림과 글을 연재해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탐구합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