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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슈리글리 David Shrigley 개인전 엉뚱하고 시니컬한 상상
용산구 이태원로에 위치한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전시 공간이다. 지난 10월 6일부터 이곳에서는 현대카드가 주최하는 영국 출신 아티스트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의 국내 첫 개인전 가 열리고 있다.

작가가 10년 동안 그린 1천 장의 드로잉 중 선별해 전시한 ‘Untitled Drawings’, Inkjet prints, A3 paper, 2004~2014. 
지난 10월 5일,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는 영국 출신 아티스트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의 국내 첫 개인전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데이비드 슈리글리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유머와 풍자, 시니컬한 특유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 세계로 이미 수많은 팬을 확보한 작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Exibition’이라고 쓰인 네온 설치물이 반긴다. “눈치 빠른 분이라면 입구에서 ‘Exhibition’의 철자가 틀렸다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거예요. 예술이니까요.” 자신의 작품을 둘러싸고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기자들 앞에 서서 데이비드 슈리글리는 무표정한 얼굴, 무뚝뚝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작품 설명을 이어나갔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에 대해 처음 안 건 5년 전, 한 매체에 실린 인터뷰를 읽으면서부터다. 한눈에 봐도 단정한 옷차림, 깔끔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시니컬한 매력을 풍기는 드로잉 작품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린 아이의 낙서 같으면서도 드로잉과 함께 ‘그리듯’ 적는 짧은 텍스트를 읽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비장한 철학자의 면모를 풍기는 영국의 아티스트.

(왼쪽) 실제 타조를 박제한 작품 ‘Ostrich’, Taxidermied ostrich, 195×160×95cm, 2009. (오른쪽) 용산구 이태원로에 위치한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 입구. 
1968년 영국 북서부에 위치한 매클스필드Macclesfield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슈리글리는 드로잉은 물론 페인팅, 조각, 설치, 애니메이션, 음반 재킷 디자인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그는 아티스트 출판물과 공동 음악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 갤러리 밖에서도 끊임없이 활동하며 작업의 폭을 넓혀오고 있는데, 특히 그가 음악광이며 뮤지션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즐긴다는 것은 이미 런던의 미술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 그는 전시 때마다 전시장 내부에 직접 도면을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일 뮌헨에서 전시할 때, 그 자리에 놓아야 할 작품이 망가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 즉흥적으로 도면을 그려 넣었어요.” ‘전시’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전시 주인공인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공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더없이 ‘아티스트’다운 발상이다.

 ‘Eggs’, Glazed Earthenware, 2011. 
현대카드가 영국 문화원과 협업해 주최하는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2004년부터 약 10년간 그려온 1천 장이 넘는 드로잉 작품과 머리 부분 없이 박제한 타조를 설치한 ‘Ostrich’(2009), 각종 벌레 형상을 한 오브제 총 4백13개로 구성한 작품 ‘Insects-Untitled(413 sculptures)’(2007) 등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천장이 넘는 작가의 드로잉 아카이브에서 선별한 작품들을 모아 ‘Untitled Drawings’(2004~2014) 라는 제목으로 전시하는데,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작가로서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연작이기도하다. 간결하면서 유머러스한 드로잉과 누구나 읽 을 수 있는 짧은 문장으로 구성한 드로잉은 인생 에 대한 그의 시각을 시니컬하면서도 위트 있게 전달한다.

2009년 제작한 ‘Ostrich’는 고양이, 원숭 이 둥 현재까지 데이비드 슈리글리가 선보여온 ‘머리 없는 박제’ 시리즈 중 가 장 큰 작품이다. 머리 잃은 타조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위협적 존재로 재탄생했는데, 이번 투어 전시를 기획한 영국 문화원 큐레이터 카트리나 슈워츠Katrina Schwarz는 “영국 문화원 소장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이야말로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한국 개인전을 기획하는 출발점이었다. 날지 못하는 새가 전시 컬렉션의 일부가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작품 세계처럼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I am a Person’, Wall Drawing on site by David Shrigley, 2016,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데이비드 슈리글리.
현재 영국 브라이턴Brighton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데이비드 슈리글리는 2013년 영국의 대표적 현대미술상인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2012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2014년 뮌헨 피나코테크 미술관, 2015년에는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네 번째 좌대(Fourth Plinth)’ 프로젝트를 통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대형 설치 작품 ‘Really Good’을 공개했고, ‘아티스트가 상상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런던 스케치Sketch 카페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런던 테이트 미술관과 영국 문화원, 뮌헨 현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등 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일부러 냉소적이려고 한 건 아니에요. 아이러니하려고 애쓰진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고요. 코믹하려고 했던 건 맞아요.” 과연 알쏭달쏭한 답변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그의 예술관이 아닐까? 드로잉에 낙서처럼 써놓은 텍스트처럼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시각적 이미지로 단 1초 만에 관객을 압도하고 납득시키고 마는 것.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을 향해 위트 있는 펀치를 날리는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국내 첫 전시는 2017년 1월 8일까지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에서 만날 수 있다.


자료 제공 현대카드 스토리지(02-2014-7850)

글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