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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우국원 숨은 마음 찾기
지난여름 여섯 번째 개인전 로 다시 한 번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준 우국원 작가. 바르셀로나에서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놀이터 같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우국원 작가는 1976년생으로 도쿄 디자이너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여섯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치렀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천), 서울대학교미술관, 일신문화재단, 전남일보 등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초동 한복판 대로변의 작은 건물. 딱 열 걸음, 계단을 내려가자 순식간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장식품처럼 일렬로 벽 한쪽에 놓여 있는 페인트 통, 물감과 붓 등 갖가지 도구가 뒤섞여 있는 카트, 무지개를 흩뿌려놓은 듯 알록달록한 물감이 묻은 작업복, 벽을 가득 메운 이미지와 메모, 살짝 스치는 듯한 옅은 담배 냄새까지, 영락없는 아티스트의 공간이다.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피부에 공기처럼 내려앉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저곳 탐색의 시선을 뻗치고 있는데, 셔츠에 버건디 컬러 니트를 입은 말쑥한 차림의 우국원 작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작업복을 안 입고 계시네요?” 1초도 안 걸려 답이 돌아온다. “너무 아티스트인 척하는 거 싫어서요. 촬영 오시기 전에 일부러 옷 갈아입었어요.”

솔직한 대답에 웃음을 터뜨리는 찰나, 그의 어깨 뒤로 낯설고 아름다운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꽃 그림이다. “아트 페어 핑계로 바르셀로나로 여행 다녀왔어요. 이건 떠나기 직전에 그린 거고요.” ‘Queen of Night’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작가가 밤에만 피는 꽃들을 모아 그린 것이다. ‘I hate morning’ 이라는 텍스트를 삽입한 ‘아침’ 시리즈, ‘오후’ 시리즈를 지나 하루를 완결하는 의미의 ‘밤’을 밤에만 피는 꽃들을 모아 표현했다. 작품 속엔 텍스트가 가득이다. 벽에는 작품을 그릴 때 참고한 듯 보이는 여러 가지 꽃 사진과 꽃에 대한 설명을 직접 손 글씨로 써 내려간 메모가 빼곡하다. “작품 속에 넣는 텍스트는 ‘텍스트’ 자체로서 의미도 있지만, 네모난 화폭 안 공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그 ‘무엇’이기도 해요. 외국 관객들은 가끔 ‘왼손으로 썼냐’고 묻기도 하더군요. 그림의 일부로 낙서처럼 구불구불 그려 내려간 선의 개념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작가는 2012년 개인전 에서 열세권의 동화책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나니아 연대기> 속 구절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칼 구스타프 융의 책 표지를 작품 속에 그려넣기도 했고, 최근 <피터팬>도 다시 읽었다. “요즘 <성경>(사도행전) 공부를 하고 있어요. 종교적 접근이라기보다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흥미죠. 언젠가는 이를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이고 싶어요.”

‘Annie’,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227×162.1cm, 2009 
우국원 작가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동물’과 ‘아이’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동물과 아이는 생명체 자체로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 중에서 내게는 가장 예쁘고 흠잡을 데 없는 존재들이죠.” 한눈에 들어오는 색채감과 자유롭고 꾸밈없는 터치, 동물과 아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첫눈에 ‘예쁜 그림’이다. 그런데 시간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 사이사이에 무언지 모를 감정이 흐르고 있다. 오동통한 팔다리, 납작하고 동글동글한 아이 얼굴. 그런데 표정이 없다. 눈, 코, 입 모두 있는데 눈빛을 읽을 길이 없고 표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림 속 아이는 행복할까? 우울할까? 아니면 누군가를 질투하고 있을까? 돼지와 함께하는 끝없는 늦잠이 지루하기라도 한 걸까? 작가는 정말 아이를, 곰을, 악어를 그리고 싶었을까? 아니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는 존재’의 형태를 빌려 다른 것을 표현하고자 한 걸까? 첫눈에 반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뭉클한 마음에 발걸음을 떼기 힘든 우국원 작가의 ‘예쁜 그림’ 앞에서 멍하니 생각에 빠진다. 햇빛 눈부신 여름날, 냇가에 드문드문 놓인 검고 반들반들한 돌 징검다리를 건너다 풍덩풍덩 차디찬 냇물에 발이 빠지고야 마는 애틋하고 서늘한 느낌이다. “제 작품을 보고 누군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거예요.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니까요.” 지난여름 연 개인전 에서 선보인 ‘Blue bird’(11월호 표지작)는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먼 곳만 바라보다가 결국 내 눈앞의 행복을 깨닫는다는 의미의 작품이다. “사람들이 전시 타이틀이나 작품 제목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해요. 파랑새를 그렸다고 해서 제가 파랑새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파랑새가 아닌 다른 것을 그렸다고도 볼 수 있는 거고요.” 지금까지 회화 위주의 작업을 선보인 그이지만, 올 연말에는 짧은 기간 동안 파티 형식으로 설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 봄에는 일본과 홍콩에서 아트 페어에 참가한다.

‘Goal Setting’,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2016
나른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몇 번이나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우국원 작가의 목소리와 귓속으로 흘러드는 그의 장르 불문 플레이 리스트가 오선지 위에 그려진 음표처럼 하나의 멜로디로 마음에 담겼다. “외부 자극에 민감해야 하는데, 책도 음악도 영화도 여행도 예전 같지 않아요. 아름다움에 대한 역치가 점점 세지는 거죠. 웬만한 것에는 별로 감흥이 안 생겨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자는 결국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움과 마주하기 위해 고통과 환희를 양손에 쥐고 마라톤에 뛰어든 존재가 아닐까? 작가의 얼굴과 작품을 번갈아 다시 본다. 숨은 마음 찾기가 시작됐다.


글 유주희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