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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내 생각은 늘 맞을까?

박빙, ‘생각하는 사람’, mixed media, 캔버스에 아크릴, 53.0×45.5cm, 2013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같은 반 아이가 자신의 소지품이 없어졌다면서 당시 주번(이동 수업 시 교실 문을 잠그고 여는 역할을 하던)이던 나를 의심했다. 다짜고짜 자신의 물건이 어디에 있느냐며 내놓으라고 해서 나는 억울한 마음을 표현할 겨를도 없이, 그 물건을 찾느라 바빴다. 결국 그 물건은 교실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 아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그 아이가 들고 함부로 탈탈 털어버린 가방에서 떨어진 내 소지품을 주워 담고 있었다. 다음 시간 그 아이는 없어졌다던 그 소지품을 갖고 왔다. 그 소지품은 다름 아닌 자기 책가방 안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당연히 그 아이가 내게 사과할 거라고 생각했고, 화나고 억울하던 마음이 풀릴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갖고 있다가 걸릴 것 같으니까 넣어 놨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아이를 뒤로 밀어 넘어뜨리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사정을 다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그 아이를 야단치지도 않았고 나에게 위로를 해주지도 않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의심’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몸서리치게 소름이 끼친다. 오래전 내 아이가 교실에서 놀이 카드를 잃어버렸다면서, 그런데 다른 아이의 손에 똑같은 카드가 들려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내 아이를 심하게 야단친 기억이 있다. “그 친구가 네 물건을 갖고 가는 걸 네가 직접 본 게 아니라면, 같은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든 의심하지 마”라고 호되게 꾸짖으며 말이다.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나를 의심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닮아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사실이라고 믿고 옳다고 주장하며, 진실이 그와 다를 때조차도 의도적인 합리화로 나 자신을 보호했고,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내 뜻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한번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생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본다는 노력이 그다지 의미 없는 과정으로 다가왔고, 그런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가 내 생각에 확신을 갖기 시작하고, 내 짐작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매우 편협한 사고를 경험하게 되었다. 생동감은 사라지고 무기력하고 뻔한 것 들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신을 고립시키게 되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안 후에도, 자기 합리화를 통해 나를 의심한 그 아이처럼 나 역시 어느새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은 감정을 참 잘 다룬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룰 때 그들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명료하게 바라본다. 그 안에는 어떤 해석도, 선입견도, 평가도 없을뿐더러, 그들은 현재 보이는 사실 그대로, 그 사실을 관찰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놀라움은 내 죽어버린 호기심을 자극했고, 나는 달려들어 배우기 시작했다. 그대로 본다는 것이 모든 관계와 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본 것과 들은 것,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러한 나의 말에 상대가 깊이 동의하고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경험했다. 내가 가장 기쁜 것은, 내 생각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결코 내가 부족하거나 모자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 삶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주었고, 어른이 된 내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타인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침묵 속에서 공간을 응시하며 관찰하는 모습을 볼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곧 자신과의 관계나 상대와의 관계를 잘 닦아나가는 초석임을, 관찰을 통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도 성숙한 자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임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가 있습니다.


글 박재연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