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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가 박태홍 나무와의 동행 同行
사람과 나무가 만나 40여 년을 함께했다. 나무와 함께 숨 쉬며 둥근 나이테를 새겨온 시간 속엔 뿌리 깊은 열정과 끈기, 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녹아 있다. 부산 다대포 바닷가 앞에 위치한 목공방에서 박태홍 작가를 만났다.

길이 4m가 넘는 박태홍 작가의 작업대는 그가 미얀마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으로, 그는 매일 이 곳에서 스케치를 한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스케치는 현재 그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와 주문 제작 가구・소품을 위해 구상 중인 것들이다.
목향木香 가득한 바닷가 아틀리에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다대포’라 불리는 이곳에 바닷가를 면하고 자리 잡은 박태홍 목공예가의 공방 겸 작업실이 있다. 온통 사각형으로 규격화된 주변 기계 공장 지대 한가운데 유일하게 그의 목공방만이 남다른 향기를 풍기며 서 있다. 짠 내 품은 바닷바람을 뒤로하고 그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번져오는 나무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지난해 7월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원래 이 자리는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던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는데, 기업의 지원이 끊기면서 작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제가 이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지요.”

높은 천장을 활용해 한쪽 벽면 전체에 짜 넣은 책꽂이와 미얀마에서 구해온 길이 4m가 넘는 작업대, 지난 몇십 년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가구와 소품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사무 공간과 아늑한 홈 바bar까지 갖춘 이 작업실은 박태홍 작가의 지난 시간과 역사와 취향이 고루 배어 있는, 그와 완전히 동화된 공간이다. “나무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둠’입니다. ‘쓰임’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지요. 그만큼 나무는 어떤 공간에 어떻게 놓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회색 콘크리트 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 키 큰 통나무를 맞춰 넣어 공간에 따스함을 더하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생선 상자를 분해해 홈 바 안쪽 벽면을 덮었다. 한쪽 벽을 독차지하고 있는 높이 2m가 훌쩍 넘는 국산 소나무는 흡사 호랑이 가죽처럼 단단하고 용맹한 기운마저 전해진다.

“최근 몇 년간 미얀마를 자주 드나들고 있어요. 목재는 물론이고, 1백 년 가까이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에는 토속적 색채가 강한 물건들과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은 빈티지 소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요. 최근엔 핸드밀을 수집하고 있는데, 손으로 직접 원두를 갈아 마시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 나무를 만지며 늘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라 그런지 무엇 하나도 손을 직접 쓰지 않고는 도무지 ‘진짜’ 같은 느낌이 들지 않지요.” 그 외에도 미국에서 건너온 빈티지 램프, 중국에서 사 온 목침, 배에서 떨어져 나온 각종 부속품, 국내외 친분 있는 작가들이 선물한 각종 작품 등이 공간 곳곳에 놓여 있는 모습이 그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둠’이란 무엇인지를, 그의 공간 전체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목수의 방이라기보다는 문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소규모 영화 모임을 만들어 대형 스크린도 설치했지요. 가죽공예 수업도 하고,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이 공간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 좋겠어요.”


1 정면에 보이는 아늑한 홈 바의 상판과 선반 등은 박태홍 작가의 솜씨로 탄생한 것들이다. 가운데 보이는 원형 형태의 통나무 테이블은 속이 비어 있는데, 장남 현우 군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만들어 가지고 있던 것이다. 
2 박태홍 작가의 목공방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나무 창고. 20년 전부터 꾸준히 모은 각종 목재와 소품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지금까지 ‘내 작업’을 하면서 나무ㆍ금속ㆍ돌이 어떤 비율로 만나는지, 각각의 재료가 지닌 물성이 만났을 때 어떤 조화와 충돌이 일어나는지를 주목했다면, 건축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는 공예가 표현할 수 있는 조형적ㆍ건축적 구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만나다
박태홍 작가는 열일곱 살에 처음 나무와 만났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는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대학에도 목공예과가 따로 없던 시절, 서울 보광동에 직업사관학교가 설립되었어요.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교장 추천으로 상경해 목공예과에 들어갔지요. 나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기에 하교 후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가서 하염없이 책을 뒤적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올해 예순 살인 그의 공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작업대 왼쪽 벽의 책꽂이엔 각종 건축 서적이 빼곡하다. 가구와 조명, 조명과 소품, 공간과 가구가 어떻게 서로 맞물려 조화를 이루는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등을 공부 할 수 있기 때문.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 영역이 건축으로 확장됐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일본 나오시마에 다녀오기도 하고, 언젠가 우연히 마주친 이타미 준Itami Jun의 스케치 한 장을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스케치를 매일 연습하기 시작했지요.” 지금까지도 이타미 준의 스케치를 잊지 않는다며 언덕에 집이 한 채, 그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스케치를 쓱쓱 그려 보이며 웃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마흔 살에 도쿄 긴자의 Q갤러리에서 선보인 첫 개인전에 이어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기획 초대전, 부산시립미술관 기획 초대전, 프랑스 생테티엔 디자인비엔날레 한국 특별전 등에 참가하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초대 작가로 선정, 부산국제영화제 디렉터스 체어 디자인을 비롯해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가구를 디자인하기도 한 박태홍 작가는 2014년 건축가 승효상의 이로재 창립 25주년 기념 가구전에 참여하면서 예술가로서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지금까지 ‘내 작업’을 하면서 나무ㆍ금속ㆍ돌이 어떤 비율로 만나는지, 각각의 재료가 지닌 물성이 만났을 때 어떤 조화와 충돌이 일어나는지 등을 주목했다면, 건축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는 공예가 표현할 수 있는 조형적ㆍ건축적 구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3 수입 원목 자재를 들여올 때 붙어서 온 각 나무의 원산지 마킹 태그를 버리지 않고 작업실 한쪽 문에 붙여놓았다. 4 지난해 12월 연 개인전 <나뭇결, 바람결, 숨결>에서 전시한 작품 ‘둠’. 인근 양식장에서 말뚝으로 쓰던 참나무를 검은 철판에 덧대어 벽걸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자연과 교감하는 마음결
지난해 12월에 연 개인전 <나뭇결, 바람결, 숨결>에서 박태홍 작가는 목공예에 구조와 조형을 결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삼나무와 참나무에 금속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형태의 목공예를 구현했다는 것이 특징. 나무의 속살을 보여주기 위해 나무를 퍼즐처럼 조각조각 이어 만든 테이블 작품, 못과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활용해 만든 벤치, 인근의 파래ㆍ김 양식장에서 말뚝으로 쓰던 나무가 태풍에 떠내려온 것을 검은색 철판을 붙여 벽걸이 형태로 만든 작품 등을 선보였다. 참나무 말뚝을 벽걸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둠’은 각별히 애정을 쏟은 결과물이다. “자세히 보면 바닷물에 잠겨 있던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할 수 있어요. 그 모습 자체로 바람 냄새, 바다 냄새,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면서 말뚝이 서 있던 사이사이로 물결이 흘러가는 모습을 연상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목공방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의 나무 창고에는 20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 그가 모아온 수십 종류의 나무와 크고 작은 소품이 즐비하다. 지인이 운영하던 가게 앞 나무 계단으로 쓰던 것, 목공소 자리를 공장으로 만들면서 폐기물로 땅에 묻혀버린 오래된 통나무, 미얀마에서 보고 반해 직접 베어 운송해온 나무, 폐선박에서 떨어져 나온 원형 선창, 지름 1m가 넘는 잘린 통나무, 누군가의 정원에서 썼을 법한 돌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그만의 ‘보물섬’이다. 얼핏 보면 그 쓰임이 잘 연상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박태홍 작가에겐 모두 소중한 작업 재료다. “오래도록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제자리를 만나지 못해 방치한 것이 많아요.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모았느냐고요?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수 없죠.(웃음)” 박태홍 작가는 종종 의도치 않게 자연의 도움을 받아 훌륭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다대포 바닷가에 위치한 이 공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1 감천문화마을의 세탁소 앞에 놓여 있던 오래된 의자를 가져와 그와 비슷한 크기의 나무 의자를 만들고 각각 통나무와 매치해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보다’라는 의미의 작업을 완성했다. 

박태홍 작가가 15년 넘게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국산 소나무. 벽에 버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호랑이 가죽 같다.

3 길이 4m가 넘는 작업대는 미얀마에서 공수해온 나무로 만든 것이다. 

“목수라면 언젠간 내 손으로 내 집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누구나 자기가 살 집 한 채 지을 정도의 능력은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주거 환경이 집중되어서 그렇지,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모두 그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직접 하던 것들이에요.”


나무와 나
오랜 세월 나무를 만지다 보니 나무를 두는 공간에 관심이 생겼고, 공간을 꾸미다 보니 건축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가구나 소품 제작뿐 아니라 주거 공간 인테리어, 조경, 건축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박태홍 작가의 꿈은 무엇일까? “언젠가 내 손으로 내 집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자기가 살 집 한 채 지을 정도의 능력은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주거 환경이 집중되어서 그렇지,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모두 그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직접 하던 것들이에요.” 몇 년 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오프닝에서 박태홍 작가의 장남 현우군이 아버지 뒤를 이어 목수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을 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함께 목공방을 꾸려온 아내 윤경혜 작가와 아들까지, 한 가족이 같은 땅에 터를 잡고 목수의 길을 가는 일은 결코 흔치 않을 것이다.

4 목공방 안쪽에 자리한 작업실 한쪽에 잘 정리되어 있는 자투리 나무들. 

5 박태홍 작가가 매일 하는 스케치 연습. 주문 제작 가구의 경우 고객에게 이 스케치를 함께 전달한다.
그는 목수에서 시작했지만 목수에만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커져만 간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돌, 금속 같은 다른 물성과 나무를 만나게 해 그 조화와 충돌의 모험도 계속해나가고 싶다. 오는 10월엔 그가 3년 전부터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시민공원안 ‘문화예술촌’에서 시민들과 함께 체험하는 설치 전시도 진행한다.


박태홍 작가의 미발표 최근작. 요즘 그는 자연석과 금속, 나무를 매치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고 찬찬히 그의 공간을 둘러보며 “나무를 보면서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던 작가의 말을 되새겼다. 바닷가의 구멍 뚫린 돌을 보고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듯, 한 그루 나무와 마주한다면 그를 통해 숲을 볼수 있어야 한다던 그의 말을. 베어져 내게로 오기 전까지 나무의 생과 깊이 뿌리내린 그 숲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그가 평생 동안 매일 잊지 않고 해온 일이다. “열일곱 살에 처음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걸어온 길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나무를 보면 너무 좋아요.” 박태홍 작가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무 창고에 가득 쌓아둔 크기도 모양도 향도 각각 다른 그 많은 나무처럼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나무, 숲과 바람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나무를 만나는 것처럼 행복한 순간이 그에게 또 있을까.


높이 3m가 넘는 작업실 입구의 문은 2013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장 접견실 인테리어에도 쓰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나무가 왜 좋으냐고요? 보는 것만으로 친근함이 들어 좋고, 만지면 부드러운 촉감이 또 좋고, 불을 때면 그 불꽃조차 어여쁘지 않나요.” 무언가를 오래도록 곁에 두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마음이 부럽고 또 부럽다. 아쉬운 듯 그가 덧붙여 말한다. “나무를 만나서 참 좋습니다.”



유주희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