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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바라보는 여덟 가지 시선 나의 사私적인 도시
부산은 유난히 이야기가 풍부한 도시다. 바다와 산을 잇는 복잡하고 굽이진 길은 곡진한 삶의 고단한 사연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덟 명의 부산 사람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부산을 바라보았다. 여덟 가지 이야기에 여덟 가지 ‘진짜’ 부산이 담겨 있다.

살기 좋은 나의 도시

나는 창원에서 나고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쭉쭉 뻗은 시원한 도로, 몇발짝만 걸으면 있는 공원, 어디서든 마음 놓고 탈 수 있는 자전거. ‘살기 좋은 도시’가 슬로건인 창원에서 정작 살기 좋은 도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대학교 입학으로 처음 마주한 부산의 인상은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도로, 오래된 잿빛 건물이었다. 그렇게 몇 년, 부산은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자리한 도시일 뿐이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 장애인이 모여 사는 아일랜드의 캠프힐 커뮤니티에서 1년간 자원봉사를 하며 한국에도 이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 ‘공유를위한창조’라는 신생 사회적 기업에서 도시 재생 사업에 참여하며 부산의 진짜 모습을 마주했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가 아니라, 산비탈까지 올라와 정착한 피란민 삶의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는 산의 도시였다.산복도로에 자리한 도시 민박촌에서 도시 재생 운동가로서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비탈진 삶의 터전에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도시 재생이 뭔지는 몰라도 요새 살맛 나네!”라는 주민들의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차다. 그리고 ‘살기 좋은 도시’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산비탈의 팍팍한 삶 속에서도 살맛 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이곳, ‘산의 도시’ 부산을 더욱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_박은진(도시 재생 운동가)


부산 사람의 부산 여행

부산으로 자주 여행을 오는 지인이 어느 날 내게 물었. “부산 사람은 부산 어디를 여행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산에 살면서 부산을 여 행한다는 발상이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여행자의 시각으로 돌아보았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았고 이름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곳도 수두룩했다. 심지어 대한민국 대표 피서지인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해본 기억도 없으니 부산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서울 사람이라고 서울을 다 알까? 사실 우리 모두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을 잘 모른다. 너무나 익숙해서 호기심이 사라진 탓에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행자들이 우리 고장을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그래서 부산 여행을 시작했다.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니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그야말로 ‘여행자’가 되어 넓디넓은 부산을 구석구석 누볐다. 부산에도 해녀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건 시작에 불과했다. 서퍼들의 성지로 변모한 송정해수욕장, 제주도 올레길도 울고 갈 갈맷길.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시작한 돼지국밥의 유래 등 부산에 살면서도 몰랐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이야기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부산 사람의 부산 여행은 익숙함 뒤에 숨어 있는 낯선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이다. 너무나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것들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부산에 살면서 부산을 여행하는 건 그래서 나를 찾아 떠나는 시간이다. 아직도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즐겨야 할 것이 지천이다. 부산의 매력은 도무지 끝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산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_문철진(여행 작가, <진짜 부산100> 저자)


생동하는 청춘의 도시

부산은 설렘의 도시다. 믿거나 말거나 전국의 가출한 청소년들이 가장 가고 싶은 도시로 부산을 첫손에 꼽는다. 가출이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 이 농담 같은 풍문의 진실은 부산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과는 가장 동떨어진,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주는 공간이란 의미일 터. 부산이 주는 설렘은 무엇보다 바다라는 자연이 내린 축복에 기대고 있다. 다대포와 송도, 태종대와 자갈치, 오륙도와 광안리, 해운대와 송정으로 이어지는 각양각색의 푸른 바다는 부산 어디서나 손에 쥘 듯 펼쳐진다.

또한 부산은 혼돈의 도시다. 이른 새벽을 여는 자갈치 어시장의 투박한 풍경은 해방 직후 도떼기시장에서 기원한 국제시장과 보수동 헌책방 골목, 최근 감천문화마을로 널리 알려진 부산의 달동네, 산복도로의 정경으로 꼬불꼬불 이어진다. 한국전쟁과 피란 시절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풍경을 뒤로하고 부산항대교를 건너면 육중한 컨테이너 더미와 크레인 구조물들이 수출입국과 산업화 시대를 주도한 항구도시, 부산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화려한 경관 조명을 자랑하는 광안대교를 건너면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해운대 해변을 다시 마주한다.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부산의 전경은 개항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피란 수도, 다시 산업화와 세계화로 숨 가쁘게 이어지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변화와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는 서사적 파노라마다.

이처럼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부산의 풍경은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묘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부산 사람의 기질과도 닮아 있다.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의 심성은 그들이 자란 자연환경, 역사적 경험의 영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일종의 문화적 지문이기 때문이다. 설렘과 혼돈, 새로움과 변화, 충동과 기대감이야말로 부산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이며, 생동하는 청춘이 부산을 가장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이지 않을까. _이승욱(지역 문화 잡지 <안녕 광안리> 발행인)


나의 도시를 영화로 기록한다는 것

중학교 2학년, 국사 수업 시간에 처음 다큐멘터리 영화를 접했다. 문득 나도 저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죄만 안 짓고 살면 된다”는 부모님의 격려 아닌 격려 아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일상 속엔 늘 영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극장에 나를 데리고 가실 때, 내 자리는 늘 어머니 다리 사이였다. 열한 살 차이 나는 작은형의 손을 잡고 <우뢰매>를 보러 가기 위해 건넌 영도다리를 20여 년이 지난 후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악사들> 속에 담아낸 순간처럼, 어린 시절 기억은 카메라를 손에 쥐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을 영화에 담아오고 있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경험을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단편 다큐멘터리 <낯선 꿈들> 속에 등장하는 부산의 동시 상영관 삼일극장 복도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영화 사운드를 듣는 장면은 어릴 적 부모님, 형들과 함께했던 단관 극장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했고, 다큐멘터리 연작 <할매> 속 카메라에 담긴 산복도로 풍경은 유년 시절을 보낸 영도와 신평의 친구들과, 놀러 갈 때마다 밥을 차려주신 그들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찍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내가 바라보던 극장의 바로 그 스크린에 내가 만든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세상, 당신도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우리, 동안은 잃어도 동심은 잃지 말자! _김지곤(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배지민, ‘동백섬 정취’, 48×66cm, 한지에 먹, 채색, 2013

의사가 그리는 부산

정형외과는 골격의 형태학적 이상을 진단하고, 수술로 정확히 교정하는 학문이며, 그림은 대상의 형태를 바로 보는 훈련이다.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고교 시절 미술 선생님에게 달려가 배우기 시작한 그림을 40년 동안 그리고 있다. 전문의로서 경력을 쌓으며 정형외과 치료와 유사한 점이 많은 그림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정형외과 의사가 수술이 불충분한 환자를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물리치료가 해결해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건 화가가 데생을 제대로 못 한 그림 위에 채색만 화려하게 하는 것과 같다. 요즘도 바다가 보이는 해변 카페나 재즈 클럽에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가 그곳의 젊은이와 연주자들을 그리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지난 27년간 경상남도 진주의 경상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교수 생활을 마치고 부산으로 터전을 옮겨 작년에 개원한 해운대부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부산은 공기가 맑고 바닷바람이 불어와 늘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다. 그리고 옛 도시의 면모와 첨단 기술로 지은 거대한 건물, 넓은 바다와 많은 산 등 여러 가지 대비되는 요소가 모두 내 그림의 대상이다. 해무가 짙게 낀 해운대와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송정 해변, 뉴욕 맨해튼을 떠올리게 하는 마천루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센텀시티 주변 풍경….

부산에 내려와 좋은 건 이전보다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대학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강의와 연구 준비에 쓰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 환자의 진료와 수술에 전념하고도 제2의 전공인 미술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산책 시간이 늘어난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도처에 도서관과 미술관, 갤러리, 카페가 자리한 부산은 걷기에 좋은 도시다. 솔직 담백하고 화통한 기질로 소주 한잔만 나누면 곧 친구가 되는 부산 사람들의 깊은 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산의 매력. 구수한 사투리와 어우러진 생선 지리는 지난 1년간 내가 겪은 가장 인상적인 부산의 맛과 멋이다. _조세현(해운대부민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의사가 그리고 쓴 치유의 미술> 저자)

조세현 원장이 그린 바다 안개 짙게 낀 해운대 풍경.

새로운 문화 예술의 도시

대학 졸업 전까지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보수적인 부모님은 딸자식은 무조건 부산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그 마음을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지 못한 일이 내겐 줄곧 불만이었다. 대학 졸업 후엔 직장을 다니며 서울에서 거의 10년을 살았다. 부산에선 접하지 못한 공연과 전시 관람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과 함께 돌아온 부산은 2005년 APEC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관광특구로 지정된 해운대는 하루가 달리 새로워졌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마린시티와 센텀 시티 등 대규모 상업 지구가 형성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광객이 찾아왔다.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아름다운 도시, 부산의 문화 예술에 이바지하려는 마음으로 지난 2011년 국제 아트 페어인 ‘아트부산’을 시작했다. 국가와 도시의 품격은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층이 얼마나 두꺼운가에 달려 있지 않은가? 과거 이탈리아의 피렌체, 뉴욕, 최근 홍콩과 두바이가 그렇다. 아트부산을 관람하며 행복해하는 부산 시민의 모습을 보며 문화 예술 도시 부산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실감한다.

올해 열린 제5회 아트부산은 19개 국가에서 2백 곳에 가까운 갤러리가 참가하는 매머드급 국제 아트 페어로 성장했다. 해외의 많은 미술 관계자가 집결하는 교류의 장이자, 국내외 갤러리 간의 거래도 활발하다. 아트부산을 처음 준비할 무렵, 해외 갤러리를 유치하느라 아시아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 지역을 다닐 땐 부산을 잘 몰랐던 그들이 아트부산을 통해 이제는 먼저 찾아오고 있다. 가슴 벅차고 기쁜 일이다. 서울에 편중된 문화 예술 행사들을 부산에서 개최하기 시작했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 작가 이우환의 미술관이 건립되었고, 내년 2월이면 을숙도에 새로운 현대미술관이 준공된다. 올해 부산 비엔날레가 열린 ‘F1963’ 역시 인상적인 문화 공간이다. 부산이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 예술 도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_손영희(아트부산 대표)


몽타주 같은 도시

부산은 다양한 색을 지닌 도시다. 마치 날씨와 환경 조건의 변이에 따라 다른 색을 내비치는 바다의 속성과 닮았다. 밝은 하늘색처럼 맑은가 하면, 짙은 갈색처럼 고색창연한 느낌도 있다. 어떨 때는 정열의 색을 내비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어두운 회색 톤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부산 풍경은 마치 조각난 장면들이 겹쳐 복합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영화의 몽타주 같다. 최근 로케이션 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은 이유도 정제되지 않은 채 곳곳에 흩어져 생동하는 기운 때문일 것이다. 컨테이너 야적장, 대형 물류 창고, 조선소, 선착장 같은 항만 시설은 거칠면서도 대양을 향한 장쾌함이 묻어난다.

국제시장, 부평동 야시장, 공동어시장, 건어물시장 등에서는 일상의 민낯을 만남과 동시에 애잔한 과거사에 대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바다를 메워 만든 매축지마을,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누울 자리를 찾아 산허리까지 오르고 올라 지은 산복도로 마을에는 지금도 집들이 빼곡하다. 반면 70~80층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마린시티에는 고급 아파트와 오피스, 호텔이 혼재되어 새로운 도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더베이101’ ‘오륙도가원’ ‘코티지’ 등의 건물은 서울에서는 꿈꾸지 못할 부산만의 매력을 창출한 공간이다.

바다를 횡단하며 지나는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 남항대교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파노라마 경관은 한없이 넉넉하다. 서구, 중구, 동구, 부산진구를 꼬불꼬불 잇는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조밀한 경관은 친근하기 그지없다. 흰여울길과 감천문화마을의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낭만과 추억을 사진에 담기도 하지만, 위아래 서로 이웃한 하꼬방의 속살은 마음에 감동을 남긴다. 황령산 봉수대에 서서 바다와 강과 산, 갖가지 건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 부산의 전경을 3백60도로 둘러본다. 문득 이런 다층적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미군 기지였던 하야리야 부대 주둔지는 초록이 무성한 시민 공원으로 바뀌었고, 해거름이 내린 도심지 곳곳은 불야성을 이룬다. 수영비행장이었던 황량한 터는 이제 센텀시티로 탈바꿈해, 해마다 세계적 영화제를 개최한다. 건축가로서 바라본 나의 도시, 부산은 두텁고 다채로운 결로 짜인 도시다. _이승헌(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부산 속 건축> 저자)


김종흠, ‘자갈치’, 화선지에 수묵, 114×145cm, 2008

부산은 시장이다

부산의 시장을 들여다보면 부산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부산 삶의 역동성과 개방성, 수용하고 융화하는 사회 시스템 등이 ‘부산의 시장성’에서 왔기에 그렇다. 부산을 ‘장터의 도시’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최초의 공설 시장인 ‘부평시장’은 부산어묵이 처음으로 태어난 곳이다. 피란시절에는 돼지국밥이 만들어졌다. 부산 음식의 새로운 원형이 이곳에서 탄생한 것. 전국 최대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시장’은 자갈치 아지매라는 억척스럽고 활달한 부산의 여인상을 만들어낸 곳이고, ‘깡통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다양한 유엔군 물자가 음성적으로 대량 거래되던 최대의 시장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널리 알려진 ‘국제시장’은 다양한 나라에서 원조받은 구제 물품으로 한때 한국 패션 문화 1번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배고픈 피란민들에게 값싸고 푸짐한 끼니를 제공한 구포국수는 원조를 받은 밀가루로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내던 ‘구포시장’이 있어 가능했다.

이처럼 부산의 시장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근현대사를 반영하고 있다.시장은 부산이었고, 부산 사람이었으며, 부산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니 부산에 오면 제일 먼저 부산의 시장부터 들를 일이다. 부산의 푸짐한 향토 음식과 함께 부산의 문화 원형이 보석처럼 빛나는 공간이기에 그러하다. _최원준(시인, 동의대학교 문창과 겸임교수)



담당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