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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사랑과 책임의 수레바퀴

송진화, ‘따끈따끈’, 느티나무에 혼합 재료, 45×90×30cm, 2011
집 근처 베이커리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케이크를 사지 못했다. 몇 년 전 그날은 우리 집 몰티즈, 이쁜이가 부엌 구석에서 먹고 남은 케이크 판을 핥고 있었다. 나는 케이크 판에 묻어 있는 생크림을 핥아 먹는 이쁜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먹지 말랬지?” 소리 지르면서 이쁜이를 잡고 케이크 판에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이쁜이는 그 순간 내 손을 물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화가 나서 이쁜이를 신경질적으로 때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아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떠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쁜이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1년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이쁜이를 잊고 살았다. 가끔씩 소식을 듣고, 아들만 이쁜이를 보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들은 이쁜이를 무척 그리워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 기관지가 좋지 않으셔서 안 된다잖아. 그러니까 가끔 가서 보고 와”라고 아들을 달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이쁜이를 보러 간다고 들떠 있었는데, 이쁜이의 상태가 갑자기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간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쁜이는 몸 안에 든 많은 돌을 꺼내다 문제가 생겨 결국 안락사하게 되었다. 아들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하루 뒤면 당연히 만날 줄 알았던 이쁜이를 결국 보지 못했다. 나도, 아들도 동물 병원에 싸늘하게 누워 온몸이 굳은 이쁜이를 만난 뒤 생각보다 오래, 아주 오랫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키우다 귀찮으면 버려도 되는 거예요?” 아들이 눈물 흘리며 내뱉은 가시 돋친 말 앞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 후 나는 몇 년간 생크림 케이크를 먹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생크림 케이크를 보면 우리 이쁜이가 떠오른다.

이쁜이는 우리가 외국으로 떠나던 날, 보통 강아지가 짖는 소리 이상으로 울부짖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버려진다는사실을 알았던 것처럼 그렇게 울부짖었다. 나는 냉정하게 돌아섰고외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설렘과 긴장감에 이쁜이의 울부짖음은 금세 잊어버렸다. 아들은 이쁜이가 다른 곳으로 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곧 돌아올게 이쁜아”라고 말하며 이쁜이를 달랠 뿐이었다. 난 그때에도 이쁜이와 못내 헤어지기 싫은 아들의 마음만 신경 썼지, 이쁜이가 느낄 감정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이쁜이의 죽음과 우리의 관계를 되돌아보면서 오랫동안 많은 후회 속에 지냈다. 나의 미성숙하고 폭력적이고 냉정한 행동들에 대해서 반성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우리를 바라보던 이쁜이의 사랑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에 대해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돌아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넘어서는 것이다. 관계는 생명과 생명의 교류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사람과 동물의 교류로 사람의 인격을 볼 수 있고, 세상에 대한 그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쁜이와의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미성숙하고 이기적이었는지를 아주 확실하게 되짚어볼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용기를 내어 다른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의 부탁에 못 이겨 수락하기도 했지만, 내심 변화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결과, 자발적 의지로 내가 아닌 존재에게 사랑의 행동을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날이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과거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로 했고, 때로 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굳이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반려견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일
때가 있다. 나와 반려견의 교감과 소통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성장과 배움의 시간을 가져다주는지 몸소 경험하고 있다. 이쁜이가 나에게 보여준 한결같은 사랑과 내가 이쁜이에게 당연히 주었어야 할 사랑과 책임의 수레바퀴가 이제야 맞물려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느낌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길을 지나다 몰티즈를 보면 이쁜이가 생각나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아들은 가끔 나에게 묻는다. “엄마, 이쁜이 생각나요?”

이쁜이가 생각날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짐하곤 한다.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엄숙히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겠다고. 미안하다, 이쁜아. 그리고 고맙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 <말 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가 있습니다. 




글 박재연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