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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문화 특집 다시 쓰는 공예 지도 2
담양 대나무, 전주 한지, 한산 모시 등 지역 특산물은 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 인문적 자원, 손기술 등이 더해져 지역 특유의 공예로 발전한다. 흔히 ‘지역 공예’라 하면 고리타분하고 현대에 맞지 않는 전통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담은 생활 명품이요, 궁극적으로는 자연 친화적 삶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최근 전통문화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역과 연을 맺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공예품을 만드는 젊은 디자이너의 행보가 반가운 이유다. <행복>은 지금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지역 공예,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소비’를 만드는 열두 명의 디자이너, 공예가를 만났다.

원주 옻칠+안성 유기_ 문채훈
유기에 ‘옻’이 피다 

1 옻칠을 좀 더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옻칠과 유기를 접목한 그릇 브랜드 다문을 론칭한 디자이너 문채훈. 2 다문의 제품 중 가장 좋아하는 일품 접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전통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옻칠 작업을 선보이는 문채훈 작가. 세계적 옻칠 명장 전용복 선생의 제자로 공예에 입문한 그는 최근 유기에 옻칠을 접목한 생활 그릇 ‘다문’을 론칭했다. 옻칠을 유기에 입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3년. 안성의 김수영 유기장을 찾아가 옻칠한 유기를 보여드렸는데 ‘유기에 색을 입힐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시도라 격려해주셨고, 본격적으로 옻칠과 유기를 접목한 생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성맞춤 공방에서 유기를 제작하고, 전용복 선생에게 배운 옻칠 회화 작업 중 규조토를 섞어 거칠게 붓 질감을 내는 방법을 응용했다. 얼마 전에는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한 온라인 사이트도 오픈했다. 유기는 전통 소재 중 드물게 양산이 가능한 것인 만큼 제품화하기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옻칠을 더하면 아주 독특한 콘셉트로 작용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유기와 옻칠을 일상에서 3백65일 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생소한 두 분야를 더 많은 사람이 접하게 하려면 도자, 나무 그릇 등과 어떻게 매치하는지 보여주는 작업이 중요하죠.” 결혼 후 실제 상차림에 유기그릇을 곧잘 활용한다는 문채훈 작가. 뭘 담아도 잘 먹는 것 같은 느낌이 좋고, 좋은 그릇 하나가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풍성하게 바꿔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3, 4 전용복 선생에게 배운 옻칠 회화 기법을 접목. 붓 질감으로 손맛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 생활 스크래치의 염려를 덜어준다.해외시장에서는 반응이 어떤가? 2016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한 뒤 주문량이 더 많아졌다. 단, 유기를 브라스brass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석 화합물이라고 설명하면 다들 놀라워한다.
요즘 디자이너는 작품 디자인뿐 아니라 홍보, 마케팅, 판매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공예 작업에서 마침표는 누군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 아닌가. 브랜딩과 유통에 관심을 두는 게 당연하다.
옻칠과 유기 모두 대중적 소재는 아니라 가격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나를 비롯해 아주 소수의 인원이 할 수 있는 규모 안에서 제작하고 판매하는 방식이 목표다. 옻칠 역시 광을 내는 기법 대신 샌딩을 많이 하지 않는 붓칠 기법을 택한 이유다. 

“옻 채취하는 것을 보기 위해 종종 원주에 가요. 한 방울씩 천천히 흘러나오는 옻을 채취하는 모습을 보면 옻칠을, 공예를 대하는 마음 자체가 달라집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도 커지고요.”

이지현 기자 문의 다문(www.damooncollection .com)


곡성 낙죽장도+가평 한지_ 김상윤
찰나의 풍경을 담다
1 이름처럼 듣고(listen), 소통(communication)하는 게 모든 디자인의 핵심이라 강조하는 김상윤 대표. 2 최근 선보인 연꽃 조명등은 한지 장인 장성우가 수작업한 한지를 사용했다. 3 갈대로 빗자루를 엮는 장인의 제조 방법을 접목해 만든 콘솔 선라이즈. 4 낙죽장도 장인과 협업한 난초 조명등. 5 전통 짜 맞춤 기법으로 장을 짜고 외관을 밴딩으로 마감해 개성을 더했다. 비비고, 계절밥상 등의 공간 디자인으로 전통의 무게에 함몰되지 않는 한국적 디자인을 제안한 리슨커뮤니케이션의 김상윤 대표. 2014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주최한 전시 <이승자 전승 활동 지원-2014 결結>을 준비하면서 제품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즐거움에 눈뜨게 됐다. 대표작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 유진경과 협업한 짜 맞춤 가구 ‘포레스트Forest’와 장도장 한준혁과 작업한 조명등 ‘문 오키드 Moon Orchid’ 시리즈. 난초・달・연꽃 등은 전통 모티프라 인식하지만 사실 지금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보고 느낀 그대로의 찰나를 디자인하는 것이 리슨 커뮤니케이션의 디자인 프로세스다. 얼마 전 베니스 디자인 2016에 출품한 ‘선라이즈 Sunrise’ 콘솔은 갈대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 참빗으로 갈대를 빗어 가구의 몸통에 붙인 뒤 LED 조명을 매입해 빛이 흘러내리는 느낌을 표현했다. 잘빠진 곡선이 돋보이는 대나무 조명등은 난초가 창밖의 달을 낚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한지 고유의 아름다운 결이 일렁이는 연꽃 조명등은 한지에 OHP 필름을 접합하고 입체적으로 바느질해 내구성을 높였다. 꽃술을 흩뿌린 듯한 워터볼 형태의 금빛 조명등을 구성해 불을 켰을 때 작은 입자들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다. 조명등은 원하는 연출 방식에 따라 테이블에 두거나 벽에 걸 수 있는데, 바닥에도 설치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다. 한국 전통 방식과 건축, 공예, 디자인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은 디자이너의 철학이 빚어낸 결과다.

장인과 협업하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나? 독립 전 백선 디자인에 근무하며 장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수백 년간 이어온 정신, 고유한 제조 방식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디자이너가 우리 전통 공예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사용자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 는 일. 그러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적 마인드가 중요하다.
반대로 장인의 역할은? 컴퓨터 수치 제어 프로그램(CNC, computer numerialc control)의 등장으로 짜 맞춤 기술 같은 전통 공예의 핵심 기술도 오픈 소스로 뿌려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손으로 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일정 부분 첨단을 활용하는 등 타협이 필요하다. 

“전통을, 공예품을 리빙living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바로 ‘정신’이에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따뜻한 시선, 제품을 만드는 데 들이는 정성, 귀하게 여기는 마음 등 전통 장인들의 정신을 담되 콘솔, 테이블 조명등처럼 현대에도 쓸 수 있는 형태로 변주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이지현 기자 문의 리슨커뮤니케이션(02-6251-1150, www.listencom.co.kr)

청송 백자_ 윤한성 
현재를 다시 사는 백자 
1 윤한성 수석 전수자는 청송 백자의 미래를 짊어진 책임에 어깨가 무겁지만,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청송 백자를 이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2 심플한 형태에 코발트로 선, 초문 등 간단한 패턴을 더한 청송 백자. ‘다시 부활한 백자’라는 타이틀을 뛰어넘어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이다.도예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구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윤한성 씨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고향인 청송에서 청송 백자 제작에 중요한 기술을 지닌 고만경 선생을 만났다. “선생님이 청송에서 도자 공방을 운영했는데 왜사기와 양은그릇, 기계 공정에 밀려 1958년에 가마 문을 닫았고, 그 후로 청송 백자의 맥이 끊겼대요. 당시 3개월에 한번씩 도자기를 구워냈는데, 지리적으로 멀고 쓸모가 없어지니 아무도 청송 백자를 찾지 않았지요.” 윤한성 씨는 현재 청송 백자 수석 전수자로서 두 명의 전수자와 함께 옛 청송 백자의 원형을 복원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청송 백자는 유일하게 도석이라는 돌을 빻아 만드는데, 이 때문에 더 희고 단단하며 얇고 가볍습니다. 얇으면서 단단하게, 단단하면서 가볍게 만드는 것이 기술이지요.” 청송 백자의 생김새는 원형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심플한 형태에 코발트로 간단한 선이나 초문 등을 그려 넣는데, 모던한 스타일이라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지금 시대에 맞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쓰임’이다. 청송 백자가 왕실이나 사대부가 아닌 일반 서민이 쓰던 제기나 생활 자기였던 만큼 요즘을 사는 사람들의 삶에 편안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고심했다. “전수자로서 원형을 복원하고 또 이를 토대로 새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참 말은 쉬워요.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청송 백자의 길을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합니다. 어깨가 무겁지요.” 작업도, 연구도 고민이지만 직접 마케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청송 백자가 더 많은 사람의 일상 속으로 녹아드는 것,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명맥을 잇는 이가 많아져 청송 백자 마을로 발전해갈 수 있길 바랍니다.”

누구나 전수받을 수 있나? 누구나 가능하다. 사실 입주 작가 프로그램도 진행했는데, 지역적 한계 때문인지 많이 활성화하지 못했다. 많은 디자이너와 공예가가 관심 갖길 바란다.
장 프루베의 모던한 금속 가구와 청송 백자를 매치한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함께 협업해보고 싶은 사람이나 분야가 있는지? 아무래도 생활 자기이다 보니, 푸드 스타일리스트, 셰프 등의 음식 관련 전문가와 협업해보고 싶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나? 청송 백자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려고 한다. 청송 백자는 조선시대 후기 4대 지방요 중 하나다. 남한에는 양구 백자와 청송 백자가, 북한에는 해주 백자와 회령 자기가 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 올 하반기에 양구 백자와 공동 기획 전시도 하고 학술 대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나중에는 북한의 백자들까지 함께 합하면 좋겠다. 백자로 이루는 통일이랄까? 

“청송 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료를 다루거나 디자인을 할 때도 ‘현대적’이 아닌 ‘현실적’으로 바꾸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청송 백자가 사라질 뻔했던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을 테니까요.”

손지연 기자 문의 청송백자전수장(054-873-7744, www.csbaekja.kr)

나주 천연 염색_ 박유진 
전통을 하나로 모으다 
1 전통을 잇는 방식으로 장인의 솜씨를 모아 완성도 높은 공예품을 만드는 박유진 작가. 2 박유진 작가가 직접 만든 바늘꽂이. 아담하게 창을 낸 초가집 모양의 바늘꽂이는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3 노순걸 명인의 대바구니와 정관채 선생의 쪽 염이 만난 바구니 보자기. 그의 작품이 아니라면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하늘을 닮은 쪽빛 바구니 보자기는 평범한 공예품이 아닌, 박유진 작가가 한데 모은 오랜 공력이다. 공예품을 물들인 아름다운 쪽빛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정관채 선생의 손맛이요, 올올이 짠 대바구니는 담양군 대나무 공예 명인 제 12호 방립장 노순걸 선생의 솜씨다. 대바구니의 옻칠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 선생이 맡았고, 바구니 위에 올린 보자기는 작가 자신의 작업. 노순걸 선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주 사람이다. 지금처럼 컬래버레이션이 성행하기 훨씬 전인 2010년, 박유진 작가는 인사동 오설록에서 사용할 1인 다기용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지역의 장인들을 찾아다녔다. “가까이에서 보고 자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몰랐어요. 특히 정관채 선생님의 쪽빛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청아한 매력을 담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지요. 하늘이 파랗게 보여도 가까운 곳과 먼 곳의 하늘빛이 모두 다른데 선생님의 쪽 염색은 이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박유진 작가는 자신이 직접 염색을 하지만 쪽빛만큼은 정관채 선생의 것을 고수한다. 인도산 인디고페라가 저렴한 가격에 들어와 유행하고 마치 국내산 쪽 염색으로 둔갑할 때는 이를 저지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한 업체에서 세컨드 작업을 제의하면서 중국산 바구니와 쪽빛이 도는 저가 원단을 이야기할 때는 단칼에 거절하고 돌아섰다. “이탈리아로 여행 갔을 때 ‘왜 유독 이곳은 명품이 많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하지만 금세 깨닫게 되더군요. 그곳은 작은 시골 마을에도 공예품 상점이 있을 정도로 공예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돈 주고 사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을 아낄 줄 알지요.” 손으로 만드는 것의 소중함과 장인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야 공예가 발전한다고 말하는 박유진 작가. 그들의 값진 땀방울이 스며 있는 공예는 가치를 논할 문제이지, 대량생산하는 공산품과 가격을 비교할 일이 아니다.

쪽 염색이 하나의 공예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왕비의 서적에는 홍색, 왕의 서적에는 쪽색을 입혔을 정도로 과거 왕실에서는 홍색과 쪽색을 많이 사용했다. 두 가지 색은 염색하기가 특히 까다로워서 당대에도 염색장을 따로 두었다.
‘마하니’ 작업에 대해 듣고 싶다.
바구니 보자기 외에도 고지도를 재해석하는 작업과 마하니 물고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까지 세 가지 작업이 있다. 마하니란 이름은 나주시 복암리 고분(마한시대 의 유적)에서 발견한 금동 신발 바닥의 물고기와 내 작품 속 물고기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붙인 이름이다.
최근 증강 현실 영상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국립 나주박물관에서 복암리 고분에서 출토한 금동 신발의 물고기 장식과 마하니 작품을 주제로 체험형 미디어 전시를 개발 중이다. 홀로그램과 증강 현실 기술로 마하니와 함께 떠나는 역사 여행을 새롭게 보여줄 계획이다. 

“어느 날 김춘식 선생님의 소반 위에 정관채 선생님의 쪽 염색 소품을 놓고 사진을 찍다가 문득 하나의 작품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막연했지만 어느새 장인의 공력을 모은 바구니 보자기가 완성됐네요. 각각의 공예를 하나로 모으는 일은 저만의 전통을 잇는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이새미 기자 문의 가삿골공방(061-335-7292)


통영 옻칠+통영 나전_ 김현주 
금속에 스민 자개, 일상에 스며들다
1 통영 앞바다의 해무를 담은 사진은 향토 음식 연구가이자 사진 작가인 이상희 씨 작품. 통영 바다에서 나는 전복, 소라 껍데기 등은 빛이 영롱하고 단단해 예부터 나전칠기 발전의 근원이 되었다. 2 금속과 자개라는 강렬한 두 물성을 조화롭게 매치해 모던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김현주 작가. 금속, 섬유, 칠, 도자를 모두 배울 수 있는 공예과를 졸업한 덕에 지금의 작품 활동을 이어오게 되었다는 김현주 작가. 학부와 대학원 때는 금속을 중점적으로 공부했는데, 그때 서울무형문화재 나전칠장 1호 손대현 장인을 만났다. 그에게 금속에 옻칠 입히는 법 (금태칠)을 배우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금속과 칠(금태칠 기법), 나전(끊음질 기법)을 응용한 지금의 작업을 잇고 있다. 김현주 작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나전 기술을 업으로 삼은 이들을 찾아다녔다. 부업으로 자개장 수리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요가 없어 나전 기술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저는 가공해 압축한 자개가 아니라 원패를 사용해요. 그래서 기물에 자개를 붙이면 두께가 달라져 이를 연마해 마감하지요. 그런데 기존 자개장에 사용하는 얇은 자개는 연마 과정에서 없어져버리거든요. 그래서 학부 때 배운 기술을 토대로 두꺼운 자개를 직접 끊어 사용합니다.” 정교하게 일자로 끊기 위해 피스 칼을 이용하는 것이 그의 방식. 자개로 패턴을 만드는 것보다 완전히 감싸는 래핑 방식에 매료되어 하나하나 끊음질 기법으로 기물 전체에 도포한다. “금속의 단점은 표면이 단조롭다는 거예요. 하지만 금태칠을 한 후 나전을 결합하면 박리되지 않고 나전의 영롱함을 금속에 입힐 수 있거든요.” 제일 처음 만든 제품은 와인 스토퍼. KCDF에서 진행한 지역 특화 상품으로 통영과 연계한 제품이다. 이를 시작으로 ‘일상에 스밀 수 있는’ 오일 램프, 디퓨저, 술잔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근 문화유산 보존 모임인 재단법인 예올과 함께 ‘Draw a circle(원을 그리다)’이라는 테이블웨어 컬렉션을 선보였다. 스스로 ‘노동의 공예가’라 표현할 만큼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만 최소 한 달이 걸리니, 총 1년간의 노고가 담긴 작업이다. “서로 다른 물성을 믹스 매치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작업의 기초가 되는 금속 기물을 만들 때도 황동, 적동, 유기, 니켈, 은 등 다양한 금속을 결합시키고, 또 금속과 자개를 결합시키고, 결국 현대와 전통을 결합시키죠. 이제 이 공예 작업을 통해 작가와 대중을 결합시키는 일만 남았습니다.”

3, 5 이번 신제품인 ‘Draw a circle’은 하나를 만드는 데 최소 한 달이 걸릴 만큼 노동력이 집약되는 테이블웨어 컬렉션. 오브제처럼 큰 볼과 접시로 구성했다. 4 백색 자개 뒷면에 먹칠을 해 새로운 빛깔을 뽐내게 만든다. 원패를 얇게 일자로 자른 뒤 피스 칼로 일정하게 조각내 금태칠을 한 기물에 한 땀 한 땀 이어 붙인다. 저마다 개성이 강한 두 물성의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지는 않나? 자개는 매우 화려한 재료라 다른 물성과 어우러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형태를 모던하게 만든다. 인고의 시간을 거친 자개가 또다시 인고의 작업을 거쳐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개체가 되도록 말이다.
곧 독일 전시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해외 반응은 어떤가? 외국인들은 오팔처럼 자개를 화려한 보석이라 여겨 옛 자개장에 많이 쓰인 초록빛 자개를 선호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록 빛깔 자개를 고루하다 생각해 호불호가 나뉜다. 그 고정관념이 아쉽다.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수놓는 작업 방식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작업이 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손으로 작업하는 것 외에 대체 방법이 없다. 금속 성형까지는 기계 성형이 가능해 와인 스토퍼의 경우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라, 섬세한 작업인 만큼 훗날 한국의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외국인과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자개 빛깔이 달라요. 자개를 사용한 옛 물건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렬한 탓에 고루하고 진부하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죠.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전통 소재가 지닌 숙명이라 생각합니다. 더 현대적으로, 더 세련된 자개의 멋을 보여주어야죠."

손지연 기자 문의 크라프트리(062-222-1021, www.craftree.co.kr) 

서울·경기 매듭_ 박진오 
매듭, 손으로 엮은 우리의 멋
1 매듭 장인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엘놋을 론칭한 박진오 디자이너. 2 매듭 네 개와 끼움쇠를 결합하면 책갈피로 사용하기 좋은 가락지 끼움쇠가 완성된다.본업은 실내 건축가지만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한 박진오 디자이너. 그는 2012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한 ‘지역 공예 마을 육성 시범’ 프로젝트에 참여해 ‘매듭’을 주제로 정하고, 4대째 이어져온 동림매듭박물관의 박진영 장인(심영미 매듭기능전승자의 며느리)과 함께 매듭 상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전통 매듭의 고아함에 현대적 쓰임새를 더해 새롭게 탄생한 매듭 상품은 심사를 거쳐 최종 단계까지 올라갔지만 현실적 문제로 양산되지 못했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이처럼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터. 7개월 남짓 함께 수고해준 매듭 장인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전통 매듭 공예를 잇고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박진오 디자이너는 2013년에 엘놋eL_knot을 론칭했다. 첫 제품은 프로젝트 때 개발한 국화 프로토타입을 와인 커버로 만든 것. 이후 매화 팔찌, 생강 조명 갓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국화, 매화, 생강 등 제품 앞에 붙은 이름은 실제 그 제품에 사용한 매듭 기법의 명칭이다. 본래 매듭은 형태가 곧 구조가 되고, 구조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 점을 흥미롭게 여긴 박진오 디자이너는 역으로 매듭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제품을 디자인했다. 최근에 출시한 가락지 끼움쇠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제품 이다. 앞선 제품들과 달리 매듭의 소재를 실크에서 인견으로 바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색상만 사용했으며, 매듭의 개수에 제한을 두면서 가격대를 낮춘 것이다.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적정 가격대의 제품이 있어야 자본이 순환하고, 계속해서 수공예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가 직접 매듭 샘플을 만들면 장인들이 조언을 덧붙이고, 최종 디자인을 캐드로 일대일 도면화해서 전달하면 이를 토대로 장인들이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는 장인들이 꾸준히 작업할 수 있도록 현실과 명민하게 절충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말한다.

3 생강 한 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인 생쪽 매듭으로 생강 조명 갓을 만들었다. 다양한 색온도와 밝기를 지닌 빛이 화합하며 공간을 채워나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4 손으로만 전승되는 것이 매듭 공예의 매력이다. 5 생쪽 매듭을 구조재로 활용한 사물 시리즈. 매듭을 위로 잡아 올리면 바구니가 된다.왜 매듭 공예였는가? 매듭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고, 옻이나 유기처럼 특정 소재를 매개 삼아 이어지는 공예도 아니다. 오직 손으로만 계승할 수 있는 전통 공예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대기업의 자본이 흘러 들어와도 장인들의 작업량이 늘 뿐, 그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는 구조다.
프로젝트를 위해 어떤 매듭 기법을 배웠는가? 3개월 동안 열두 가지의 전통 매듭법을 배웠지만 지금까지 제품에 사용한 매듭법은 다섯 가지다. 내가 배운 모든 매듭법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준비 중인 후속작은? 메모 꽂이와 보타이. 특히 보타이는 한 패션 브랜드와 함께 생산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그곳에서는 지금처럼 제품 생산에 관여하기가 힘들므로 매듭을 활용한 개인 작품을 이어갈 계획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통이란 삶의 경험입니다. ‘Experience is a sort of Life’ 슬로건의 약자를 딴 뒤 매듭의 영어 단어 knot를 붙인 것처럼 매듭을 매개 삼아 현재를 이야기하고, 전통을 그리고 싶어요.”

이새미 기자 문의 +1(919)917-1298, www.facebook.com/elknot



디자인 김홍숙, 전지원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최익견 자료 조사 이인영 인턴기자

기획과 진행 주거문화팀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