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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삼 주덴마크 대사 공공외교, 문화로 꽃 피우다
김치와 탁구로 세계의 마음을 얻는다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점점이 꿰어 강력한 이야기로 만드는 스토리텔러, 경계 너머를 볼 줄 아는 행동가, 문화ㆍ예술 콘텐츠를 도구 삼아 대중과 스킨십하는 공공 외교까지…. 가장 가까운 이웃과 호흡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기억’과 ‘스토리’를 잇는 마영삼 주덴마크 대사의 행보를 통해 행복의 가치를 확인했다.

모겐스 라센이 설계하고 르코르뷔지에의 컬러 팔레트를 입힌 벽을 복원해 화제를 모은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저 리셉션 홀. 거장의 유산을 복원해 덴마크 국민에게 감동을 준 마영삼 주덴마크 대사와 박은경 대사 부인이 17미터의 벽 앞에 섰다.
2015년 봄, 덴마크 한국 대사관저의 리셉션 홀 공사 중 예사롭지 않은 벽이 나타났습니다. 기하학 형태의 프레임과 프레임 마다 다른 컬러 팔레트…. 알고 보니 덴마크 건축의 거장 모겐스 라센이 설계하고 르코르뷔지에의 색을 입힌 구조물이라는 군요. 마영삼 주덴마크 한국 대사는 벽을 유지, 보수하는 방식으로 리셉션 홀 레노베이션을 진행했고, 공사를 마친 뒤에는 인부들과 마을 이웃을 대사관저에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덴마크식 상량식도 치렀습니다. 지붕 위에 한국 국기와 덴마크 국기를 나란히 게양하고 이웃들과 잔치 음식을 함께 즐기는 등 ‘가장 가까이에서, 보다 친근하게’라는 공공 외교 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 이 소문은 덴마크 정부에까지 퍼져 한국 대사관저는 현재 덴마크에 있는 해외 공관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몇 달 전 마영삼 대사가 잡지 한 권을 들고 디자인하우스를 찾아왔습니다. 덴마크 현지 매체에서 흥미롭게 소개하는 이 스토리를 누구보다 한국 독자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그는 한국에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매체로 <행복이가득한집>을 추천받았다고 합니다. 무심코 부순 벽에서 모겐스 라센이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영감받아 설계한 구조물이 나오고, 그 벽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고 복원해 덴마크 국민을 감동시킨 사연을 취재하기 위해 <행복>은 바다 건너 코펜하겐에 다녀왔습니다. 모겐스 라센과 르코르뷔지에의 유산, K갤러리 오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 쇼 ‘퀴즈온코리아’와 김치 축제 등 덴마크와 한국을 잇는 공공 외교의 현장을 마주하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벽’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마영삼 대사가 이 벽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장의 디자인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덴마크와 한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치에 있다는 것을요.


코펜하겐 외곽에 자리한 주덴마크 한국 대사관저. 마당 일부를 파내어 선큰 구조로 만든 왼쪽 건물이 작은 수영장을 메운 리셉션홀이다.
모겐스 라센이 설계하고 르코르뷔지에의 컬러 팔레트를 입힌 구조물과 관청에서 찾은 70년 대의 실제 도면.
가장 가까이에서, 보다 친근하게
마영삼 대사는 외교부 초대 공공 외교 대사를 역임한 뒤 2014년 주덴마크 한국대사로 임명됐습니다. 공공 외교란 외교관이 주재국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 자기 나라에 대한 호감을 상승시키는 외교 기법을 뜻하는데, 마 대사는 문화, 예술, 스포츠 등 공동의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공공 외교 활동의 선구자로 꼽힌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주덴마크 대사로 임명된 후 펼치는 다양한 문화 행사와 행보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나지요.

“공관과 지하로 연결되는 별관에 사용하지 않는 작은 실내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공공 외교의 핵심은 부담 없는 교류예요. 대사관저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수영장을 메워 리셉션 홀로 만들자고 계획했고, 공사 중 구조물을 발견했지요. 관할 관청에 알아봤더니 설계자가 모겐스 라센으로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네모난 구멍은 르코르뷔지에의 유명한 작품인 롱샹 성당의 창문과 같은 형태였고요. 동시대에 활동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두 거장의 흔적이라니, 그 자체로 감격스러웠죠.”

언덕 일부를 파내어 만든 선큰 구조의 실내 수영장은 벽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자 네모난 구멍너머 좁은 천창으로 빛이 자연스럽게 새어 들어옵니다. 구멍 안쪽에는 희미하게 페인팅이 남아 있었는데, 레이저 빔으로 원래의 색을 찾아내어 컬러를 입혔더니 빛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오묘한 색감을 뿜어냅니다. 단순한 구조물에도 빛과 자연을 끌어들이려는 거장의 지혜는 물론, 용도와 목적에 맞는 디자인을 하면 조형적 미는 스스로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덴마크식 기능 주의가 돋보이는 대목이지요. 주덴마크 한국 대사관은 가장 먼저 모겐스 라센의 후손이 운영하는 디자인 브랜드 바이라센(모겐스 라센이 1962년 디자인한 쿠버스 캔들 홀더가 대표 제품)에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모겐스 라센의 작품은 덴마크에서도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데, 이 구조물은 후손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작품으로 리셉션 홀 완성 후 벽을 주제로 모겐스 라센이 디자인한 삭세 체어 60주년 기념 화보를 촬영 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도 집을 지으면 우리나라 상량식과 비슷한 라이세길레라는 행사를 해요. 이때 음식 대접을 소홀히 하면 인부들이 지붕 아래 돌멩이를 넣은 빈 깡통을 달아 밤새 시끄럽게 한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리셉션 홀 오프닝 행사를 공통의 문화 코드인 ‘상량식’으로 잡고 주요 인사는 물론 공사 인부들, 동네 이웃들까지 초대했습니다. 바이라센의 홍보 담당자가 참석해 한국 국기 옆에 덴마크 국기를 게양했고요. 손님들에게 한국의 상량식에 대해 설명하니 처음 접하는 한국 음식도 흥미로워하고 맛있게 즐기더라고요. 이처럼 한국과 한국인이 다정다감하고 친근하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면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운 덴마크 사람들,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중요합니다.”


1 마영삼 대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도적 지원을 위해 한국에 파견된 덴마크의 유틀란디아호를 기념하는 전시관을 마련했다. 토르베할레르네에서 열리는 김치 축제를 준비하며 대사관 행정원들과 회의 중. 2 주덴마크 한국 대사관 1층에 자리한 유틀란디아 기념관. 강연과 토론회를 할 수 있는 오픈 앰버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흥미를 따라 폭넓게 관찰하라
공공 외교에 임하는 마 대사의 또 하나 무기는 ‘탁구’입니다. 그는 유별난 탁구 사랑으로 2006년 국내 심판 자격증, 2012년 국제 심판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리고 덴마크 부임 직후 코펜하겐 탁구 클럽에 가입했지요.

“해외 근무를 나가면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반경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덴마크는 겨울이 길잖아요. 10월에 해가 짧아져서 12월은 오후 3시 반이면 어두워지죠. 처음 겨울을 맞았을 때는 해가 지고 자기 전까지 여덟 시간 동안 뭘 해야 할 지 몰라 아주 힘들었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겨울을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하던 차, 동네 체육관 앞을 지나는데 주차장에 차가 가득해요. 배구, 농구, 탁구, 핸드볼, 수영, 피트니스까지 실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체육관이더라고요. 이거다 싶어 바로 탁구 클럽에 가입했지요.” 그는 매주 2회씩 클럽 소속 시민들과 시합을 하고 심판을 봐줬다고 합니다. 외교관 탁구 심판이 있다는 소문은 체육협회에까지 퍼져 지금은 덴마크 국가 대항 경기의 심판을 맡기도 합니다. 비록 경기에 참여할 때는 휴가를 반납해야 하지만, 마 대사의 이런 취미야말로 주재국의 특수성이 잘 맞아떨어지는 공공 외교의 좋은 예가 아닐까요.

“덴마크에서는 체육 시설을 이용하는 데 큰돈이 들지 않아요. 하루에 두 시간씩,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지요. 운동 시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라 믿으니까요. 이런 복지시설은 정책의 효율성을 넘어 개인의 행복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생활수준과 소득이 높아질수록 여가 활동이 중요하고, 일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개인 생활에서 얻는 즐거움이 균형을 이루려면 ‘취미 생활’은 필수니까요.”

덴마크 사람들은 세 명만 모이면 단체를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실제 각 마을마다 독서 클럽, 음악 연주 클럽 등 소위 말하는 동아리가 무수히 많습니다. 열 명 이상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조해주는 것도 그들의 단체 만들기에 한몫합니다. 그리고 이런 동아리는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전하는 토론 문화를 형성하게 했지요. 취미 생활을 공유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견을 받아들이는, 아주 보통의 생활을 통한 민주주의의 실천! 마 대사가 덴마크에서 대중과 접촉하며 느끼고, 또 한국에도 전하고 싶은 가장 일상의 메시지입니다.


3 공식적 외교 활동이 이뤄지는 대사관저의 다이닝 룸. 모임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대사 부인의 요리 솜씨가 여지없이 발휘된다. 불고기, 잡채, 미역국, 구절판 등 한식을 준비하고 음식은 한식기와 양식기를 적절히 섞어 담아낸다. 4 창살문으로 한옥 느낌을 연출한 대사관저의 응접 공간. 원목 소파에 컬러풀한 누비 방석으로 포인트를 줬다. 
모든 것은 뿌리에서 시작한다
마 대사는 주덴마크 한국 대사관 1층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덴마크와 한국을 잇는 코드는 ‘유틀란디아호’ 입니다. 유틀란디아Jutlandia호는 덴마크가 한국전쟁에 파견한 병원선으로, 당시 군사적 지원이 아닌 인도적 지원, 즉 병원선을 한국에 파견한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덴마크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유틀란디아호 의료진의 주요 임무는 기항지인 부산항과 인천항에서 전상 장병을 치료하는 것이었지만 치료가 필요한 민간인, 거리를 방황하는 전쟁 고아까지 돌보는 인도적 봉사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병원선의 의료진은 평균 연령 40세, 그만큼 경험 많고 원숙한 전문인으로 구성했으며 엑스선 촬영실, 치과 시설까지 갖추었지요. 또한 전쟁이 끝나고 병원선의 의료 기자재를 한국에 기증하고 스웨덴, 노르웨이와 메디컬 센터(현 국립의료원)를 설립해 의료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덴마크로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달아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의 장례식에 참석했어요. 참전 용사 모두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의 노고와 용기를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참전 용사 가족 한 분 한 분에게 연락해 유틀란 디아호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을 기증받았죠. 덴마크 적십자사 창고도 뒤졌습니다. 의료진의 유니폼부터 차트, 적십자사 마크, 사진들…. 6백30여 가지의 다양한 기록이 수집됐고, 모두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대사관에 전시관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참전 용사와 그 후손들이 와서 기뻐하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합니다.”

대사관에 한국 예술을 알리는 미술관도 만들었습니다. K갤러리를 꾸미는 데는 한국인 입양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덴마크에는 한국인 입양인이 약 9천여 명 정도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입양인이 많다 네요. 여섯 명의 코펜하겐 시장 중 한 명도 한국인 입양인이고,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김치 축제 역시 김치를 DNA로 기억하고 있던 한국인 입양인들이 기획한 행사라고 하니까요. 마침 대사관 취재 중 토르베할레르네에서 열리는 김치 축제를 다녀왔습니다. 주덴마크 한국 대사관을 비롯해 재외동포 재단, 코트라 등 여러 기관에서 후원하는 이 행사는 현지인에게 한식과 한식 문화를 소개하는 장입니다. 김치와 된장은 물론 청국장까지 맛보는 외국인들, 호떡 가판대에는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가족 단위로김치를 담그는 체험 행사 역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한쪽에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퀴즈 쇼 ‘퀴즈온코리아’가 렸는데,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한국어 문제를 잘 맞히는 덴마크 현지인들을 보니 외교가 더 이상 정부만의 업이 아니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 모두 외교관이 되어 외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대’가 왔음을 느꼈달까요.


1 대사관저 1층 응접 공간. 서양식 가구와 반닫이, 사방탁자 등 고가구가 조화를 이룬다. 2 현관 앞에는 꽃 화분이 화사하게 장식된 온실이 자리한다. 3 숲과 샬로테룬 궁을 지나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가장 가까이에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덴마크에 사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4 꽃살문 파티션과 조명등 등 한국적 마감이 돋보인다. 
이으면 열릴 것이다
우리나라 대사관저가 다른 나라 공관보다 멋지다면, 국민으로서 기꺼이 자긍심을 지녀야 하는 일입니다. 코펜하겐 외곽 샬로테룬 마을에 자리한 한국 대사관저는 이야기가 있는 ‘벽’ 덕분에 덴마크에 체류하는 외교 인사들이 가장 초대받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모겐스 라센의 유산을 발견하고 상량식을 하고, 화보 촬영을 위해 기꺼이 관저를 내주는 등 여기저기 소문을 낸 데는 분명 명민한 계산이 있었겠지요.

박은경 대사 부인은 관저 역시 공공 외교를 펼치는 자신의 사업장(작업 공간)이 라 설명합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요리 솜씨를 발휘하는데, 한식 중에서도 구절판이 아주 인기입니다. “구절판을 내면 동양적 선의 아름다움, 재료의 조화 등 을 극찬합니다. 유럽 강국에 비해 우리 관저는 관심의 대상에서 빗겨나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초대하면 더 잘 오십니다.(웃음) 그리고 들여다 봐요.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역시 고가구와 창호 같은 한국적 요소예요. 공간, 가구 모두 정부 소유지만 제 나름의 해석을 더할 때도 있습니다. 소파가 약간 심심한 듯해 전통 원단으로 만든 방석으로 컬러 포인트를 줬고요, 한식 창호 일부를 떼어 공간 곳곳에 세워두는 식이지요.”

5 마 대사의 축사로 흥겨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퀴즈온코리아 행사. 6 김치 담그기도 인기. 7 마 대사의 집무실. 스탠딩 책상을 사용한다.
부인은 공공 외교에 있어 관저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 즉 당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을 예로 듭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올렌카는 자신의 영혼과 진실한 마음을 누구에게든 바쳐야 하는 인물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는 한시도 살아가지 못하지요. 극장주 쿠킨, 목재상 푸스토발로프, 수의사 스미르닌까지 사랑으로, 동정심으로, 모성애로 감쌉니다. 외교관과 결혼해서 세상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는 대사 부인 역시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와 사랑에 빠져야 하는 ‘귀여운 여인’입니다. 팔레스타인에 근무하다 이스라엘로 발령받는 등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부정적 조건만 생각하지 말고, 좋은 것을 보려 노력하자고 스스로 최면을 겁니다. 직업 윤리이자 의무 같은 것이지요.

“이곳 사람들의 집에 가면 로얄코펜하겐 그릇이 꼭 있지요. 잔 하나를 통해서도 디자인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그 잔에 담긴 삶의 스토리를 풀어놓습니다. 또 건축가들이 사소한 소품까지 만듭니다. 모겐스 라센이 건축만 한 게 아니라 의자를 만들고, 촛대를 만들고, 카이 보에센이 만든 목각 인형을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 수 있으니까요. 모겐스 라센의 벽이 일반 집에서도 떡 나타나고, 또 그것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매우 자연스러워요. 집 안 곳곳의 물건만으로도 건축 미학을 경험하는 문화, 퍼블릭 프로모션이 되는 가까운 건축가, 대중의 마음을 읽고 스킨십하는 외교. 어찌 보면 모두 같은 맥락 아닐까요?”

마 대사는 대사관에 유틀란디아 기념관과 K갤러리를 오픈하며 한 달에 한 번 전시 관람과 특강, 토론 등을 경험하는 ‘오픈 앰버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유틀란디아 기념관 개관식에는 대사관 바로 옆 고등학교의 합창단이 와서 우리나라 애국가를 한국말로 함께 불렀습니다. 포화 속에서 인술을 베풀었던 그들처럼 한번 애국가를 부른 학생들은 아마도 한국을 잊지 못하겠지요.

마 대사의 깜짝 이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친 한국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과 승부 던지기 끝에 아쉽게 패함)의 실제 인물인 덴마크와 한국의 핸드볼 선수들을 찾아 영상 통화를 연결하고 유틀란디아호에서 치료를 받은 한국인 김주환 씨를 소재로 한 영화 제작까지! 흔적과 재생, 기억과 스토리… 이미 갖고 있는 콘텐츠를 잘 꿰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을 전할 수 있으니 여전히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요. <행복이가득한집> 역시 한국의, 한국인의 문화를 소개하고 가가호호의 스토리를 꿰는 역할을 하는 만큼 이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