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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평온하기

공황 발작이 올 때마다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되었는지 억울하고 분하고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무던히도 애쓰고 무언가를 놓지 않고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 집 앞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전히 가슴은 이상했습니다. 문득 그때 제 자신에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맘대로 해봐. 죽든지 말든지,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니,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그러고는 벤치에 누워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습니다. 이겨내고 극복하기 위해 애쓴 것은 없는데, 갑자기 제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습니다. 내 주변의 상황이나 내 안의 걱정들, 지난날 내 마음을 할퀴고 간 사건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왜 나는 이렇게 평온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진 마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것이 제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너무나 깊이 깨달았습니다.

가끔 요즘도 생각합니다.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걸까? 많은 기억 속에서도 여지없이 그날 그 벤치에서 느낀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생각납니다. 제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온 날도 있었고, 부모님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떠난 여름휴가에서 밤늦도록 카드놀이를 한 기억, 저희 집 반려견이 아침이면 일어나 제 곁에서 저를 깨우고 애교를 부리는 기억도 모두 저를 행복하게 해주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 벤치에서 느낀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는 까닭은 아마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무기력한 상황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컸기때문 아닐까요. 무기력하다는 것은, 당연히 하던 모든 것을 당연하게 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쉬어져야 할 호흡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늘 하던 운전을 못 하고, 엘리베이터나 터널에 머물면 괴롭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사람들 속에서 나만 갑자기 멈추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강혜경, ‘마음 걸기, 하나 되기’, 캔버스에 혼합 재료, 38×45.5cm, 2013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깊이 그리고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과연 내가 좇고 있는 그 많은 것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걸까?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아이도 큰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 마음 어디에 걸림돌이 버티고 있는 걸까?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어느 기억을 여전히 붙잡고 있으면서 문득 문득 우울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던 제 마음 상태에 있었다는 겁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집착하고,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취하려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큰 행복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착은 다릅니다. 우리가 손에 무언가를 넣으려고 할수록 평화로운 삶과는 멀어지며, 우리 자신을 또 다른 집착으로 몰아넣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 마음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갑니다. 지난번 강연료는 왜 아직 입금되지 않았는지, 밀린 일을 제쳐두고 아들의 담임선생님과 상담한 내용을 생각하면 걱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저는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커피,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제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작게 들리는 어떤 음악 소리도 있지만, 그저 그뿐입니다. 저는 평온이라는 것은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언제라도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내 안의 평온이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좀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가 있습니다.






글 박재연 |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