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개와 함께하다 보면 누구나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곤 합니다. 하루 종일 멀쩡하던 개가 한밤중에 갑자기 아프거나, 무엇이든 집어삼키던 개가 어느 날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 내 옆의 작은 생명체가 우리 삶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몇 년 전 병에 걸린 반려견 건대가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을 때, 제가 느낀 당혹감은 아주 컸습니다. 제가 수의사이기에 반려견의 건강관리에 소홀했다는 죄책감이 더해진 탓이었겠죠. 하지만 개가 거의 무지개다리를 건널 뻔했던 그 순간조차, 오랫동안 저를 힘들게 한 건대의 어떤 행위에 비하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건대는 마운팅 행위(mounting behavior)의 달인이었습니다. 두 살쯤 처음 시작한 건대의 올라타는 행동은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일어났죠. 다른 개나 동물에 올라타는 건 당연하고, 인형이나 소파의 다리도 예외가 될 순 없었습니다. 사람의 팔이나 다리를 향해 돌진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나간 산책길에서 처음 본 여자분의 다리에 헉헉대며 마운팅을 할 때 그걸 지켜보는 제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때마다 큰소리로 “안 돼!”라고 소리치고 혼도 냈지만 효과는 잠시뿐. 금세 다른 개의 위에 올라타는 건대를 보며 좌절해야 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개의 마운팅은 수캐가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대상에게 하는 성적 행위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서열만 확실하게 잡아주면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건대가 암컷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마운팅을 할 때마다 충분히 강하게 혼내는데도 틈만 나면 사람 다리를 부여잡고 어쩔 줄 모르는 건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더 심하게 혼내야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개의 행동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저는 건대의 마운팅과 씨름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 개의 마운팅은 성적 행위가 아니며, 서열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성별을 떠나 모든 개가 마운팅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서열과 관련한 행위라면 건대는 헉헉대며 거실 소파 다리를 향해 이렇게 다그치고 있었다는 말일 겁니다. “가만있어! 넌 나보다 서열이 낮다는 걸 항상 잊지 마!”
많은 경우 마운팅은 개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소모할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며, 때로는 단순한 놀이의 일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작은 인형 위로 마운팅을 하는 반려견을 위해 더 크고 튼튼한 인형을 선물해주는 영화의 한 장면은 개의 마운팅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임을 암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개의 마운팅 빈도를 줄이고 싶은 반려인에게 저는 지금보다 산책 시간을 충분히 늘려줄 것을 권합니다. 매일 충분한 에너지를 소모한 개는 마운팅뿐 아니라 헛짖음, 공격성 같은 여러 행동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인데, 이것은 개의 과잉 에너지가 그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죠. 만약 자주 산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집에서 개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놀이를 함께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웬만한 장난감에 시큰둥한 아이라면 간식을 이용해 관심을 끌어보세요. 손수건이나 종이로 간식을 감싼뒤 여기저기 그것을 숨겨놓고 스스로 찾아 먹게 하는 노즈워크 nose work는 산책이 부족한 반려견을 위해 수의사들이 추천하는 놀이 중 하나입니다.
마운팅의 진실을 안 후, 가장 후회한 건 마운팅하는 건대를 무턱대고 혼내기만 한 과거의 행동이었습니다. 어떤 경우 개의 마운팅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제가 서열을 잡겠다며 길길이 날뛴 덕에 건대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마운팅으로 풀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개의 마운팅 횟수를 줄이고 싶다면 절대로 야단치지 마세요.
오늘도 마운팅에 집착하는 개는 어쩌면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뛰어놀아야 하는 활동적인 개예요. 누구보다 호기심도 많고 장난치기도 좋아한답니다. 바쁘더라도 조금만 더 저와 함께해주세요. 이런 제게 소리치고 화내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따를 거예요. 언젠간 당신도 제 맘을 이해해주겠죠?”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오영욱 건축가는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작가로, 오다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베들링턴 테리어 암컷을 키우는 그는 초보 개 아범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 수의사와 초보 개 아범의 동물 행동 심리 이야기 개의 마운팅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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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링턴 테리어라는 동물 가족을 입양한 건축가와 동물행동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열다섯 살 몰티즈와 함께 사는 수의사의 그림과 글을 연재해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탐구합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