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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화가 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계속 선생님들한테 화를 냈어요. 딱히 이유도 없이 트집을 잡으면서요.”

어떤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화’는 세밀한 감정을 내포한 상태입니다. 화는 상대를 향해 나아가면서 공격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특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화를 내면 낼수록 다음번에는 더 심하게 화를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에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하나는,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이 화를 내면 그 기운이 곧 주변에 쉽게 퍼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는 유쾌한 감정보다 더 빠르게 전파되고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를 아예 억누르려 하거나 피하고 똑바로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화를 억누르거나 피하려고 하다 보면 엉뚱한 곳에 그 화가 퍼부어지면서 비극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향해 폭력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도대체 화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요?

홍빛나, ‘달그네, 나의 고뇌’, 캔버스에 아크릴, 72.7×90.9cm, 2012
한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왜 소리를 질렀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아이는 다른 말을 하며 말을 빙빙 돌리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와서, ‘집에는 네가 같이 잘 공간이 부족하고 함께 지내기 힘들어서’ 보육원에 더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집에 잠깐 갔는데, 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누울 곳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둘러보았어요. 엄마는 분명히 제가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저를 보육원에 보냈다고 했는데, 제가 볼 땐 내가 누울 곳이 충분히 있었어요. 집 안에 제가 잘 곳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랬구나. 그게 너무 슬프고, 엄마에게 너무나 서운했겠구나.” “네….”

겉으로 보기에 아이는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아이의 진실한 속마음은 결국 깊은 슬픔과 서운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었구나.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같이 지내면서 너한테 부모님을 도울 힘이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아주기를 바란 거지? 그런데 그런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서 네가 지금 얼마나 서운하고 슬픈지 이해받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해.”

오늘 하루 우리의 자녀 혹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대화 상대, 또는 우리 자신이 화가 나 있다면 한번 그 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운합니까, 억울합니까, 불안하고 두렵습니까, 슬픕니까, 좌절했습니까? 왜 화가 났나요?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인가요? 혹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이해받고 싶었나요? 누군가 위로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나요? 정당한 대우와 존중을 받고 싶었나요?

이처럼 ‘화’라고 뭉뚱그려지는 감정 상태를 들여다봄으로써 평소 미처 알지 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상대를 향한 공격을 거두고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그래서 그렇게 화를 내려고 했구나’ ‘우리 아이가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있었구나’, 이렇게 말이지요.

이렇게 천천히 생각하고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자기감정에 책임을 지면서도 상대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명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요청하는 데 힘을 실어줍니다. 화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이기도 합니다. 만일 도움이 필요해서 화가 나는 것이라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상대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만일 아이에게 옳은 것을 똑바로 가르쳐주고 싶은 거라면, 우리 아이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아이에게 쉽고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겁니다. 화는 현재 우리 마음에 중요한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우리 자신과 상대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방식인지 확인하고 요청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화가 났다면, 혹 자신이 화가 났다면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귀 기울여보세요. 우리가 ‘화’라는 감정의 표현을 통해 타인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진심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가 있습니다. 화가 난 게 아니었습니다




#대화의 기술 #박재연 #달그네 #나의 고뇌
글 박재연 |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