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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 엄마

“엄마, 내가 오늘 아침에 분명히 이 옷 세탁소에 갖다 주라고 부탁했잖아! 금방 입어야 하는 옷인데….” 집에 들어와보니 오전에 소파에 두고 나간 블라우스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옷을 보자마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에게 하루의 피곤을 쏟아붓고 말았습니다. 아무 까닭도 모르는 엄마는 “깜빡했다. 내일 꼭 맡길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에 들어와 신경질적으로 화장을 지우고 침대에 누우니 알 수 없는 죄책감이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느끼고 싶지 않은 그 감정을 모른 척이라도 하듯 눈을 감고 옆으로 돌아 누웠습니다.

엄마라는 역할에 부여된 많은 일상의 조각들은 한 여성의 마음에 아프게 달라붙어서 군데군데 상처를 내고야 맙니다. 엄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대상임이 분명한데, 왜 우리는 이토록 무덤덤하게 때론 폭력적으로 차갑게 대하는 것일까요?

“엄마가 이 정도도 못 해줘?” “엄마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엄마가 이래?” “엄마가 해준 게 뭔데?”

조장은, ‘엄마의 엄마 딸의 딸’, 장지에 채색, 72.5×72.5cm, 2011
‘엄마’라는 단어가 지닌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붙여놓고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시합니다. ‘엄마라면 적어도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일상에서 ‘감사’를 가져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어떤 이들은 고백합니다. “엄마에게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잘 안 한 것이 제일 죄송해요.” “우리 엄마는 평생 주기만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기만 해도 좋겠어요.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하는 마음만 남았습니다.” 막상 엄마라는 ‘당연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분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세상 어느 존재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안아주고 품어주고 수용해줄까요. 이 세상 어느 존재가 언제라도 가면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쉴 수 있도록 챙겨줄까요. 이 세상 그 누가 아픈 나를 위해 밤새우고 곁에서 돌봐줄까요. 엄마라는 존재는 ‘신이 자신을 대신해 세상에 내려보낸 존재’라고 할 만큼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그 엄마에게 많은 역할을 짐 지우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주는 헌신과 사랑은 당연하고, 어쩌다 도저히 힘들어서 우리가 그분에게 기대한 어떤 것을 해주지 못할 때 우리는 무턱대고 화를 내고 짜증부터 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너무 중요해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엄마라는 존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는 잘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엄마잖아’ ‘엄마니까’라는 생각으로 꽉 차서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는 많은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속박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엄마라는 역할을 벗어던지고 그분을 하나의 존재, 하나의 여성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을 진실로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 우리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한명의 여자였구나’를 늘 상기해보세요. 우리를 위해 엄마가 해주시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가까운 사람, 가족 그리고 엄마에 대해 늘 상냥하고 민감한 마음을 유지할 때 우리는 그들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가 있습니다.



글 박재연 |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