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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원하는 것을 말하는 힘

언젠가 어린 아들이 자신의 의견을 꿋꿋하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야단을 치려고 회초리를 들고 서 있는 제게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그 회초리로 저를 때리시려는 거죠?” 저는 강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그래! 거짓말하지 말랬는데 거짓말했으니까, 너 회초리 다섯 대 맞을 거야. 엉덩이 대.” 아들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벌을 주려는 거죠?” “그럼 당연하지. 그래야 다시는 네가 거짓말을 안 하지. 어서 엉덩이 대.” 그때 아들이 또다시 말했습니다. “엄마, 그렇다면 저는 회초리가 무섭지 않아요. 제가 정말 무서워하는 벌을 주세요. 그래야 다시는 안 하니까. 저는 매 맞는 것보다 손들고 서 있는 게 더 무서워요. 손들고 서 있을게요.” 저는 아들의 대답을 듣고 손을 들라고 말하고는, 웃음이 터질 뻔해서 얼른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당시엔 매 맞는 게 무서워서 그렇게 머리를 써 요령을 부리는 여섯 살 아들이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제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른 아들의 모습 때문이었지요. ‘무엇이 그 두려운 상황에서 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말할 자신감을 주었을까? 나라면 아무 말 못 하고 매를 맞았을 텐데.’

정철, ‘당신을 사랑합니다’, 캔버스에 아크릴, 53×72.7cm, 2016 
저는 어린 시절 어디에서나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난 아무거나 좋아요.” 하지만 정말로 아무것이나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원하는 걸 말할 때 여간 불편해한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원하는 것을 말하는 행위는 늘 두려운 도전이었습니다. 스스로 위축되고, 남에게 미안하고, 그냥 왠지 안될 것만 같아서 그저 대세에 따르든가, 아니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전체 분위기의 흐름을 탔습니다. 언젠가 단체 생활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할 때 자신 있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꼴 보기 싫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시기하며 헐뜯던 제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 안에는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가 그 용기를 채워주기를 무척이나 바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한 말처럼, 용기라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빌려 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용기는 오로지 자기 자신 안에서만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대화 교육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살면서 왜 남에게 요청하기 힘들었나요?” 사람들은 대체로 미안해서,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또는 구차스러워서, 상대방의 거절에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원하는 것을 선뜻 요청하지 못한다는 대답을 합니다. 저도 그랬듯 많은 사람이 이렇게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 접어놓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이유들로 남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요청하지 못하면 우리는 좀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점점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무조건 맞추거나 따라가기만 할 때,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자기 희생적인 삶은 결국 그 삶의 주인으로 하여금 생동감을 잃게 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면 타인의 삶에도 관심이 없어지면서 그렇게 우리는 의무감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삶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을 매 순간 인식해야만 상대도 우리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바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요청해보세요. 만약 거절당한다 해도 또 다른 이에게 요청하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고,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하면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가 있습니다.



글 박재연 |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