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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의 용광로, 터키를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법 미마르 시난의 모스크를 찾아
실크로드의 시발점. 비잔틴 문명과 오스만 문명이 맞부딪치는 최전선. 동서양, 기독교와 이슬람, 상반되는 두 문화가 깊이를 부여하는 도시, 터키 이스탄불이다. 6세기 중반에 지어진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톱카프 궁전(15세기 중반), 파란 이즈니크타일로 장식한 화려한 블루 모스크(17세기 초)가 지금까지 필수 관광 코스였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맥락 있는 여행을 제안한다. 오스만제국의 황금기에 살았던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평생에 걸쳐 완성한 완벽한 돔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터키 에디르네에 있는 미마르 시난의 걸작, 셀리미예 모스크. 
2년 전 정교하고 화려한 이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며, 다음엔 이슬람문화의 심장 터키를 여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오스만의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미마르 시난의 모스크를 따라가는 건축 기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테러의 여파로 ‘여행 자제’ 지역의 범주에 속해 있었지만 ‘인명은 재천’이라는 믿음으로 위대한 건축물을 만나러 떠났고, 그 결과 우리 일행은 백화점 연말 세일 같은 관광지의 번잡함 대신 편안하고 신속하고 차분하게 미마르 시난의 일생에 집중할 수 있었다.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1299년 터키 내륙 지역인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오스만 왕조가 열린 이후 약 1백50년이 지난 1453년 메흐메드 2세는 동로마제국(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이스탄불로 개명하며 번성을 주도했다. 오스만제국의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또 한 명의 군주는 제10대 황제인 술레이만 대제(Suleyman the Magnificent・1494〜1566, 재위 1520 〜1566)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오스만은 세계 최강의 세력을 구축했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역시 이 시기에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 이 황금기를 함께한 건축가가 바로 미마르 시난이다.

미마르 시난Mimar Sinan(1489?~1588). 터키 건축사뿐 아니라 세계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건축가로, 이름 앞에 붙은 미마르는 건축가를 의미한다. 술레이만 1세, 셀림 2세, 무라트 3세로 이어지는 오스만제국 전성기에 활약했고, 도시마다 난립했던 건축 스타일을 하나로 통합한 인물. 큰 돔과 첨탑이 특색인 오스만 투르크 건축양식을 확립한 인물이 바로 시난이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시난은 예니체리(이교도 젊은이로 구성한 군대)에 징집된 뒤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군대 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마침내 쉰 살을 앞두고 최고 건축가로 임명받아 생을 다할 때까지 노력과 열정을 바쳤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미흐리마흐 술탄 모스크
이렇듯 철저하고 모든 것을 가졌을 듯한 위대한 건축가였지만 안타깝게도 사랑만큼은 자기 뜻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스탄불의 옛 성곽 옆 에디르네 관문 안에 있는 미흐리마흐 술탄 모스크 Mihrimah Sultan Mosque는 술레이만 대제의 딸 미흐리마흐 공주를 위해 미마르 시난이 지은 모스크다. 시난과 미흐리마흐 공주는 서로 사랑했지만 신분 차이 등 여러 가지 장벽으로 인해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시난은 전사 뤼스템 파샤와 결혼한 공주를 위해 두 개의 모스크를 지었는데, 첫 번째는 술레이만 대제의 명령으로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 지구에, 다른 하나는 이곳에! 이미 아흔 살이 넘은 시난은 공주가 자주 올라가는 언덕에서 잘 보이는 곳이자 첫 번째 모스크와 일직선상의 자리에 공주의 이름을 딴 또 다른 모스크를 지어 평생 간직해온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허락된 첨탑은 단 하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자 미흐리마흐 공주의 생일에 두 모스크의 첨탑 꼭대기에는 각각 태양과 달이 걸린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3층 높이의 큰 돔을 사방의 거대한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데, 내부에 들어서면 1백61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과한 햇빛이 하얀 벽과 붉은 카펫에 부딪혀 부드럽게 반짝이는 모습에 매료당하고 만다. 이토록 아름답고 낭만적인 모스크인데, 왠지 애잔하고 처연한 생각이 드는 건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1 이스탄불 향신료 시장 뒷골목에 자리 잡은 뤼스템 파샤 모스크. 이즈니크 타일로 내부 벽면을 마감했다. 2 이즈니크 타일의 블루는 평화와 인내를, 밝은 터키시 블루는 자연을, 레드는 튤립의 열정을 상징한다. 3 미흐리마흐 술탄 모스크 야외 한가운데 자리 잡은 원형의 세정 시설, 사디르반. 4 이집션 바자르에서는 이스탄불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만날 수 있다. 컬러감이 눈을 사로잡는 꽃차와 향신료. 5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학교, 공중목욕탕, 식당, 빈민 구호처 등으로 이루어진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퀼리예다.

장군을 위한 뤼스템 파샤 모스크
그런가 하면 미마르 시난은 미흐리마흐 공주의 남편인 뤼스템 파샤(파샤는 터키어로 장군이라는 뜻이며, 그는 발칸반도 출신)를 위해서도 모스크를 설계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을 위해 재능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사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스탄불의 노점들이 모여 있는 향신료 시장 뒷골목에 자리 잡은 뤼스템 파샤 모스크 Rustem Pasha Mosque는 이슬람 사원 하면 떠오르는 하얀색 도자 위에 블루, 터키시 블루, 레드로 페인팅한 이즈니크 타일 장식이 가장 다채롭게 표현된 곳이다. 모스크 자체는 아담한 편이지만 내벽을 둘러싼 핸드페인팅의 디테일이 섬세하다 못해 집요하다. 타일 위에 터키시 블루와 레드로 패턴화한 나뭇잎과 튤립의 형상은 벽마다 다 다르게 표현돼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드는데, 화려하면서도 묵직하고 파워풀하다. 파샤를 위해 설치한 나무로 된 스페셜 로지는 장군의 권력을 상징. 현재도 관광지라기 보다는 현지인들이 자주 찾아 기도하는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모스크다.

1 외부에서 이스탄불로 진입하는 언덕에 지어진 미흐리마흐 술탄 모스크. 미마르 시난이 사랑했던 미흐리마흐 공주를 위해 아흔 살이 넘어 지은 모스크로, 그 어느 모스크보다 분위기가 로맨틱하다. 1백61개의 창을 낼 수 있었던 건 시난이 실현한 안정적 구조감 때문이다. 2, 3 이스탄불 아티크 발리데 누르바루 술탄 퀼리예에는 모스크 내부를 장식하는 캘리그래피와 페인팅을 교육하는 시설이 있다. ‘알라는 오직 한 분이다’ 같은 꾸란 구절이나 칼리프의 이름이 씌어 있다.

시난의 진정한 첫 작품,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술레이만과 그의 아들 셀림 2세는 동로마제국의 상징인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능가하는 건축물로 오스만제국의 위상을 떨치려고 했다. 술레이마니예 모스크Suleymaniye Mosque는 이스탄 불 골든혼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모스크로, 오스만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술레이만을 위해 시난이 1557년에 완공했다. 모서리에 서 있는 네 개의 첨탑은 두 개의 높이가 다른 두 개보다 낮은데 이는 커다란 돔과 함께 피라미드 실루엣을 이루어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을 환상적으로 변모시킨다. 네 개의 첨탑은 술레이만 대제가 이스탄불 정복 후 네 번째 군주임을, 첨탑에 있는 열 개의 발코니는 오스만제국의 열 번째 군주임을 의미한다. 모스크는 넓은 정원과 네 개의 메드레세 medrese(학교)와 의과대학, 케르반사라이kervansaray, 하맘 hamam(공중목욕탕), 식당, 빈민 구호처 등으로 이루어진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퀼리예kulliye(복합 시설)다.

퀼리예의 돌담에서는 이집션 바자르와 뉴 모스크, 갈라타 다리와 보스포루스 해협 등 이스탄불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부로 들어서면 커다란 돔과 원형 철 구조물에 낮게 걸린 조명등, 붉은 카펫의 조화가 웅장하다. 지름 27.5m, 높이 53m 의 중앙 돔을 네 개의 기둥과 두 개의 하프 돔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 미흐라프mihrap(메카 방향을 표시한 벽감壁龕), 흰 대리석으로 된 설교단, 술탄을 위한 스페셜 로지에 2백49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심미적 아름다움 외에도 구조적 치밀함이 뛰어나다. 동쪽으로 난 창을 통해 보스포루스 해협으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내부 공기를 순환시킬 뿐 아니라 물담배로 공기의 흐름을 파악해서 오일 램프의 그을음이 외부로 빠져나가도록 설계했다니, 그저 감탄할 뿐이다. 철 구조물에 달린 수백 개의 오일 램프에는 타원형의 타조알이 끼워져 있는데, 알에서 나는 향기가 거미 같은 곤충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이처럼 시난은 건축적 완성도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과학적 지식까지 동원해 모스크를 완성했고, 예순살이 넘어 지은 이 모스크를 자신의 ‘진정한 첫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스만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스의 주인공인 술레이만과 그의 부인 록셀라나의 무덤이 이곳 정원에 있으며, 그 옆 작은 모서리 땅에 시난의 무덤이 소박하게 자리한다.

4 이스탄불 파티흐 지구에 위치한 세흐자데 모스크. 술레이만 1세가 21세에 죽은 큰아들 세흐자데 메흐메트를 기리기 위해 지은 모스크. 시난이 견습생 시절인 1548년에 완공되었다. 흰색과 연한 붉은색의 대리석을 주로 사용했다. 5 미흐리마흐 술탄 모스크의 외관. 돔 주변을 포함해 1백61개의 창과 단 하나의 첨탑으로 이루어졌다. 6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의 돌마바흐체 궁전. 7 터키의 국화가 튤립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늘 아래 하나 된 느낌, 셀리미예 모스크
시난의 건축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돔의 크기가 커지는 한편 내부 공간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이스탄불에서 서북쪽으로 240km 떨어진, 이스탄불 이전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에디르네에 위치한 셀리미예 모스크Selimiye Mosque. 술레이만 대제의 아들인 술탄셀림 2세의 명령으로 지어졌지만, 이 모스크는 무엇보다 미마르 시난의 모든 열정과 노하우를 쏟아 부어 가장 크고 가장 완벽한 돔을 구현한 최후의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미마르 시난이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은 건축물을 만나기 위해 부푼 기대감을 안고 달려왔다. 마침내 모스크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돔 아래, 동남쪽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99개의 창을 통해 사원 안을 은은히 감싸는 햇빛…. 장엄한 분위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다양한 색의 장식 타일을 이용해 화려한 모자이크로 꾸민 내부는 특히 벽감과 천장이 매우 아름답다.

모스크의 넓이는 1620m²이고, 지름 31.22m, 높이 43.28m인 돔의 무게는 2천 톤. 돔 아래 여덟 개의 기둥이 있는데 최대한 벽쪽으로 붙여 지어 실제로는 기둥이 없는 하나의 큰 홀처럼 보인다. 철저한 기하학적 설계를 통해 무거운 돔을 안정적으로 구축한 것이다. 비례와 균형을 갖춘 단 하나의 돔, 그 안에 있는 누구라도 차별 없이 감싸 안을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돔. 이 공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같은 하늘 아래 하나 된 느낌을 받는다. 시난이 이 건축물을 지으며 가장 꿈꾸었던 것,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건축가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아 파문을 일으킨다. 터키 바키프대 건축학과 수피 사치 교수는 “시난은 모든 오스만 건축의 표준을 만들었다. 특히 셀리미예만큼 완벽한 구球 형태의 거대한 돔을 올리는 것은 시난 이후의 제자들도 실패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그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설명했다. 셀리미예는 돔의 크기로 보면 1천 년 먼저 지어진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과 비슷하지만 높이는 9m가량 낮다. 그러나 구조적 안정감과 정교함에선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능가한다는 평가. 실제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여러 차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반면 셀리미예는 그 어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외부에는 발코니가 세 개씩 있는 높이 71m의 첨탑이 네 개 세워져 있고, 주변에 영묘, 병원, 학교, 도서관, 공중목욕탕, 상점 등으로 구성된 부속 건물이 있으며, 2011년에 터키의 열 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미마르 시난이 존경받는 중요한 이유는 위대한 건축가인 동시에 훌륭한 엔지니어였으며 병참 기획자였고, 도시 디자이너였으며 행정가였다는 점이다. 80여 개의 모스크를 포함해 그의 손을 거친 건축물이 4백 개에 이르는데, 모든 건설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서 제자들과 체계적으로 소통하고 조직적으로 건설 과정을 점검하고 감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규모다. 그 덕분에 시대적, 지리적 경계를 넘어 오스만제국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우리는 현재 남아 있는 시난의 건축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에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셀리미예 모스크를 보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한 생애에 이렇게 많은 건축물을 만든 건축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중략) 희망을 품고 미래로 한없이 질주하는 상태가 청춘이라면, 그의 인생은 노년에도 청춘이었다. 결국 시난은 아흔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에너지 넘치는 그의 생을 앞에 두고, 나도 시난처럼 언제 까지나 청춘으로 달릴 수 있기를 기도했다.”

1 미마르 시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셀리미예 모스크는 웅장함 자체다. 터키의 옛 수도 에디르네에 있다. 커다란 돔 아래 모두가 하나 되는 느낌을 받는다. 2 지름 31.22m, 높이 43.28m로 가장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갖춘 단 하나의 돔을 구현한 셀리미예 모스크. 3 다재다능한 재주를 지녔고, 신에 대한 신실함을 바탕으로 4백여 개의 건축물을 남긴 ‘오스만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미마르 시난. 그의 꿈을 실현한 에디르네 셀리미예 모스크를 배경으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4 모스크에서는 메카 방향을 향해 엎드려 절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볼 수 있다. 5 에디르네 공중목욕탕 하맘 내부로, 현재도 현지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6 이스탄불 골든혼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모스크 술레이마니예. 네 개의 첨탑과 큰 돔이 피라미드 형상을 이루며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을 아름답게 만든다.

 이슬람교가 익숙하지 않은 종교인 탓에 낯선 용어가 많다. 모스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용어들을 정리했다.
· 모스크mosque 이슬람어로 자미cami라고 하며, 기도하는 장소.
·퀼리예kulliye 모스크와 부속 건물로 이루어진 복합 단지. 학교, 숙소, 식당, 목욕탕, 빈민 구호처 등으로 구성한다.
·메드레세medrese 이슬람 교육을 위한 신학교.
·사디르반sadirvan 기도하기 전 손과 얼굴과 발을 씻는 세정 시설.
·이마레트imaret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식당.
·하맘hamam 공중목욕탕.
·케르반사라이kervansaray 대상들과 말, 낙타가 쉬어가던 숙소.
·미흐라프mihrap 마호메트가 태어난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벽감壁龕.
·민베르minber 이슬람 사제인 이맘이 설교를 하는 계단.
·미나레트minaret 하늘로 솟아 있는 첨탑. 마이크나 스피커 등이 없던 시절, 사람이 직접 올라가 큰 목소리로 기도 시간을 알렸다.

취재 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터키항공

#터키 #미마르 시난 #모스크 #이스탄불
글 구선숙 편집장 | 사진 한상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