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디자이너 에르완 부홀렉Erwan Bouroullec
내면의 감정을 건드리는 디자인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삼성전자 부스에서 만난 세리프 TV의 디자이너 에르완 부홀렉
재스퍼 모리슨의 양문형 냉장고,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TV에 이어 삼성이 또 한 번 가구 디자이너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인공은 전 세계가 사랑 하는 산업 디자이너 로낭&에르완 부홀렉 형제. ‘가구 닮은 가전’ ‘집 안과 물아 일체를 이루는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극찬 속에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리프 TV와 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에르완 부홀렉을 만났다.
축하한다. 첫 번째로 디자인한 가전제품의 성공도, 내한도 무척이나 반갑다. 기능보다는 디자인에 치우친 제품일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보니 커튼모드 UI, 스마트 TV 기능 등 매우 균형적이다. 나는 TV가 우리에게 좋은 동반자이길, 그리고 집 안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길 바란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TV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데, 실제로 지금까지의 TV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데다 수동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해결책으로 TV가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는 ‘언어’를 제공했다. 커튼모드는 끄고 켜는 기능만 장착했던 기존 TV와 달리 사용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TV를 컨트롤할 수 있는 기능이다. 전자 제품 특성상 로딩되거나, 보고 싶지 않은 광고가 나오거나, 갑작스럽게 옆 사람과 대화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 커튼모드를 이용하면 화면을 블러 처리하듯 가릴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등 레프런스가 있었을 텐데? 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습관을 관찰하기보다는 대상 자체에 집중해 그것에 진짜로 필요한 것, 개인적으로 딥 보이스deep voice라 표현하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디자인한다. TV를 위한 첫 번째 솔루션은 커튼모드 UI를 개발한 것, 그리고 두 번째 솔루션은 모바일 시대로 넘어간 요즘 시대와 관련한 것이다. 예전과 달리 모바일, 스마트폰, 작은 화면에 우리는 ‘종속’돼 있다. 스마트 TV를 통해 보다 큰 화면으로 ‘함께’ 즐길 수 있길 바랐다. 즐거움을 공유하는 방법 말이다.
세리프 TV도, 부홀렉 형제의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보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주변 환경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면서도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품고 있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시하는 미학이 있나? 편안함으로 시작해 미학이라는 단어로 질문이 끝났다. 이 두 가지는 요즘 내가 가장 몰두하는 부분이다. 유명한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면서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고 삶의 기쁨을 깨닫는 부분이 있다. 나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이란 이것을 이르는 말이다. 편안한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요소는 색감일 수도 있고 비율일 수도 있고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할 때에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맛을 확 돋우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내면에 숨어 있는 감정이 디자인으로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캐노피, 파티션과 같이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 가구가 많은 것 또한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하기 위함인가? 우리는 가구나 건축으로 편안함이라는 섬을 만들고자 한다. 몸에게 자유를 주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바일 역시 우리 몸에 휴식을 준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를 몸에서 분리시킨다. 뇌는 더 이상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전화를 받으면서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오랜 시간 서 있어도 피곤함을 덜 느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몸에게 자유를 준다. 정말 현 시대는 굉장히 흥미로운 시대다. 스마트폰처럼, 캐노피처럼 우리는 몸이 알아차리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곤 한다.
여러 톱 브랜드와 협업을 많이 한다. 때로는 그들을 설득하기도 해야 하는데, 본인이 고수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있나? 대개 디자인 문제로 시작된 갈등은 끝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분쟁을 일으키기보다는 그들을 설득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가 너무나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던져서 그 들이 거절할 수 없게 말이다.(웃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올해 주제는 ‘내 집, 내 가 바꾸기’, 즉 셀프 인테리어다. 셀프 인테리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임’이다. 우리의 삶은 늘 이동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목민의 라이프스타 일을 통해 디자인 해결책을 찾곤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쉽게 바꾸고, 자신의 삶에 꼭 맞게 맞춘다. 사실 세리프 TV도 벽걸이형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움직임’이라는 측면을 토대로 다리를 만들었다. 가구처럼 혼자서 있을 수도 있고 위에 얹을 수도 있으며 계속해서 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 이동성 등이야말로 셀프 인테리어의 시작 아닐까?
우리 제호가 <행복이가득한집>이다.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나에게 딸이 있다. 아이를 보면서 흥미로운 것은 ‘규칙을 모른다’는 것. 아이들은 야만인처럼 행동한다.(웃음) 물건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찾아내며 갖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얻고 만다. 침대에 눕고 싶을 때면 거실 한복판으로 침대를 가져와 자신만의 성을 만든다. 그 위에 좋아하는 장난감을 얹고 다른 물건도 추가하고…. 삶이 삶이 아니다. ‘너희는 모든 것이 가능하구나!’ 그러면서도 아이들처럼 행동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현실은 난장판이며 이러한 생각도 잠시, 20분만 지나면 짜증이 나지만!(웃음) 글 손지연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할 때, 제품 자체에 오롯이 집중한다. 제품이 원하는 것, 즉 딥 보이스를 경청해야 한다. 그러고선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맛’을 돋우게끔 할 것! 내면에 숨은 감정을 분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넬리로디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뱅 상 그레구아르Vincent Gregoire
크리에이티브한 삶의 비결
트렌드북 발간과 2017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발표를 위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찾은 뱅상 그레구아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읽어내는 일은 비단 마케팅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테리어, 리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정보의 양이 방대할수록 대중은 보다 정확한 큐레이션을 원한다. 다음 시즌을 이끌 디자인과 컬러 트렌드는 무엇인지, 사회 현상에 따라 어떤 유기적 관계를 맺는지, 그에 따라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넬리로디Nelly Rodi의 뱅상 그레구 아르는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분석해 ‘내일’을 준비하는 크리에이터다. 한국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북 발간을 위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기간에 맞춰 서울을 찾은 그에게 최근의 관심사를 물었다.
메종&오브제에서 발표하는 넬리로디사의 트렌드 리포트를 흥미롭게 지켜 보고 있다. 넬리로디사의 라이프스타일 파트 디렉터로 당신이 하는 일은? 파리의 에콜 니심 드 카몽도Ecole Nissim de Camondo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을 전공한 뒤 1991년에 넬리 여사에게 픽업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트렌드 를 분석하는 일을 맡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크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디자인 언어로 변환하고 다양한 인스퍼레이션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나뉜다. 패션, 뷰티, 식음료, 인테리어 분야에서 제품을 개발할 때 유용한 정보들이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리포팅한 후 트렌드 북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전시장을 둘러본 소감은? 한국적 재치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실용 제품, 자연에 가까운 오브제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브랜드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진행하는 체험 프로모션이 많았는데, 전문가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보다 남성 관람객이 많아진 것 역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올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주제는 ‘내 집, 내가 바꾸기’, 즉 셀프 인테리어다. 전시의 주제가 잘 읽혔나? 그렇다. 부스마다 관람객들이 열심히 사진 찍고 대부분 활기차 보였다. 공간에 자연을 들이는 것이 세계적 트렌드인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역시 아웃도어, 식물, 정원용품이 많았고 웰빙 트렌드에 맞춘 공기청정기, 마사지 체어 등도 눈에 띄었다.
리빙 트렌드 세미나에서 발표한 ‘2017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중, 안정적인 파스텔컬러가 유행할 거라 예상했는데 굉장히 강렬하고 도전적인 컬러를 제안해 의외였다. 왜 이런 컬러들이 유행하게 됐는지, 세계적 상황, 라이프 스타일과의 연결 고리가 있다면? 우울한 지금을 벗어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색감을 원하고 있다. 딥 그린, 와인, 퍼플 등의 강한 컬러와 골드를 매치한 볼드한 스타일이 고급스러운 스타일로 주목받을 것이다. 옛날에는 컬러감이 강한 것은 왠지 부담스럽고, 제품 판매와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많은 브랜드가 고유한 색을 이용해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사람들은 충분히 과감한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트렌드 전문가로서 한국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에도 관심이 있는지. 한국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한국은 이미 트렌드에 민감하고, 뷰티, 푸드, 디자인의 실험 대상이 되고 있는 국가다. 로레알 같은 브랜드에서도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략으로 한국의 레프런스를 활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소재에 집중하고 전통을 미니멀하게 풀어내는 젊은 디자이너의 작업에 호감이 간다. 지역적으로 특화된 한국 고유의 정체성, 독창성을 유지하며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9월에 파리에서 열릴 메종&오브제의 키워드를 살짝 귀띔한다면? 상반기에는 ‘와일드wild’로 감성을 건드렸다면 하반기에는 ‘하우스 오브 게임즈house of games’를 테마로 일상의 놀이 문화를 실질적 라이프스타일에 대입할 예정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살롱 문화가 소환된 것으로 게임의 사회적 맥락을 함께 조명한다. 체스, 바둑, 카드 게임, 칵테일과 카바레 문화 등이 인테리어에 접목되어 이그조틱하면서도 클래식한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프렌치 클래식, 프렌치 시크, 프렌치 모던까지… 사람들은 언제나 프렌치 스타일을 동경한다. 프렌치 스타일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양면성이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웃고 떠들다가도 독서 모임에 빠지지 않는다든지, 전시를 둘러보고 진지하게 토론한다. 값싼 원피스에 값비싼 블로치를 매치하거나 재단이 잘된 원피스에 플라스틱 클러치백을 매치하는 등의 패션 감각도 같은 맥락이다. 클래식하고 각 잡힌 소파에 폭신한 쿠션을 가득 두거나 고급스러운 크리스털 잔과 플라스틱 접시를 함께 내는 등 의외성은 늘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인공지능, 3D 프린터, 증강 현실 등 속도가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제품 디자인은 물론 인테리어, 리빙 분야 역시 늘 그다음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요즘, 우리는 과연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래’를 위해 결코 ‘지금’을 포기하지 마라. 인공지능은 혁명이지만 기계는 기계일 뿐, 인간의 창의력은 결코 모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계가 완벽하면 할수록 사람은 더욱 내면을 다져야 한다. 컴퓨터 코딩 대신 철학을 배우고, 책을 읽고, 아트를 이해하고, 사람과 교감하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발견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뱅상 씨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하다. 최근 관심사는? ‘everything!’. 최근에는 요리에 푹 빠져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해주곤 한다. 그래서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앞치마를 하나 샀다. 원단이 좋고 디자인이 실용적 이라 마음에 든다. 이 앞치마를 두르고 떡볶이(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다)를 먹으며 서울을 생각하겠지!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방대한 정보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인지, 사라질 아이디어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물성이나 사물을 마주했을 때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보다는 다소 불편하고 놀랍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선택하는 것! "
프리츠 한센 아시아퍼시픽&중동 지사 부사장 다리오 레이크를Dario Reicherl
우리가 본질을 직시하는 이유
프리츠 한센의 다리오 레이크를 아시아퍼시픽&중동 지사 부사장은 시리즈 세븐 체어의 60주년을 기념한 ‘세븐 쿨 아키텍츠’ 전을 선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시선을 사로잡는 자극적 디자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는 프리츠 한센. 명실공히 덴마크를 대표하는 가구 회사로서 모던 데니시 스타일을 명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한 비결을 아시아퍼시픽&중동 지사 부사장 다리오 레이크를에게 들을 수 있었다. 혼란의 시대에서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프리츠 한센이 강조하는 최대 가치이다.
이번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그 어느 때보다 참가 브랜드의 수준과 안목, 디스플레이가 좋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개장 전부터 전시장을 둘러보던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이 있나? 한국에서 북유럽 디자인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실감했다. 전시장에 전반적으로 북유럽 디자인 감성이 흐르고 있는 데다 일부 부스에서는 간결함을 추구하는 덴마크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짚어내는 점에서 인테리어를 보는 안목과 취향이 상당히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츠 한센 가구를 전시한 보에의 부스는 라스빗의 조명등과 글라스 이탈리아의 화병, 루이스 폴센의 조명등과 작품 같은 거울 등을 창의적으로 매치했는데 덴마크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보에의 부스는 이번 페어의 핫 플레이스였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한 ‘세븐 쿨 아키텍츠 7 Cool Architects ’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어 굉장히 반갑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기념해 프리츠 한센에서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다.(웃음) 2015년은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해였다. 프리츠한센의 상징인 시리즈 세븐 체어가 탄생한 지 꼭 6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를 디자인한 덴마크의 대표 건축가 아르네 야콥 센에게 바치는 헌사로 자하 하디드, 비야케 잉겔스 그룹을 비롯해 세계적 건축가 7인이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 의자를 재해석했는데 프리츠 한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주제는 ‘내 집, 내가 바꾸기’다. 당신의 집에서 애정을 갖고 꾸민 공간이 있는가? 물론! 서재가 나에게는 가장 특별한 공간이다. 편하게 걸터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커다란 창과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가 원하는 크기로 주문 제작한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고, 방 안을 채운 벽지부터 소품, 노트, 펜까지도 모두 좋아하는 것만을 모아뒀다. 취향대로 꾸민 나만의 아지트라고나 할까.
세미나에서 ‘노 트렌드가 곧 트렌드’라고 말한 점에 공감했다. 사람들이 트렌드에 열광하면서도 그와 정반대 성향인 북유럽 디자인을 동경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멋있는 ‘성숙한’ 디자인. 사람들은 어릴 때 자극적이고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다가도 나이가 들수록 심플한 것을 찾는다. 그중 최상위가 덴마크 디자인 아닐까.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좋은 소재를 엄선해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것이 덴마크 가구의 공통점이다.
프리츠 한센은 북유럽 가구 브랜드 중에서도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한 브랜드 1순위로 꼽힌다. 북유럽 가구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리딩 브랜드로서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우리는 특히 1950~1960년대 덴마크 디자인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가 시간을 초월해 아름다운 ‘타임리스 디자인’과 편안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제작한다는 ‘진실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가 해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며 수십점의 가구, 소품을 선보이고 일부 북유럽 브랜드가 잘 팔릴 만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프리츠 한센은 가구의 완성도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고심한 끝에 컬러, 소재를 한두 버전 추가하거나 몇 년에 한 번씩 신작을 내놓을 정도로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가구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퀄리티. 우리에게는 퀄리티가 최고 관심사이자 유일한 관심사이다.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장식 요소는 덜고 오로지 가구의 본질 만을 남겨둔다. 우리의 슬로건인 ‘백 투 베이식 Back to Basics’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프리츠 한센의 일원으로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갖추는 것도 늘 신경 쓰 는 점이다. 마치 갤러리에서 일하는 기분이 들도록! 이러한 배경을 갖출 수 있게 된 데는 이익 창출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회사의 자본력이 탄탄한 점도 한몫한다.
4년 전, 하이메 아욘과 협업한 로 체어가 세계적 이슈다. 정통 모던 데니시 스타일을 추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일상을 풍요롭게 해줄 편안하고 우아한 가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우리는 이미 아르네 야콥센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덴마크 디자인 DNA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음 디자이너로는 아르네 야콥센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을,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로 덴마크 디자인을 이야기할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하이메 아욘이 우리에겐 그런 존재였다. 디자인에 위트를 불어넣는 그는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가 확고했으며, 심지어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겸손했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곧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열린다. 이번엔 어떤 깜짝 선물(?)을 준비했을지 궁금하다. 밀라노 브레라 거리에 작은 쇼룸이 있는데, 이곳에 리얼 덴마크 스타일을 펼쳐놓을 예정이다. 덴마크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슬로 라이프’의 정수를 보여줄 예정. 이를 통해 덴마크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새미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출처가 불분명한 트렌드가 혼재하는 시대일수록 간결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Back to Basics! 이것이 프리츠 한센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