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수의사라면, 그리고 그에게 열다섯 살이 넘은 노령견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겁니다. “이제 와서 당신이 개에게 해주지 못해 가장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비슷한 질문에 맞닥뜨릴 때마다 저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산책입니다. 충분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잘못된 방법으로 행한 모든 산책 말이죠.”
“당신은 개와 얼마나 자주 산책하나요?” 반려견의 행동 문제로 내원하는 보호자에게 제가 가장 먼저 묻는 말입니다. 개가 얼마나 자주 산책하느냐는 질문은 개가 얼마나 행복하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만큼 개의 정신 건강에서 산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개에게 산책은 단순한 운동의 의미를 넘어, 외부와 소통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따라서 개에게 산책은 하면 좋고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천둥 벼락이 치지 않는 한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일주일에 겨우 두세 번 개와 산책을 하면서도 우리 개는 충분히 산책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주인의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개는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집 안 벽지를 물어뜯거나, 자기 꼬리를 잡기 위해 빙빙 도는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개의 행동 중 상당수는 우리가 매일 개와 조금 더 걸어줬더라면 개가 겪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물론 개의 충분한 산책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개가 산책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늙은 반려견 건대는 한 달에 고작 두세 번 산책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건대는 생후 6개월이 지나서야 첫 산책을 나갔습니다. 기대와 달리 건대는 밖에서 잘 뛰지도, 딱히 즐거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첫 산책에서 바닥에 얼어붙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건대를 억지로 잡아끌어 집으로 데려와야 했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건대는 밖에만 나가면 주변을 향해 짖기 시작했고, 냄새를 맡으려 다가오는 개를 물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산책은 매일 전쟁과도 같았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함께 밖에 나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째서 우리 개는 산책 한번 하기가 이렇게 힘들까?’ 예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개의 유별난 성격이나 품종적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곤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지난 호 글에서 언급했듯 개에게는 낯선 상황마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특별한 3개월의 시간(사회화의 황금기) 이 존재하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개는 낯섦을 두려움으로 받아 들이게 됩니다. 우리 개가 산책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첫 번째 산책을 생후 3개월 전에 해야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불행히도 거의 모든 개는 5개월이 다 되어서야 첫 산책을 하는데, 그때쯤 개의 기초 예방접종이 완료되기 때문입니다. 접종이 끝나기 전에 밖에 나갔다가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주인의 노파심이 개의 첫 산책 시기를 늦추고, 결과적으로 너무 늦은 첫 산책은 개에게 바깥세상을 두려운 곳으로 인식시키고 맙니다. 산책만 나가면 얼어붙고, 심하게 짖고, 공격성을 보이는 개에게 산책은 즐겁기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우리 개의 첫 산책은 언제를 생각하든 그보다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개에게 산책이 즐거우려면 그것이 최선입니다. 예방접종이 끝나지도 않은 개를 산책시키는 데 대해 제가 수업을 들은 교수 한 분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게 두려워 차를 타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우리가 탄 차가 교통사고가 날 확률은 무시할 만큼 낮지만, 차를 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조건 회사에 지각하고 말 겁니다. 개의 산책도 똑같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안전한 장소에서 산책한 어린 개가 전염병에 걸릴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너무 늦게 산책을 시작한 개가 행동 문제를 겪을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죠.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개의 삶에 산책이 주는 의미를 이해한다면 대답은 자명할 겁니다.”
우리 개의 행복을 바라시나요? 개와 함께 산책하세요. 개의 안전과 건강이 걱정되시나요? 잠깐의 산책조차 버거울 만큼 개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개의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특별한시간, ‘사회화의 황금기’ 문이 닫히기 전에 흥미롭고 즐거운 바깥세상을 개에게 자주 보여주세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개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오영욱 건축가는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작가로, 오다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베를링턴테리어 암컷을 키우는 그는 초보 개 아범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 수의사와 초보 개 아범의 동물 행동 심리 이야기 "첫 산책, 언제를 생각하든 그보다 빠른 때 시작하세요"
-
베를링턴테리어라는 동물 가족을 입양한 건축가와 동물행동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열다섯 살 몰티즈와 함께 사는 수의사의 그림과 글을 연재해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탐구합니다.#반려견 #동물행동심리 #반려견산책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