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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와 초보 개 아범의 동물 행동 심리 이야기 개들의 배움에도 때가 있습니다
베를링턴테리어라는 동물 가족을 입양한 건축가와 동물행동 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열다섯 살 몰티즈와 함께 사는 수의사의 글을 연재해 동물과 사람이 행복해지는 삶을 탐구합니다.

반려견 ‘건대’는 태어난 지 두 달째 저희 집에 왔습니다. 건대는 집에 오자마자 미지의 땅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행동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다가가 냄새를 맡고 물어뜯었고, 아무 방이나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으며, 새로 만난 사람들을 향해 반갑게 다가가곤 했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늘 부산하던 건대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어린 개에게 스트레스는 반드시 피해야 할 대상이고, 특히 새로운 환경으로 옮긴 개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죠. 

이것이 제가 철로 된 울타리를 건대에게 선물한 이유입니다. 건대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좁은 공간 안에서 편히 쉬기를 바랐습니다. 동물 병원에 갈 때를 제외 하곤 기본 접종이 모두 끝나기 전까진 절대로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은 건 물론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건대 나이가 6개월쯤 됐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탐험가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바깥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소심한 개로 변해버린 겁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나가던 산책길에서는 낯선 사람과 동물만 보면 목청이 터져라 짖어댔습니다. 고작 몇 개월 사이 건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모든 배움에는 때가 있다’. 사람에게 배우기 좋은 때가 있다는 명제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행여나 아이들이 배움의 시기를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부모들과 무시무시한 영어 유치원 학비가 그것을 방증합니다. 학습 능력뿐 아니라 성격과 가치관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이때는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개들에게도 배우기 좋은 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건대 나이 열 살이 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개들은 놀라운 학습 능력을 보여주는데,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개들의 학습 능력은 다른 때보다 다섯 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뛰어난 학습 능력의 비결은 바로 끊임없는 호기심입니다. 어린 개는 처음 보는 물건을 두려워하기보다 궁금해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도망가기보다 귀를 기울입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나 동물도 반가워합니다. 처음 집에 온 건대가 탐험가처럼 행동했던 이유입니다. 


호기심이 왕성한 이때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개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 경험엔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경험은 개가 느끼기에 기분 좋은 경험이어야만 합니다. 수영을 가르쳐준다는 부모 손에 이끌려 바다에 빠져본 기억이 있는 아이가 평생 바다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개들 중 일부는 억지로 애견 카페에 끌려간 경험이 있곤 합니다. 이처럼 개의 감정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많은 경험만 쌓게 해주려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개 역시 배움의 기간이 길지 않습니다. 동물 행동 전문가들은 생후 3주부터 12주까지 약 70일의 시간이 ‘강아지 사회화의 황금기’라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생후 12주가 지나면 개 마음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습니다.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면 다가가기보다 움츠러들고, 도망가며, 어떤 개는 심하게 짖으며 대상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전염병 감염을 지나치게 우려한 주인 때문에 사회화의 황금기를 좁은 철장 안에서 보낸 건대에게 산책길의 풍경 ‐ 낯선 사람, 낯선 동물, 낯선 소리, 낯선 물건 ‐ 은 처음 겪는 두려움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건대가 그토록 심하게 짖어댄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자신의 반려견이 배움의 적기에 있는지 아닌 지 알지 못하고, 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개는 가장 중요한 순간을 헛되이 보내버린 탓에 평생을 불안과 씨름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사람은 개는 원래 짖는 동물이고, 집을 지키려면 바깥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며,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경계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개는 정신 상태가 지극히 건강한 개’라고 착각합니다. 예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저는 탐험가 같았던 그 시절의 건대에게 철장 대신 바깥세상을 선물해줬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건대는 훨씬 더 행복한 견생을 보냈을 테니까요.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오영욱 건축가는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작가로, 오다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베를링턴테리어 암컷을 키우는 그는 초보 개 아범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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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