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무척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 나이 아홉 살 때부터 궁금해 하던 것, 성인이 되어 제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연구할 그것은 바로 ‘대화로 이루는 평화로운 삶’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욕하고 때리고 던질까요?” 만약 이 질문에 ‘난 저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질문을 떠올려보세요. “우리 는 왜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며 관계를 단절시킬까요?”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첫 번째 질문은, 성장하면서 점점 두 번째 질문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의 두 질문이 결국 같은 의미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가?”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성장하면서 바라본 사회, 그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단절감과 폭력적 방식의 갈등은 대부분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야기되는 것이었습니다.
똑같이 힘든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험한 말을 뱉으며 타인을 원망하고 비난하느라 에너지를 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계의 차이는, 한 개인이 외부를 바라보는 내적 성숙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렇듯 갈등은 내적 혼란에서 먼저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대화라는 것은 결국 말 이상의 어떤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말을 할수록 더 갈등에 휩싸이고 상대와 더욱더 단절된 관계를 경험하게 되어 힘들다면 잠시 멈추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내면을 스스로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도 배움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단절의 원인은 우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성장하며 배워온 학습과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최진욱, ‘우리끼리 소통’, 나무에 아크릴 채색, 혼합재료, 13×26cm, 2013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1=2’라는 공식을 배웁니다. 이때 만약 답을 3이라고 말하면 “그건 틀렸어”라고 하면서 다시 설명해주고 배우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답을 찾는 데 매우 익숙합니다. 실제로 그런 능력이 살아가면서 우리 삶에 꽤 중요하기도 합니다. 뛰어난 의사 결정 능력은 직관력과 통찰력 있는 판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맞고, 틀리고,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다는 모든 기준을 ‘사람 간의 관계’에 적용 하면서부터 우리는 갈등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할 때였는데, 그 흔한 카드놀이를 하는데도 룰이 각각 조금씩 다른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서로가 자기의 룰이 옳다고 말하면서 큰 목소리를 내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즐겁게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서로의 룰 중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을 채택해 새로운 룰을 만들어 재미있게 카드놀이를 했습니다. 만약 서로가 계속 자신의 룰이 옳고 상대의 룰은 틀렸다고 하면서 우겼다면 누구도 즐거운 관계 속에서 그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소한 접근이 아주 심각한 갈등 속에서도 매우 유효함을 많은 사람의 관계를 도우며 목격했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동의하진 않더라도 상대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들을 때 얼마나 많은 고통 속의 갈등이 쉽게 풀어지는지를 목격하면서 우리 모두 매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러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난 저 사람 때문에 정말 힘들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과의 문제를 떠올려보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내가 옳다고 믿는 방법을 떠올려보세요. 그 후 내가 옳다고 믿는 그 방법이 나의 주관적 판단임을 알아차려보세요.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의 말을 다시 들어보세요.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네요’라고 속으로 되뇌며 말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연결’이 이루어집니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와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