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주인은 작가, 책 주인은 독자 서울 충정로에 있는 마음산책 사무실. 정은숙 대표가 짧은 단발머리에 앙증맞은 핀을 양쪽으로 꽂은 모습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자연스럽게 반짝이는 머리핀을 소재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가 머리핀을 꽂게 된 사연은 이렇다. 며칠 전에 머리를 잘랐는데 길이가 너무 짧아져서 머리핀을 꽂아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를 맘에 들도록 교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즈음 그는 곧 인쇄에 들어갈 영화감독 김지운 씨의 에세이 <김지운의 숏컷>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김지운 감독님을 필자로 섭외하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요?”
“예전부터 김지운 감독님의 책을 출판하고 싶어 했는데, 마음산책에서 책을 출간한 박찬욱 감독님의 소개로 연락이 닿았어요. 김지운 감독님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책 출간을 생각해보겠다. 그런데 내 글로 책을 낼 수 있겠냐’를 물어보셨고요. 그래서 김 감독님의 글을 하나하나 찾아 책으로 만들어 보여드렸어요.”
정은숙 대표는 이번에도 정성이 담긴 섭외 방법으로 김지운 감독을 필자로 ‘모시는’ 데 성공했다. ‘몇 년 동안 들어온 출판사의 제안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런데 마음산책 출판사는 미꾸라지 잡는 법을 알고 있는 곳이다.’ 김지운 감독은 자신이 마음산책 출판사와 마음을 합쳐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비단 김지운 감독뿐이 아니다. 마음산책 출판사의 출간목록을 채우고 있는 모든 책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빛을 보았다. 책을 출간하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작가가 쓴 글과 책을 다시 읽고, 작가의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책을 기획하는 것이 그 ‘섭외 방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아픈 사연이 있어요. 2000년 창업을 했을 때, 작가 분들에게 원고 요청을 하려는데 제가 문학잡지 편집장을 했던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책을 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다른 출판사들과 출간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작가가 우리 출판사에 줄 수 있는 원고가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특별한 섭외 방법을 모색하게 해준 이는 소설가 구효서 씨. 사물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의 에세이 <인생은 지나간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작품 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작가로 소문난 소설가 신경숙 씨는를 펴낸 뒤 “내 인생에서 이 책은 없었는데, 마음산책 덕분에 새로운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의 고군분투와 사연은 1백 권의 책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져 있다.
“원고의 주인은 작가고, 책의 주인은 독자예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편집자는 단 한 번도 주인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매개자 또는 서포터니까요. 그래서 편집자들은 도서목록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죠. 저의 경우 마음산책의 리스트가 저의 자서전입니다. 이것만 얘기하면 제 인생이 다 나와요.”
정 대표는 예전에도 머리핀을 양쪽으로 꽂은 적이 있다. 전북 지역의 명문 전주여고를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그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들로 가득한 그 학교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모두들 교복에 검정 구두를 신고, 머리는 가르마를 타고 한쪽으로 넘겨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고정하고 다녔는데 유독 그만은 양쪽으로 핀을 꽂고 다녔다. 구두 맞추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서 카키색 구두를 맞춰 신고 등교하는 여학생은 정 대표뿐이었다.
“선생님들의 통제와 모두 똑같은 옷을 입는 제복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옷을 사면 단추를 다 뜯어요. 그리고 모아놓은 단추들 중에서 고른 것으로 바꾸어 달아요. 그냥 재밌으려고 하는 거예요. 나만 아는 것이니까 남들이 많이 알면 안 돼요(웃음).”
“그런 성향이 마음산책이 펴내는 책들의 특성과도 상관있겠지요?”
“굳이 연결짓자면 그럴 것 같아요. (표지 디자인에 있는 컬러 하나에도) 장치를 하는 이유가 있고 이야깃거리가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 장치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아요.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니까요.”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책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일을 하는 편집자. 그가 한 권의 책에 자신의 손길과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표식으로 남기는 것은 이름 없는 석공의 마음과도 같다. 만든 사람만이 인식할 수 있는 표식을 장치하는 것으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탯줄을 만드는 것은.
그의 취미는 영화와 전시를 관람하는 것. 그림의 색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출판은 세계를 편집하는 일 정은숙 대표가 편집자가 된 것이나 마음산책을 만든 것은 우연이었다. “문학적인 글보다는 사회적인 효용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구나.”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대학 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그에게 영문학과를 다니던 친언니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래서 그는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고, 기자가 되기 위해 홍성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몇 달도 되지 않아 그가 일하던 잡지는 경영 문제로 폐간되었고, 그 뒤 홍성사 편집부에서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명한 작가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러다 3년차가 되면서 앞으로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지요. 이쯤 되면 일에 능숙해지거든요. 반면 별로 빛이 나는 일이 아니니까 직업에 대해 갈등을 하게 되지요. 5년차 때에는 팀장이었어요. 그 시기에는 팀장이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 일을 제 직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7년차가 되면서부터예요. 그 때 편집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제야 출판이 거대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7년차 때 발견한 출판의 세계는 어땠는지요?”
“출판은 세계를 편집하는 일이에요. 내가 아는 모든 정보와 내가 아는 사람을 선택해서 함께 세계를 편집하는 일이더라고요. 이렇게 출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 세계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어요. 출판과 편집자의 세계가 소중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양가감정의 균형도 잘 이룰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양가감정이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느끼는 게 인간이지요. 똑같은 사람이나 현상, 주제를 놓고 각각 달리 해석해요. 한 사람을 두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하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고 해석합니다. 제가 어떤 분의 책을 펴내려고 할 때에는 그분의 글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인 거잖아요. 제가 싫어하는데 책을 출판하려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작가의 장점을 충분히 봅니다. 치열이 어긋나게 나 있는 걸 보고도 ‘저렇게 귀여울 수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준비해요. 만약 장점을 헤칠 만한 단점이 있는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요. 그러나 원고의 주인은 작가이니까 편집자의 해석을 수용할지 말지는 작가의 몫이겠지요.”
그의 혈액형은 소심한 ‘A형’.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상 편집 일에 제격인 A형 소유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대범해진다. 그도 그런 것 같다. 다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할 때 그의 책상 서랍에는 사표가 들어 있었다. 사표는 자신을 위안하는 무기의 일종. ‘너무 힘들게 설득하지 말고 안 될 때는…’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종이 한 장이 힘겨울 때에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3년 만에 한 번꼴로 직장을 옮긴 그는 홍성사, 고려원, 삼성출판사, 세계사, 열림원을 거쳐 마흔 살이 되던 해 독립했다. 마흔 즈음, 그는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자신의 색깔을 더 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고, 푸른숲 출판사 김혜경 사장의 후원을 얻어 마음산책을 창립했다.(지금은 완전히 독립했다) 직장 생활 16년 차로 접어들던 때였다.
“창업할 때의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조금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내용에서는 여성성을, 형식에서는 비주얼이라는 키워드를 목표로 잡았고요. 우리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니까 책을 방만하게 출간하지 않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 7년 정도는 외주를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공적인 6년이었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욕심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희가 물적 자원 없이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해왔음에도 신기하게 마니아 독자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독자와 함께 6년을 왔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기쁘고 행복해요.”
“마음산책 책들의 타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주 잘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려받은 것 없이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각오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무조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즐겁고 재밌게 새로운 책을 만들면 잘될 것이다. 나를 믿자’며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했지요.”
“독자들의 책을 고르는 기준이 꽤 달라졌지요?”
“예. 출판계 전반적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신문의 서평이나 정보를 보고 책을 구매했는데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의 메인 화면, 블로그 등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있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작가가 아니라) 제목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책에 대해서 절대적인 그 무엇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책을 문화상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아졌어요.”
“책 만들고 판매하는 일도 변화되고 좀 더 다양해지겠네요. 정 대표님께서는 책을 만들 때 주로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기획안을 쓸 때 떠올렸던 한 사람의 독자만 생각해요. 거의 가상의 독자인데 구체적이지요. 연령, 성별, 학력, 하고 있는 일, 취향, 기질 등을 따져서 종합한 그 독자를 위해 책을 만들어요. 그래서 그 독자가 이 책을 사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 독자가 책을 사게 되면 그 한 사람이 모여서 3천 명, 또 3천 명이 모여서 1만 명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3천 명을 생각하고 만든 책은 한 사람도 안 살 가능성이 농후해요. 두루두루 좋은 책은 두루두루 안 읽어도 되는 책이라는 얘기니까요.”
그는 2007년 새해부터 일본 여성작가 요네하라 마리와 프랑스의 유명한 여성 사진가 소피탈의 책들을 꾸준히 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화가 김점선 씨를 통해 자유로운 여성 작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마음산책의 색깔에 어울리는 해외 작가들을 소개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다른 나라의 작가를 소개하는 데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여성성과 비주얼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산책의 색깔은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책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광희 부티크의 이광희 대표가 운영하는 ‘르마와’에서 만난 편집자와 필자들. 왼쪽부터 정은숙 대표, 화가 김점선, 이해인 수녀, 이광희 대표
경력이 쌓일수록 우대받는 여성 편집자 ‘지하 주차장, 신음소리 들린다 / 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 /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 / 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 눈물이 거센 파도가 되고 멈춰 선 차들은 / 춤을 추네. 울음소리에 스며들어 점차 / 나는 없네. / 이 차는 이제 옛날의 그 차가 아니라네. / 이 차는 속으로 울어버린 것이라네. / 나를 싣고서 떠나가 버렸다네.’ (정은숙 대표의 시 ‘멀리 와서 울었네’ 전문)
정 대표는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최근에는 시집을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두 권의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민음사, 1994년) <나만의 것>(민음사, 1999년)을 펴냈다. 위의 시는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 차를 아주 좋아하는 그는 도심 속 어느 빌딩 주차장으로 들어가 우는 것으로 마음속 멍을 치유한다.
“작가들을 만나고 필자로 섭외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마음고생도 심할 테지요?”
“그분들이 저를 괴롭혔다기보다는 제가 저 스스로를 괴롭힌 면이 있겠지요.”
“판매율이 높지 않으리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되었을 때도 힘드시겠지요?”
“굉장히 아려요. 제가 결정하던 순간들이 떠오르기고 하고 저에 대한 연민도 생기고요. 그때 결정을 존중하고 빨리 털어내려고 하지요. 자꾸 집착하면 자신감이 상실돼요. 후배들에게도 후회하는 것은 어떤 것에도 도움이 안 되니까 후회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요.”
충무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메모를 하는 모습. 그는 두 개의 다이어리를 사용해 시간 관리를 한다.
“여성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가요?”
“너무 좋아요. 여성 편집자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일수록 좋거든요. 아이를 낳고 복직해도 좋아요. 그 경험이 책 만드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더 우대를 받아요.”
40대 출판인 가운데 대표주자로 꼽히는 그는 여성 편집자로서는 더욱 독보적인 출판사 대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출판인회의 산하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책임교수로 활동하느라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편집자로서만 알려져 있을 뿐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간혹 미혼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사적인 이야기가 자칫 인터뷰의 중심인 책 이야기를 흐리게 될까 염려하는 그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첫사랑인 선배 시인 윤성근 씨와 결혼한 기혼자이고, 더 더군다나 곧 고등학생이 되는 장성한 아들의 어머니.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그의 원칙은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주말에는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고, 간식은 직접 만들어준다. (매사 완벽을 기하는 A형의 면모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잠든 아들 옆에 가서 눕는다.
“편집자로서의 자신감이 있으시겠지요?”
“아니요.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A형 특유의 성향이 있어서 뭘 만지며 꼼지락거리는 걸 재미있어 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은 대범하게 생각할 것도 ‘이렇게 만져보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끊임없이 만지거든요.”
“직업병이 있다면요?”
“(대개 책을 인쇄하는 날)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것, 잊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메모하는 것, 한밤중에 작가에게 전화해서 “좀 더 생각해봤는데요”라고 얘기해서 놀라게 하는 거요.(웃음)”
“취미는 무엇인가요?”
“영화 보고 전시 관람하는 걸 즐겨요. 색감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존경하는 편집자는요?”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사장님과 푸른숲 김혜경 사장님이요. 두 분은 소심한 저와 달리 결정력이 굉장하고 포용력이 하해와 같은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출판 색깔도 분명하고요.”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공부를 안 해서 공부 내용은 기억하는 게 별로 없고, 자폐적인 학생이었어요. 기숙사에서 4년을 살았는데,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식당에서 쟁반으로 음식 받아 먹는 게 제 기질하고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밥을 굶었고, 기숙사 방에 안 들어가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점호시간까지 학교(이화여대) 운동장에 누워 밤늦도록 몽상만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뭘 하는 거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행사가 있을 때면 ‘어디로, 어떻게 도망갈까’ 하는 생각부터 했지요.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드러워졌어요. 점차 ‘아! 같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구나’ 하며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지요.”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의 문을 바라보며 매 순간을 살아온 그는 2007년을 새로운 도약의 시간으로 다질 계획이다. “정말 잘해야 되거든요”라는 말로 마음을 다잡는 그를 보니 그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큰 실패나 시련을 만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무엇이든 ‘잘하려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 실행에 들어갔기 때문인 것을, 그리고 늘 긍정을 준비하고 있기에 시련이 찾아왔다가도 되돌아갔을 것을 말이다. 옆의 사람을 편하고 기운차게 만드는 ‘하하하하’ 호방한 그의 함박웃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 즈음 그는 곧 인쇄에 들어갈 영화감독 김지운 씨의 에세이 <김지운의 숏컷>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김지운 감독님을 필자로 섭외하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요?”
“예전부터 김지운 감독님의 책을 출판하고 싶어 했는데, 마음산책에서 책을 출간한 박찬욱 감독님의 소개로 연락이 닿았어요. 김지운 감독님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책 출간을 생각해보겠다. 그런데 내 글로 책을 낼 수 있겠냐’를 물어보셨고요. 그래서 김 감독님의 글을 하나하나 찾아 책으로 만들어 보여드렸어요.”
정은숙 대표는 이번에도 정성이 담긴 섭외 방법으로 김지운 감독을 필자로 ‘모시는’ 데 성공했다. ‘몇 년 동안 들어온 출판사의 제안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런데 마음산책 출판사는 미꾸라지 잡는 법을 알고 있는 곳이다.’ 김지운 감독은 자신이 마음산책 출판사와 마음을 합쳐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비단 김지운 감독뿐이 아니다. 마음산책 출판사의 출간목록을 채우고 있는 모든 책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빛을 보았다. 책을 출간하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작가가 쓴 글과 책을 다시 읽고, 작가의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책을 기획하는 것이 그 ‘섭외 방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아픈 사연이 있어요. 2000년 창업을 했을 때, 작가 분들에게 원고 요청을 하려는데 제가 문학잡지 편집장을 했던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책을 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다른 출판사들과 출간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작가가 우리 출판사에 줄 수 있는 원고가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특별한 섭외 방법을 모색하게 해준 이는 소설가 구효서 씨. 사물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의 에세이 <인생은 지나간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작품 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작가로 소문난 소설가 신경숙 씨는
“원고의 주인은 작가고, 책의 주인은 독자예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편집자는 단 한 번도 주인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매개자 또는 서포터니까요. 그래서 편집자들은 도서목록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죠. 저의 경우 마음산책의 리스트가 저의 자서전입니다. 이것만 얘기하면 제 인생이 다 나와요.”
정 대표는 예전에도 머리핀을 양쪽으로 꽂은 적이 있다. 전북 지역의 명문 전주여고를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그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들로 가득한 그 학교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모두들 교복에 검정 구두를 신고, 머리는 가르마를 타고 한쪽으로 넘겨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고정하고 다녔는데 유독 그만은 양쪽으로 핀을 꽂고 다녔다. 구두 맞추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서 카키색 구두를 맞춰 신고 등교하는 여학생은 정 대표뿐이었다.
“선생님들의 통제와 모두 똑같은 옷을 입는 제복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옷을 사면 단추를 다 뜯어요. 그리고 모아놓은 단추들 중에서 고른 것으로 바꾸어 달아요. 그냥 재밌으려고 하는 거예요. 나만 아는 것이니까 남들이 많이 알면 안 돼요(웃음).”
“그런 성향이 마음산책이 펴내는 책들의 특성과도 상관있겠지요?”
“굳이 연결짓자면 그럴 것 같아요. (표지 디자인에 있는 컬러 하나에도) 장치를 하는 이유가 있고 이야깃거리가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 장치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아요.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니까요.”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책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일을 하는 편집자. 그가 한 권의 책에 자신의 손길과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표식으로 남기는 것은 이름 없는 석공의 마음과도 같다. 만든 사람만이 인식할 수 있는 표식을 장치하는 것으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탯줄을 만드는 것은.
그의 취미는 영화와 전시를 관람하는 것. 그림의 색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출판은 세계를 편집하는 일 정은숙 대표가 편집자가 된 것이나 마음산책을 만든 것은 우연이었다. “문학적인 글보다는 사회적인 효용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구나.”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대학 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그에게 영문학과를 다니던 친언니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래서 그는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고, 기자가 되기 위해 홍성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몇 달도 되지 않아 그가 일하던 잡지는 경영 문제로 폐간되었고, 그 뒤 홍성사 편집부에서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명한 작가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러다 3년차가 되면서 앞으로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지요. 이쯤 되면 일에 능숙해지거든요. 반면 별로 빛이 나는 일이 아니니까 직업에 대해 갈등을 하게 되지요. 5년차 때에는 팀장이었어요. 그 시기에는 팀장이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 일을 제 직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7년차가 되면서부터예요. 그 때 편집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제야 출판이 거대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7년차 때 발견한 출판의 세계는 어땠는지요?”
“출판은 세계를 편집하는 일이에요. 내가 아는 모든 정보와 내가 아는 사람을 선택해서 함께 세계를 편집하는 일이더라고요. 이렇게 출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 세계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어요. 출판과 편집자의 세계가 소중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양가감정의 균형도 잘 이룰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양가감정이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느끼는 게 인간이지요. 똑같은 사람이나 현상, 주제를 놓고 각각 달리 해석해요. 한 사람을 두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하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고 해석합니다. 제가 어떤 분의 책을 펴내려고 할 때에는 그분의 글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인 거잖아요. 제가 싫어하는데 책을 출판하려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작가의 장점을 충분히 봅니다. 치열이 어긋나게 나 있는 걸 보고도 ‘저렇게 귀여울 수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준비해요. 만약 장점을 헤칠 만한 단점이 있는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요. 그러나 원고의 주인은 작가이니까 편집자의 해석을 수용할지 말지는 작가의 몫이겠지요.”
그의 혈액형은 소심한 ‘A형’.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상 편집 일에 제격인 A형 소유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대범해진다. 그도 그런 것 같다. 다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할 때 그의 책상 서랍에는 사표가 들어 있었다. 사표는 자신을 위안하는 무기의 일종. ‘너무 힘들게 설득하지 말고 안 될 때는…’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종이 한 장이 힘겨울 때에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3년 만에 한 번꼴로 직장을 옮긴 그는 홍성사, 고려원, 삼성출판사, 세계사, 열림원을 거쳐 마흔 살이 되던 해 독립했다. 마흔 즈음, 그는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자신의 색깔을 더 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고, 푸른숲 출판사 김혜경 사장의 후원을 얻어 마음산책을 창립했다.(지금은 완전히 독립했다) 직장 생활 16년 차로 접어들던 때였다.
“창업할 때의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조금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내용에서는 여성성을, 형식에서는 비주얼이라는 키워드를 목표로 잡았고요. 우리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니까 책을 방만하게 출간하지 않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 7년 정도는 외주를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공적인 6년이었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욕심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희가 물적 자원 없이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해왔음에도 신기하게 마니아 독자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독자와 함께 6년을 왔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기쁘고 행복해요.”
“마음산책 책들의 타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주 잘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려받은 것 없이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각오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무조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즐겁고 재밌게 새로운 책을 만들면 잘될 것이다. 나를 믿자’며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했지요.”
“독자들의 책을 고르는 기준이 꽤 달라졌지요?”
“예. 출판계 전반적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신문의 서평이나 정보를 보고 책을 구매했는데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의 메인 화면, 블로그 등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있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작가가 아니라) 제목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책에 대해서 절대적인 그 무엇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책을 문화상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아졌어요.”
“책 만들고 판매하는 일도 변화되고 좀 더 다양해지겠네요. 정 대표님께서는 책을 만들 때 주로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기획안을 쓸 때 떠올렸던 한 사람의 독자만 생각해요. 거의 가상의 독자인데 구체적이지요. 연령, 성별, 학력, 하고 있는 일, 취향, 기질 등을 따져서 종합한 그 독자를 위해 책을 만들어요. 그래서 그 독자가 이 책을 사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 독자가 책을 사게 되면 그 한 사람이 모여서 3천 명, 또 3천 명이 모여서 1만 명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3천 명을 생각하고 만든 책은 한 사람도 안 살 가능성이 농후해요. 두루두루 좋은 책은 두루두루 안 읽어도 되는 책이라는 얘기니까요.”
그는 2007년 새해부터 일본 여성작가 요네하라 마리와 프랑스의 유명한 여성 사진가 소피탈의 책들을 꾸준히 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화가 김점선 씨를 통해 자유로운 여성 작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마음산책의 색깔에 어울리는 해외 작가들을 소개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다른 나라의 작가를 소개하는 데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여성성과 비주얼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산책의 색깔은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책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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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부티크의 이광희 대표가 운영하는 ‘르마와’에서 만난 편집자와 필자들. 왼쪽부터 정은숙 대표, 화가 김점선, 이해인 수녀, 이광희 대표
경력이 쌓일수록 우대받는 여성 편집자 ‘지하 주차장, 신음소리 들린다 / 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 /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 / 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 눈물이 거센 파도가 되고 멈춰 선 차들은 / 춤을 추네. 울음소리에 스며들어 점차 / 나는 없네. / 이 차는 이제 옛날의 그 차가 아니라네. / 이 차는 속으로 울어버린 것이라네. / 나를 싣고서 떠나가 버렸다네.’ (정은숙 대표의 시 ‘멀리 와서 울었네’ 전문)
정 대표는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최근에는 시집을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두 권의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민음사, 1994년) <나만의 것>(민음사, 1999년)을 펴냈다. 위의 시는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 차를 아주 좋아하는 그는 도심 속 어느 빌딩 주차장으로 들어가 우는 것으로 마음속 멍을 치유한다.
“작가들을 만나고 필자로 섭외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마음고생도 심할 테지요?”
“그분들이 저를 괴롭혔다기보다는 제가 저 스스로를 괴롭힌 면이 있겠지요.”
“판매율이 높지 않으리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되었을 때도 힘드시겠지요?”
“굉장히 아려요. 제가 결정하던 순간들이 떠오르기고 하고 저에 대한 연민도 생기고요. 그때 결정을 존중하고 빨리 털어내려고 하지요. 자꾸 집착하면 자신감이 상실돼요. 후배들에게도 후회하는 것은 어떤 것에도 도움이 안 되니까 후회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요.”
충무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메모를 하는 모습. 그는 두 개의 다이어리를 사용해 시간 관리를 한다.
“여성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가요?”
“너무 좋아요. 여성 편집자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일수록 좋거든요. 아이를 낳고 복직해도 좋아요. 그 경험이 책 만드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더 우대를 받아요.”
40대 출판인 가운데 대표주자로 꼽히는 그는 여성 편집자로서는 더욱 독보적인 출판사 대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출판인회의 산하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책임교수로 활동하느라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편집자로서만 알려져 있을 뿐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간혹 미혼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사적인 이야기가 자칫 인터뷰의 중심인 책 이야기를 흐리게 될까 염려하는 그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첫사랑인 선배 시인 윤성근 씨와 결혼한 기혼자이고, 더 더군다나 곧 고등학생이 되는 장성한 아들의 어머니.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그의 원칙은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주말에는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고, 간식은 직접 만들어준다. (매사 완벽을 기하는 A형의 면모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잠든 아들 옆에 가서 눕는다.
“편집자로서의 자신감이 있으시겠지요?”
“아니요.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A형 특유의 성향이 있어서 뭘 만지며 꼼지락거리는 걸 재미있어 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은 대범하게 생각할 것도 ‘이렇게 만져보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끊임없이 만지거든요.”
“직업병이 있다면요?”
“(대개 책을 인쇄하는 날)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것, 잊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메모하는 것, 한밤중에 작가에게 전화해서 “좀 더 생각해봤는데요”라고 얘기해서 놀라게 하는 거요.(웃음)”
“취미는 무엇인가요?”
“영화 보고 전시 관람하는 걸 즐겨요. 색감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존경하는 편집자는요?”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사장님과 푸른숲 김혜경 사장님이요. 두 분은 소심한 저와 달리 결정력이 굉장하고 포용력이 하해와 같은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출판 색깔도 분명하고요.”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공부를 안 해서 공부 내용은 기억하는 게 별로 없고, 자폐적인 학생이었어요. 기숙사에서 4년을 살았는데,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식당에서 쟁반으로 음식 받아 먹는 게 제 기질하고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밥을 굶었고, 기숙사 방에 안 들어가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점호시간까지 학교(이화여대) 운동장에 누워 밤늦도록 몽상만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뭘 하는 거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행사가 있을 때면 ‘어디로, 어떻게 도망갈까’ 하는 생각부터 했지요.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드러워졌어요. 점차 ‘아! 같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구나’ 하며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지요.”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의 문을 바라보며 매 순간을 살아온 그는 2007년을 새로운 도약의 시간으로 다질 계획이다. “정말 잘해야 되거든요”라는 말로 마음을 다잡는 그를 보니 그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큰 실패나 시련을 만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무엇이든 ‘잘하려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 실행에 들어갔기 때문인 것을, 그리고 늘 긍정을 준비하고 있기에 시련이 찾아왔다가도 되돌아갔을 것을 말이다. 옆의 사람을 편하고 기운차게 만드는 ‘하하하하’ 호방한 그의 함박웃음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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