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수강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우리 일상의 사물을 명상하듯 들여다보는 일을 검 프린트의 섬세한 톤을 통해 보여주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사진작가 김수강은 뉴욕 유학 시절부터 소금병, 우산, 달걀 껍질, 양말 같은 사소하지만 섬세한 결이 살아 있는 사물을 찍어왔다. 이후 선보인 단추, 주사위, 속옷, 돌멩이, ‘흰 그릇’ 연작, 최근의 ‘선반’과 ‘타월’ 시리즈도 지극한 일상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는 뉴욕 유학 시절인 1997~1998년 처음 선보인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 있다.
“뉴욕 유학 시절 19세기 인화 기법을 다루는 전공 선택 과목을 수강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곧장 작업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20년이 지났네요.” ‘검gum 프린트’ 기법이라고 불리는 이 인화 기법은 19세기 잠시 붐이 일었다가, 사실적인 사진을 중시하는 사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점차 묻혀갔다. “아마도 검 프린트 기법이 탄생한 것 자체가 19세기 당시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 것 같아요. ‘미술관 벽에 걸려 있는, 지금껏 예술이라고 인정받은 그림’을 따라 그림 같은 사진을 만드는 인화 기법이 만들어진 거죠.” 검 프린트 기법은 공이 많이 드는 작업 방식이다.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하기에 사진에 속하지만 인화 기법은 판화의 그것을 닮았고, 수채 물감으로 색감을 내기에 회화의 특성도 지녔다.
안료(수채 물감)가 섞인 감광액을 프린트에 바르고, 말리고, 빛을 쪼인 뒤 물에 담가 한 시간 이상의 현상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15회 정도 반복하면서 색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농도와 밀도의 톤을 높여나가면 흡사 한 점의 정물화 같은 ‘그림 같은 사진’이 완성된다. 김수강 작가는 열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선화예중, 선화예고를 거쳐 서양화를 전공하기까지 대부분 수채화나 정물화를 그렸다. 1990년대 화랑계에는 판화 붐이 일었는데,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판화를 부전공했다. “학번마다 판화 수업을 담당하는 ‘판순이’가 있었는데, 제가 우리 학번 판순이였지요. 1학년 때 사진동아리에 들었는데, 그때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그림은 어릴 때부터 맹목적으로 그려왔지만 자발적으로 좋아하게 된 판화와 사진 역시 공부할수록 그 자체로 완결된 결과물을 만들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그런데 검 프린트 기법은 사진 톤을 이해하고, 판화의 손맛을 느끼며, 물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두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거든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사진과 그림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까? “‘기술적으로’ 사진에 가까워요. 작업을 하면서 사진적인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니까요. 물감을 사용해 작품의 색감이 돋보이니까 그림 같은 느낌이 들지만, 100 중 70 정도는 사진의 성질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됩니다.”
‘White Vessels 024’, gum bichromate print, 2006
그렇다면 김수강 작가는 왜 일상의 사물을 주목하는 것일까? 그만의 ‘낯설지 않은 것을 낯설게 보기’는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학창 시절 수많은 과제 속에서도 길가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에 피어난 풀 같은 것을 그리곤 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죠.” 집 안 어딘가 무심히 놓인 사물이지만 요리조리 뜯어보고 관찰하다 촬영하고, 보름 가깝게 지속되는 작업 과정을 거치면 ‘아무것도 아닌 사물의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 “사물이 어떤 표정을 보여줄 때가 있어요. 제가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작업하니까 지인 중 하나가 ‘왜 타월은 안 찍니?’ 물은 적이 있어요.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작년에 드디어 타월을 찍었어요. 왜냐고요? 그전까지는 별 감흥이 없었던 거지요. 그런데 어느 날 욕실에 포개어진 타월을 무심코 바라보는데 한 번에 느낌이 왔어요. 주변에 있다고 무조건 찍는 것은 아니에요. 사물이 비로소 어떤 표정을 보여줄 때, 그 표정이 나와 교감할 때 카메라를 듭니다.” ‘선반’ 시리즈 중 하나인 표지 작품 ‘Bottle and Ground Cherries’(2012)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작업실에 있던 유리병과 친구와 식사하러 간 식당에서 얻어 온 꽈리,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사물이 작가의 심미안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김수강 작가에게 물었다. 20년 동안 해온 작업이 때론 지루하거나 힘에 부치지 않느냐고. “새 시리즈를 작업할 때마다 매번 새로워요. 작업 과정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다른 작가들에 비해 호흡이 긴 편이죠. ‘잠깐’ 한 것 같은데 벌써 20년이네요.” 김수강 작가는 세상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만 같은 멜랑콜리를 가슴 한편에 품고 있던 20대 시절, 검 프린트 작업을 통해 마침내 현실과 생활에 발붙이게 되었다고 했다. 남들보다 천천히, 쉼표를 아껴가며 묵묵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온 김수강 작가의 시계는 지금쯤 몇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일상의 여백 어딘가 가만히 내려앉은 단순한 사물을 공들여 들여다보고 섬세한 손끝으로 지극한 존재감을 부여하는 김수강 작가의 남다른 노력이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 사진작가 김수강 보통의 존재에 대한 특별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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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강 #검프린트기법글 유주희 기자 | 사진 이명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