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의 또 다른 볼거리를 자랑하는 죽녹원의 대숲. 하늘로 빽빽하게 솟아오른 대나무 숲길의 신비함과 고요함에 마음이 금세 평온해진다.
2 대나무는 마치 지금의 ‘플라스틱’처럼 쓰임새 많은 공예 재료였다. 예부터 담양 사람들의 생활 속 깊이 들어온 전통 대나무 공예품들. 왼쪽 위부터 문양이 없고 여름에 노리개로 활용한 부채 합죽선, 잘 마른 대나무를 참숯에 지지면서 원통형으로 엮어 만든 죽부인, 옷가지를 담아 보관한 죽피 바구니, 옷이나 귀중품을 보관한 대나무 소재 총죽장, 대나무 통을 반으로 쪼개 반원 모양을 살려 이어 붙인 죽제 필통.
매해 9월 18일은 대나무의 날이다. UN이 미래 보고서에서 밝혔듯 대나무는 지구온난화의 유일한 대안 수종으로, 세계 곳곳에서 대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대나무 심기 10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각종 학술 회의를 통해 대나무의 가능성과 비전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대나무 고장 다케하라의 대나무 등불 축제, 인도 미조람의 대나무 축제 등 대나무는 관광자원으로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는 대나무가 지닌 환경적 의미와 미래 산업 소재로서 가능성, 전시와 관광자원으로서 가치 등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대나무’의 모든 비전을 심도 있게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우선 담양은 대나무밭 면적도 타 지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담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죽향竹鄕, ‘대나무 고을’이다. 마을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대밭이 펼쳐지고 댓잎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만큼 대나무는 공기처럼 친숙한 존재다. 대나무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죽세 공예로 대변되어온 지역적 특색 덕분일까? 눈으로만 보는 밋밋한 박람회 대신 대숲의 속삭임을 듣고 대나무의 풍미를 맛보고 대나무의 속살을 만지며 오감이 즐거운 체험으로 이끈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에서 대나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았다.
1 대나무의 생태 환경을 입체 영상으로 볼 수 있어 어린이 관람객의 호응이 컸던 생태 문화관.
2 인도네시아의 대나무 수상 가옥을 그대로 재현한 집. 구조부터 마감까지 모두 대나무를 사용했으며 2층까지 구성해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았다.
과거를 넘어 미래를 ‘살다’
박람회는 전남도립대와 죽녹원에서 펼쳐졌다. 본격적으로 대나무를 만날 시간. 주제 전시 구역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 이미지 월에서 다양한 대나무의 ‘짜임’을 만날 수 있다. 대나무를 잘라 표피를 벗긴 뒤 마디를 일일이 다듬어 쪼개고 얇게 엮기까지… 채상, 엮는 방법, 컬러 배합, 조각 붙이기 등에 따라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새집증후군 걱정 없는 천연 소재니 인테리어 마감재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한 대나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담양 사람들의 솜씨와 감각에 놀랄 수밖에!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국내외의 대나무를 심은 생태존을 지나 생태 문화관이 나오는데, 1백여 가지가 넘는 대나무 종류와 대나무 씨부터 생태 환경, 효능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주제 전시관 입구에서 만나는 대나무의 다양한 짜임. 대나무는 엮음 방식에 따라 그 자체로 패턴이 되는 것은 물론 천연 소재로 인테리어 벽 마감재로 손색없다. 채상장 서신정, 방림장 노순걸 명인이 전통 방식의 채상과 엮음을 맡았고 댓조각 장식은 장금식 준명인이 맡았다.
차분하게 앉아 대숲 소리를 듣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나무 피리의 제작 방법을 감상하고 나니 전시장 한쪽에선 채상장 보유자 서신정 선생이 전수자인 아들과 함께 한창 채상 시연 중이었다. 대나무를 잘라 얇고 가늘게 쪼개 부드럽게 훑어 실과 같은 대올을 만드는 작업은 아들의 몫. 쪽물로 염색한 대올을 엮어 삼합 채상을 만드는 선생의 빠른 손놀림에 어른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호기심을 보이며 둘러앉아 구경하는 재미에 빠졌다. 아버지인 서한규 장인에게 전수받은 서신정 선생은 특유의 감각으로 30여 가지 이상의 창작 패턴을 개발했으며, 전통 채상 기법을 현대화 해 젊은 사람도 좋아할 수 있는 실용적 아이템을 선보인다. 채상 외에도 삿갓, 죽렴, 죽관 악기, 죽 제기, 차 바구니, 부채, 솟대, 낚싯대, 찻상, 광주리, 화살, 참빗, 붓, 합죽선 등 전통 생활용품의 재료가 된 대나무의 맹활약상을 엿볼 수 있었다. 방 벽에 끈을 매달아 옷을 걸어두던 횃대, 솥에 음식물을 삶을 때 뚜껑으로 사용하던 채반, 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운반할 때 쓰던 소쿠리 등 대나무는 마치 지금의 플라스틱이나 철사처럼 과거의 삶을 한층 다채롭게 만든 첨단 재료였으니 그 공로를 짐작할 만하다.
대나무 공예의 채상(대올을 형형색색 염색해 베를 짜듯 직조하는 전통 방식)과 엮음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 월. 1?2?10번은 국화 문양 엮음, 3?6번은 채상의 기본 문양인 세월 짜기, 4?9번은 등공예 가구 제작 시 등판과 좌판에 사용하는 짜임, 5번 안쪽은 채상?테두리는 엮음 방식으로 쟁반?접시?화병 밑받침 등을 제작할 때 사용한다. 7번은 각종 통을 만들 때 사용하는 엮음으로 쫀쫀하고 내구성이 높다. 8번은 뚜껑에 포인트를 주는 엮음, 11번은 찜기?찬합 등 식기류 제작할 때 사용하는 기본 엮음, 12번은 다이아몬드 패턴을 만드는 전통 채상의 집수 기법이다. 도움말 채상장 서신정
한편 미래 성장관에서는 대나무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대나무 필라멘트와 에디슨의 전구’는 대나무를 전구의 필라멘트로 사용해 전등을 실용화 한 에디슨의 이야기를 통해 대나무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노트북 케이스, 스피커, 산악자전거, 조명등 등 대나무의 응용과 변주는 무궁무진했으며, 생장이 빠른 대나무를 이용해 손쉽게 지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뱀부 하우스 사례도 만날 수 있었다.지름 8~12cm 크기의 대나무를 세 개씩 쌓아 올려 만든 뱀부 하우스는 주제 전시관에서 가장 인기 높은 조형물이다. 그 안쪽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활용하는 대나무 건축양식을 패널과 영상으로 소개했다. 대나무는 쇠 파이프만큼 내구성이 좋으며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고 무엇보다 생장이 빨라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건축 마감 소재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나무로 건강을 지켜내다’라는 슬로건의 웰빙 뱀부 섹션도 흥미로웠다.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식기와 지역 먹거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한선주 교수가 기획한 생활 디자인용품 등 우리 집 식탁 위에, 거실에, 책상에 두고 쓰고 싶은 아이템이 가득했다.
1 대나무는 생장이 빠르고 내구성이 좋아 건축자재로도 유용하다. 홍콩에서는 공사 구조재로 철제 아시바 대신 대나무를 그대로 사용할 정도. 가로 7.5×세로 3.5×높이 4m의 뱀부 하우스를 설치해 세계 곳곳에서 활용하는 대나무 건축양식을 패널과 영상으로 소개했다.
2 담양에서 활동하는 죽세 공예인에게 의뢰해 만든 해바라기 엮음 문양의 벽 장식. 원형의 지름을 다르게 제작해 리듬감 있게 배치했다.
3 비치는 원단을 겹겹이 드리운 뒤 묵죽도 영상을 비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 영상 전시 공간.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해 군자의 덕에 비유되던 대나무는 문인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였다.
댓잎 향기에 취해 ‘노닐다’
탈취 및 제습 효과, 항균성, 통기성 등 대나무의 ‘만능’ 효능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이 궁금하다면 기업관과 국제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중국, 파키스탄, 미국, 태국 등 37개국의 1백10여 개 기관과 기업체의 대나무 제품도 전시해 국내외 신기한 아이디어용품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나무 마디를 그대로 살린 머그잔을 시작으로, 모던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대나무 도마와 커틀러리, 행주, 대나무를 깎아 만든 장식품과 드림캐처 외에도 대숯을 활용한 대숯 염색 편백 베개, 칫솔, 대나무 추출 원액 천연 아로마 제품까지 그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1 대나무로 만든 디자인 생활용품을 선보인 코리안비젼의 말차 브러시와 대나무 원형 도마.
2 대나무 공예대전 현대 공예 부문 은상을 수상한 다용도 바구니와 분리형 대나무 의자.
3 대나무를 엮는 방림장 노순걸 명인의 다양한 바구니. 형태가 조금씩 달라 장식품으로 손색없으며 차를 담아두는 용도로 활용하면 좋다.
주제 전시 구역을 돌아 나오니 마당에서 대나무를 활용한 놀이를 즐기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생들의 현장 체험 학습으로 박람회장 곳곳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아이들에게는 판다 죽순 피자 만들기나 죽초액 족욕 체험이,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대나무 활 만들기나 필라멘트 전구 만들기 같은 과학 교실이 인기가 있었다. 한편 친환경 농업관에서는 대나무뿐 아니라 커피나무와 파파야, 바오바브나무, 쑥부쟁이 등 다양한 농식물을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담양 쌀과 대나무로 담근 술 등 대나무를 활용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었다. 박람회장을 둘러보느라 지칠 즈음,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의 킬러 콘텐츠인 뱀부쇼를 관람했다. 담양에 대숲을 조성한 유래를 마치 전래 동화처럼 풀어냈는데, 홀로그램 영상과 주인공의 춤과 노래를 결합해 흥미진진했다. 매일 마당극과 전통 공연이 북문 근처 독수정에서 열리며, 주말에는 ‘대숲소리 대숲가락’을 테마로 하는 대금, 가야금 등의 국악 무대가 죽녹원 전망대에서 펼쳐져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 좋다.
1 낙죽장 이형진과 합죽선 명인 박현덕의 부채.
2 대나무의 무궁무진한 쓰임새를 보여주는 화병. 제사용 그릇을 만드는 변비장 김성수의 작품이다.
푸른 절개를 ‘그리다’
북적북적한 전시장 분위기를 만끽했다면 죽녹원에서 고요한 산책을 하며 힐링 시간을 가질 차례다. 죽녹원은 최형식 군수가 민선 3기 군수로 당선된 뒤 조성 사업을 시작해 2005년에 오픈한 명소로, 스토리텔링 산책로 여덟 곳을 조성해 코스별로 죽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죽녹원 후문에 면앙정, 송강정 등 담양의 정자를 그대로 재현한 시가문화촌을 구성했으며 한옥 숙박 시설도 운영한다. 무엇보다 죽녹원 전망대 봉황루에서 성인봉에 이르는 산책길은 대숲에서 들려오는 댓잎 소리와 풍경이 서정적이라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대표 코스다. 죽녹원 안에 자리한 이 이남 아트센터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다. 이번 박람회의 핵심 콘텐츠인 대나무와 죽녹원의 가치를 전달하는 이이남 작가의 디지털 영상 작품을 통해 대나무의 격을 한층 높였다는 평. 연푸른 봄부터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까지 서서히 변해가는 묵죽도 영상 등 시간의 흐름이 담긴 영상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 30분~1시간 정도 투자하는 것이 좋다.
박람회만으로는 발걸음이 아쉽다면 주변 볼거리도 놓치지 말자. 연간 60만 명이 다녀간다는 ‘걷고 싶은 길’ 메타세쿼이아길을 거닐거나 우리나라만의 원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소쇄원을 방문해 힐링할 수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병풍 묵죽도 영상.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의 변화를 영상으로 표현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길 중앙에 자리한 담빛예술창고도 박람회에 맞춰 오픈하며 개관전을 마련했다. 인터랙티브 아티스트를 선정해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 것. 전시실 옆 문예 카페에는 대나무로 제작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으며, 지역 음악가를 초청해 정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가사 문학을 전승?보전하는 한국가사문학관, 한국대나무박물관, 가마골생태공원도 추천한다. 박람회 기간 동안 입장권을 소지한 사람은 담양 주요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담양의 고즈넉함까지 덩달아 안고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담양은 군 전체가 하나의 정원이자 문화 예술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녹원, 관방제림 등 잘 보존한 자연환경과 소쇄원?식영정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융합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담양다움’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담양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듯하다.
일상에 스며든 대나무
먹고 마시고 향유하는 나의 일상 속에 대나무는 생각보다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모던한 외모와 똑똑한 기능으로 기성 제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채상 함과 복주머니 아래 작은 바구니를 더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 가방은 서신정 채상장(061-381-4627) 작품. 원형 대바구니는 디자인프로모션에이전시DPA(02-743-0166), 담양에서 가장 토질이 좋은 곳을 선정해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쌀은 대숲맑은 담양쌀(061-383-4503), 뇌질환과 혈관 질환 개선에 효과적인 대나무 기름은 바이오팬더(biopanda.kr), 대나무에 천일염을 넣고 구워 조미뿐 아니라 미용에도 효과적인 대나무 소금은 대향(061-383-8001). 앞쪽 볼과 커틀러리는 친환경 대나무 그릇 브랜드 밤부(www.bambuhome.kr), 천연 죽초액으로 만든 수제 비누는 대나무바이오텍(061-383-9100), 대나무 섬유로 만든 타월은 허그플러스(070-8251-2102), 탁구채는 지우테크(062-974-2170), 댓잎을 삶은 물로 담근 대잎술은 추성고을(061-383-3011), 천연 밀랍으로 만든 향초는 빈도림꿀초(061-383-8130), 사각 도마와 왼쪽 앞 둥근 도마, 샐러드 집게는 모두 밤부, 대나무 자는 DPA, 도톰한 두께감이 돋보이는 빗은 지우테크, 담양 특산품인 참빗은 조아당(061-382-2780). 대나무 안마봉은 대나무코리아(061-381-4770), 오른쪽 앞 테이블 매트와 과도, 포크로 구성한 피크닉 세트는 DPA 제품.
취재 협조 담양군·2015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조직위원회(061-380-2536~2537)
- 오감이 즐거운 녹색 축제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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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은 미래 보고서를 통해 기후와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종으로 대나무를 꼽았다. ‘대숲에서 찾은 녹색 미래’를 테마로 10월 31일까지 열리는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죽세 공예품은 물론 가구, 건축, 섬유, 바이오 산업까지 우리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온 ‘대나무’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볼 수 있다.#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죽녹원 #대나무 #죽세공예품 #담빛예술창고글 이지현 기자, 손지연 기자 | 사진 박찬우, 이승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