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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 내게 가장 특별한 일주일
동경하는 디자이너와 일주일간 밀착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면? 디자인과 건축에 관심 있는 전 세계 친구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심지어 대자연 속에 ‘생산적인 휴식’까지 즐기고 싶다면? 이 모든 것을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에서 누릴 수 있다.

1 부아부셰 디자인 워크숍을 상징하는 성. 안쪽에서는 알렉산더 폰 페게자크 대표의 소장품으로 오리지널 가구 전시를 진행한다.
2 디자이너 시게루 반이 유럽에 처음으로 지은 종이 파빌리언. 

최근 유행어 중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는 인상적인 문구가 있다. 일상도 모자라 휴가 기간조차 바삐 보내야만 ‘잘’ 보낸 것처럼 여기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빗대었기 때문일 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놀멍 쉬멍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뿐 아니라,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가치관까지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생산적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프랑스 남서부에 자리한 1백50헥타르(약 45만 평) 대지에서 보내는 부아부셰Boisbuchet 디자인 건축 워크숍이 바로 그곳이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몽파르나스 역까지 한 시간, 다시 기차를 타고 푸아티에 역까지 두 시간을 달리고서도 자가용으로 한 시간을 꼬박 달리자 한적한 시골 마을에 다다랐다. 비트라 뮤지엄의 알렉산더 폰 페게자크 대표가 25년간 운영해온 세계적 디자인 워크숍인 만큼 으리으리한 표지판이나 ‘웰컴 투 부아부셰’가 쓰인 입구 장식을 상상했지만, 이정표 하나 없이 양옆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선 기다란 숲길을 5분 정도 달리자 부아부셰 성이 윤곽을 드러냈다.

3 목가적인 외관과 달리 현대적인 레스토랑으로 레노베이션한 물레방앗간 내부. 프랭크 게리의 구름 조명등과 론 아라드의 의자가 눈에 띈다.
4 건축가 요르그 슐라이히가 디자인한 밤부 앤드 파이버글라스 돔. 

디자인과 건축에 관한 가장 창의적 워크숍
199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은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프랑스 퐁피두 센터와 국제교육문화센터 등 주요 기관들과 공동 협력으로 개최한다.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약 30여 개의 세미나를 진행하는데, 그해의 테마 아래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을 초빙해 강연을 듣는다. 각 디자이너들은 일주일씩 튜터가 되어 참가자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며, 특히 올해는 세계적 건축 거장이자 우리나라에서는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건축가로 유명한 알바로 자Alvaro Siza, 특유의 위트와 상상력으로 최근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하이메 아욘Jaime Hayon뿐 아니라 국내 텍스타일 디자이너인 장응복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장응복은 아트 퍼니처 작가 최병훈 교수와 옻칠 작가 정해조에 이은 세 번째 한국인 튜터다. 30개의 세미나를 아우르는 올해의 테마는 ‘디자인 앤드 커뮤니티’.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의 디렉터 마르티아스 슈바르츠 클라우스Marthias Schwartz Clauss는 “매년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다룬 흥미로운 주제나 이야깃거리를 눈여겨보아 다음 해의 테마를 정하곤 합니다. 최근 디자이너들의 관심사, 학생들의 선호 분야, 그리고 어떤 작업을 통해 협업하는지 등을 관찰하지요. 다양한 정치적ㆍ사회적 이슈 또한 디자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룰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주제를 선정합니다”라며 알렉산더 대표를 포함해 여러 동료와 토론한 끝에 테마를 정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머무는 동안 워크숍을 진행한 튜터는 총 세 명. 2014년 가을 메종&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선정된 프랑스 출신 가구 디자이너 필리프 니그로Philippe Nigro, 보아즈 코헨Boaz Cohen과 사야카 야마모토Sayaka Yamamoto가 결성한 디자인 그룹 BCXSY, 런던에 기반을 둔 일본 디자이너 신 아즈미Shin Azumi다.

1 로드아일랜드 스쿨과 브라운 대학 등 미국 대학생들이 힘을 모아 만든 테크스타일 하우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친환경 에너지 건축물로 에어비앤비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곳에서 묵을 수도 있다.
2 소리를 음악으로 만드는 신 아즈미의 세미나 모습.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부아부셰
세미나는 부아부셰의 광활한 대지를 ‘관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16~19세기에 지은 오래된 성과 별관, 농장과 물레방앗간, 호수 등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펼쳐지는데, 그 사이사이로 튜터와 참가자들이 손으로 빚은 워크숍 결과물과 작업 공간 등이 자리한다.

물레방앗간은 알렉산더 대표가 맨 처음 진행한 레노베이션 프로젝트. 우크라이나 학생들을 초빙해 낡은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변모 시켰다. 목가적 분위기의 외부와 달리 내부에 들어서면 프랭크 게리의 구름 조명등이 머리 위를 떠다니고, 론 아라드의 의자로 인테리어 완성도를 높였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건축물은 테크스타일 하우스Techstyle Haus로, 2년 전부터 로드아일랜드 스쿨과 브라운 대학 등 미국 대학생들이 힘을 모아 만든 건물이다. 지붕과 테라스 난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친환경 에너지 건축물인 셈. 이 외에도 시게루 반이 유럽에 처음으로 지은 건축물인 종이 파빌리언, 일본식 게스트 하우스, 건축가 요르그 슐라이히Jorg Schlaich가 디자인한 밤부 앤드 파이버글라스 돔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재료 접목과 공법 등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 즐비하다.

부아부셰 성 내부에는 알렉산더 대표의 소장품으로 구성한 전시를 진행하는데, 올해의 주제는 ‘테이블’이었다. 특히 상호작용이라는 연결 고리로 워크숍의 전체 테마인 ‘디자인 앤드 커뮤니티’와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워크숍의 테마와 전시 주제가 항상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마르티아스는 “의자는 한 사람을 위한 가구이고 선반은 수납을 위한 가구지만, 테이블은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연결 고리이자 매개체라는 점에 집중했다”며 이번 전시를 설명했다. 실제로 직접 본 전시는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낡은 성 내부와 세계적 거장들의 오리지널 가구가 뿜어내는 오라가 대조돼 매우 인상적이었다.

3 부아부셰 성에서 열린 올해의 전시 주제는 ‘A table’. 가족끼리 상호작용과 소통을 하는 테이블에 주목했다.
4 참여자들이 일주일 동안 만든 결과물을 서로 공유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리. 

배우는 것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 포인트
오전 8시 아침 식사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을 먹은 후 튜터와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는데, 장소는 세미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세부 주제를 선정하는 것부터 어떤 재료를 선택해 어떤 아이템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와 가치 등을 정하는 데 아무리 시간이 오래걸려도 모두의 의견을 듣고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것.

내가 참여한 디자인 그룹 BCXSY의 워크숍 주제는 ‘Between Spaces’로 커넥팅과 디스커넥팅이라는 소제로 진행했다. 워크숍과 참여자들, 워크숍 공간과 외부를 연결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입구 사인을 만들기로 했는데, ‘입구 사인’이라는 손에 잡히는 아이템을 결정하기까지 일주일 중 팔 할을 할애했다. 입구 범위를 정의하기 위해 꼬박 이틀에 걸쳐 주변 환경을 탐색했고, 반나절은 워크숍의 디렉터 마르티아스와 토론했으며, 세 개 소그룹으로 나눠 입구 사인의 형태와 소재,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눈 뒤 겨우 목업mockup을 제작했다. 모든 과정은 각자의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는 형태였으며, 주제와 일맥상통할 만큼 ‘연결, 소통’되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정을 거쳐 평범한 한국인으로 자란 나로서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중국ㆍ독일ㆍ레바논 등에서 온 다른 참여자들은 평온한 것도 모자라 여유롭기까지 했다. 목요일쯤 되어서야 디자인 앤드 커뮤니티라는 큰 흐름 아래 디자인만 중시하고 커뮤니티는 안중에도 없던 나의 사고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참여자들은 점심시간에도, 티타임에도, 저녁에도 자유롭게 세미나에 참석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킨 것. 금요일 오전이 되어서야 대나무만 사용해 만든 입구 사인이 완성되었다.

참여자들이 직접 물레를 돌린 뒤 도자기를 굽거나 유리공예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는 코닝 가마. 2005년부터 뉴욕의 코닝 유리 박물관이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에서 유리공예와 도자기공예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필리프 니그로와 신 아즈미의 세미나도 결실을 거둬 다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Doors Opening’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필리프 니그로의 세미나는 세 팀으로 나뉘어 각자가 생각하는 문, 다리, 커튼, 창문 등 ‘통로’를 선보였다. 신 아즈미의 세미나는 ‘Sound-Body-Environment’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과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세 팀 중 가장 활동적이고 적극적 퍼포먼스 덕분에 참여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노련미가 엿보였다. 대만에서 온 위챈Yuchan은 “나무 수종 관련 업무를 하는데, 디자인과 건축으로 영역을 넓히고 싶어 이번 워크숍을 찾았다”며 BCXSY와의 세미나를 통해 디자이너가 제품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과 과정을 경험했다며 만족해했다. 한편 독일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 김종대는 “동경하는 디자이너와 함께한 일주일도 즐거웠지만, 같은 분야를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한 여러 나라의 친구를 만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참여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며 소감을 밝혔다.

메인 세미나 외에도 매일 밤 9시부터 세 명의 튜터가 자신의 작업물과 디자인 철학에 대해 조언해준 강의, 수요일 밤에 열리는 코스튬 파티, 호숫가에서 카누를 타고 수영을 하며 즐긴 여가 시간까지…. 디자인 여행이자 서울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대자연의 호사로 얻은 재충전의 경험은 그야말로 행복 자체였다. 디자인과 건축, 전방위적 예술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든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에 도전해볼 것을 추천한다. 무궁무진한 기회로 넘쳐나는 부아부셰에서 어떤 기회를 얼마만큼 잡을 지는 오롯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으니.


올해 주목받은 세미나 세 가지
내가 참여한 BCXSY의 세미나를 통해 완성한 입구 사인. 자연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부아부셰 영토의 범위가 드러나야 하고, 화려하거나 상업적이지 않아야 했다. 모든 부분은 대나무를 이용해 만들었으며, 참여자들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모빌을 달았다.
올해 튜터로 참여한 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은 참여자들과 함께 파고다를 제작했다. 석탑을 연상케 하는 이 종이 파고다의 매력은 안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여자들이 한국의 전통 조각보를 직접 바느질해 패치워크로 내부를 꾸몄다.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세미나는 디자인 그룹 미셔 트랙슬러Mischer’traxler의 ‘It takes more than one’. 둘 이상이어서 더욱 즐겁고 재미있는 오브젝트를 완성했다. 그중 호수에서도 마음껏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든 ‘떠오르는 테이블’이 눈에 띈다.

Interview
디자이너 신 아즈미Shin Azumi
눈사람 형상에 구멍이 송송 난 어센틱스Authentics의 후추통을 시작으로, 카페마다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라팔마Lapalma의 바 스툴 렘LEM,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레데리시아Fredericia와는 나라NARA 시리즈를 론칭한 세계적 디자이너다. 런던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며, 현재 에이 스튜디오A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벌써 여덟 번째 참여다. 계속해서 당신을 끌어당기는 부아부셰만의 매력은?
13년 전, 처음으로 이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 나는 정말 즐거웠다. 모든 체계나 서비스가 완벽했고, 자연 속에 녹아들 수 있는 모든 구조가 편안했다. 머무는 동안 완전한 휴식을 취하면서도 집중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래서 2~3년마다 꾸준히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강연과 워크숍을 경험했지만, 이곳이야말로 디자인 워크숍을 위한 완벽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워크숍 주제는 당신의 작업이나 기호와 얼마만큼 관련이 있나?
그동안 이곳에서 진행한 나의 프로젝트는 언제나 엔터테인먼트와 관련 있다.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창조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매번 이슈는 다르지만, 올해에는 특별히 소리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 소리는 꼭 음악만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접근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색소폰에 심취해 있어 브라스밴드 클럽 활동도 할 정도다. 나에게 음악은 매우 인터랙티브한 존재인데, 제품 디자이너로서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제품과 제품 관계를 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밴드에 참여하는 악기들이 서로의 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듯, 테이블웨어를 디자인할 때도 테이블과의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강연에서 보여준 프레젠테이션은 당신의 작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맙다. 대개의 디자이너는 작업이나 자신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지만, 나는 벌써 여덟 번째 참여다. 매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참여자에게 실용적이고 유용한 내용을 전하고 싶었다. 제품을 개발할 때에 디자이너 역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영감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그리고 그다음으로 발전하기까지 어떠한 단계를 거치는가, 만일 오류가 생겼다면 어떻게 바로잡고 개선해나갈 것인지 등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내가 겪은 착오와 경험, 발전 과정을 A부터 Z까지 세세하게 담았다.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을 더 잘 즐기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이곳의 주변 환경을 잘 둘러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부아부셰는 디자인 영감을 얻고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장소다. 훌륭한 튜터와 모든 재료, 기기와 시설, 친절한 서비스가 고루 갖춰졌다. 이 모든 것을 잘 버무려서 부아부셰의 광활한 자연과 컬래버레이션을 이루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 때문에 나 역시도 부아부셰를 방문할 때마다 늘 기대되고 설렌다. 


취재 협조
부아부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www.boisbuche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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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지연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