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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앤설 애덤스Ansel Adams 사진으로 쓴 산시詩
1916년 미국 요세미티와 시에라 지역을 탐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1984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연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가가 있다. ‘존시스템’이라는 명암 계조를 정립해 풍경의 가장 완벽한 재현을 꿈꾸던 ‘산 남자’ 앤설 애덤스. 그가 셔터를 누르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고 수십 번 인화를 반복해온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자연과 우주를 향한 신성한 의식이자 경외 그리고 끝없는 존경의 표현이다.


미국 서부 골든게이트 해협의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성장한 소년 앤설 애덤스는 일찍이 ‘자연을 아는 몸’이었다. 거의 매일 로보스크리크Lobos Creek의 구불구불한 골짜기와 모래언덕 사이를 걸었으며, 베이커Baker 해변의 암벽을 따라 길고 긴 하이킹을 즐기곤 했다. 어쩌면 훗날 그가 요세미티에 매료되어 필드 카메라를 잡은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유복한 집안의 늦둥이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계곡을 더욱 좋아했다. 네 살 때 지진으로 낙상 사고를 당한 후 ‘비뚤어진 코’ 때문이기도 했다. 휜 채로 화석처럼 굳어버린 코는 그를 부끄러움 많이 타는 아이로 만들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서 홈 스쿨링을 받아야 했지만, 그의 휜 코가 그를 사진 작업에 몰입하도록 만든 셈이니 오히려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앤설 애덤스가 요세미티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이 사진이 대체 왜 유명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그만의 독보적 기술에 있다. 사진가 그룹 f/64의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이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폴 스트랜드Paul Strand 등 사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진가들이 앤설 애덤스에게 기술적 조언을 구할 만큼 이론과 기술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세상의 빛을 평가해 명암 대비를 0부터 11단계로 나누어 적정 노출을 결정하는 존시스템을 개발해 사진을 인화했다. 이는 촬영, 현상, 인화 과정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사진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다. 한마디로 사진 교과서라고나 할까? 10년 전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디지털 사진은 아날로그 방식의 사진과 비교해 색 재현과 해상도가 현격히 떨어졌고, 절대 아날로그 프린트의 풍부한 계조를 따라갈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기준이 된 사진가가 앤설 애덤스였다. 이른바 ‘완벽한 촬영과 프린트’라고 평가받는 그의 인화법은 당시 디지털 사진 기술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인’, 즉 대가의 사진! 그가 사진 역사에서 그런 독보적 존재가 된 계기는 요세미티와 시에라를 만나면서부터다. 태곳적 기운이 살아 있는 자연과 경이로운 암벽에 압도된 앤설 애덤스는 1916년부터 이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1919년 시에라네바다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단체인 시에라 클럽에 가입하면서 요세미티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 그는 이곳에서 미국 환경보호 운동의 멤버들과 교류했고, 아내인 버지니아 베스트도 이곳에서 만나 1928년 결혼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곳에 평생 열정을 쏟게 만들었을까? 30대에 시에라 클럽을 창립한 환경 운동가이자, 1914년 죽는 날까지 요세미티 지역 보전을 위해 노력한 존 뮤어의 철학과도 일치한다. 존 뮤어는 1869년 요세미티에서 보낸 여름을 기록한 책 <나의 첫 여름> 에서 이렇게 썼다.

“수목으로 둘러싸인 강 유역에선 수많은 소리가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다. 당당하게 흐르다 몰아치기도 하고 기뻐 날뛰며 휩쓸어가기도 하는 물결은 물에 잠긴 사초의 잎사귀와 덤불, 이끼 낀 바위들을 애무하면서, 꽃으로 뒤덮인 섬에 부딪쳐 나뉘기도 하고, 여기 저기서 하얗게 혹은 잿빛으로 돌변하지만, 늘 기쁨이 넘치고 대양을 떠올리게 하는 굵고 진지한 저음이 되기도 한다. 이 강물 옆엔 항상 용감하고 귀여운 새가 함께하며, 춤추듯 가볍게 움직이는 종 모양의 거품 사이에서 상냥한 사람의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니, 마치 하느님의 사랑을 설명해주는 신성한 복음 전도자처럼 들린다.”

1934년까지 시에라 클럽의 이사를 맡은 앤설 애덤스는 야생과 환경 보호를 알리기 위해 언론사와 정치인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고 만났다. 국립공원과 원시 지역과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빅서 해안을 위해, 위험에 빠진 바다사자와 해달들을 위해, 그리고 맑은 공기와 물을 위해 투쟁했다. 그것이 바로 앤설 애덤스의 소명이자 재능이며 존재 이유였으리라. 그 평생의 열정을 담은 사진 전시 <딸에게 준 선물 - 안셀 아담스 사진전>이 반가운 이유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그가 생애 마지막 선택한 최고의 사진 72점을 만날 수 있다(10월 19일까지). 모두 앤설 애덤스가 직접 인화한 흑백 은염 사진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다. 평생 요세미티를 기록하며 환경보호 운동에 앞장선 사진가 앤설 애덤스, 그가 카메라로 쓴 산시時를 만나보자.

‘Moonrise, Hernandez, New Mexico’, 1941

뉴멕시코 헤르난데스 산을 배경으로 해 질 무렵 촬영한 작품. 당시 앤설 애덤스는 에스파놀라 고속도로에서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자동차 안에는 당시 여덟 살이던 아들 마이클과 친한 친구인 세드릭 라이트가 함께 있었는데, 그는 이 풍경을 보자마자 차를 세우고 급히 뛰쳐나가 카메라를 설치했다. 순식간에 해가 지면서 암흑으로 변했고, 순간을 담은 단 한 장의 사진만이 남았다. 현재까지 팔린 모든 사진 작품 중 일곱 번째로 비싼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Moon and Half Dome, Yosemite National Park’ 1960

월광 아래 선명한 얼굴을 드러낸 하프돔은 1960년에 하셀블라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주로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던 앤설 애덤스는 1950년 빅토르 하셀블라드가 자신이 발명한 카메라를 선물하면서 하셀블라드를 즐겨 사용했다. 하셀블라드 카메라의 특징인 정사각 포맷 사진이 아닌 이유는 그가 촬영 후 수직 비율로 편집했기 때문이다. 그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완성될 사진의 규격을 염두에 두고 촬영했다.

‘Mt. McKinley and Wonder Lake, Denali National Park, Alaska’, 1947

앤설 애덤스는 성공한 사진가였지만 좋은 아빠는 아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열여덟 시간씩 일했고, ‘파티맨’이라 불릴 만큼 활동적인 사람이 었기 때문이다. 그의 딸인 앤 애덤스 헬름은 “아버지는 항상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고, 가족 여행을 떠난 적도 없다”라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1947년 6월 구겐하임재단에서 받은 장려금으로 아들 마이클과 알래스카 여행길에 찍은 희귀 사진. 산등성이에 올라 세찬 바람과 싸우며 대형 카메라를 힘겹게 고정한 다음 겨우 촬영해 이 사진을 얻었다.

‘Mt. Williamson, Sierra Nevada, from Manzanar, California’, 1944

1943년 가을, 앤설 애덤스는 캘리포니아 주 만자나 지역에 머물며 사진을 촬영했다. 만자나에서 바라보는 윌리엄슨 산을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카메라에 담았지만 대부분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산 정상에서 발생한 폭풍 때문에 웅장한 구름 형태를 담을 수 있었던 것. 구름이 만드는 격렬한 빛줄기와 그림자가 어우러져 극적인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화 작업이 끔찍하게 어려웠다. 중간 계조의 풍부한 톤을 만들기 위해 인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해야 했다.

‘Frozen Lake and Cliffs, Sierra Nevada, California’, 1932

1932년 앤설 애덤스 부부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의 고지대를 4주간 하이킹하는 시에라 클럽 하이 트립Sierra Club High Trip에 참여했다.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뜻을 모은 클럽 회원 2백 명과 함께 매일 약 24km를 걷는 꽤 고된 일정이었다. 낮에는 끊임없이 걷고, 저녁에는 모닥불가에 모여 앉아 음악 공연을 감상했다. 앤설 애덤스가 빙벽과 호수를 촬영하는 동안 아내는 곳곳에 빙하 조각이 떠다닐 만큼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을 즐겼다고 한다. 당시 셔터를 총 여섯 번 눌렀는데, 이 사진은 그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사진 #앤설 #애덤스
글 신진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