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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총괄 건축가 승효상 [눈 맞춤] 시민이 눈 맞추는 보행 도시를 꿈꾸며
두 사람이 4분간 눈을 떼지 않고 서로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난겨울 <뉴욕타임스>의 칼럼이 심리학자 아서 에런Arthor Aron의 ‘4분간 눈 맞춤을 하면 관계가 더욱 깊 어진다’는 신기한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동영상 ‘How To Connect With Anyone’을 찾아보세요. 낯선 남녀, 네 번 데이트한 연인, 1년간 사귄 커플, 아기를 낳은 커플, 중년 부부, 55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실험이 나옵니다. 참가자들은 처음엔 눈 맞추기를 쑥스러워하지만, 서로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자 활짝 웃고, “아내와 눈 맞추는 게 이렇게 멋진 일인지 이제야 알았다”며 무릎을 치고, 상대와 예전처럼 입 맞추고 싶어하지요. 4분이 지나자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껴안고 손을 어루만지고 함께 춤추는 멋진 장면으로 끝나는 이 동영상은 5백만여 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랑하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더욱 아껴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나요? 그 사람과 조용히 눈 맞춰보세요. 가족은 물론 반려견과 내가 사는 도시까지, 우리가 주변과 눈 맞춤을 해야 하는 속 깊은 이유를 소개합니다.


영화 <노팅힐>에는 주인공 휴 그랜트가 집을 나서서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까지 걸어가는 과정을 느린 속도로 촬영한 장면이 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고, 채소 가게 아줌마는 웃고 신문 가게 아저씨는 찡그리고, 청년은 시시덕거리고 남녀가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 카메라가 배우의 눈이 되어 런던의 고즈넉한 거리와 눈을 맞추는 장면이다.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낯선 도시와 애틋한 눈 맞춤을 한다. 골목골목을 걸어보고, 하늘로 솟은 성당의 첨탑을 올려다 보고, 상점의 유리창에 코를 대고 들여다보고, 공원을 산책하며 바람을 느끼고, 노천카페에 앉아 타인의 티타임을 관찰하며 여행을 즐긴다. 우리는 이토록 여유롭고 적극적으로 도시, 즉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눈 맞춤을 잘 할 줄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내 도시로 돌아온 후의 모습은 어떤가? 회사를 향해 가장 단시간에 질주하는 교통편에 탑승해 이왕이면 혼자 앉는 자리를 골라 앉은 후 햇살이 드는 창 반대편으로 고개를 숙여 휴대폰 액정을 스크롤한다. 창문 밖에 거리 대신 앞 동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서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세상을 보고, 온라인의 친구와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사회성이라는 본능이 점점 퇴화해서, 이제는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도 귀찮은 마음부터 든다. 사람과 주변 환경에 대한 이런 무감각 증상을 전문가들은 ‘인간성의 상실’이라 하고, 승효상 서울시 총괄 건축가는 ‘모더니즘의 원죄’라고 설명한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이 기계 속도에 맞춰 살기 시작하면서 도시 공동체가 무너졌어요. 자동차로 상징되는 속도의 문화, 기능주의와 효율성을 중시하면 목표 생산량과 분담률을 정하죠. 그 분담률 안에서는 각각의 사람이 자기 역할만 하면 되니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거나 소통할 필요가 없어요. 그때부터 도시 지도에 주거 지역, 상업 지역, 공장 지역 등을 구별하는 색깔이 등장했습니다. 이제 지도에 표기하는 중요한 선은 사람이 아닌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에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이 지도에서 사라진 거죠.”

이처럼 공동체가 무너지고, 가족이 붕괴되고, 가상현실의 착각 속에 사는 도시. 황망한 공상 과학 영화처럼 변해버린 이 현실을 영화 <노팅힐>처럼 서정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유능한 감독이 있다면, 그것은 건축과 도시 재생이다. 세계 선진국의 도시가 ‘워커블 시티walkable city’, 즉 보행 친화적으로 도시 재생에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행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보행을 한다는건 걷다가 쉬다가 만나고 눈 마주친다는 의미예요. 보행로 곳곳에 사람이 쉬고 만나고 눈 마주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죠. 그래서 중요한 게 공공 영역입니다. 미개한 도시일수록 공공 영역이 개인 건물 때문에 단절되고, 앞선 도시일수록 개인의 영역 일부를 공공에게 내주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뉴욕의 거리를 걷는 사람은 유리로 만든 거대한 아트리움인 윈터가든 로비에서 쉬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이 윈터가든이 IBM 본사 로비, 즉 개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뉴욕 시민은 많지 않다. 개인 건물이 보행로와 다른 보행로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니 보행로가 도시 어디로든 실핏줄처럼 건강하게 연결되는 것.

반면 우리의 도시를 걸으면 곳곳에서 혈전 현상 때문에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가쁘다. 코 앞에 있는 곳에 가려는데도 거대한 건물의 담 때문에 한참을 돌아가야 하고, 행인이 앉을까 봐 로비에 작은 벤치 하나 놓지 않은 건물도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담장을 조금만 터도 오솔길 같은 보행로가 생기는데, 이런 공공성이 건축의 기본 책무라는 것을 인지하는 문화가 시민에게도 건축가에게도 아직 부족하다.

“도시 재생에서 중요한 건 ‘즐거운 불편함’일지도 모릅니다. 초인종이 울리면 인터폰을 누르는 대신 신발을 신고 나가서 직접 사람을 맞이하고, 자동차를 타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대신 천천히 걸어 다니는 등 건축과 도시가 조금 불편해지면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만나고 그 만남으로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 살펴보고 느끼면서 인간성을 더 많이 회복하겠지요.”

다행히 서울에는 보행 친화 도시로 변화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역 고가, 1960년대에 남산에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보행로로 설계한 세운상가의 덱, 광화문 광장 주변, 서울성곽이 원래 모습이었던 보행로로 바뀐다. 예전처럼 막힘 없이 연결된 서울성곽이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되는 2017년쯤이면 서울이 기능주의 도시가 아닌, 걷고 생각하고 사람끼리 눈 맞춤을 하며 사는 인문 도시로 변화할 것이라고 승효상 서울시 총괄 건축가는 설명한다. 요즘도 혜화동 사무실에서 서울시청까지 즐거운 불편함을 경험하며 40여 분을 걸어서 출근하는 그에게 서울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아이들이 새로운 공간과 거리 풍경을 경험하고, 즐거운 불편함 때문에 삶이 여행처럼 설레고 흥미로워질 미래 도시가 시민 앞에 마주 보고 있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