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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 [눈 맞춤] 가족과 눈을 맞춘다는 것
두 사람이 4분간 눈을 떼지 않고 서로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난겨울 <뉴욕타임스>의 칼럼이 심리학자 아서 에런Arthor Aron의 ‘4분간 눈 맞춤을 하면 관계가 더욱 깊 어진다’는 신기한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동영상 ‘How To Connect With Anyone’을 찾아보세요. 낯선 남녀, 네 번 데이트한 연인, 1년간 사귄 커플, 아기를 낳은 커플, 중년 부부, 55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실험이 나옵니다. 참가자들은 처음엔 눈 맞추기를 쑥스러워하지만, 서로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자 활짝 웃고, “아내와 눈 맞추는 게 이렇게 멋진 일인지 이제야 알았다”며 무릎을 치고, 상대와 예전처럼 입 맞추고 싶어하지요. 4분이 지나자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껴안고 손을 어루만지고 함께 춤추는 멋진 장면으로 끝나는 이 동영상은 5백만여 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랑하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더욱 아껴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나요? 그 사람과 조용히 눈 맞춰보세요. 가족은 물론 반려견과 내가 사는 도시까지, 우리가 주변과 눈 맞춤을 해야 하는 속 깊은 이유를 소개합니다.


얼마 전 종영한 <풍문으로 들었소>는 환경과 가풍이 서로 다른 두 가정의 상반된 삶을 관찰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 국내 최고 로펌을 이끄는 변호사 한정호(유준상 분)는 한옥 저택에서 우아하고 고상한 아내와 똑똑하고 순종적인 아들, 귀여운 딸과 함께 산다. 하지만 그는 식탁에서, 거실에서 일방적으로 가족 구성원을 가르치고 지시를 내리며, 그래서 아이들은 아버지와 눈도 맞추지 못한 채 풀 죽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만 한다. 반면 서형식(장현성 분)의 낡고 좁은 집엔 가식 없는 눈 맞춤과 조잘거림이 가득하다. 저녁 밥상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힘든 삶을 푸념하고, 서로 위로하며 울고 웃는다. 가끔은 서로에게 짜증도 내고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하는 서형식의 가족이 차분하게 눈 내리깔고 모진 말로 상처 주는 한정호의 가족보다 더 행복하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눈 맞춤이 왜 중요할까?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모든 소통의 기본이며, 교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서울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는 환자를 진료실에서 마주할 때 가장 먼저 그의 눈을 바라본다고 한다. “얼마나 눈을 잘 마주치는지, 지나치게 수줍어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지를 보면 환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지요. 눈 맞춤은 가장 기본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자 감정 표현의 도구이고, 긍정과 사랑 같은 신뢰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대로 타인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히 타인과 신뢰 관계를 맺기도 힘들뿐더러, 타인을 통해 감정적 위안과 치유를 받기도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기본 구조이자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 간의 관계에서 눈 맞춤이란 어떤 의미일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맞벌이 부부, 부모와 떨어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 한집에 살아도 하루 한 끼 같이 먹기 벅찬 우리 시대의 가족들. 예전에 비해 현대사회의 가족 구성원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서로 간에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서 친밀도와 교감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김병수 교수는 눈맞춤이야말로 악수나 포옹, 귓속말, 스킨십 같은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친밀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눈을 마주치면 교감의 질도 높아진다.

눈을 마주치는 빈도가 잦을수록 감정과 정서를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 맞춤 없이는 완전한 소통도 없다. 그래서 가족 간의 눈 맞춤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가족끼리 눈을 맞추는 일은 애정과 관심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필요 조건이자 모든 것인 셈이다. “우리는 대부분 가족끼리 시간을 내서 대화를 하거나 굳이 애정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이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서로 함께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얘기할 수 있다고,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눈을 바라보며 소통해야만 감정이 충실하게 전달될 수 있어요.”


반면 이러한 가족 간의 정서적 눈 맞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관계는 자연히 소원해진다. 실제로 김병수 교수는 가족 간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서로 눈길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된 부부들이 상담을 하러 옵니다. 서로에게 화가 나있을 경우에는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상대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럴 때 눈 맞춤의 강도가 더 강해지기도 합니다. 눈맞춤에 꼭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럴 때 김병수 교수가 환자에게 해주는 처방은 ‘미워도 손잡고 잘 것’이다.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손잡고 자면 어느 순간 마음이 풀린다는 말이 있죠? 내가 아직 화가 나 있거나, 당장 아무 일 없었던 듯 얘기를 주고받기 어색해도 상대에 대한 감정 상태가 좋은 것처럼 행동하면 관계를 개선할 수 있어요.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그러느냐고요? 결국 마음은 말과 행동을 따라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김병수 교수는 아무리 잘해드려도 계속 화만 내는 노모가 있다면 말로 화를 풀어드리려 하지 말고 잠시만이라도 손잡고 마주 앉아 눈을 맞추라고 제안했다. 사람을 감화시키는 건 언어와 논리가 아닌, 접촉과 교감이라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 간에도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일상의 소재들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고 울어야 서로 밀도 높은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가장 가깝고도 먼 타인이 아니라 진정한 가족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기에 가장 가까운 타인, 또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엔 어색할 수 있어도 마주 앉아 눈 맞추고, 손잡고, 대화하고, 안아주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라. 모든 소통의 시작은 눈 맞춤에서 시작하고, 언어와 논리가 아닌 오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만이 사람의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 유주희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