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밤이 되면 왜 하늘이 까맣게 돼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갑자기 우주 어딘에선가 날아온 신비로운 존재인 여섯 살 아들의 입에서 우주적 질문이 어제도 펑, 오늘도 펑 하고 터져 나온다. 옥수수 알갱이의 수분이 수천 배의 수증기로 팽창해 고소한 팝콘이 되는 것처럼, 아이가 자라매 그 작은 뇌가 호기심 천국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어린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 모든 게 궁금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 아이에게 ‘조용히 해!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며 무시하면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가 주눅 들고, 어른이 되면서 눈에 반짝임이 사라져버리죠. 저는 지금도 장난꾸러기이고 호기심이 많아요. 그게 로봇 개발의 원동력이죠. 그러니 부모는 아이가 질문을 계속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질문하는 아들, 실험하는 아빠
미국 UCLA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로멜라RoMeLa 로봇 연구소 소장인 데니스 홍 교수 부자의 호기심 해결 과정은 한바탕 놀이로 진행된다. 일단 스마트폰의 동영상 기능을 켜고 “지금부터 밤하늘이 어두워지는 과정을 알아봅시다!” 아빠와 아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러곤 아들이 갖고 노는 공에 스마트폰을 테이프로 칭칭 감고 거실의 조명 불빛 앞에서 데구루루 굴린다. 공에서 스마트폰을 떼낸 다음엔 다시 명MC의 등장! “자, 공이 굴러가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빠, 궁금해요!” 녹화된 영상에는 조명 아래서 공이 굴러가는 동안 불빛이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장면이 찍혔다. 이 재미난 놀이로 둥근 지구의 자전 원리를 여섯살 아들은 온몸으로 즐겁게 받아들였다.
대학교수니까, 여유로운 미국에서 사니까 아이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말씀. 하루 일과를 묻자 데니스 홍 교수는 자신의 일과를 저녁 시간부터 거꾸로 설명했다. 매일 저녁 6시, 학교를 나선 그는 파머스 마켓에 가서 농부들이 수확한 그날의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곧장 집으로 온다. 주방의 테이블 위에 오늘의 재료를 쫙 펼쳐놓고는 “이것과 저것이 만나 볶이고 섞이면서 아삭 깨물면 으쓱 어깨가 올라가는 맛이 나겠지”라는 분석과 가설을 세우면서 즉석요리를 시작한다. 기대와 똑같은 맛이 탄생한 대다수의 날은 세 식구가 맛있게 저녁을 먹고(그는 미국 최고 요리 쇼인 마스터 셰프 USA에도 로봇을 대동하고 출연했다), 예상 밖의 몹쓸 맛이 나온 극소수의 날은 미련 없이 외식을 한다. 저녁 식사 후엔 한바탕 놀이 시간. 아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노는’ 그 시간이 그에겐 최고의 행복이다.
무인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그의 팀과 함께.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학생들과 도전해보자는 뜻으로 만든 이 팀은 60명 중 교수는 넷이고 대부분이 학부생이었다. 이 로봇 자동차의 이름은 오딘이고, 3등을 했다.
“초등학교 3~4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이 세상 모든 아이에게 마음껏 놀 권리가 있어요. 학교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아이가 스스로 진짜 재미있어 하는 것, 유년기에는 그런 것을 실컷 하도록 도와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무리 과학자 아빠라도 아이의 우주적 질문에 모두 답할 수는 없는 법.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이면 아들과 함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백과사전을 찾아본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너는 왜 그런 것 같니?”라고 생각의 공을 슬며시 아이에게 패스하거나, “그건 아빠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라는 동문서답도 한다. “이 대답도 아주 중요해요. 말이 안 되지만 아이는 질문에 답을 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모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아이에게 충분히 주는 게 중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질문이든 막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아이의 호기심이 젖은 팝콘처럼 사그라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실컷 놀고 밤 10시가 되면 세 식구가 다 같이 잠자리에 듭니다. 매일 밤 저만 몰래 일어나 로봇 연구소로 가죠. 거기에는 디즈니랜드보다 연구소가 더 재미있다며 밤샘 공부를 자처하는 제자들이 있어요. 학생들과 연구하는 그 시간이 저에게는 또 행복이에요. 매일 새벽 3~4시까지 연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4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 8시, 세 식구가 다 같이 일어나 창문을 열고 캘리포니아의 바람을 맞으며 아침 식사를 하죠.” 야근이 많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고 토로하는 한국의 부모에게 로봇공학자가 보내는 펀치!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정의 행복이 이 세상 모든 행복의 기초이기 때문에 아이와 노는 시간은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일격이다. 비록 매일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연구실 문을 잠그고 15분간 낮잠을 자더라도 말이다. 수년째 같은 패턴으로 살다 보니 그는 이제 점심 식사 후엔 의자에 앉자마자 잠이 들고, 정확히 15분 후에 로봇처럼 눈을 뜬다. 아들과 실컷 놀아주기 위해, 좋아하는 로봇 연구를 밤 시간에 하기 위해 낮에 배터리를 충전하는 터미네이터 교수의 지능적 인체 공학이다.
로봇 축구 대회인 로보컵 2011의 모습. 이날 로멜라 로봇 연구소의 찰리가 성인 부문에서, 다윈-OP가 어린이 부문에서도 우승했다. 데니스 홍 교수가 이끄는 팀은 지금까지 5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생각과 생각을 연결해주는 아빠
사고방식이 미국식이라 가족을 위한 이 같은 노력이 가능할까? 그 또한 모르는 말씀.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을 지낸 홍용식 박사의 둘째 아들인 데니스 홍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한국에 왔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칠 때까지 중ㆍ고등학교 시절을 전부 한국에서 보냈다. 고3 수험생일 때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공부만 하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긴 인생에서 몇 년 공부만 한들 어떠랴”를 주문처럼 외우며 친구들처럼 죽기 살기로 공부만 했다. 대학만 가면 이룰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로봇공학자! 일곱 살 때 극장에서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넋이 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번에 마음먹은 꿈이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배를 콩콩 차며 장난을 치는 통에 아버지가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의 캐릭터와 같은 ‘데니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어서였을까.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었던 홍원서(한국 이름) 어린이의 사건 사고는 유치원 때부터 파란만장했다. 청소기, 세탁기, 라디오 등 집 안의 가전제품은 죄다 분해했고, 컬러 TV라는 신기한 물건이 집에 도착하자 부모님이 외출한 틈을 타 그것마저 분해했다. 다른 잘못에는 세 남매를 엄격하게 꾸짖는 부모였지만, 호기심 천국을 해결하려 벌인 일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홍용식 박사는 아들 방에 망치, 드라이버, 펜치, 칼 같은 공구가 있는 공작대를 손수 만들어주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 비커, 시험관, 플라스크까지 선물했다. 새로운 실험 도구가 놓인 공작대는 더없이 근사했다. 형과 누나와 함께 식초와 베이킹 소다를 섞은 로켓엔진을 그 공작대에서 만들었고, 나중에는 폭죽의 재료에서 착안해 높이 솟아 날아가는 로켓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누나와 형과 함께 의기투합해 과학책과 잡지를 참고 삼아 진행한 ‘삼 남매 프로젝트’의 결과물. 데니스 홍 교수는 “우리가 만든 첫 로켓이 성공했지만. 그보다 소중한 건 첫 실수이자 실패였다. 호기심은 창의력의 시작이니까”라며 이 시절을 추억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아주 바쁘셨을 텐데 주말에는 꼭 우리와 놀아주셨거든요. 박물관이나 여행도 많이 데려가셨어요. 질문을 하면 늘 답해주시고 실험도 같이 해주셨죠.”
사람들은 흔히 생각이 갑자기 ‘퐁’ 하고 솟아나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창의성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창의성은 이 생각 저 생각, 평소 알던 이 지식 저 지식을 연결해 유용한 무엇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니 평소 머릿속에 서로 연결할 ‘거리’가 많아야 그만큼 뛰어난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뜻이다. 그 연결거리가 바로 박물관과 미술관 방문, 낯선 곳으로 여행, 책 읽기 같은 체험에서 나온다. 데니스 홍 교수가 자신의 아들이 신나게 놀며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마음껏 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이 부모에게서 받은 그 무궁무진한 연결거리의 중요성을 학자가 된 이후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 고려대에 들어갔더니 교수 연구실로 찾아간 그에게 “신입생이 무슨 연구야… 쯧쯧”이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풀이 죽었다. 그런데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갔더니, 동년배 학생도 연구에 참여하는 게 아닌가! 문화 충격을 받은 그는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로 편입했고 인디애나 퍼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곤 2004년, 버지니아 공대 교수가 되어 그의 로봇 연구소 로멜라를 11년간 이끌었고, 작년에는 UCLA의 기계 공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로봇 연구 센터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용 자동차인 데이비드를 첫 시운전하던 날. 이날 시운전을 맡은 시각장애인 웨스의 얼굴에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행복이 가득해 지켜보는 이들도 큰 감동을 받았다.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빠
로멜라 로봇 연구소의 성과는 눈부시다. 데니스 홍 교수는 과학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의 젊은 천재 과학자 10인에 선정되었고,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젊은 과학자상’ ‘GM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호기심에 두 눈이 반짝반짝이는 그는 수많은 여행과 경험에서 관찰한 많은 ‘거리’를 노트에 메모하고 그린다. 신기술이 필요할 때마다 그 노트를 펼치면 10년 전 스케치에서, 5년 전 메모에서 다른 공학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팝콘처럼 경쾌하게 터져 나왔다.
예를 들어 커리어 어워드라는 영광스러운 상을 안겨준 아메바 로봇은 손으로 움켜잡으면 다른 쪽이 볼록해지는 긴 물풍선 장난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로봇이 아메바처럼 기어 다니니 아주 작게 만들면 사람 몸속을 촬영하는 내시경 로봇으로 쓸 수 있다. 긴 다리가 세 개라서 넘어질 위험이 없고 카메라를 달면 멀리 볼 수 있어 정찰용 로봇으로 제격인 스트라이더는 대학원생 시절 공원에서 한 어머니가 딸의 머리를 땋아주던 장면을 스케치한 원리를 적용했다. 사람처럼 무릎이 구부러지는 로봇 찰리의 다리 구조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고대 사슴 화석의 이중 구조 뼈에서, 로봇의 장력 테스트 시스템은 친구가 가야금 줄을 퉁길 때 사용하는 세모꼴 도구를 보고 개발했다. 이 모든 게 학문적 지식 위에 더해진 ‘창의성’에서 비롯한 성과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그것에 연결된 행복에 대한 원칙이다. “저는 가장 잘 사는 법은 나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인 생각이죠. 그런데 다행히 관찰해보니 남을 도와줄 때 제 행복이 최대화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장 먼저 가족 그리고 세상이 행복해지면 저도 행복해지죠.”
로봇공학자 외에 다른 꿈은 요리사, 마술사, 테마파크 놀이 기구 디자이너다. 데니스 홍 교수는 나머지 세 꿈도 로봇 개발만큼이나 즐겁게 이루며 살고 있다.
2007년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 기관이 주최하는 무인 자동차 경주 대회에 학부생들과 함께 참가해 3등을 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 자신감으로 미국 시각장애인협회가 주최한 시각장애인 드라이버 챌린지에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회 내용을 알게 된 다른 팀이 전부 참가를 포기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혼자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를 만들라니! 어려운 도전인 데다 성공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데니스 홍 교수는 다들 안 된다고 하는 일을 성공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우선 시각장애인의 삶부터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협회를 찾아가 시각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일상을 관찰했다. 그리고 몹시 놀랐다. 그들은 눈이 안 보여도 물을 쏟거나 음식을 잘못 집는 실수를 하는 법이 없었다. 취미로 스키를 탔으며 소리 나는 공을 사용해 축구나 야구도 즐겼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변호사, 화가, 건축가는 물론 자동차 기술자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각장애인이 운전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 자신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지식의 편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무척 화창한 봄날, 버지니아 공대의 작은 주차장에서 1년간 연구를 거듭해 탄생한 장애인용 자동차 데이비드를 시운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시각장애인 학생 캠프에도 데이비드를 가져가 시운전을 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며칠 뒤, 미국 최고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데이비드가 나온 게 아닌가. 마침 캠프에 참석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생애 처음으로 직접 운전하는 시각장애인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감동해 ‘데이비드는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라는 극찬의 기사를 낸 것이다.
그 기사 이후 로멜라 연구소에는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희망을 주어 고맙다. 연구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격려가 많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당장 멈추라는 협박과 욕설도 쏟아졌다. “맹인이 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당신이 책임질 것인가? 그 자동차가 도로 한가운데서 고장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비난.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시각장애인이 받는 혜택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 이 연구를 필사적으로 막겠다는 또 다른 시각장애인협회의 반대였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어딜 가도 고개가 숙여졌다.
데니스 홍 교수의 첫 번째 저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방학 숙제로 노트에 쓴 이 책(?)은 ‘비행기의 기본 원리’가 제목으로, 비행기 운항 원리를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그때 누군가 스치듯 이렇게 말했다. “저항이 있다는 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증거지.” 같은 학과 노교수의 격려였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건 그만큼 변화를 일으킬 큰 사건인 거구나!’라는 깨달음이 밀려들었다. 기운을 차린 데니스 홍 교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차에 센서를 달아 날씨와 위험 상황을 진동기가 장착된 장갑으로 전달한다면? 의자에도 진동기를 달면 노면 변화까지 느낄 수 있겠지? 피부로 느끼는 촉각이 두 눈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업그레이드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브라이언이 탄생했고, 시각장애인이 시운전하던 날 그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고 데니스 홍 교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음이 통하면 불가능하다는 일도 이룰 수가 있구나!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느끼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에 쏟아진 눈물이었다.
행복의 원칙을 질문하는 아빠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자신의 행복이 최대화된다는 믿음은 여러 분야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2008년에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 다윈이 유명해져 문의가 밀려들자 다윈-OP의 기술을 인터넷에 공짜로 개방하는, 지식 공유라는 놀라운 결단을 했다. 주변에선 신기술로 거금을 벌 텐데 왜 공개하느냐고 걱정이 대단했다. 하지만 과학자로서 그가 결단의 순간을 맞을 때 자신에게 하는 질문은 하나다. 어린 아들에게 답해주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물었던 “왜?”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왜 인공지능 로봇을 연구하는가?” 답은 명확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다. 다윈-OP의 부속, 부품, 조립 방법까지 모든 기술을 인터넷에 공개하자 전 세계 로봇 연구소와 대학교에서 또 다른 다윈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윈을 실험에 사용한 논문이 속속 발표되었고, 수백 대의 다윈이 연이어 탄생했다. 그의 오픈 소스 덕분에 세계의 휴머노이드 연구 기술의 발전이 한층 앞당겨졌고, 학계에 다시금 데니스 홍이라는 이름이 우뚝 섰다.
2011년 3월 3일에는 사회, 문화, 과학 등의 분야에서 큰 공을 세운 명사들이 연사로 나서는 TED에 초대받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것이 인기 강연으로 뽑히면서 “좋은 것을 나누면 배가된다”라는 로봇공학자의 메시지가 전 세계인의 가슴으로 번져갔다. 2014년에는 선천성 장애로 두 다리가 없는데도 티타늄 다리를 달고 세계 수영 대회에서 수십 개의 금메달을 딴 김세진 선수를 만나 격려하며 계속해서 그의 다리가 되어줄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저는 공학자이지 심리학이나 철학을 따로 공부한 게 아닙니다. 어릴 때 길에서 3백 원을 주워 조립 모델을 사 온 제게 ‘그 돈을 잃어버린 아이는 조립 모델을 못 갖게 되었다’며 다음부턴 주인을 꼭 찾아주라고 알려주신 어머니,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데도 학비가 없어서 고민하던 우리 반 친구의 등록금을 몰래 내며 우리 사회를 위한 투자라고 하신 아버지가 저에게 ‘행복의 원리’ ‘나눔의 원리’를 자연스레 알려주신 거죠. 부모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면 아무리 시련이 와도 옆으로 비뚤게 갈 수가 없어요.”
데니스 홍 교수는 아들이 말을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을 바꾸는 네 가지 삶의 원리를 알려주었다. ‘친절해라(be kind), 지혜로워라(be smart), 용기있게 행동해라(be brave), 강한 사람이 되어라(be strong)’가 그것. 어려운 개념이지만, 아빠와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질문과 답을 만들어내는 생각의 놀이 도구가 된다. “아빠, 친절하게 행동하는 건 어떤 거예요?” “청소부에게 ‘정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는 거야”라는 문답을 주고받으며 아들의 세계관은 확장되어간다.
손에 들고 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자 “아빠, 풍선의 공기가 놀고 싶어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거예요?”라고 아들이 물었다. “그럼 공기는 밖으로 나오면 슬프겠네”라는 시인 같은 문장과 함께. 그 예쁜 말에 놀라고, 그 순수한 마음이 좋아 입가에 미소가 번진 데니스 홍 교수가 답했다. “괜찮아, 공기는 아빠의 사랑 같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거든.”
과학적 타당성이 없으면, 동문서답이면 어떠랴. 호기심과 원칙을 마음에 품으면 누구나 과학자인 것을.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키는 아이의 질문을 들어주는 당신이 과학자요, 시인이고, 가장 현명한 아버지다. 틈날 때마다 열한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오는 데니스 홍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이 명쾌한 행복의 공식을 우리 사회에 오픈 소스로 공유하고 있다.
- UCLA 로봇과학자 데니스 홍 교수 이런 장난꾸러기 아빠,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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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로봇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한국 소년이 미국 최고의 로봇과학자로 우뚝 섰다. 여느 과학자와 다른 기발한 창의성으로 첨단 로봇을 개발하며 세계 천재 과학자 10인에 선정된 데니스 홍 교수. 그가 알려주는 창의성 원리는 간단하다. 즐겁게 질문하고 무한히 답해주기! 어린 자녀의 생각을 확장해주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장난꾸러기 아빠의 행복 공식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