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오트 쿠튀르 의상을 만들어내듯 패브릭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건축 설치물을 탄생시킨 서도호 작가의 작품. 그가 모델로 삼은 건 몽테뉴가 30번지 저택의 파사드로, 디올이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창립한 곳이다. 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디올의 삶과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1947년 ‘뉴룩’으로 20세기 패션사를 바꾼 이래 195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슈 디올의 작품 활동 기간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늘날까지 후세에게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의 드레스는 모든 여성을 공주처럼 아름답게 만든다”라는 무슈 디올의 말처럼, 당시 메릴린 먼로, 소피아 로렌 등 유명 여배우부터 왕실 귀족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아름다운 여성이 디올을 찾았고 지금도 여전히 샤를리즈 테론, 내털리 포트먼 등 초특급 배우가 디올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선다. ‘디올’이란 이름은 그저 예쁜 드레스가 아니라 궁극의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인 것. 도대체 디올이 이룩한 아름다움의 제국은 얼마나 남다르기에 전 세계 여성을 이토록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줄, 즉 위대한 디올의 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이다.
풍요로운 벨 에포크 시대에 풍족하게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양분이 된 걸까? 무슈 디올은 대담하면서 안목이 탁월했다. 그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전, 겨우 23세의 나이로 갤러리를 운영하며 피카소, 달리 등 수많은 대가의 작품을 전시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가 발굴하거나 전시한 예술가들은 머지않아 20세기 최고 예술가로 평가받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심미안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자신이 건축가이자 조각가이며 화가이기도 한 예술가 무슈 디올은 작품으로서 의상을 창조한 것, 그리고 그렇게 여성을 위한 신비롭고 화려한 디올이라는 세계가 탄생한 셈이다.
‘동시대 문화・예술계 거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교감하며 영감을 나눈다’는 이러한 ‘디올 정신’을 이어받아,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 전시에서는 예술가와 협업해 디올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했다. 서도호, 이불, 김혜련, 김동유, 박기원, 박선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6인이 각자 디올 세계를 해석한 작품을 선보여, 디올의 세계가 지닌 몽환적, 예술적, 문화적 측면을 한층 부각시켰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무료입장.
2010년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박기원의 작품. 일상 재료를 독특한 공간에 통합시킨 작품으로 잘 알려진 한국의 천재적 설치미술 아티스트인 그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작품 두 점을 제작했는데, 첫 번째 작품인 ‘Sunshine’이다. “빛, 공간, 움직임의 요소로 구성한 빛의 폭포이며, 관람객에게 실내에 들어온 자연의 느낌을 제공하고자 했다”는 게 작가 노트.
앤디 워홀과 팝아트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한 김동유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눈에 ‘가장 완벽한 모델’인 크리스챤 디올의 초상화를 선보였다. 이 초상화는 가까이 다가가야만 알아볼 수 있는 수많은 메릴린 먼로의 초상화로 구성했는데, 그는 “메릴린 먼로가 디올의 옷을 자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선택하게 되었죠”라고 밝힌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디올 하우스가 예술계, 특히 영화계와 오래 유지해온 긴밀한 유대 관계를 잘 보여준다.
크리스챤 디올의 쿠튀르 드레스 뒤로 활짝 핀 열두 폭의 장미 그림은 김혜련 작가의 작품. 한국 정서를 잘 나타내는 연꽃, 모란, 진달래 같은 꽃을 주제로 작업해오던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무슈 디올이 가장 사랑한 꽃인 장미를 모티프로 선택했다. 그가 그린 장미는 크리스챤 디올과 이브 생로랑,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뒤를 이은 디자이너들이 창조한 희귀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플라워 드레스들과 소통하고 있는 듯 보인다.
“관객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눈부신 금빛과 반짝임으로 황홀함에 사로잡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라는 박선기 작가의 의도대로, 금빛 향수 쟈도르 형상의 샹들리에는 마주하는 순간 압도당한다. 원근법적 시각을 투영하면서 나일론 줄에 매달린 숯 조각으로 압축된 사물을 설치하는 그는 크리스챤 디올, 그리고 디올 하우스의 전설적 향수 ‘쟈도르’의 병이 공간 속에서 재탄생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한국 예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이불은 역사와 기억을 주제로 한 크리스털과 알루미늄 소재의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녀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에 전시되기도 한, 중량이 500kg에 달하는 5m 높이의 이 작품에서 ‘미스 디올’의 후각적 기억과 빛, 그리고 현대성을 재조명했다. “후각이란 기억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감각입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존하는 감각이죠.” 이불 작가의 말. 폴리스티렌과 강철에 한지를 씌운 크리스털 형태를 띤 이 작품은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이 부유하는 누에고치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기억에 기반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자료 제공 디올 전시 문의 DDP(02-2153-0510)
-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 전 아름다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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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유랑하며 인류의 감성을 일깨우는 디올의 아트 프로젝트가 마침내 서울에 정착했다. 디올의 유산이 패션을 넘어 예술로 승화한 그 역사적 무대 속으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