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에는 닭장에 갇혀 매일 알을 낳아야 하는 수백 마리의 암탉이 있었다. 꿈이 많은 잎싹도 그중 하나였다. 주인 남자가 모이를 주려고 문을 열면 문틈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이 보였다. 그곳에선 수탉 가족이 병아리를 거느리고 산책을 하곤 했다. 낳은 알을 매일 빼앗겨야 하는 잎싹은 그 따듯한 마당으로 나가 자신의 병아리 ‘아기’를 데리고 거닐고픈 열망이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면 즐거움과 행복이 마냥 넘칠 것 같았다. 그래서 잎싹은 일부러 모이를 먹지 않았고 폐사 직전이 되어 마당 밖의 구덩이에 내던져졌다.
구덩이에서 굶주린 족제비의 공격을 받기 전,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잎싹은 마침내 마당으로 갔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수탉 가족과 늙은 개의 텃새. 이내 마당 밖으로 쫓겨난 잎싹은 숲 속을 헤매다 족제비에게 목숨을 잃은 오리를 대신해 우연히 그의 알을 품게 된다. 그토록 꿈꾸던 느낌, 그리도 바라던 행복이었다.
그 알의 아버지인 청둥오리는 아기가 알을 깨고 나오면 꼭 숲 너머 늪으로 아기를 데려가 달라고 잎싹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밤마다 잎싹이 알을 품는 덩굴을 지키려고 족제비와 사투를 벌이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알이 깨지고 잎싹이 뽀얀 아들을 만나던 바로 그 순간에.
잎싹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갓 태어난 ‘초록머리’를 늪으로 데려갔고 초록머리는 늠름한 청둥오리 청년으로 자랐다. 청둥오리인 초록머리는 키가 자랄수록 더 신나게 헤엄을 쳤고 언젠가부터 힘차게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암탉인 엄마 잎싹은 깃털에 물이 닿을 때마다 감기를 앓아 점점 몸이 쇠약해졌고, 족제비가 초록머리를 공격할 때마다 초록머리가 날아서 도망칠 수 있도록 얇은 두발로 내달리며 족제비와 승산 없는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겨울, 늪을 지나 남쪽 나라로 가는 청둥오리 떼가 늪에 도착했다. 초록머리의 가슴엔 훨훨 날아 무리와 함께 남쪽 나라로 가고픈 본능이 솟아올랐고, 무리의 배척을 받았지만 철새들의 파수꾼 선발 대회에 나가 당당히 1등을 했다. 날지 못하는 암탉은 함께 가지 못하는 길이었다.
엄마의 격려를 받으며 초록머리가 멀리 날아가던 날, 잎싹은 초록머리의 안전한 비상을 위해 뒤쫓아오는 족제비와 사투를 벌이다 언덕 위에서 저 멀리 날아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는 굶주린 족제비가 다가와 있었다. 겨울의 허기 속에서도 새끼를 위해 젖을 짜내느라 젖이 벌겋게 달아오른 어미 족제비. 새끼를 살리려는 그 열망을 알게 된 잎싹은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겨울 눈이 내린 하얀 들판에는 먹잇감의 목을 문 족제비가 새끼를 향해 지친 걸음을 옮겼다.
동심에 대한 다른 시각
2000년 초여름, 서울 도서전에서 당시 흔치 않게 컬러 삽화까지 넣은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공개되자 독서 감상문 대회에 수많은 감상문이 쏟아졌다. 어린이를 위한 감상문 대회였는데도 어린이는 물론 어른의 감상문이 더 많아 출판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독서 감상문 대회에 10대부터 60대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응모했다는 것은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이야기를 이해했고, 어른은 어른답게 깊이 읽었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어린이 책이 반드시 아이한테 맞춰 아양을 떨 필요는 없다, 우리가 수준을 조금 높여도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흔히 동화는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해 쓰는 이야기라 하고, 동심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아이도 자주 본능에 따라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합니다. 그러니 동심을 ‘처음 가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게 맞겠지요. 동심을 좀 더 성숙한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시선의 전환은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처음 접한 한 출판 편집자는 “우리 작가한테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책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2년에는 아동문학상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후보로 올랐고, 2013년에 미국에서 영문판이 나오자 한달 만에 아마존에서 이달의 책에 꼽혔다. 2014년 선보인 영국에서는 반향이 이보다 더 컸다. 출간 한 달 만에 1백 년 역사의 포일스Foyls 서점 워털루 지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공항과 역 등 주요 서점마다 새로운 베스트셀러의 등장을 알리며 <마당을 나온 암탉>과 포스터를 전시했다. 까다로운 영국 출판계에서 동화 작가가 그리고 한국 작가가 베스트셀러로 인정받은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 또 작년에 열린 런던 도서전은 영국 작가 한 명과 해외 작가 두명을 선정하는 ‘오늘의 작가’에 그를 초청해 공식 의전을 제공했다. 호주 도서전과 슬로바키아의 대학에서 강연했으며 올해는 스웨덴 스톡흘름 도서전에 초대되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뿐 아니라 <나쁜 어린이 표>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기다리는 집> 등 지난 20년 간 그가 쓴 수많은 작품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결과다.
“올해가 저의 데뷔 20주년이라는 것을 어느 기자와 인터뷰하다가 알았어요. 20주년을 기념할 특별한 계획은 없었는데 얼마 전에 소천아동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축하하게 되었죠. 사실 저는 작가가 안 되었어도 글을 썼을 거예요. 책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글쓰기를 했어요. 글을 쓰고 요상한 만화도 그려 넣고 구멍을 뚫고 실로 꿰매서 책 꼴을 만들었죠. 표지를 만들어서 비닐을 씌우고, 시도 쓰고 편지글도 쓰고 어떤 글에는 ‘다음 호에 계속’이라고도 썼죠. 글쓰기는 어릴 적 제게 유일하게 행복한 일이었고, 혼자서도 자존감을 확인해나가는 일이었어요.”
데뷔 20주년을 맞은 황선미 작가는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 탄생 1백 주년인 올해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로 소천아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또 그가 쓴 독도에 관한 동화가 최근 번역진흥원의 지원 사업 도서로 선정되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된다.
낱권으로 책을 사기가 쉽지 않던 당시에는 대형 출판사의 동화 전집을 구매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평택에서 넉넉지 못한 삶을 꾸려가는 그의 가족은 동화 전집을 살 여력이 없었다. 정규 학업 또한 장남인 오빠에게만 해당했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한 오빠는 어쩌다 버스에서 생선 장수 어머니를 만나면 차갑게 모른 척할 정도로 도도하고 냉정했지만,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동생이 글쓰기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돈을 아껴 겉장도 없는 책을 사다 주곤 했다. 동생이 글을 좀 쓴다고 생각했는지 한번은 동생의 습작 공책을 국어 선생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안 어린 황선미는 분노해 혼자 남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무실로 찾아갔고, 국어 선생님을 찾아 공책을 돌려받아 올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다.
마당을 나오기까지
“그때는 자존심밖에 없었어요. 돌려받은 공책을 태워버렸죠. 수없이 글을 쓴 다음 해마다 11월이 되면 무슨 제를 지내는 것처럼 밭에 나가 글을 다 태워버리곤 했어요. 오빠가 야학도 알아봐줬어요. 거기에서 만난 기자 출신의 국어 선생님이 제게 글쓰기를 가르쳐주셨죠.”
낮에는 버스 차장, 깡패 똘마니, 가정부로 일하는 친구들이 저녁이면 야학에 왔다. 그중 남의 집에서 가정부살이를 하는 친구는 미모가 출중했고 공부도 뛰어나게 잘해서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어떤 친구는 시인이 되었고 또 다른 친구는 서울대에 진학했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어도 공부에 대한 굉장한 열망을 가진 숨은 보석이 많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알았다.
검정고시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시험 전날 수원의 여관방 한쪽에 잠자리를 내준 것도, 글을 잘 쓰니 문예창작학과라는 곳에 지원해보라고 알려준 것도 야학에서 공부해서 서울대에 간 친구였다. 시험 날 아침, 친구들은 제각각 시험장으로 갔지만, 어머니가 반대해 차비조차 얻지 못한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때 마침 경찰 오토바이가 서더니 학생은 시험에 늦겠다며 갖고 있던 수험표에 적힌 고사장으로 그를 순식간에 데려다 주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지만, 삶은 여전히 고단했다. 동기들이 선후배 관계를 맺고 클럽 활동을 할 때 그는 온갖 일을 하며 돈을 버느라 혼을 뺐고, 2년제 학교를 3년 반 만에 겨우 졸업했다.
“제가 등단하고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알려졌을 때도 학교 동기들이 황선미 작가가 저일 거라고 생각을 못 했대요. 등록금, 방값, 차비 등을 버느라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 낭만이며 클럽 활동을 할 엄두조차 못 냈기 때문이에요. 또 누가 저를 붙잡고 신춘문예에 공모할 수 있다든지,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든지 하는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없었기에 그때는 그냥 지치고 비루한 기분이 싫어서 아닌 척하는 글을 많이 쓴 것 같아요. 그때의 노트가 지금도 있어요.”
작가의 길을 모른 채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낳고 살던 30대 초반, 우연히 신문에서 독서지도사 교육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본 것이 이 놀라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매일 똑같이 밥해 먹고 아이들 키우는 답답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터라 신문에서 ‘문예’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죠. ‘이걸 공부하면 나도 직업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평범한 주부로 살기를 바라는 남편은 반대했어요. 그래서 아파트 앞 꽃집에서 물 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6개월 과정의 독서지도사 과정에 등록했지요.”
마침 옆 교실에서는 동화 창작 아카데미 수업을 하고 있었다. 독서지도사 과정과 동화 창작 아카데미를 함께 수강하며 한 편집 회사에서 일할 때 그의 글을 눈여겨본 한 고문위원이 아동문학 평론에 글을 보낸 우연으로 1995년 농민신문사에서 지금은 원본을 잃어버린 한 작품이 2등 상을 받았다. 그렇게 서른세 살의 가정주부가 문단이라는 너른 마당에 나올 수 있었다.
마침내 마당을 나온 암탉
“저는 모든 소재를 그냥 살다가 얻어요. 만화책 보다가, 텔레비전 보다가 얻은 소재니 특별하지가 않죠. 예를 들어 닭이라는 소재는 TV 프로그램인 <6시 내고향>을 보다가, 오리라는 소재는 만화책을 읽다가 얻었죠.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게 많기에 저에겐 일상이 보배예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영문판은 동화가 아닌 소설로 발간했다. 미국 최대 출판사인 펭귄사에서 선보인 이후 해외에서 열리는 그의 팬살롱에 수많은 독자가 찾아오는데, 평범한 일상을 산 암탉이 새끼를 먹여야 하는 족제비에게 자신을 내놓는 충격적 결말이 한국인이기에 가능하냐는 질문을 가장 자주 받는다. 이러한 결말이 서양 독자에겐 그토록 생경하고 감동적인 탓이다. 얼마 전 다녀온 호주 도서전에서 엔딩 장면을 낭독할 때는 호주 독자들이 펑펑 울어서 이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한 황선미 작가도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평생 책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황선미 작가는 매일 자신만의 노트에 글을 쓰며 그 꿈을 실천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실컷 써서 손주에게 읽어주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하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그곳이 햇살 잘 드는 마당이라면 더없이 좋겠다는 꿈도 갖고 있다.
“해외의 동화나 소설에는 이런 정서가 없대요. 주인공은 이겨야 하고 동화에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드물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이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살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한 번도 스타인 적이 없던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죠. 국민학교 2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삶의 철학이 있었고, 시적 감성이 있었어요. 아버지 마음속의 그런 열망을 제가 알고 있었지만 농부로, 용접공으로 산 아버지의 인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고 고단했습니다.”
당시 말기 암 환자이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니 글을 쓰면서 살아 있는 건 언젠가는 죽는구나 하는 이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 무렵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남동생이 누나에게 작은 군자란 화분을 하나 사주고 복귀했는데, 그 화분의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잎사귀가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는지도 깨달았다. 잎사귀처럼 청춘을 내어준 우리의 부모처럼 말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처음 쓴 1998년에 ‘있잖아~’ 하면서 초등학생이던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닭은 죽고 청둥오리는 날아갔다’고 했더니 아들이 ‘아, 멋있다~’ 하더라고요. 동화의 결말을 죽는 장면으로 하는 게 부담이었는데 아들의 반응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꼭 그 결말이어야 했거든요.” 그의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였기에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
“사람의 특징이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안 죽어. 기적이란 게 있을 거야’라고 믿는 것인가 봐요. 아버지가 ‘봄에 싹이 나는 걸 한 번 더 보고 싶다’라고 하시는데 가슴이 미어졌어요. 그리고 소망이란 게 언제까지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진짜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죽음을 알았어요. ‘내가 죽는 날 비가 왔으면 좋겠다. 내가 살았던 곳이 깨끗하게 씻겼으면 좋겠다’ ‘내가 죽으면 큰 솥으로 밥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가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유언을 하시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보시의 의미도 담긴 굉장히 상징적인 말이었죠.” 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황선미 작가는 ‘사람이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 죽음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자신의 삶도 이해하지만 상대의 삶도 이해하기에 받아들이는 죽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을.
“새끼들을 위해 비쩍 마른 닭이라도 먹겠다며 살아 움직이는 족제비의 그 비루한 모습과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마지막 소망을 이루게 되는 암탉의 대비를 통해 살았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해서 다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끝내 안 풀리는 인생. 배우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황선미 작가에겐 정신적 지주였고 좋은 선생님이었던 아버지. 외국 독자들은 그런 아버지니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영웅이지 않냐고 되묻지만, 경제적 잣대가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는 한 번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아버지.
그리하여 아버지라는 잎사귀가 떨어지며 세계적 동화 작가라는 꽃이 피어났다. 요즘 황선미 작가는 서울에서 글을 쓰고 주말이면 남편이 있는 당진의 수목원으로 내려가 함께 농사를 짓는다. 복숭아, 고구마, 감과 매실, 루콜라와 바질을 키우며 “오늘 만나는 사람과 잘해보자, 오늘 나한테 즐거운 일을 잘해보자”라고 읊조리며 매일 일상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오스트리아 빈의 작가 레지던시에 홀로 머물며 작품을 쓰고, 스톡홀름으로 날아가 강연을 하는 세계적 작가지만,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오늘 즐거운 일’에 대한 일기와 일상의 단상을 더 많이 쓰는 작가.
“오늘의 내가 잘 살아야 미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내가 나를 잘 지켜내지 않으면 미래의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아이한테 ‘네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은 제발 안 하면 좋겠어요. ‘지금 힘들고 외로운 건 참아. 나중에 더 좋은 친구가 생길 거야’ 하는 말도 안 했으면 해요. 지금 최선을 다해 최고로 살지 않으면 미래는 뻔해요.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내일 행복할 수 없어요. 그건 분명해요.”
양계장에 갇힌 당신에겐 마당으로 나갈 용기가 있는가? 살았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해서 다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대비의 깨달음이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가? 타인의 삶에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따뜻한 심장이 있는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소망을 찾고 이루며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삶. 동화 한 편으로 이토록 중의적인 자연 세계와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전하며 그는 세계적 작가로 피어났다. 그는 아이를 위한 동화 작가이자, 어른을 위한 위로자이며, 일상의 알을 문학으로 날아오르게 깨우는 잎싹이다.
- 동화 작가 황선미 마당을 나와 이룬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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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에서 쉴 새 없이 베스트셀러 행진이 이어지고 강연 초대를 받지만, 그에겐 여전히 책 쓰는 게 꿈이다. 그래서 소재의 보배인 일상을 즐겁게 관찰하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간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