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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嘉會동 성당 어울림의 공간에서 신앙이 자란다
가회동 성당은 두 팔 벌려 가슴으로 사람을 끌어안는다. 지나가는 여행객도, 업무에 지친 직장인도 이곳으로 와 휴식을 취하라고 말한다. 가회동 성당에서 새삼 종교의 미덕이 포용과 위안임을 깨닫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성당 앞마당에 선 송차선 주임신부와 오퍼스건축사사무소의 우대성 소장. 
지금으로부터 2백 년도 더 옛날인 1795년, 이 땅에서 처음 미사를 드린 가회동 성당은 1955년 조선 마지막 황실가인 의친왕 이강과 왕비 김숙이 세례를 받은 곳이다. 이는 수많은 순교자를 낳은 천주교가 마침내 승리했음을 의미하고, 가회동 성당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상징적 장소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해 가회동 성당 재건축 임무를 맡은 송차선 주임신부는 가회동 지역 역사를 공부하다가 뜻밖에 이 사실을 발견했다. 기록조차 찾아보지 않아 아무도 모르던 역사를 끄집어 낸 송차선 신부는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꼈고, 가회동 성당을 정말 제대로 지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가회동 성당은 설계 공모에서 당선한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 소장이 공동 대표로 있는 오퍼스건축사사무소가 맡아서 설계했다. 오퍼스건축사사무소는 서초동 사랑의 교회, 부천의 중동교회 등 여러 종교 건축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데, 이번 가회동 성당작업은 우대성 소장이 주로 참여했다. 본래 가회동 성당은 강모래에 시멘트를 섞어 지은 고딕 양식의 성당이었다. 1950년경 지은 낡은 건물이 행여나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돼 종을 치지 못할 정도로 위험했다. 송차선 신부와 우대성 소장은 옛 성당을 철거하다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해 벽돌을 하나하나 긁어서 건물을 해체했다고 회상했다.

1 가회동 성당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도록 한옥을 개방해 편안하고 정감 있는 성당으로 자리매김했다. 
2 비대칭의 대지 형태를 따라 설계한 대성전은 왼쪽과 오른쪽의 창 모양을 다르게 내어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을 줄였다. 

종교의 위압감을 지워버린 성당
4차선 도로변에 있는 가회동 성당은 꼭 한옥으로 짓지 않아도 되었지만, 우대성 소장과 송차선 신부는 북촌로에서 점점 모습을 감추는 한옥을 다시 한 번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도로변에 나지막한 한옥을 짓고 그 뒤로 성전과 사제관을 배치했다. “기본적으로 이 동네에 어울리는 집을 짓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동네에는 조그마한 집밖에 없는데, 성당 연면적이 약 3738㎡예요.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이기 때문에 거대해 보이지 않도록 공간을 쪼개고 약 70% 면적을 땅 밑으로 묻었어요.” 우대성 소장은 성당을 지하 3층까지 내리고 지상 3층을 쌓았다.

사실 예술뿐 아니라 건축의 역사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건축 기술이 지금껏 발전할 수 있던 이유와 과정이 역사 속에 세워진 수많은 종교 건축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고딕양식이나 웅장함의 미학이 돋보이는 로마네스크 양식 같은 건축 양식이 종교 건축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종교 건축 중에서도 성당은 신의 권위와 권력을 대변하는 건축인데, 쾰른 대성당이나 밀라노 두오모 성당처럼 신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담겨 있는 동시에 신 앞에서 인간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느끼도록 더 높고 커야 한다는 과시적 심리를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성당은 여전히 죄 많은 인간이 쉽게 다가가기엔 두려운 곳이고 오로지 무릎 꿇고 참회하며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공간이다.

한옥 안에서 바라본 정자와 성모자상. 
동네에 어울리는 ‘집’이길 바란 가회동 성당은 북촌로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기존 종교 건축이 풍기는 이러한 위압감을 지우고 문턱을 낮춰 북촌 일대의 직장인과 관광객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처음 오는 사람은 이곳이 성당이란 걸 눈치 채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가기 일쑤다. 입구 계단을 올라서면 한옥 앞에 널찍하게 펼쳐진 앞마당과 지하 마당, 겹겹이 싸인 한옥 지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의 하늘 마당, 그리고 입구에 돌담으로 가린 화장실을 누구든 쓸 수 있게 개방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신자들간에도 의견이 서로 달랐지만, 송차선 신부는 오랜 기간 토론하고 그들을 설득했다.

“IMF 금융 위기 시절, 김수환 추기경이 취임식 때 받은 금 목걸이를 기부하며 예수님은 목숨도 내놓았는데 금 목걸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죠. 그 일화를 들어 설득했습니다. 무엇 보다 교회는 사람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앞마당에 모인 사람이 어쩌면 잠재적 신자니까요.”

1 지붕 기와 수막새와 암막새에는 ‘오병이어五餠二魚(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를 표현한 문양을 새겨 넣었다. 
2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가회동 성당 신자인 신명덕 작가가 네 복음서 저자를 상징하는 그림을 새겼다. 

그렇다고 모양새만 그럴듯한 한옥으로 얼렁뚱땅 만들지 않았다. 정태도 대목장과 중요무형문화재인 이근복(번와장), 박문열 (두석장) 등 한국의 장인들을 모아놓고 그들 손으로 직접 한옥을 짓도록 진심을 담아 부탁하며 각서까지 받아냈다. 자재 구입 과정도 까다로워 오랜 시간 전국 곳곳을 뒤져 건조가 된 국내산 춘향목(적송)을 구했다. 이렇게 공들여 지었기에 가회동 성당 한옥은 대목장이나 건축과 학생들이 직접 견학하고 공부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변하지 않은 성당의 가치
우대성 소장은 본래 옛 성당 건물에 쓴 벽돌을 앞마당 바닥에 깔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게도 포기했다. 대신 옛 성당에 있던 십자가를 마당 안쪽에 있는 사제관 꼭대기에 세우거나 스테인드글라스 일부를 1층 전시실에 두는 등 옛 성당의 것을 곳곳에 남겨두었다. 입구에는 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놓아 우리나라에서 처음 미사를 드린 곳이라는 장소의 의미를 더했다. 또 1층에 역사전시실을 마련해 한국 천주교도의 역사와 가회동 성당의 재건축 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한옥 내부. 아직 운영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신자들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외부인이 사용할 수 있게 공간을 대여할 계획이다. 
송차선 신부가 설득하긴 했지만 성당의 사용자인 1천1백 명 신자에게 성당 개방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성당의 고유한 기능을 지키는 것에 신중을 기했다. 우대성 소장은 성당 입구를 완전히 오픈하지 않고 성전을 깊숙이 배치해 앞마당을 지나 긴 계단을 오른 뒤 들어가게 설계했다. 한옥과 분리하고 멀찍이 두어서 주변 시선과 소음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 신자들이 우려한 부분을 해결했다.

한옥과 성당 사이 앞마당은 설계상 꼭 필요하긴 했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종교 건축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성당 앞의 광장과 수녀원 안에 자리한 중정은 미사를 드린 신자들이 가족처럼 한데 모이고 이웃을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열린 넉넉한 앞마당을 둔 가회동 성당은 점차 잊힌 종교 건축의 과거 모습을 되살린 셈이다.

한옥 마루에서 바라본 양옥 성당. 누구에게나 개방된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3백 석 규모의 성전은 낮에는 조명이 없어도 자연 채광이 들어와 아늑하면서도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가회동 성당은 대지 형태를 그대로 따라 설계해 좌우가 대칭인 기존 성전과 다르게 약간 비대칭이다. 그래서 우대성 소장은 오른쪽과 왼쪽 창의 형태를 다르게 디자인해 균형을 맞추었다. 성전에는 연주할수록 소리가 좋아진다는 기계식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는데,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악기라 미사 때 연주를 해준다는 조건으로 전공자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가회동 성당은 지난 8월 시민을 대상으로 한 건축상 투표에서 40%의 지지를 얻어 ‘시민공감 건축상’으로 선정됐다. 이로써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인정받은 셈. 실제로 취재하러 방문한 당시에도 젊은 연인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툇마루에 앉아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거나 한옥 끝 정자 안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지금 이곳이 어딘가 곱씹어보게 된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성당이 본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며 오히려 흡족해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가회동 성당은 그렇게 신앙의 꽃을 피우고 있다.

글 김민서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