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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 느리게 걷는 외씨버선길
청송은 산이 많은 마을이다. 해발 900m 내외의 산으로 둘러싸여 예부터 사람들은 골짜기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산과 물, 마을과 마을 사이를 느릿느릿 걷다 보면 자연과 더불어 평온하게 살아온 산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외씨버선길은 청송, 봉화, 영양, 영월 네 개 군을 아우르는 총 170km의 길. 열세 개 구간 가운데 청송을 통과하는 45.6km를 소개한다. 환상적인 단풍으로 소문난 청송의 가을을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첫째 길, 주왕산ㆍ달기약수탕길  조선 후기의 문인 홍여방은 <찬경루기讚慶樓記>에 “청송의 산세는 기복이 있어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웅크린 것도 같으며, 물은 서리고 돌아 마치 가려 하다가 다시 오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주왕산을 보면 딱 그렇다. 약 7천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암석이 꿈틀거리듯 독특한 지형으로 자리 잡았다. 웅장하면서도 기품이 넘치고, 원시적이면서 기세등등하다. 외씨버선길의 첫째 길은 바로 이 주왕산. 청송의 소문난 달기약수탕까지 이르는 길은 산과 물을 만나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산등성이는 땅의 근육이고, 흐르는 강물은 땅의 혈맥이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말처럼 산은 땅의 생명력의 표상이다. 머리 위로는 바위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눈앞에 폭포가 떨어지고, 발밑에는 새가 지저귀는 생생한 기운을 듬뿍 받으며 느릿느릿 걸어보시길. 특히 주왕산국립공원 안내 센터에서 각각 약 30분, 1시간 거리에 있는 용추 폭포용연폭포는 천연 워터파크가 따로 없다. 물길 따라 형성된 기암의 올록볼록한 굴곡을 따라 청명한 소리를 자랑하며 쏟아지는 폭포는 주왕산의 특별한 볼거리. 옛날 용이 살았다는 전설의 용연폭포를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면 해발 719m의 금은광이 삼거리에 다다른다. 등산길에 가까우니 쉬엄쉬엄 오르자.


깊은 산골 낙엽길은 등산객이 드물고 외지다. 혼자보다는 동반객과 함께 걷는 것을 추천한다. 10여 가구 남짓 살고 있다는 너구마을을 지나면 주왕산의 또 다른 대표 볼거리인 달기폭포가 나온다. 11m 높이의 폭포로 녹색, 회백색, 회색 등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에 생긴 다양한 형태의 절리를 볼 수 있다. 녹색 농촌 체험 마을인 월외마을, 달기약수탕을 지나면 첫째 길의 종착점인 운봉관에 이른다. 운봉관은 조선 세종 10년(1428년) 군수 하담이 세운 객사. 이곳을 들르는 중앙 관리나 외국의 사신이 주로 머물렀다.

거리 18.5km 소요 시간 6~7시간
길 지도 주왕산국립공원 안내 센터 → 용추폭포 2.2km → 용연폭포 4km →금은광이삼거리 5.2km → 너구마을 8.8km → 달기폭포 10.3km → 월외 매표소 12.2km → 월외마을 → 달기약수탕 15.3km → 운봉관 18.5km


둘째 길, 슬로시티길
소헌공원 내 운봉관을 시작으로 11.5km에 이르는 슬로시티길은 청송의 마을과 그 안에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길을 걷자마자 만나는 청송 재래시장에서는 청송 산지에서 나는 각종 산나물, 약재, 사과, 버섯, 고추 등 건강한 식재료를 합리적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4일과 9일에 장이 열리며, 보통 오후 4시까지 장이 선다. 수달 생태 관찰로에서 수달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일단 접어두자. 운이 좋아야 주왕산 계곡이나 주산지에서 수달을 만날 수 있다고. 3.8km 지점에서 청송의 상징인 송소고택과 마주한다. 송소고택은 송소 심호택이 1880년 무렵 지은 살림집. 조선시대 민가 중 최대 규모인 아흔아홉 칸으로 지었으며,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0호 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현재 여행객을 위한 숙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외씨버선길 표시 리본을 따라 걷다 보면 신승겸의 후손인 평산 신씨의 마을, 중평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나무 80여 그루가 있는 중평 솔밭. 청송 靑松은 본래 ‘푸른 소나무’의 마을이 아닌가. 과거엔 3백여 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조금은 초라한 규모로 남아 있어 안타깝다. 그 옆에는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의 12대손 신현申賢의 위패를 봉안한 사양서원이 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은 들여다볼 수 없지만 서원 내 화해사 편액은 백범 김구 선생이 썼다고. 신기리 마을에 들어서면 만나는 신기리 느티나무는 사과밭에 둘러싸여 있다. 수령이 4백 년 이상 된 느티나무는 높이 13.9m, 둘레 7.57m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신기리 느티나무에서 약 1km를 지나면 참닥나무 가로수로 둘러싸인 청송 전통 한지장 이자성 명인의 생산장을 만날 수 있다. 11.5km의 장정이 끝나는 지점으로 생산장 내 ‘가람공방’에서는 미리 예약을 하면 한지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거리 11.5km 소요 시간 4~5시간
길 지도 소헌공원 운봉관 → 청송 재래시장 0.5km → 합격사과 0.8km → 수달 생태 관찰로 → 송소고택 3.8km → 중평 솔밭 6.3km → 사양서원 → 소망의 돌탑 8.6km → 신기리 느티나무 10.4km → 청송 전통 한지장(체험관) 11.5km


셋째 길, 김주영객주길

소설가 ‘김주영’의 이름을 내건 객주길은 외씨버선길 청송 구간 중에서는 가장 드라마가 적은 길일지 모른다. 신기리 마을의 천연기념물, 느티나무에서 시작하는 셋째 길은 청송 전통 한지장을 거치면 본격적인 여정에 오른다. <객주>는 소설가 김주영이 1980년대 초 서울신문에 5여 년간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그는 <객주> 서문에서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구성하고 있는 저잣거리, 그 저잣거리에서 나는 감수성 많은 소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 어릴 때부터 나는 땀 냄새가 푹푹 배어나는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아왔다” 라고 썼다. 2.4km 지점에서 만나는 감곡저수지는 ‘리틀 주산지’라 불리는 왕버드나무 군락지. 주산지보다 군락의 규모가 작고 평범한 풍경이다. 해발 671m의 비봉산 골짜기에 있는 수정사도 마찬가지. 고려 공민왕 시대에 나옹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그 역사는 깊지만, 깊은 산속에 암자처럼 아담하게 자리한다. 수정사 주변에는 ‘황성옛터’를 작사한 왕평 이응호의 묘가 있다. 이제 등산길이다. “장군의 말이 다쳐 쓰러지자 말을 이 계곡에 묻고 갔다 하여 마묻골이 되었다”는 마뭇골저수지를 전후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구릉지를 여러 곳 통과한다. 9.3km 지점에 있는 각산저수지의 ‘각산’은 소설 <객주>에 나오는 마을이다. 나지막한 구릉을 내려가면 농수로로 사용하는 고현지에 다다른다. 그 과정에서 솔숲과 물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행운의 순간과 조우한다.

거리 15.6km 소요 시간 5~6시간
길 지도 신기리 느티나무 → 청송 전통 한지장(체험관) → 감곡저수지 왕버들 군락지 2.4km → 수정사 4.1km → 마뭇골저수지 → 너븐삼거리 5.7km → 동천지 → 각산저수지 9.3km → 시릿골 → 진보면 고현지 15.6km


일러스트 최익견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