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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잊혀진 동네의 살아 있는 미술관
최근 아라리오 갤러리의 행보가 눈에 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간 사옥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만들더니, 얼마 전엔 제주도에 현대미술을 위한 또 다른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 역시 공간 사옥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본래 모습 을 모유지하되 그 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의 콘셉트는 보존과 창조다.

탑동시네마 입구에 있는 우고 론디노네(왼쪽)와 코헤이 나와의 작품.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스치는 제주시 탑동. 온갖 관광 명소로 가득한 제주에서 이 일대는 그다지 북적이지 않는 동네다. 제주공항에서 겨우 10분 거리에다가 주변에 호텔과 숙박 시설이 충분히 있는데도 볼거리든 먹을거리든 관광객의 흥미를 끌 만한 구석이 많지 않다. 이런 곳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그것도 세 곳이나. 거기에는 거리마다 젊은이가 가득하던 이곳의 영화榮華를 재현하겠다는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의 야심이 숨어 있다.

탑동사거리에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선 빨간 건물 한 채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휑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 그나마 생기를 불어넣는 이곳은 아라리오 뮤지엄 탑 동시네마. 본래 영화관이던 이곳을 지하부터 5층까지 구석구석 전시실로 탈바꿈했다. 김 회장은 약 10년 전부터 탑동시네마에 눈독을 들였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주는 싱가포르와 홍콩처럼 아시아에서 중요한 도시니까 여기에 미술관을 열어야겠다고 다짐했죠. 10년 전 제주에 내려와 탐색하다가 탑동시네마를 발견했어요.”

1 탑동시네마의 빨간 외관. 
2 1백 마리 소가죽으로 만든 장환의 ‘영웅 No.2’ 
3 수보드 굽타의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는 것은 사람의 발길이며,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다. 김 회장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을 통해 죽은 구 도심에 사람의 발길을 다시 끌어들이고 싶었다. 약 6년을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영화관을 사들인 그는 그 주변에 있는 상업 건물과 오래된 모텔을 추가로 구입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미술관인데도 철근이 드러난 시멘트 기둥, 벗겨진 페인트칠까지 건물의 최초 설계를 최대한 살린 것도 버려진 건물의 역사적 가치에 예술의 문화적 가치를 더한다는 의미가 있다. “제주에 오니 돌담에 핀 야생화가 참 아름답더라고요.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야생화처럼 버려진 공간에서 생명과 영혼이 있는 미술관이 자라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건물 외관을 빨갛게 칠한 겁니다.”

제주에는 이렇다 할 사립 미술관이 없다. 독특한 테마가 있는 박물관은 많지만 현대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항상 제주를 여행하면 뭔가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잠시 머문 여행객도 그러한데 하물며 제주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10년 전 이곳에 내려와 생활해온 김창일 회장도 아마 이런 갈증을 느꼈으리라. 미술품 컬렉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철저히 작가 입장에서 제주 아라리오가 제주의 젊은 작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소원한다.

4 김창일 회장. 
5 동문모텔에 있는 제이크&디노스 채프먼 형제의 작품. 

“한국의 현대미술이 발전하려면 작품을 전시할 좋은 공간이 많아야 합니다. 그건 국가가 아니라 저 같은 컬렉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좋은 사립 미술관이 많아지고 작가도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죠. 제주의 젊은 작가들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려면 많은 작품을 보고 느껴야 합니다. 제주 아라리오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그는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이 관광객보다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관이라고 강조한다. 제주 도민이 이곳에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고 더 나아가 죽어가는 동네의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

10월 초, 미술관 개관 행사로 제주를 찾았을 때 탑동시네마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 회장이 미술관 주변 건물 10여 개를 더 사들여 이탤리언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 미술관에 온 관람객이 즐길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 내년 3월쯤엔 동문모텔Ⅱ도 개관한다. 그는 이 일대를 이른바 복합 문화 단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해가는 중이다.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을 시작으로 제주시의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6 김구림 작가의 ‘빗자루’. 
7 건물의 옛모습을 살린 공간.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둘러보기
약 10년간 방치한 영화관과 상업 건물, 모텔이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과거의 흔적 을 보존하고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보존과 창조’의 공간이 탄생했다.

탑동시네마 탑동시네마는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프로젝트의 중심이다. 개관전 는 전시할 공간이 없어 빛을 보지 못한 김창일 회장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가 35여 년 동안 수집한 약 3천7백 점 중 72점을 공개했는데, 국내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는 스케일의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입장료 5천~1만 2천 원(탑동시네마, 탑동바이크샵 동시 관람권) 주소 제주시 탑동로 14 문의 064-720-8201

탑동바이크샵
탑동시네마 골목 옆에 똑같은 빨간색으로 외관을 칠한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바이크샵이 있다. 바이크 가게, 여행사 등 상업 공간이던 3층짜리 건물의 내부 벽을 허물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선 작가 한 명을 집중 조명해 소개한다. 개관전의 주인공은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김구림 작가. 1960~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의 작품을 층마다 연대별로 전시한다. 주소 제주시 탑동로4길 6-12 문의 064-720-8204

동문모텔
동문 재래시장과 산지천 사이에 있는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은 본래 객실로 구획한 내부 구조를 그대로 살렸고 화장실 타일 벽과 욕조, 변기 등 흔적도 남아 있다. 현재 현대미술의 아이콘인 제이크&디노스 채프먼 형제, 앤터니 곰리같은 거장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전시한다. 이곳의 백미는 제주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 카페. 전시를 관람한 후 건물 꼭대기에 오르면 어느덧 가슴이 뻥 뚫린다. 주소 제주시 산지로 37-5 문의 064-720-8202


취재 협조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www.arariomuseum.org) 

글 김민서 기자 | 사진 김규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