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에 있는 총괄 건축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자동차 안에서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승효상 건축가.
우리 선조에게 집은 윤리였다
“도시 안에 스펙터클한 광경을 만드는건 구시대에 한 일입니다. 서울은 더 이상 랜드마크가 필요 없는 곳이에요. 이젠 점처럼 여기저기에 발달한 곳 사이사이에 공공 영역을 만들어 잘 연결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도시의 속도가 줄어듭니다. 도시 안에 느린 영역,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시민이 여유롭게 걸어서 갈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특히 서울의 사대문 안은 종국에는 자동차가 없는 공간이 되어 비움의 도시, 느림의 도시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요.”
네덜란드의 각 도시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세계 유명 도시의 시청에는 총괄 건축가라는 직책이 있다. 건축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도시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을 승인하는 사람쯤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총괄 건축가는 어떻게 하면 시민이 도시에서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일상을 누릴 수 있을지와 그리하여 수백 년 후 이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지속되고 있을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문가답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이 일을 위해 선임된 서울시의 초대 총괄 건축가는 승효상, 서울과 베이징에 있는 이로재 건축사사무소의 대표로 남보다 작은 집을 짓고, 남하고 나눌 수 있는 집을 짓는 ‘빈자의 미학’을 건축 철학으로 고집해온 이 시대의 선비 같은 건축가다.
승효상 총괄 건축가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조상에게 지난 수천 년간 집은 곧 윤리였다. 자연과 인간을 맺어주는 윤리 관계에서 건축을 이해한 것이 우리 조상의 생활 방식. 먼저 지세를 살피고 자연과 사람이 최대한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집을 짓고, 그런 집이 모여 마을이 되고 도성이 되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적어도 일제강점기까지 유지되었는데, 해방 후 사람들은 근대화가 곧 서양화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로 경제 개발만 밀어붙이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우리 선조가 수천 년간 지켜온 지혜로운 삶의 방식은 완전히 허물어져버렸다. 모두가 즐기던 산을 가리고 앞집에 해가 안 들어도, 거래가 끝난 땅엔 이유 불문 자연과 지세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똑같은 모양의 건물만 지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불과 지난 50~60년. 그러니 그 격동기의 중간쯤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는 건축을, 땅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내고 아파트처럼 큰 건물을 짓는 ‘부동산’ 개념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건축이 아직도 세계 변방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근본 오해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인간이 존재하는 형식이다
“인간은 땅 위에 거주하며 존재하고, 건축은 곧 우리의 존재 형식입니다. 건축을 말로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것이 곧 자신이 살고 싶어 하는 삶의 형식이고 건축 개념인 것이지요.” 여기서 ‘이런 집’의 의미는 건물의 외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무가 있는 골목 끝에 집이 있고, 명절이면 호두를 넣어 약식을 만들어 나누어주는 정겨운 아주머니가 이웃에 사는, 집 뒤편에 도서관과 산책길이 있는, 거실에서도 햇볕에 빨래가 보송보송하게 마르는’ 등 삶의 각 영역에 걸친 다채로운 수식어가 건축과 연결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른바 물건도 보지 않은 채 건설사가 획일적 도면대로 지은 집을 선분양으로 사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요상한 상거래를 하면서 ‘이런 삶의 형식으로 살고 싶다’는 진짜 건설적 생각을 퇴화시키고 있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에게 어떤 집에 사느냐고 물으면 몇 동 몇 호의 숫자로 답이 끝난다. 그나마 건설사 브랜드 단지 안에서 사는 사람들끼리라도 정을 나누며 사회성을 키우면 다행이지만, 실상은 최고급 아파트일수록 지하 주차장에서 집까지 엘리베이터가 곧장 연결돼 앞집에 사는 사람과 마주칠 일도, 말섞을 일도 드물다. 모여 살고 나누며 사는 공동주택이 아니라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공간과 동선으로 붙어 사는 전형적 ‘집합 주택’이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런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얼음처럼 흩어진 도시에서의 삶은 얼마나 차가운가? 아파트 단지마다 담을 둘러 외부인의 방문과 차량을 통제한다. 희한하게 도시의 공공 도로도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서 싹둑 끊긴다. 그러니 도시 공동체의 정도 뚝 끊기는 것이다. 단지 내에도 소통과 나눔이 없으니 관리비로 옆집을 속이고, 성실하게 일하던 경비원이 분신하는 충격적 사건도 일어난다. 도시 공동체로부터 요새처럼 단절된 단지가 허다하니 다채로운 삶의 형식, 사람다운 삶의 형식, 소통하는 삶의 형식이 도시에 존재하기 어렵다. 이런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나 꿈을 꾸며 주위를 돌아보는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서울 도심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화동 언덕에서. 그의 건축사사무소인 이로재는 언덕 아래 동숭동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의 미래는 여전히 긍정이다
지금의 서울은 사방을 둘러봐도 아파트와 고층 빌딩만 보이니 이 도시엔 절망적 미래만 남은 것일까? “사람이 만든 건축물은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하지만 서울은 산이 있어서 언제든지 돌아갈 원점이 있어요. 산이 있으면 계곡이, 계곡이 있으면 물이 있으니 우리 선조 시대의 산수가 있는 마을로 회귀할 수 있지요. 수백 년이 걸려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어갈 우리 도시의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건축가나 정치가가 자신의 짧은 임기 내에 다 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임기 2년 동안 이 도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우고, 어떻게 해야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시나리오나 지침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근사하게 임기를 마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멋진 건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남기는 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의 진정성을 찾는 일, 즉 도시의 곳곳을 시민이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 영역과 관계를 맺어주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저 멀리 있는 번쩍번쩍하고 높은 건물이 실제 시민들 삶의 질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그런 랜드마크 건물은 그 시민의 행복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반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사는 골목과 동네입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가 <인비지블 시티Invisible City>라는 책에서 ‘도시의 진정성은 골목에 있다. 창틀에, 난간에 있다’라고 했는데, 그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지금껏 우리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일해왔다. 어느 날 뚝딱 도로가 생겼고, 그 옆에는 느닷없이 빌딩이 올라가는 식이었다. 그들이 익명으로 일했으니 그 도로와 집이 어떻게 함께 자리했는지, 그런 공간 변화 때문에 주변 시민이 편해졌는지 불쾌해졌는지 물어볼 사람도, 확인해줄 사람도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질’에 대한 책임은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반면 네덜란드나 스페인같이 시민의 삶의 질이 높고 건축과 환경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도시에서는 총괄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한다. 특히 네덜란드는 각 도시마다 총괄 건축가가 있고, 국가 전체를 맡는 건축가도 있다. 바르셀로나는 시장 선거에 도시의 총괄 건축가가 러닝메이트로 함께 나온다. 그들은 시민에게 앞으로 이 도시에서의 삶이 어떻게 바뀌고, 어떤 비전을 갖고 흘러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임기 동안 그들의 이상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시행착오를 하면 어때요. 대신 그 잘못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기면 됩니다. 그래야 도시의 미래 세대에게 참고 자료가 생기고 무엇보다 반성이 생깁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여태껏 반성이나 성찰도 없었지요. 그러니 당연히 발전도 진보도 없는 겁니다.”
건축가 ‘archtect’의 어원인 ‘arch’는 으뜸이고 크다는 의미. 건축은 큰 학문을 뜻하며, 아키텍트는 건물 디자인을 초월해 조경, 인테리어, 도시 계획, 공공시설 등 전 분야를 관할한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그들이 시민의 삶을 잘 뒷받침하도록 총체적으로 조율하는 것도 총괄 건축가의 일이다. 실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총괄 건축가는 도시 인프라의 IT 기술에 까지 관여한다. 시민의 공공시설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접목하고 개발해야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가, 새롭게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일도 건축이다.
선진 도시의 미학은 공공 영역이다
“도시 환경을 바꾸는 건 우리 삶의 형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건축에 산다는 것은 자기 삶의 형식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도시를 바꾼다는 것은 곧 이 사회가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건축으로 얼마든지 혁명을 할 수 있어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 건물을 짓거나 잘 있는 건물을 무너뜨리지 말고, 우선 여기저기 막아서고 단절된 도시 구조를 잘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도 도시 건축이 바뀌고 시민들 삶의 형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농촌과 달리 도시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모여 그 사이에서 성공할 기회를 꾀하려는 곳. 그러니 도시에는 그 욕망을 조율할 법 조항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법조문을 손에 들고 다닐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 법조문이 모두의 눈에 보이도록 만든 곳이 바로 ‘공공 영역’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공 영역이 아주 근사하게 연결되고 건강하게 유지되는 곳을 선진 도시라고 부른다.
“얼마 전 베를린에 갔습니다. 호텔에서 나와 약 3km를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교차로를 건넌 기억이 한두 번밖에 없었어요. 자유롭게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여러 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죠. 시민이 어떤 목적지로 가고 싶을 때 원하는 대로 잘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공공 영역이에요. 조금만 걸어도 길이 단절되고 기다려야 하며 아슬아슬하게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한다면 그것은 도시의 법이 온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건축이란 분야는 이토록 입체적이고 포괄적이다. 아직 보행신호가 깜박이고 학생이 길을 반쯤 건너는데 불쑥불쑥 자동차가 지나가니, 우리의 공공 영역은 시민을 위한 기능을 제대로 못 하는 게 현실이다. “기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오픈 스페이스를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공공화하느냐는 것이 제가 임기 동안 할 일입니다. 시민이 산책하고 싶을 때 자동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술렁술렁 걷기 좋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지요. 도서관에 가고 싶어서, 공원에 가고 싶어서 자동차 시동을 켜지 않아도 집에서 10분 거리 내에 다양한 공공 영역이 존재하는 곳, 그런 곳이 선진 도시입니다.”
북악산에 올라 아름다운 서울을 보라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입니까?”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했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김수근 건축연구소에서 15년간 일했다. 이후 서울과 베이징에 사무소를 둔 한국의 대표 건축가로 지금껏 외국의 아름다운 도시를 얼마나 많이 가보았겠는가. “북악산에서 서울 남쪽을 보면 ‘아! 서울이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시가 있는데 산이 중간에 불쑥불쑥 올라오고 그 산 너머에 마을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마을이 있고 강이 흐르고 그 너머에 또 마을과 산이 있는 겹겹의 경관이 펼쳐지니까요. 서울의 지세는 세계 다른 도시에서 보기 드문 보물입니다.” 낙산은 서울의 중요한 산을 다 볼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요즘 서울의 성곽을 이은 걷기 코스가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것도 자신이 모르던 도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서울의 성곽을 잇는다는 것은 서울 전경을 본다는 시나리오인데, 전경은 사람에게 굉장한 즐거움을 줍니다. 이런 도시가 있나, 이렇게 아름다울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지요. 또 하나 추천할 코스는 남산에서 내려와서 세운상가를 따라서 종묘 쪽으로 진행하는 길입니다. 여기서는 서울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 서민적 삶의 모습과 지금의 발전된 모습까지 지난 세월의 기억이 천천히 지나갑니다. 고궁이나 현대 빌딩이 아니어도 골목길, 사람이 살던 흔적을 보면서 진짜 즐거움과 교훈을 얻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운상가의 덱을 반드시 재생해야 합니다.”
이로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서울시청 내 그의 사무실에서.
도시의 끊어진 단면을 잇는 공공 영역
건축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곡해가 요즘처럼 심하지 않던 1960년대, 당대의 이름난 건축가들은 건축의 본질을 탐구했고, 서울이 세계적 입체 도시가 되리라는 이상을 품었다. 당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세운상가는 그런 면에서 한국 건축사에서 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곳이다. 청계천을 개발한다며 세운상가를 철거하려 할 때 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시민이 나서 보전을 주장한 것도이 때문이다. 다행히 현 서울시장은 세운상가 보전에 의견을 같이했고, 최근에는 세운상가 덱을 복원해 남산과 종묘를 잇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용을 잘 모르고 뉴스를 접하면 그동안 청계천과 동대문운동장 공사로 몸살을 앓은 사대문 안에 또다시 흙먼지를 날리려 하나 걱정이 된다. 하지만 세운상가 덱은 1960년대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다. 청계천 공사를 할 때 그 부분만 철거했을 뿐 예전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종로부터 퇴계로까지 서너 개의 블록으로 만든 세운상가는 건물 3층의 양 가장자리에 마치 도로 같은 덱이 이어져 있습니다. 당시 김수근 건축가의 스케치를 보면 그 덱 위로 한 여인이 유모차를 밀면서 산책을 합니다. 이 덱은 시민이 유보遊步(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것)하는 용도였지요. 푸른 남산 아래에서 고즈넉한 종묘까지 자동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서울의 경관을 감상하며 천천히 산책하려는 꿈이 있었던 겁니다.”
전통적으로 서울의 사대문 안은 청계천을 따라 동서로 길이 발달했다. 그런데 김수근 건축가가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을 생각해낸 것이다. 게다가 크게 보면 종묘는 창덕궁과, 창덕궁은 북악산과 이어져 북악산에서 남산까지 걸을 수 있게 된다. 또 남산은 용산과, 용산은 한강과 연결된다. 그리고 북악산은 삼각산과, 삼각산은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동안 방치해둔 세운상가 덱의 복원은 서울 시민이 도심에서 어디로든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보행권을 회복하고, 나아가 백두산에서 한강까지 생태계가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 통로를 회복하는 절호의 기회다.
“새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지금 세운상가 양쪽에 있는 큰 덱에 나무를 심고 꽃밭을 만들고 벤치를 놓아 원래 설계대로 시민에게 새로운 공공 영역을 선물하려는 것입니다. 덱 주변에도 공공영역을 확대할 겁니다. 덱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연결하면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가볍게 걸어서 을지로 지하상가, 청계천, 종묘와 동대문에 곧장 갈 수 있지요.”
기존 건물에 몇 개의 연결 다리만 보강하고 나무와 꽃을 심어 도심에 푸른 오솔길을 만드는 일이니, 많은 예산도 필요치 않다. 또 새로 지을 게 없으니 완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간단한 시도이지만, 이를 통해 서울 시민의 삶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총괄 건축가의 설명이다.
“도시 안에 느린 영역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시대에 우리는 시내를 걸어 다니지 않으면서 우리 삶의 세세한 부분을 간과해버렸습니다. 느리게 걸어야 이웃이 웃는 모습을 보고 이웃의 감정도 살피고, 그것을 관계로 엮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니 주변을 살피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게 힘들어졌지요. 걸어야 다른 사람을 보고 생각과 판단도 하는데, 우리는 여태 판단의 여지도 성찰도 없는 삶을 살아왔어요.”
최근 서울시가 서울역 옆 고가를 허물지 않고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뉴욕에 있는 1.6km 길이의 공원. 오래된 고가도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시민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와 같은 녹지 공간을 조성하려는 것도 이러한 도시 공공 영역의 네트워크 연결 계획 중 하나다. 이렇게 서울 시내에서 시민의 보행 선택권이 많을수록 공공 영역도 더 많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도시인에게 부족하던 만남과 소통이 이루어진다. 교통 체증이나 주차 고민에서 벗어나 어디든 기분 좋게 걸어 다니고, 공공 영역에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아파트 단지에 갇혀 살며 냉대하던 시민의 마음에 온기가 돌고 삶의 속도가 늦춰져 주변을 돌아보고 배려할 정서적 여유를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도, 시민들 삶의 형식도 느리고 여유롭게 변화해갈 것이다.
책임과 반성, 성찰이 있는 도시
“2년에 한 번씩 총괄 건축가가 바뀌어도 모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임을 질 것이며, 때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돌아보고 성실히 기록해 반성과 성찰을 할 겁니다. 시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총괄 건축가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한 것은 훌륭한 건축가가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나 전문가로서 도시의 비전을 향후 수백 년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시의 변화를 본 전국의 다른 도시도 총괄 건축가 제도 도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각 도시의 총괄 건축가가 협업하면 언젠가는 불균형 을 고질병처럼 달고 살아온 대한민국이 주변을 돌아보고 서로를 배려하는 여유롭고 따뜻한 나라로 발전하리라는 희망도 조심스레 가져볼 수 있겠다.
한 도시에서 특별히 마음 따듯해지는 경험을 하면 비록 그 도시의 물리적 형상이 낙후하거나 좀 지저분해도 그곳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언젠가 다시 가보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더 이상 멋진 건물이 없으면 어떻고, 고등어를 구워 파는 허름한 식당과 대장장이의 철물점이 도심에 있으면 어떤가. 겉만 번지르르한 도시보다 행복의 본질이 살아 있는 도시가 좋고, 단절된 요새보다 열린 공공의 세상에서 사는 게 분명 행복할 것이다. 산자락을 따라 터에 맞게 집을 짓고 담을 낮추어 남을 살피며 예의를 갖추고, 좋은 것은 나눠 먹고 이웃집 아이도 같이 돌봐주며 어디든 여유롭게 걸어 다니던 우리 선조의 건강한 삶의 방식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려는 도시. 그변화가 이미 우리 도시의 공공 영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페인트 모션 없이 항상 깔끔한 자세를 유지해 단도직입적으로. 책임과 반성과 성찰이 있는 삶의 형식을 향해 총괄 건축가와 시민이 함께 나아가려 하고 있다.
- 서울시 총괄 건축가 승효상 느리게 걸어가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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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에는 한 번, 63빌딩에도 한 번, N서울타워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다. 도시의 멋진 랜드마크가 저 멀리 보이지만 자주 가지 못하니 일상의 행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신 며칠 전 우연히 산책한 장충동 뒷골목에서 소박한 삶의 재미와 의미를 새삼 느꼈다. 사람들이 자동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도시, 그런 선진 도시를 만드는 데는 설계 도면뿐 아니라 건축가의 책임과 기록,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