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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의 진정한 의미를 헤아리다 아름다운 전통 혼례

왼쪽 신랑이 신부 집에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를 치르기 위한 공간으로, 기러기는 정절과 화합을 상징한다. 
오른쪽 신랑 측 혼주인 류효향 대표가 신부의 상징인 흰색을 기본으로 사돈인 권대섭 도예가의 달항아리 도자기 색상에 맞춰 꾸민 신부 대기실. 신부의 화려한 활옷은 ‘복온공주 활옷’을 고증한 것이며, 예식을 치를 때는 ‘덕온공주 원삼’을 고증한 녹원삼으로 기품을 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일을 혼인婚姻이라 하는데, 이를 한 글자씩 풀면 ‘혼’은 장가든다는 뜻이고, ‘인’은 시집간다는 뜻이다. 그 약속 의식을 치르는 것이 혼례婚禮다. 옛사람들은 혼인을 일컬어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人情의 마땅함을 합하는 것”이라고 하며, 음과 양이 합해 자연 섭리에 순응하는 중요한 의식으로 여겼다. 특히 우리의 전통 혼례는 소품 하나하나, 과정 하나하나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룰 때 필요한 마음가짐을 가르쳐 좋은 의식의 본보기가 된다. 지난 8월 23일, 부산의 달맞이고개에 자리한 전통 다실 ‘비비비당’에서 치른 김준환・권연아 부부의 전통 혼례는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더했다. 혼례상, 식기, 소품, 예복 등 전통 혼례의 절차와 기물을 고증에 따라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 시끌벅적한 이벤트로 전락한 듯한 오늘날의 결혼식에서는 볼 수 없는 기품과 정성이 곳곳에서 느껴지니 이만하면 혼인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의 색과 선, 맛과 멋을 살린 자리로 더할 나위 없다.

1 손님을 위한 정갈한 음식. 
2 손님상에 올릴 주병과 컵도 모두 신부 측 혼주인 권대섭 도예가가 빚은 것. 
3 꽃꽂이 또한 전통 혼례를 손수 준비한 류효향 대표의 솜씨다. 
4 혼례식 전 축하 공연을 한 허인대 대금 부산시무형문화재와 임금옥 가야금 명창. 

전통 혼례로 혼인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다
바쁘면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고 한다. 삶이 얕아져 결국 품질이 떨어지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한데 일생의 중대사인 결혼 서약을 하는 예식장 풍경도 요즘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남녀가 만나 혼인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고 정신적・인격적으로 하나 되는 성스러운 예식 분위기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서양의 결혼 예식에 익숙하다 보니 외려 조상의 깊은 뜻이 담긴 우리의 전통 혼례가 다소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 한국 전통미에 관심이 많아 아들의 혼례만큼은 집에서 소박하고 정감 있게 제 손으로 치르고 싶었습니다. 서양의 혼례에서는 우리만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느낄 수 없어 내심 아쉬워하던 터라 전통 혼례로 혼인의 의미를 아들 내외에게 알려주고 싶었지요. 평소 조선 고가구 등 골동품과 미술품을 컬렉션하고 공부하는 며느리와 아들도 뜻을 함께해 전통 혼례로 예식을 준비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예서> 등 옛 자료를 찾아 일일이 공부하며 아들 내외의 혼례를 손수 준비한 부산의 전통 다실 비비비당 류효향 대표는 전통을 바탕으로 나름의 의미를 더해 현대적 감각으로 전통 혼례를 마련했다. 신랑이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인 전안례奠雁禮, 신랑과 신부가 서로 상대방에게 절하는 교배례交拜禮, 한 표주박을 둘로 나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합근례合 禮 등 전통 혼례 의식은 과정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 그에게도 혼인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왼쪽부터 신랑 측 혼주 김경렬・류효향, 신랑 김준환, 신부 권연아, 신부 측 혼주 김지영・권대섭. 
“공부를 할수록 전통 혼례가 얼마나 아름다운 의식인지 매번 감동했지요. 특히 혼례의 시작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백년해로하겠다는 서약의 뜻을 담아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기러기는 짝이 죽어도 새 짝을 찾지 않고, 날아갈 때도 앞장서는 기러기는 힘센 놈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병들고 노약한 기러기를 가장 앞에 세우고 건강한 기러기가 양쪽을 지키며 삼각 대형으로 행렬을 맞춰 앞서 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놈도 화답하며 예를 지킨다고 해요. 신랑이 기러기를 앞에 두고 큰절을 하는 이유는 기러기의 이러한 덕목을 본받자는 의미입니다. 서양 혼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건하고 멋진 퍼포먼스지요.” 그 의미를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과도 함께 나누고자 전통 혼례의 의미와 예식 절차는 지키되 나름대로 해석해 장치를 더하기도 했다.

혼례식 때 행보석行步席이라 하여 혼인식 장소로 가는 좁고 긴 자리는 ‘두 성姓이 합하여 백 가지 복福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가 있는데, 혼례 날 행보석 위에 ‘이성지합二姓之合 백복지원百之源’이라는 글자를 붉은 한지에 써서 붙여 그 의미를 헤아릴 수있게 한 것. 전통 혼례에서는 볼 수 없는 의식도 준비했다. ‘향’과 ‘화합의 차茶’가 그것이다. 향은 공기를 맑게 해주어 주위 환경을 정화하고, 차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기 때문. “제가 향과 차를 다루고 공부하는 사람이니만큼 그 의미를 예식에 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본식이 시작하기 전에 향을 피우고, 녹차를 정성껏 우리는 과정을 시연하며, 전안례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인사하는 교배례 후에 ‘화합의 차’로 나누어 마셨지요. 교배례는 손을 씻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다는 뜻이니 향과 차로 그 의미를 강조한 셈이에요.”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인사하는 교배례 모습. 이때 신랑과 신부가 맞절하는 것은 존중하는 마음을 깊이 새기라는 의미다.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고, 신랑이 답례로 한 번을 한 후 다시 신부가 두 번 절하는데, 신랑은 양의 기본수대로 한 번, 음인 신부는 두 번 절한 것.
기품과 정성이 느껴지는 경건한 잔치
혼인이란 양인 남자와 음인 여자가 만나는 의식이다. 따라서 그 의식을 치르는 시각도 낮과 밤이 교차되는 해 질 무렵에 거행했다. 혼주인 류효향 대표가 손수 준비한 김준환・권연아 부부의 혼례식도 옛 방식 그대로 저녁 5시 무렵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했는데, 전안례와 교배례에 이어 신랑 신부가 한 쌍의 표주박에 술을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굳이 표주박에 술을 마시는 것은 반으로 쪼개지면 그 짝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며, 둘이 합쳐져야 하나로 온전해지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통 혼례는 예식은 물론 기물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특히 이날 예식에 쓴 고가구며 소품, 그릇 하나하나가 옛 모양 그대로도 현대에 통하는 아름다움으로 죄다 격조 있는 것 일색이라 혼례에 기품을 더했다. 장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절제한 아름다움으로 소박하되 초라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으니 양가의 가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1 혼례상 위에 놓인 백자는 모두 신부 측 혼주인 권대섭 도예가가 직접 빚었고, 신랑 측 혼주인 류효향 대표가 혼례상을 손수 꾸몄다. 혼례상 위에 올린 음식에는 염원이 담겨 있는데 쌀은 부귀, 밤은 복, 대추는 자손 번창, 팥은 액막이, 소나무와 대나무는 절개, 청・홍실은 금실을 상징한다. 
2 차행법 연구모임 ‘숙우회’에서 준비한 ‘화합의 차’를 위한 다도구. 

“박쥐문으로 된 혼례상은 시어머니께서 오래된 조선 고가구를 어렵게 구하신 거예요. 병풍과 상 덮개로 쓴 청홍 천은 고증에 따라 제작한 것을 힘들게 찾으셨죠. 혼례의 모든 과정에 사용한 기물을 모두 최대한 격식에 맞춰 장식이 과하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주셨어요. 혼례상에 올린 그릇과 촛대, 신랑 신부가 나누어 마신 백자잔은 물론 세수 그릇과 꽃을 꽂아 장식한 달항아리 등은 친정아버지(도예가 권대섭)가 직접 빚으신 것이니 저와 신랑에겐 예식 자체도 그렇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자리라 의미가 남달랐어요.”

예식도 그러하거니와 혼례에 쓴 도자기도 예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깊고 소박한 멋이 은은하게 배어 격조가 높았는데, 과연 가장 전통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백자 달항아리를 빚는 권대섭 도예가의 작품다웠다. 혼례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공경과 사랑을 맹세하는 약속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두 성이 합해 백 가지 복의 근원이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양가 부모가 화합해 차린 이날의 혼례상이야말로 자식의 행복을 기원하는 가장 귀한 선물이요, 전통과 현대 것이 과하지 않고 정갈하게 조화를 이룬 전통 혼례상이 아닐는지.

1, 2 귀가 달린 백자 잔에 ‘화합의 차’를 신랑과 나누어 마시는 신부. 탁자의 청홍 천은 고증에 따라 제작한 것으로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무늬가 인상적이다. 
“전통 혼례를 준비하면서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절하는 의식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새기는 과정이라고요. 단순히 전통 방식으로 결혼식을 치른 것이 아니라, 전통 혼례를 통해 두 사람이 하나 되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지고 배웠어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한다. 이는 철학자 키르케 고르의 명언이자 기혼자들의 한결같은 결혼 소감이다. 그만큼 결혼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일 터. 기물 하나에도 의미를 더하고 양가의 가풍을 녹여낸 이날의 전통 혼례처럼 예식이 의미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부부가 서로 공경한다면 “결혼은 안 하면 후회”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쁘게 치러내는 결혼식에서 느끼기 어려운 전통 혼례식의 기품과 감동은 그 과정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3 전안례 때 기러기는 머리가 왼쪽으로 향하게 안는다. 
4 댕기에도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만자문이 금박으로 되어 있다. 
5 교배례에 앞서 손을 씻는 것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다는 의미다. 

글 신민주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