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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환대하는 사람들의 질문
많은 사람이 이토록 각박해진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을 찾기 위해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갑니다. 학교에서도 인문학 강의가 인기고 서점에서도 인문학 책이 불티나게 팔리지요. 하지만 인문학은 마치 주술사처럼 지금 당장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대신 인문학의 가치는 각 사람에게 꾸준히 그리고 견고하게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대신 ‘이걸 왜 먹고 싶을까?’라고 스스로 물으면 자신의 내면과 이 세계를 두루 돌아보는 또 다른 질문이 저절로 솟아나지요. 그 질문에 답을 찾다 보니 자신과 주변, 자연과 세상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대’의 의미이며, 인문학은 ‘환대하는 사람’을 지향합니다. <행복> 창간 27주년을 기념해 우리 삶의 본질과 이 세상을 들여다보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즐겁게 해주려는 질문과 답이 있는 27명의 ‘환대하는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세상에는 환대가필요하다

‘환대’라는 말이 요즘 부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손님을 따뜻하게 잘 대접하는 것, 이것이 환대다. 환대의 한자 ‘환歡’에는 따스함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누구를 환대한다는 것은 ‘따스하게 맞아주기’지 차갑게 맞기가 아니다. 차가운 접대는 ‘냉대待’다. 나는 이 지상에서 환대받는 존재인가? 환대받으면서 태어나고 환대받으며 자라고 환대받으며 살고 있는가? 당신은? 그 사람은? 우리 고향 동네 갑순이가 열여덟 나이에 자살해버린 것은 그녀를 환대해주는 사람이 이 지상 어디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문맥 속에 밀어 넣고 보면 환대와 냉대는 그냥 범상한 어휘가 아니다. 두 말 사이에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천국과 지옥이 오간다.

환대는 특별한 대접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이 지상에 사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 생존 권리, 그것이 환대다. 그것은 나의 권리이면서 타인의 권리다. 그 권리가 존중되지 않으면 이 지상에서 내 존재는 찌그러진다. 그러나 내가 환대받을 권리를 내세운다면 나는 타인의 환대받을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환대권의 평등한 상호성이다. 환대는 특권 행사가 아니다. 환대받을 권리의 평등성이 우리가 누리는 환대권의 기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웃을, 타인을, 지상의 모든 타자를 내 몸처럼 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환대는 나의 권리인 동시에 타인을 대하는 ‘나의 의무’가 된다. ‘환대 받기’의 권리는 ‘환대하기’의 의무를 수반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고 잘 대접하는 환대의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환대받는 데는 열심이지만 타인을 환대하는 데는 인색하며 서투르기 짝이 없다. 환대는 특권이 아니지만 갈고닦아야 할 특별한 능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는 능력, 존중하는 능력, 보상을 기대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는 순수한 선의의 능력이다. 세상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그런 사람 옆에서는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돈의 성공이 주는 행복이기보다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며 살고자 할 때 그 환대의 선의에서 나오는 ‘인간적 가치의 성공’이다. 그런 사람은 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이를테면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그것이다. 인간적 가치라지만 그게 대체 뭔가? 인문학자들에게 물으면 답변 듣는 데 족히 세 시간은 걸리고도 모자랄 질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What makes human human?)”라는 인문학의 기본 질문이다. 이런 질문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간적 가치, 곧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궁이 어느 날 묻는다. “선생님은 늘 인仁을 말씀 하시는데 그 ‘인’이란 게 무엇입니까?” “집 밖에 나와서 만나는 모든 이를 큰손님 대하듯 대하라(出門如見大賓).” (<논어> ‘안연편’) 요즘에야 우리는 공자가 말한 ‘인’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곧 인간성(humanity)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너무도 쉽고 감동적이다. “모든 사람을 환대하라. 그것이 인간의 길이다.”


1 보듬반려견행동클리닉 강형욱 대표
반려견, 버리는 대신 함께 잘 살려면?

올여름 강원도 해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휴가 온 주인이 버리고 간 유기견이 다른 해보다 몇 배 더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반려견이 말썽을 부리면 개 탓을 하며 길에 버리는 비정한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반려견의 생명과 인연이 정말 그리 가벼울까?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는 자신의 책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에서 사람과 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많은 반려견도 무지한 주인 때문에 무척 고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한테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적습니다. 평소와 달리 개가 짖거나 아무 데나 배변을 하는 행위는 주인의 행동이나 개가 처한 환경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며 풀지만, 개는 주인이 만들어놓은 환경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 ‘앉아’나 ‘손’처럼 인위적 훈련과 서열 정리는 지극히 사람의 편의에 따른 훈련법. 그러니 사람과 반려견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한 것처럼 개가 개답게 살 수 있도록 인내하고 기다려주며 반려견의 개성을 파악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더 정확한 정보가 알고 싶다거나 도저히 어쩌지 못할 때는 강형욱 훈련사같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보듬반려견행동클리닉의 일대일 수업을 통해 주인과 반려견이 함께 상담을 받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매월 세미나를 열고 있으니 좋은 견주로 거듭나고 싶은 사람은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2 터치포굿 박미현 대표
사라진 제비,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우리 동네에서 제비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일까? 이 질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제비를 본 적이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간 제비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따뜻한 봄을 알리고 해충을 잡아먹던 길조 제비가 공식적으로 서울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어느덧 10년째. 지금 어린 아이들에게 제비는 신화 속 용과 다름없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환경오염이나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 등에서 제비가 돌아오지 않은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우리의 무관심이에요. 제비를 돌아오게 한들 제비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버려진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사회적 기업 터치포굿이 우제국과 함께하는 캠페인 중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숨은 제비 찾기’는 터치포굿이 우체국의 현수막으로 제작한 가방의 그림에서 아이들이 제비에게 필요한 것을 색칠하며 자연스럽게 제비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익히는 프로 그램이다. 제비가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그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작은 것부터 제비가 돌아오도록 하는 데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지금 우리에겐 더 절실하다.


3 레인 포레스트 커넥션 토퍼 화이트
버려진 스마트폰으로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에서는 1년에 1백만 헥타르의 숲이 사라진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숲의 절반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원인은 불법 벌목!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던 젊은 물리학자 토퍼 화이트Topher White는 이 불법 벌목 현장을 목격했다. “불법 벌목 감시 요원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열대우림의 면적이 너무 광활하다 보니 일이 다 벌어진 후 발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더욱 효율적인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그가 떠올린 것이 폐스마트폰. 미국에서 연간 1백50만 대씩 버려지는 스마트폰을 열대우림 곳 곳에 설치해 녹음을 한 후 모바일 앱과 공유하고, 주변에서 전자 톱 소리 같은 큰 소음이 들리면 불법 벌목으로 간주해 감시 요원에게 해당 위치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의 에너지는 태양광으로 충전하고 불법 벌목을 하는 사람이 훔칠 경우를 대비해 도난 방지 시스템도 갖추었다. 이 스마트한 캠페인은 향후 아프리카의 불법 벌목과 불법 밀렵을 감시하는 데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또 이러한 위치나 소리 정보를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으로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있는데, 다운로드하면 누구나 지구 열대우림을 지키는 파수꾼이 될 수 있다.


4 애니스푼 곽재희 대표
따스한 집밥을 여행자에게 대접하려면?

많은 여행자가 마음먹고 떠난 여행에서 마치 그곳 시민처럼 그들의 문화를 깊숙이 진하게 경험 해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보가 적고 언어가 서툰 대다수 여행자는 그들의 바람과 달리 그저 유명 관광지나 식당만 훑고 오는 여행에 만족해야 한다. 여행자가 좀 더 깊숙이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게 해줄 방법은 무엇일까? 애니스푼의 곽재휘 대표는 외국인에게 진짜 한국 모습을 소개하는 관광 상품을 개발하던 중 ‘집밥’에 꽂혔다. “집밥은 단순히 집주인과 음식을 나누어 먹 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낯선 한국의 주거 문화를 소개할 수 있고, 집 안의 갖가지 세간으로 집주인의 삶은 물론 한국 사람의 진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올 4월에는 홈페이지를 열고 집밥 호스트 모집에 나선 애니스푼.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제주도에도 대한민국 집밥 플랫폼을 형성하는 중이다. 호스트가 외국어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언어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삼계탕부터 짜파구리까지 집밥 메뉴도 온전히 호스트의 몫.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을 대하는 따뜻하고 열린 마음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한 사전 조사에서 80% 이상의 외국인이 한국의 가정집에서 집밥을 먹어보고 싶다고 답했다 하니, 한국을 찾은 여행자에게 뜻깊은 환대의 경험이 될 것이다.


5 용인한국외대 부설 고등학교 2학년 조승연 학생 
생활 속 편리한 기술, 극소수만 누려도 될까?

사람이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인류의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지만, 그 혜택은 구매력 있는 전 세계 단 10%의 사람만 누리는 게 요즘의 현실. 한쪽에서 주차까지 알아서 척척 해주는 무인 자동차가 개발되지만 지구 반대편에선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마실 물을 뜨러 수십 킬로미터의 위험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런 첨단 기술에서 소외된 90%의 사람을 위한 값싸고 지속 가능하며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많은 사람이 더 편리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 지구 공생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년, 적정기술을탐하다>의 저자 조승연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인 적정기술에 흠뻑 빠져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등 적정기술 알리기에 앞장선 고등학생이다. “적정기술을 알기 전에는 그냥 지나친 일들을, 이젠 어떻게 하면 적정기술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요. 건물 외벽에 냉수관을 삽입하면 뜨거워진 내부 공간과 비열 차이로 인해 자연 에어컨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많은 비용 부담 없이 아프리카 아이들이 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내에 적정기술 동아리까지 만들어 친구들과 공부하는 틈틈이 실험을 한다고 하니 하루하루 커가는 그의 꿈만큼 우리가 사는 지구가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길 기대해본다.


6 대림동 성당 이성원 주임신부
서민이 유기농 식문화를 비싸지 않게 즐기려면?

누구나 좋은 먹거리를 먹고 싶어 하지만 유기농을 비롯한 건강한 식재료는 가격이 비싸 ‘잘사는 사람’의 전유물이 된 게 요즘 세상의 서글픈 현실. 2년 전 대림동 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성원 신부는 성당 신자들의 사교 공간인 카페를 만들면서 “사람의 몸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우리 농촌을 살리는 먹거리는 과연 뭘까? 서민도 좋은 먹거리를 즐길 권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했다.

마침 천 주교 내에 우리농산물살리기 운동본부가 있으니 카페 한편에서 우리 농산물과 유기농 먹거리를 판매하기로 했다. 자릿세가 없고 성당 봉사자들이 도와줘 인건비가 들지 않으니 마진 없이 신자들에게 평소 장 보는 비용으로도 건강한 유기농 식 재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성당 신자들만 이 혜택을 누리면 지역의 다른 주민들의 건강은 어찌할까? 이 질문은 올여름 성당 마당에 길쭉한 카페를 지어 답을 찾았다. 길가에 있는 카페에 누구나 들어와 오늘 아침에 우리 밀로 만든 빵, 자연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자란 소에서 얻은 신선한 우유로 만든 팥빙수를 저렴한 가격에 맛보고,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하며 좋은 식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한 것.

작년부터 여름에는 성당 마당에 커다란 이동형 수영장도 열었다. 봄 가을에는 신자와 주민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회도 진행한다. 마실 나온 할머니가 나무 그늘에서 팥빙수를 먹고, 아이들은 보좌 신부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까르르 물놀이를 하고, 주부는 유기농 식재료로 장을 보는 살가운 성당 마당의 풍경을 본 행인의 입에선 “서울에서도 이런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구나!” 하는 행복한 감탄사가 나온다. “삶은 더불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바닥을 칠 수 있고 내일은 당신이 바닥을 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때에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는 곳이 좋은 세상 아닐까요. 이것이 환대입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존재 자체를 그냥 그대로 안아주면 되지요.”


7 뽀떼 박상남 대표
반려동물도 주인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반려동물 문화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요즘,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할 수 있는 가구를 선보이는 뽀떼는 의미 있는 브랜드다. 10년 넘게 제품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박상남 대표가 유기묘를 키우면서 생긴 질문을 토대로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잠을 자는데 반려동물은 소파 밑이나 침대 밑, 바닥에 누워 자는 모습이 측은해 보였어요. 그러다 책에서 강아지와 고양이에게도 그들만의 공간은 큰 의미가 있다는 내용을 읽었지요.”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 칭하면서도 왜 사람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하는 질문에 도달한 박상남 대표는 관찰, 불편함, 상상력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첫 번째 반려동물 가구 ‘뿡어집’을 만들었다. 동물의 습성을 관찰하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반려동물 가구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자 했으며,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집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는 감각적 디자인으로 완성한 것이다. “사방이 막혀 답답한 집 대신 바람과 빛이 잘 드는 따뜻한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마치 물고기 배 속에서 잠을 자듯 생선 뼈의 형태를 차용했지요.” 골격 구조물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과 자작나무를 이용해 만든 부드러운 곡선 덕분에 집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이라 여겨서인지 뿡어집을 떠날 줄 모르는 반려동물을 보면 ‘함께 산다는 것’에 더욱 즐거움을 느낀다. 그는 앞으로 ‘반려 동물과 함께 하는 주거 문화’에 초점을 맞춘 가구 디자인 개발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8 키마 김하영 대표
꽃도 잡지처럼 정기 구독할 수 있을까?

기분 울적한 날 꽃이 건네는 위로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화사한 꽃망울과 은은한 꽃향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좋지 않은 기억은 훌훌 털어내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꽃 선물은 보통 특별한 날이나 기념일에만 하는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연인들 사이에서나 주고받는 사랑의 증표쯤으로 한정한다. 그렇다면 꽃을 선물해줄 애인이 없는 사람은? 특별히 축하해야 할 날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 키마의 ‘볼룸앤보울’ 서비스가 탄생한 배경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보통 사람의 일상을 더 행복하게 해줄 방법을 고민하던 중 꽃을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는 ‘플라워 서브스크립션’을 떠올린 것. 한두 번 주고 말 것이니 이왕이면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선택하던 기존 꽃 배달 서비스와 달리, 두 세가지 계절 꽃을 소담스럽게 담은 키마의 꽃다발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아 보통날의 즐거 움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 한 달에 2~4회까지 횟수만 결정하면 플로리스트의 예술적 감각을 더한 꽃을 받아볼 수 있다. 꽃을 처음 배달할 때 어울리는 화병을 함께 주는 것도 누군가의 일상을 즐겁게 만들려는 키마만의 특별한 아이디어다.


9 리틀 파머스 천재용 대표 & 김은정 디자이너
폐타이어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은?

리틀 파머스는 최소의 새것을 활용해 인체에 자극이 적고 환경에 무해한 신발, 가방, 지갑, 리빙용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버려지는 폐타이어 중 35%만이 오일 에너지로 개발하고, 자동차 수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폐기물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지요. 폐타이어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제품이 뭘까 고민했더니 신발이라는 아주 쉬운 답이 나왔어요.” 미끄럼 방지 기능은 기본적으로 탑재했으니, 신발 밑창으로 이보다 더 좋은 재료가 있을까? 천재용 대표는 여기에 4%라는 수치로 가치를 더했다.

신발 원단은 방수 기능이 있는 소방 호스를 재활용하고, 가죽을 갈 때 발생하는 가루를 재가공해 만든 재생 가죽을 디테일로 활용한다. 신발을 만들 때 쓰는 새로운 재화는 오직 실과 친환경 접착제로, 전체 원자재의 4% 비율이다. 이렇게 제작한 타이어 신발은 원가 그대로 3만 9천 원에 판매한다. 결국 리틀 파머스의 궁극적 목표는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을 더 많은 사람이 소비하도록 하는 것. 김은정 디자이너는 소비자는 물론 제작자의 의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업사이클링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합니다. 96% 재활용 원료로 만드는 이 신발이 ‘too much’는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성도 있어요. 무엇보다 폐타이어를 일일이 깎아 밑창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에너지를 감수하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하겠죠.”


10 산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
“책벌레 손주를 위해 눈 건강을 지켜주는 조명등은 없을까?”

할배들의 손주 사랑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할 것 없이 지극하다.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 역시 ‘손주바보’를 인증했으니, ‘라문 조명등’이 그 결과물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실내 공간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자연히 눈이 상당 시간 인공조명에 노출되지요. 절 닮아 늦은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책 읽길 좋아하는 손자에게 과연 ‘책을 그만 보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눈 건강을 해치지 않는 조명등을 개발하기 위해 빛의 떨림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LED 방식을 채택하고 원형 램프 디자인을 구현해냈다.

링 형태의 램프는 수술실 조명등에서 모티프를 얻은 디자인으로, 빛을 사방에서 비추기 때문에 조도가 균일하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사용하는 과정에도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이어갔다. 램프 안쪽의 큰 구멍은 조 명등의 위치를 바꿀 때 손잡이 역할을 한다. 발광부가 뜨겁지 않아 손으로 잡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 역시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것. 조명의 밝기는 터치로 조절할 수 있으며 학습 조도부터 아늑한 침실의 촛불 밝기까지 51단계로 세밀하게 조절이 가능하다. 사용자를 배려한 따뜻한 마음과 사용 과정까지 고려한 디자인이야 말로 환대 디자인의 키워드가 아닐까?


11가든하다 정천식 대표
도시 가드너를 배려한 쉬운 방법이 뭘까?

가드닝은 소소하고 익숙한 활동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접하다 보면 어렵고 복잡한 취미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만 가지의 식물중 원하는 종을 주변에서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어렵게 찾았다 해도 식물마다 관리법이 달라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정천식 대표는 이러한 불편함을 개선하고 단순히 식물을 인테리어 용품이나 선물용 아이템으로 구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가든하다’를 론칭했다.

“대개 거창한 정원보다는 마당이나 베란다에 채소를 심거나 작은 화분에 다육식물을 키우는 도시 가드너가 많습니다. 이들이 가드닝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서로의 가드닝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Gardenhada for iPhone’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바일 기기로 식물 상태를 바로 찍어 질문할 수 있으며, 초보 가드너를 위한 토분 사용법, 분갈이 시기, 비료 등에 대한 노하우는 물론, 서로의 식물을 주제로 공감을 나눌 수 있다. 가드닝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도시 가드너라면 여기에 모여 함께 즐겨보자.


12 가구 디자이너 이양선
자투리 나뭇조각으로 추억 박스를 만들어 선물한다면?

엄마가 정성껏 차를 낼 때마다 소꿉놀이하는 아이처럼 다기를 어루만지던 이양선 작가는 문득 다구의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찻상에 펼쳐져 있던 다구들이 하나의 박스에 차곡차곡 들어 있으면 정리하기도 쉽고, 외출할 때 들고 나가 어디서나 차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공방 한편에 쌓인 자투리 나뭇조각이 떠올랐다. 결국 땔감이 되곤 하던 자투리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면서 조급해졌다.

차를 마실 때의 고요한 순간, 부드러운 차 향기를 떠올리며 밝은 단풍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얇게 켠 호두나무를 배접해 섬세한 바느질 느낌을 살린 다구함. 옛 방식의 잠금장치를 풀면 양쪽으로 수납함이 펼쳐지고 찻잔, 찻주전자를 넣는 칸이 촘촘히 자리한다. 칸을 구분하는 얇은 판은 휴대용 찻잔 받침이요, 함을 눕히면 찻상으로 활용할수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동식 다실이나 마찬가지다. 또 지인인 인후 엄마를 위한 담음 박스도 의미가 크다. 바느질 전수자인 인후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입은 배냇저고리와 유치, 서툴게 그린 그림은 물론 임신 테스트기까지 모두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경이롭고 행복한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메모리 박스와 손때 묻은 바느질 도구를 넣는 소잉 박스. 메모리 박스와 소잉 박스는 비단 느낌이 나는 체리목으로 마감하고 꽃문양을 새겨 넣었다. “건축가가 공간을 디자인한다면 가구를 짓는 사람은 소소한 일상을 디자인합니다. 지인이 행복한 추억을 잘 간직하고 즐길 수 있게끔 하는 매개체를 만드는 지금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순간이자 환대의 시간입니다.”


13 아비아렙스 가든 이은경 마케팅 이사
서서 일하며 건강까지 챙길 순 없을까?

한국인은 매일 평균 12시간 이상을 앉아서 생활한다고 한다. 그러나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사람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사망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세상만사 공짜는 없는 법이다. 건강도 움직여야 지킬 수 있다. 아비아렙스 이은경 이사는 현대인이 대부분 그러하듯 눈코 뜰새 없이 바쁘고, “어떻게 하면 건강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질문하는 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건강관리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 그의 사무실에 있는 스탠딩 데스크가 그렇다. 3년 전, 미국 알래스카 출장길에 러닝 머신을 책상처럼 꾸며놓고 일하는 동료를 보고는 바로 제작한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서서 일하며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매일 몸이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전동 입식 책상은 높이 조절이 가능하지만 고가인 데다 조절하는 게 번거로워 수제 가구 공방 안나아일랜드(www.annaisland.com)에서 내 몸에 맞게 만들었어요.”

팔꿈치가 90도로 자연스레 구부러지도록 테이블 높이는 팔꿈치 높이보다 약간 아래 위치하게 했는데, 극약 처방처럼 효과가 컸다. 허리나 어깨 통증은커녕 1년에 3kg 정도 다이어트 효과를 봤고, 집중도가 좋아져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서 있을 때 기분이 좋아요. 일하면서도 내 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까요. 보통 하루 3~4시간은 서서 일하는데, 오래 서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바른 자세로 서 있는 거죠. 내 몸을 위해 들인 제품이라도 그에 맞게 사용하고 대접해 줘야 하는 것 같아요.”


14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조형학 총주방장
호텔 음식을 집에서 해 먹을 순 없을까?

손님을 잘 대접하기 위해 늘 고민하기에 호텔은 환대의 대표 장소로 꼽힌다. 요즘은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해 호텔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양질의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식문화의 새로운 채널로 발돋움하고 있다. 최근 뜨거운 집밥 열풍과 맥을 같이하는 ‘홈스토랑(home+restaurant)’이 호텔의 주방 문턱까지 낮춘 것.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주방장의 노하우를 담은 식품 브랜드 ‘조선메이드’가 그렇다. 가족과 손님에게 호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손님들의 바람에 명쾌한 답을 내놓은 이들은 조형학 총주방장을 수장으로 한 호텔 주방장들이다.

“가족은 물론이고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가장 성대한 환대예요. 내가 맛있게 먹은 호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고 싶은 욕구는 선의에서 시작하죠. 식재료를 그대로 공유하고 노하우를 담는 것이니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호텔의 이익에 앞서 서비스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초기 단계로 샐러드드레싱 5종, 잼 3종, 피클 2종 외에 커피, 모나카, 김치 등이 있지만 앞으로는 반찬류는 물론 스테이크 등 메인 요리도 재료 꾸러미를 만들어 선보일 예정이다.


15 이니스프리 마케팅팀 정현진 과장
화장품을 만들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순 없을까?

이니스프리는 2008년 제주 녹차를 활용한 ‘그린티 퓨어’ 라인을 시작으로 미역, 화산송이, 동백, 비자 등 총 열두 가지 원료를 제주도 땅에서 얻는다. 이니스프리는 청정 섬 제주에서 얻은 이런 원료 덕에 품질이 뛰어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혜택을 지역사회에 돌려주고자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기업이 받은 환대를 지역사회에 되돌려주어 이니스프리와 제주도가 공생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제주도의 유명 관광 코스 중 하나가 된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에서는 화장품도 판매하지만, 그보다 제주의 청정 원료를 알리고자 모든 판매 음식을 제주도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식재료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어요. 또 동백과 비자를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제주도 할머니들에게 꽃잎을 줍는 작은 일자리를 만들어냈죠. 이 밖에 올레길 지도를 제작해 판매 수익금으로 올레길을 깨끗하게 보호하는 캠페인과 제주의 주요 관광지 안내판을 교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받은 혜택을 다시 돌려준다는 작은 생각이 화장품 소비자와 제주 도민, 제주도 환경,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까지 이렇게 많은 것을 환대하게 됐다.


16 에코 디자이너 쿠로트 클라레트
빵 부스러기를 새의 모이로 활용할 수 있을까?

모든 디자인은 ‘배려’에서 시작한다. ‘보기에 좋고 사용하기 편리하기 위함’이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이므로. 일상의 평범한 물건이나 재료를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해 감성적이고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탄생시키는 스페인의 산업 디자이너 쿠로트 클라레트Currot Claret는 매일 식탁 위의 ‘먹고 남은 음식’을 주목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광장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물고기에게 모이를 뿌리려 강가에 모인 이들이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를 구입해 동물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을 즐기지요.

매일 버려지는 빵 부스러기를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빵 도마와 새 모이통(Migas-Pajaros)입니다.” 도마엔 부스러기가 밑으로 떨어질 수 있게 홈을 내어 떨어진 부스러기가 튜브를 통해 부엌 밖 새 모이통까지 전달되도록 한 것. 오가는 새에게는 풍족한 한 끼 식사가 되며, 가정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환경친화적 디자인 제품이다.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체와 지구를 위해 뭔가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작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17 디캠프 양석원 팀장 
청년에게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창업은 로또에 비유되기도 한다. 물론 창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니 사회적ㆍ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는 청년의 창업은 그저 무모한 도전일까? “창업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걱정부터 해서 자신도 위축되기 쉬워요. 하지만 창업을 준비하는 다양한 사람과 정보를 교류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동료 의식을 지니면 에너지가 생기지요.”

청년 창업을 돕기 위해 전국 20개 은행과 손잡고 탄생한 비영리 재단 디캠프는 개인의 실질적 창업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누구나 그 속에서 꿈틀거릴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코워킹 스페이스와 카페, 세미나실 등 사업을 구상하고 서로 노하우나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물론, 1백50명의 창업자와 관련 전문가 앞에서 새로 개발한 서비스나 제품을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물론 이 과정은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청년들의 창업이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을 때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진 우리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18 농사펀드 기획단 김승연&공기대&이진희
자연을 믿고 농부에게 투자하면 어떨까?

풍년과 흉년을 결정짓는 건 농부의 역량보다는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다른 자연 조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재해라도 닥친 해엔 애지중지 키운 작물을 대부분 잃고, 풍년이 든 해에는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 헐값에 팔아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 귀농 실패를 딛고 그린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승연과 농촌 기획자로 일하는 공기대 등 농사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젊은이들은 이러한 농촌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크라우드펀딩 방식의 ‘농사펀드’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도시의 소비자가 1만 원부터 30만 원까지 농부와 농산물에 투자해 농부의 영농자금을 지원하고, 수확한 후 그에 상응하는 먹거리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5만 원의 투자금이 1kg의 쌀이 될지, 5kg의 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대신 정직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키운 친환경 농산물을 보장받을 수 있다.

최초 농사펀드의 대상은 충남 부여에서 벼농사를 짓는 조관희 농부였고, 올해는 국내 토종 매실 종자를 복원한 송광매실을 키우는 김성규 농부까지 한 명이 더 늘었다. “투자 비용을 활용한 내역을 담은 소식지를 재능 기부로 만들어주는 이진희 씨를 비롯해 농사펀드 기획단에 참여한 이들 모두 본업이 따로 있어요. 남는 시간을 쪼개어 활동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농사펀드를 두 해 진행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시작은 농부를 배려하는 것이었지만, 투자받는 농부가 많아질수록 더욱 많은 이가 안심하고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법, 우리 모두를 환대하는 셈이다.


19 코오롱 래코드RE;CODE 한경애 상무
버려지는 옷으로 새 옷을 만들면 어떨까?

“우연히 소각장에 들른 적이 있어요. 보통 패션 브랜드에서는 만들어놓고 팔리지 않은 옷, 재고품이 된 지 3년 차가 된 옷은 소각 처리하는데, 그 장면을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이죠. 그게 계기였어요.” 코오롱 한경애 상무가 전개하는 래코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버려지는 옷과 각종 천을 이용해 완전히 다른 새 제품을 창조하는 ‘리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다. 단순히 재활용을 통한 환경 보존에 그치지 않고,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 자리도 창출해냈다.

래코드 제품의 시작은 원단 구입이 아니라, 재고 의류와 군부대나 산업체의 폐기물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이 해체 작업을 지적 장애 단체인 굿 윌스토어의 장애우와 함께 하고, 제품 디자인은 독립 디자이너와 협업해 진행하며, 제품 제작은 더 이상 많은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게 된 오래된 경력의 전문 봉제사의 손을 거친다. 소비자는 래코드 옷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환경 보전에 동참하고, 소외된 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셈이다. 이런 가치 있는 소비를 이끌어내는 것이 래코드의 목표이자, 존재 이유다. 그래서 래코드 매장에 가면 입고 싶은 옷을 사고, 나를 치장하는 것이 낭비가 아닌 사회 공헌이 된다.


20 디자인하우스 출판부 김은주 편집장
내 취미 생활로 남을 유익하게 할 수 없을까?

책 펴내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김은주 편집장은 수개월간 공들인 책 한 권을 손에 쥘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취미로도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즐긴다. 그의 다양한 취미 중 하나는 바로 목공이다. 커다란 나무 한 덩 이를 보며 세상에 둘도 없는 작품을 떠올리고, 나뭇결을 매만지다 보면 나무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주로 하는 작업은 도마 제작이다.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잘라 매끈하게 사포질하고 오일 바르길 수차례. 칼질을 하기 위한 도구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도마부터 치즈 플레이트와 손님상의 다과 트레이도 만들었다.

어느 날, 친분 있는 요리 연구가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 갈 때 선물로 도마 두 개를 들고 갔더니 거기에 타파스를 담아 내놓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용기를 얻어 결혼하는 후배, 독립하는 지인에게 하나 둘 선물하기 시작했다. “도마는 수명이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오래 두고 쓸 수 있고, 오래도록 저를 기억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점이 참 좋았어요.” ‘즐기는 일’을 하며 주위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니 김은주 편집장은 자신과 남을 환대하는 좋은 취미를 지닌 이다.


21 미리내운동본부 김준호 미리내맨
고마움을 나누는 기분 좋은 사회를 만드려면?

기부는 아름답다. 그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나눔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격 요건이 있을 리 만무하다. 기부와 나눔은 돈을 벌고 여유가 있을 때 행할 수 있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일명 ‘미리내맨’으로 통하는 김준호 동서울대학교 교수가 “쉽게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순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미리내 운동’은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남을 위해 ‘미리 내는’ 나눔 실천 운동이다.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고 나눔의 대상은 우리 모두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냥’ 내주는 거죠.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동정심의 개념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소소한 선의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야 비로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숙자를 위해 커피 한 잔 값을 선지불하는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과 비슷하지만 미리내 운동은 주고받는 대상과 물건에 제한이 없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미리내 가게는 현재 2백80여 곳. 음식은 물론 옷 가게, 세탁소, 안경원 등 참여하는 가게도 다양하다. “나눔이야말로 낯모르는 이도 따스하게 맞이하는 가장 순수한 환대 아닐까요? 미리내 운동을 청소년들이 많이 누리면 좋겠어요. 고마움을 알면 베풀게 되거든요.”


22 일러스트레이터 윤진초
어린이가 문화재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영국에서 동화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진초는 평소 다양한 나라의 원시미술과 고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고대 미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 에너지와 정직한 표현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박물관을 다니며 한국 전통문화와 유물을 관찰하곤했는데, 하루는 어두컴컴한 박물관 유리 벽 안에 갇힌 고미술품들이 너무 근엄해 보여 전시를 보러 온 아이들이 겁먹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호기심 많고 만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소중하게 보관해야 할 유물 사이의 벽을 허무는 방법을 고민 했어요. 그러다 마음껏 색칠하고 놀 수 있는 색칠 놀이 책 <이야기가 담긴 도자기>를 떠올렸죠.”

문헌과 박물관을 뒤져 아름다운 도자기를 선정한 후, 형태를 조금 단순화해 판화로 작업했다. “한자로 된 도자기 이름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마치 동화처럼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백자청화파어문병’은 물고기들이 파도를 타고 노니는 모습을 그린 병이라는 뜻이랍니다.” 다음 시리즈로 탈춤과 민화를 소재로 한 내용을 기획하고 있다는 그는 아이들이 색칠 놀이 책을 통해 문화재와 함께 신나게 놀면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유물 등에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23 아이클루디자인 이진영 대표
한국에서 아프리카 사람의 발을 보호해주려면?

아프리카 말라위 사람들은 맨발로 생활한다. 가시 수풀과 모래밭이 지천인 환경에서 맨발로 다니니 쉽게 다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라위에는 병원은 물론 약도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클루 디자인의 이진영 대표는 우연히 어느 방송사 프로그램팀과 함께 방문한 말라위에서 이런 현실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말라위 사람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그는 우선 마을 사람들과 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살폈다. 전 세계에서 보내온 구호 물품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말라위 사람들이 직접 신발을 만들어 신을 수 있는 ‘클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커피 자루나 버려진 천 조각같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신발 도안을 디자인했다. 도안을 따라 헝겊을 오리고 밑창을 붙인 뒤 몇 번 꿰매면 손쉽게 신발을 완성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바느질도 할 줄 모르던 말라위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클렘 프로젝트는 브라질, 모잠비크, 미국, 타이완 등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디자이너의 작은 행동이 전 세계에 큰 울림이 되었다.


24 헤이브레드 유민주 대표
동네 빵집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문내려면?

홍대 앞, 가로수길 등을 지나다 보면 작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윈도 베이커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빵집과는 달리 제대로 된 재료와 정성들인 맛에 딱 우리 집 앞에 가져다놓고 매일 아침 발도장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동네 빵 온라인 배송 서비스인 ‘헤이브레드’를 만든 유민주 대표의 마음이 딱 그랬다. 그가 처음 빵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0년대 중반 프랑스 유학 시절. 우리나라 제과점의 달짝지근한 빵과는 다른, 심플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풍미가 살아 있는 정통 유럽 빵을 맛보곤 귀국 후에도 종종 생각이 났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판매하는 곳을 찾지 못했지만, 몇 년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유럽에서 제과ㆍ제빵을 전문으로 공부한 셰프들이 귀국해 속속 개성 있는 윈도 베이커리를 열었고 여기에 호응하는 빵 인구도 계속 늘어난 것. 동네 빵집의 상승세는 가팔랐지만 전국 유통망이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주로 서울에 이러한 동네 빵집이 밀집한 탓에 다른 지역의 소비자들은 선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검증된 동네 빵집과 전국 방방곡곡의 빵 소비자를 연결해주면 좋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지금의 헤이브레드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동네 빵의 온라인 편집매장 같은 거죠. 일반 대중은 잘 알지 못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빵을 모아서 소개하는데, 손쉽게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어요.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동네 빵집 셰프들도 더욱 많은 고객을 만나게 되었다며 좋아하세요.” 올 11월에는 오프 라인 빵 편집매장도 연다고 하니 동네 빵집의 역습은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25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
낙후한 산동네, 아름답게 되살리려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이화마을은 여느 산동네와 다를 바 없는 낙후한 마을이었다. 시에서는 재개발을 할지 보존할지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미국의 하이 라인이나 독일의 졸퍼라인처럼 버려진 지역을 재생한 성공 사례도 많은데, 이화마을이라고 안 될 것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화마을은 여전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주민들이 있었다. 마을을 보존하려면 지역 주민을 아우르며 그늘진 지역을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했다.

2004년 이화동에 쇳대박물관을 개관한 최홍규 관장은 재개발 열기로 뒤숭숭한 이곳에서 어릴 적 향수를 느꼈다.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과 집집마다 꽃을 심어놓은 붉은 ‘고무 다라이’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2006년 이화마을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한 그는 이후 프로젝트를 확장해 이화마을을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 박물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바로 이화동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10년을 바라보는 이 장기 프로젝트는 작년에 시작해 얼마 전 두 번째 전시를 열었다.

올해 박물관 네 곳을 더하면서 현재 마을 박물관은 총 열두 곳. 최홍규 관장이 운영하는 쇳대박물관을 비롯해 봉제 박물관 ‘수작’, 대장간 박물관 ‘최가 철물점’, 마을 사람들의 흔적은 담은 ‘이화동 마을 박물관’ 그리고 와인 오프너 박물관인 ‘개뿔’이다. 그는 이화마을을 ‘작지만 힘 있고, 소박하지만 격이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민이 마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이화동은 단순히 벽화 마을이 아니라,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찬찬히 둘러보고 생각 할 수 있는 정감 있는 마을로 성장하고 있다.


26 돌실나이ㆍ꼬마크CCOMAQUE 김남희 대표
우리 전통 무늬, 젊은 사람도 좋아하게 하려면?

김남희 대표는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한복에 매료돼 스물두 살부터 지금까지 한국 전통 의상의 대중화를 위해 달려왔다. 1995년 돌실나이를 론칭한 후, 서서히 우리 옷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생활 한복의 인기가 높아졌고, 마니아층도 생겼다. 치열하게 사업을 키우다 이제 좀 안정이 됐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또 다른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전통 멋은 왜 나이 든 사람만 좋아할까? 젊은 사람도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즐기게 할 순 없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르자,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일러스트레이터와 머리를 맞대고 곧장 행동에 옮겼다. 그 결과 십장생이라는 우리 전통 이야기를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모습으로 재탄생시켰고, 그 캐릭터를 패턴으로 작업해 새로운 브랜드, 꼬마크를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한국적인 것, 우리 전통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돌실나이, 꼬마크 그리고 김남희 대표의 바람이다. 젊은 층이 쉽게 우리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게 돕고 우리 고유의 문화가 외면받지 않도록 하는 문화적 패션 브랜드. 꼬마크는 옷도 기특하지만, 속내가 더 사랑스럽다.


27 산돌커뮤니케이션 장수영 디자이너
세계 각국 언어를 위한 한 가지 서체를 개발하면 어떨까?

편집 디자이너에게는 언어마다 다른 서체를 사용해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각 언어마다 자간과 행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일이 값을 달리해 맞춰야 한다. “여러 언어를 모두 지원하는 통합 서체는 왜 없을까?”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구글과 어도비가 일을 벌였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의 간체와 번체,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하나로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서체를 개발한 것!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는 구글이 자금을 대고 어도비의 주무 아래 산돌커뮤니케이션, 시노타입SinoType, 이와타Iwata 등 각국의 서체 개발업체가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한국어를 담당한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장수영 디자이너는 팀원과 이 책 저 책 찾아가며 공부하고 대학교수한테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1천1백70자와 고어까지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서체를 개발해냈다. 현재 구글은 이 서체를 ‘노토산스Noto Sans CJK’, 어도비는 ‘소스 한 산스Source Han Sans’(우리 말로 본고딕)라고 부른다. 게다가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오픈 소스! ‘본고딕’은 사용자의 니즈와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 목적이 맞닿아 탄생한 유일무이한 서체다. 

#도정일 #환대
글 <행복> 편집부 | 사진 <행복> 사진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