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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의 가치, 하이라인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이 들어선 뉴욕 도심에 20년 넘은 세월 동안 버려진 고가 철도가 있다. 세련된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 녹슨 철도의 운명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의식 있는 뉴요커들의 노력으로 낡고 오래된 철도는 곧 뉴욕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하이라인에서 다운타운이 보이는 곳에 설치한 거리 미술. 공원 안뿐 아니라 주변 건물의 빈 벽이 작가들의 캔버스가 되어 산책을 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하이라인을 보기 위해 헨리 허드슨 하이웨이를 달릴 때에는 아무 약속이 없어 시간에 쫓기지 않은 한가한 시기였다. ‘하이라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는 입구는 여기가 맞나 할 정도로 어두침침했다. 전형적인 웨스트사이드 거리. 힘겹게 마지막 층계를 올라서니 붉고 푸르게 얼룩진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와 꽃, 건물과 사람이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막이 올라가듯 나타났다.

무성히 자란 잡초가 무더기를 이룬 한점의 설치미술이고, 날렵한 선으로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디자인한 벤치가 적당한 거리마다 자리하고 손님을 맞았다. 격렬한 하루를 마감한 맨해튼의 초저녁. 무겁게 가라앉은 거리가 이 공간에서 색다르게 바뀌었다. 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왔을까. 남녀노소 무리가 기찻길을 따라 뻗은 공원 길에 물처럼 흘렀다. 젊고 늙은 연인들, 회사 일을 마치고 온 사람, 관광을 온 사람과 안내하는 사람, 한번 구경 나온 사람, 심심하면 한 번씩 올라오는 사람, 온갖 사람이 모두 배우 같았다. 첫 시작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디자인하고 정원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슬로모션처럼 움직이고 있다.

1 처음에는 기찻길 옆 잡초가 향수를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부쩍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뤄 연인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 
2 갠스부르트 스트리트에서 34가까지 하이라인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입구는 총 아홉 군데. 그중에 16가, 23가, 30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한때는 죽음의 거리이던 하이라인
미국 사람, 아니 뉴요커는 참 대단하다. 그 옛날 1800년대에 맨해튼 한가운데 엄청난 크기의 땅을 뚝 잘라내 공원을 만들더니, 1백60년 후에는 맨해튼의 금싸라기 같은 땅 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었다.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미셸 파이프가 나온 영화 <순수의 시대>나 헨리 제임스의 소설 <워싱턴 광장>을 읽으며 상상할 수 있는, 1800년대 말 맨해튼 상류사회 부자들이 고급 마차 위에 앉은 자신들의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 가난한 주민을 쫓아내고 만든 센트럴 파크와 오늘의 하이라인을 비교해본다. 모든 시민의 사랑을 받는 센트럴 파크나 의식 있는 부자들이 몇 년에 걸쳐 돈을 모아 만든 하이라인이 모두 자연이란 소재로 이 도시에 꼭 필요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온갖 명품 가게가 들어선 소호가 그 옛날 봉제 공장 지대였고, 유명 갤러리가 모인 첼시가 농산품 도매시장이었듯 하이라인은 공장 지대와 도매시장의 물류 수송을 위해 기차가 다니던 길이다. 센트럴 파크가 생기기 10년 전인 1847년, 웨스트사이드 10 애버뉴 거리에 화물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당시 말을 이용한 대중교통은 이 낯선 기찻길 때문에 수많은 사고를 유발했고, 기 찻길이 있던 ‘텐스 애버뉴(10th Avenue)’는 ‘데스 애버뉴(Death Avenue, 죽음의 거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랜 논쟁 끝에 뉴욕 사람들은 1929년에 마차를 피해 공중에 기 찻길을 만들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고, 1934년에는 맨해튼 서쪽 12가에서 미드타운 34가까지 연결하는 ‘웨스트사이드 라인’을 개통했다. 이 철도는 맡은 역할을 수십 년 동안 충실히 해냈지만, 결국 미국 전역을 누비는 트럭 운송이 발달하면서 도태하고 말았다. 한때 뉴욕을 살찌운 순직한 철마는 계속해서 달리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철마는 속수무책이었다. 1960년대엔 일부를 폐쇄했고 1980년대엔 완전히 문을 닫아 녹슨 두 줄기 레일과 잡초만 무성한 철도가 되었다.

이렇게 20년 넘게 버려진 철도를 두고 철거와 보존이라는 논쟁을 반복했고, 2006년에 드디어 친환경주의를 부르짖는 의식 있는 뉴요커들의 노력으로 공원으로 탄생했다. 최첨단 도시 공원으로 변신한 것은 2009년. 트라이베카의 12가 근처 갠스부르트 스트리트Gansevoort Street에서 시작해 남쪽 일부분만 공개한 하이라인은 2012년에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실컷 산책할 수 있는 길이로 공개했고, 올가을에는 마지막 부분인 34가까지 완성된다. 이렇게 총 길이 2.33km의 기찻길 공원은 뉴욕의 자랑거리로 자리 잡았다. 하이라인 근방은 점점 더 예술과 패션, 레스토랑의 거리가 되었다. 15가와 9 애버뉴 선상, 나비시코 비스킷 공장 자리에 생긴 첼시 마켓이 하이라인 바로 아래에 있는 덕분에 요즘은 관광 명소로 우뚝 올라섰다.

1 남북으로 뻗은 좁다란 공원을 따라 맨해튼 동쪽과 서쪽이 보인다.서쪽으로 보이는 거리는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2 자동차 정비 공장과 식품 도매상이던 곳에 부티크 숍과 레스토랑이 들어서 힙스터들이 모여드는 거리가 되었다.

뉴욕을 가장 뉴욕답게 하는 곳
오픈한 이래 한 건의 범죄도 없었다는 하이라인. 악기를 연주하는 무명 악사와 비디오아트가 놓여 있고,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가 벨 컴퍼니 건물을 뚫고 있다. 하이라인 바로 옆 건물 같은 높이에 있는 와인 바에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뉴욕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냇물에서 엄마와 아이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첨벙거리며 놀고, 길을 따라 걸으면 한쪽으로 보이는 고색창연한 빌딩과 현대식 빌딩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또 서쪽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허드슨 강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하이라인에는 2백10가지의 꽃과 나무가 자란다. 한참 뒤에 다시 가면 그만큼 나무들의 키가 커져 있다. 지난해에 본 나지막했던 나무들이 이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오솔길을 만들어내고, 나무가 커질수록 이 동네의 부동산 가치는 상상을 불허한다. 1936년 그리니치빌리지에 자그마한 갤러리로 시작한 75가 메디슨 애버뉴의 휘트니 미술관은 갠스부르트 스트리트로 옮겨져 올 10월에 다시 문을 연다. 건물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많은 미술관을 디자인한 렌초 피아노가 맡았다. 세상에서 최고로 넓은 전시장이 될 허드슨 강변의 휘트니 미술관을 기대한다.

하이라인을 구경하는 것은 차를 세워둔 곳에서 시작해 다시 입구로 내려가면서 막을 내린다. 층계를 내려오는 발걸음은 올라갈 때보다 씩씩하다. 허드슨 강 건너편 태양 빛을 반사한 건물과 우거진 수풀, 배우처럼 멋진 사람들 속에서 내 자신도 찬란해진 기분이다. ‘그래, 이렇게들 사는구나. 나도 이제라도 좀 멋지게 잘 살아보자.’ 가슴 벅찬 격려를 받았다. 그 여름 초저녁 밤, 하이라인에 취한 마음으로 첼시 마켓에서 산 16달러짜리 병따개 하나가 아직도 부엌 제일 좋은 자리에 놓여 있다. 하이라인, 두고 두고 감탄스럽다.


글을 쓴 노려는 1982년에 뉴욕으로 건너가 1989년부터 뉴욕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 뉴욕 한국일보 웨체스터 지국장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의 통신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유명 인사를 소개한다. 사진가 김남식은 뉴욕 국제사진센터에서 포토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를 전공하고,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며 <행복>을 비롯 <론리 플래닛> <뉴욕 타임스> 등과 작업해왔다.

#하이라인
글 노려 | 사진 김남식 | 담당 김민정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