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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경험하는 것이 아닌 증명하는 것

의류 브랜드의 재고 상품은 모두 어디로 갈까? 놀랍게도 포장을 한 번도 뜯지 않은 멀쩡한 재고 상품 상당수가 브랜드 관리를 위해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래코드Re;code는 이렇게 버려지는 옷을 해체, 조합해 개성 있는 패션 아이템을 선보이는 리디자인 브랜드. 최근에는 재고 의류뿐만 아니라 자동차 시트, 에어백, 군용 낙하산 등 인더스트리 사업부에서 생산하는 산업 소재 재고와 군부대의 소모품까지 그 영역을 넓혀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군복, 군용 천막 같은 소재는 밀리터리 고유의 컬러와 패턴, 빈티지한 느낌을 엿 볼 수 있어 인기다. 인더스트리얼 라인은 에어백, 시트 등 자동차의 산업 재료로 만들어지는 데 내구성은 물론 독특한 질감과 광택이 특징이다. 여기 다섯 팀의 디자인 그룹이 두 달간 완성한 리빙 오브제의 제작 후기를 눈여겨보자. 무엇보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에 같은 디자인이 없는 것이 리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일 터. 환경을 지키면서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쎄컨호텔 국종훈•정준호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은 업사이클링의 가장 중요한 명제”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인을 해내지 못한다면 재고 상품이 생기고 남겨지고 버려져 ‘업사이클링’이라는 미명하에 또다시 디자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버려지는 것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명제라면, 다시는 유행에 휘말리지 않는 기본 디자인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는 쎄컨호텔 국종훈 대표. 기본에 충실하려면 원재료를 선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는 운명처럼 지난 몇 년간 찾아 헤매던 워싱 천막 원단을 코오롱 창고에서 마주쳤단다.

군용 천막을 일주일간 수작업으로 워싱해 오염 물질을 모두 제거한 캔버스 원단은 내구성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워 소파 원단으로 제격. 공간에 따라 일자로 나란히 두거나 데이베드처럼 마주 보게 두는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행복 소파의 밀리터리 버전은 촬영장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처요, 위시 리스트 영순위였다. 낙하산 부속물로 쿠션 테두리를 장식하고, 스툴에 고리를 다는 등 세심한 디테일도 주목할 만하다.


길종상가 박길종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쉽게 만들기” 

“특별한 기술 없이 아이디어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리디자인할 수 있어요.” 디자이너 박길종은 선풍기, 의자, 각목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최소한으로 가공해서 위트 있는 아이템을 완성했다. 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다기능 파티션은 가림막 기능과 전통 가구 고비의 역할을 결합한 아이템이다.

자동차 에어백의 고유한 박음질 모양과 라인을 디테일로 활용하고, 크기와 모양이 다른 공기 주머니를 그대로 살려 다양한 크기의 물건을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 선풍기 철망을 기본 뼈대로 삼은 조명등은 벽에 달거나 바닥에 눕혀 연출할 수 있는 제품. 바람의 저항으로 저절로 둥근 형태가 된 낙하산을 조명 갓으로 활용하고 신발 끈으로 고정했다. 의자도 재미나다. 금속 프레임에 두 가지의 줄무늬 넥타이를 엮어 만들었는데, 줄무늬의 선과 의자의 검은색 프레임이 조화를 이룬다.


패브리커 김동규•김성조
“천은 천 개의 얼굴”

“세상에 많은 재료가 있지만, 가장 재밌는 소재는 단연 ‘천’이죠.” 디자이너 김동규ㆍ김성조는 천이야말로 총천연색이요, 모두 텍스처가 다르기 때문에 무한대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그들에게 천은 입체 물감과도 같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물감을 쓰는 것처럼 그들은 색감과 질감이 다양한 천으로 작품을 표현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천을 각재처럼, 파이프처럼 프레임으로 사용했다.

군복을 구긴 뒤 에폭시를 뿌려 고정하는 방법을 반복해 구겨진 형태의 재미난 각재를 먼저 완성한 뒤, 아크릴을 덧붙여 테이블과 사다리 선반을 제작한 것. 어떻게 보면 무척 비효율적 작업 방식이다. 나무를 뚝딱 잘라 연결하면 간단할 텐데, 이렇게 하면 재료를 만드는데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한 겹 한 겹, 마치 나뭇결을 표현하듯 천을 쌓아 올리고 굳기를 기다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일련의 과정은 ‘물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버려지는 천에 가치를 더하고 사람이 생활 속에서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는 충분하다.


디자인 캄캄 서현진•김재경
“부속품이 주인공 되는 날”

업사이클링의 가장 큰 매력은 남과 같지 않다는 것이지만, 종종 업사이클링을 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 구입하기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서현진ㆍ김재경 디자이너는 업사이클링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버려진 것을 재활용한다는 의미보다 그 자체를 새로운 소재로 인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옷이나 텐트 등에 들어가는 부자재를 쏠쏠히 활용해 파티션, 접이식 의자 등 경쟁력 있는 상품을 완성. 기업이 축적한 노하우로 생산한 좋은 품질의 소재를 접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적 개선이 따라야 하고 의미 있는 진화를 포함해야 진정한 ‘리디자인’이라는 업사이클링의 중요한 명제를 영리하게 실현한 셈이다.


스튜디오 카나리 이가나
“사용자가 완성하는 디자인”

영국 찰스 왕세자의 후원으로 개최한 캠페인 ‘울모던Wool Modern’에 참여해 울 소재로 만든 체인 가구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이가나 작가. 그의 디자인 모티프는 세상을 구성하는 일상적 오브제에 호기심을 느낀 데서 출발한다. 옷 입은 스툴과 가방 형태의 수납함은 단순히 패션 아이템과 가구의 조합에서 시작했다. 스툴은 얼핏 미완성 작업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용자가 취향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링을 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같은 팬츠라도 티셔츠를 입느냐, 블라우스를 입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내듯 분위기를 쉽게 바꿀 수 없는 가구에도 어떤 날은 재킷을, 어떤 날은 셔츠를 걸어두고 모자나 액세서리도 매치하면 기분 전환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방 형태의 수납함은 군용 텐트와 군복 그리고 자동차 시트를 직접 박음질해 만들었으며 바퀴를 달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공공장소에서는 가방 안에 가방을 넣는 가방 수납함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의상협조 시리즈 (02-3677-8812)

#재활용 #디자이너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