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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고택 리조트에서 하룻밤 구름에 핀 이야기
경북 안동, 전통 고택 리조트 ‘구름에’가 문을 열었다. SK 행복나눔재단과 안동시가 수몰 위기에 처해 옮겨온 고택을 재정비해 부티크 호텔로 꾸몄다. 단순히 외모만 한옥 흉내를 낸 호텔과는 차원이 다르다. 역사를 품은 진짜 고택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첨단 시설로 편리함을 더해 고택 체험은 불편하다는 비판론자의 마음도 구름처럼 들뜨게 한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여름내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였다.

이름처럼 그윽한 구름 속에 안긴 안동 전통 고택 리조트 구름에. 고택, 정자, 재사의 콘셉트로 일곱 채의 독립 객실을 구성했다. 
집이 있다. 오래된 집이다. 가깝게는 2백 년, 멀게는 4백 년. 집은 빛바랜 역사를 오롯이 담아 후손에게 돌려준다. 경북 안동시 민속촌길을 따라 인적 드문 오솔길을 1km 정도 달리면 고택故宅 열 채가 초연하게 고개를 내민다. 이 고택은 안동댐 건설과 함께 수몰될 위기를 맞았다가 이전되어 안동 민속전시관의 야외 전시관으로 운영하던 곳이다. 한옥이란 게 얼마나 유연한지 학문을 정진하던 정자에서 전시관으로, 다시 호텔로 변신했다. 지난 7 월 1일 안동에 문을 연 전통 고택 리조트 ‘구름에’ 이야기다.


고택, 시공간의 그윽한 파노라마
구름에를 찾은 날, 공교롭게도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태풍 너구리의 북상으로 전국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안동에 도착하니,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날씨는 쾌청하다. 마치 세상을 잊은 선비처럼 천연덕스럽다는 표현이 맞겠다. 뒷산을 병풍 삼아 경사지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산속의 구름 같기도 하고, 물안개가 끼면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구름에’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SK와 안동시가 만들고 행복전통마을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리조트다. 구름에는 단순히 외모만 한옥 흉내를 내거나 전통만 고집하는 고택 체험과는 확실히 의미가 다르다. 경북의 버려지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유휴 고택을 활용해 고급 리조트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외관은 고택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내부는 호텔 부럽지 않은 시설을 자랑한다. 현대식 욕실, 은은한 간접 조명등, 쾌적한 냉난방까지 첨단 시설로 편리함을 더했다.

외부는 고택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에 프레임을 끼우는 방식으로 현대적 편의성을 높였다. 배관, 배수, 골조 보강까지 신축이나 다름없었던 프로젝트. 공간 설계는 시스템 랩 김찬중 소장이 맡았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각각의 집이 하나하나 사연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 객실로 사용하는 총 일곱 채의 고택은 각각 계남고택, 칠곡고택, 팔회당재사, 감동재사, 서운정, 청옹정, 박산정으로 이름을 붙였다. 각각의 고택은 대가, 재사, 정자 등의 콘셉트로 방의 개수와 구조, 형태가 모두 다르다. 가장 먼저 입구에 있는 계남고택. 퇴계 이황 선생의 11대손인 쌍취 이만운이 살던 집으로 경북 민속문화재 8호로 지정되었다. 칠곡고택은 퇴계 이황 10대손인 이휘면이 살던 집으로 1831년에 지었다. 고택은 전형적인 ㅁ자 집으로 안채, 사랑채, 작은 방 등 5~7개의 객실로 구성되었다.

계남 고택과 칠곡고택이 대갓집이었다면 팔회당재사와 감동재사는 제사를 준비하는 살림집이었고, 서운정・청옹정・박산정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공부를 하던 정자였다. 박산정은 1600년대 초에 세운 정자다. 서운정은 퇴계의 9대손인 농와 이언순이 말년에 지은 정자로 184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리조트 관리인 숙소로 사용하는 초가집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집이다. 안동 북부 지역에서만 보이는 까치구멍집으로 천장 양쪽 끝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이 있다. 소를 부엌 옆에서 같이 키우던 시절 아궁이에 불을 때고 그 연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구멍을 낸 것이라고 한다.

1 계남고택 안채의 누마루. 
2 소반, 서안 등 고가구는 안동에서 리프로덕트로 주문 제작한 것과 서울 장안평에서 공수한 골동품을 매치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하룻밤 묵은 곳은 감동재사였다. 재사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양반 문화가 발달한 안동 지방에 밀집해 있다. 조상을 모시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안동 양반들이 집과 먼 곳에 묏자리를 썼을 때 임시로 모제를 지내기 위해 집 안이나 근처에 만든 거처가 바로 재사다. 그런데 재사가 하나의 건축 양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마을과 가까운 곳에 묘소가 있어도 굳이 재사를 짓는 일이 생겼단다. 재사 건축은 집안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위압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감동재사 역시 기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재사는 마당이 좁고 2층 누마루가 있어 수직적 공간감을 형성하는데, 그래서 집 안으로 들어서면 왠지 더 아늑한 느낌이 든다. 힘껏 무릎을 구부려야 오를 수 있는 대청, 미로처럼 좁은 통로를 따라 또 방이 나오고 벽 안으로 이어지는 다락방까지 신비로움을 더한다. 대청을 오르내리는 일이 익숙지 않아 숨이 가쁠 때도 있었지만 이처럼 옛 건축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의 살내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일 듯하다.

칠곡고택 안채와 연결된 작은방. 대청마루를 올라 미로처럼 좁은 복도를 따라가면 만나는 내밀한 공간이다. 삼면으로 문이 열려 한옥 특유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한옥 옷 입은 부티크 호텔
구름에처럼 고택의 뼈대는 남기고, 안은 완전히 첨단으로 바꾸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터(문화재 관리를 위해서 외부는 그대로 보존하는 게 전제 조건이었다). 설계와 시공을 맡은 시스템 랩 김찬중 소장은 한옥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공간 설계는 “누가 이 호텔을 이용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한 부부가 기분 전환 삼아 고택 체험을 떠났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처마 너머 산세가 펼쳐지고 창문을 열면 레이어를 통해서 보이는 원경과 차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는 남편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내는 어디든 도착하자마자 욕실에 화장품을 비롯한 소지품을 완벽히 세팅해야 한다. 옷이 구겨지는 게 싫어 바로 옷을 걸어야 한다.

이처럼 여자는 하루를 있더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하지만 한옥은 이런 적극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밤에 화장실을 가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저 멀리 어떤 여자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세면 가방을 들고 지나가는데 눈이 딱 마주친다. 민망하다. 냉정한 말로 어쩌다 한 번은 좋지만, 이틀 이상은 머물고 싶지 않은 게 한옥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옥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김찬중 소장이 느낀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은 ‘신비로움’이다. 인공 장치가 없어도 여름에 시원하고 습도가 높지 않고, 통풍도 잘되는 숨 쉬는 집이 바로 한옥 아닌가.

1 아침에 일어나서 ‘배고프네’라는 생각이 들 무렵 문을 열면 소반에 차린 조식이 놓여 있는 기분 좋은 상상. 황태를 긁어 만드는 보푸라기 등 안동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2 디자인이 모던한 배자 스타일의 직원 유니폼은 차이킴에서 제작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신비로운 과학 원리가 집을 감싸고 있는 게 바로 한옥만의 고유한 매력일지니, 한옥의 신비로움을 기술로 대체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공간 키워드는 표리부동表裏不同. 겉과 속이 달랐을 때 느끼는 콘트 라스트가 포인트다. “16세기 건물에 16세기 디테일을 접목하는 건 식상해요. 옛날 건물에 현대적 디테일을 더해 시간 차이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감성이죠. 내부 공간에 철판 가벽을 세워 모던하게 마감한 이유예요. 그러면서 현대의 편의 시설을 과감하게 도입했죠. 방과 마루는 간접 조명이 은은한 빛을 내뿜도록 했고, 집집마다 에어컨을 설치한 것은 물론 화장실과 샤워 시설도 실내에 배치했고요. 노출 욕조가 있는 서운정은 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손님이 좋아한다고 해요.”

전통 형상이나 기법이 아닌 전통적인 집에 내재한 감성을 재현하려고 노력한 김찬중 소장. 가벽을 천장보다 조금 낮게 세운 뒤 벽과 가벽 사이에 간접 조명등과 에어컨을 설치하니 밖에서는 조명등과 에어컨 공조 시스템이 보이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한옥 고유의 분위기를 심하게 해치지도 않는단다. 그리고 덧문을 열면 나오는 슬라이딩 유리 포어스트 글라스는 한옥에서 불안하던 보안까지 책임진다. 그뿐만 아니다. 자동차의 ‘스마트키’ 개념도 있다. 체크인을 하고 스마트키를 지니고 숙소로 가면 디딤돌이 내려가면서 스르르 문이 열리고 오솔길 사이로 전기 자동차가 운행하는 식. 아직까지 개념 제안으로 그쳤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1 구름에는 일곱 채의 공간 구성과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 것 역시 장점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인원수에 따라 방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사진은 칠곡고택 사랑채. 들개문을 열면 방과 대청, 욕실이 일직선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구조로 다락 형태의 벽장이 있어 아이도 좋아한다. 
2 서운정에서는 고택의 지붕을 바라보며 노출 욕조에서 배스 타임을 즐길 수 있다. 

전통과 현대, 공존해야 하는 이유
이 리조트는 행복전통마을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운영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안동시, SK그룹이 공동으로 이 기업을 만들었고, 안동시에서 위탁 운영권을 받는 구조. 직원들 급여와 관리, 운영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수익은 모두 지역에 기부한다. 또 필요한 인력도 지역민을 채용한다. SK 행복나눔재단 사회적기업본부 유도형 팀장은 수익과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동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라고 강조한다.

고택에 얽힌 이야기와 우리 전통 가구 사용법 등을 전하는 것 역시 구름에의 소명이라고 판단한 SK 행복에프앤씨재단 김선경 이사는 공간에 필요한 가구, 전통 침장 등을 직접 골랐다. “서안, 소반 등 전통 가구는 안동에서 리프로덕트로 제작한 것을 골동품과 매치했어요. 안동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품, 종가 음식, 장인들을 생각하니 모두 구름에에 적용할 수 있더라고요. 마와 사과로 어메니티를 개발하고, 전통 방식으로 이불을 짓는 장인에게 침구 제작을 맡기는 등 안동에서 나고, 안동에서 잘하는 것이 뭘까 발굴하는 일이 꽤 재미있어요.”

조식으로는 안동 고유의 종가 음식이나 향토 음식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건축, 가구나 방석, 이부자리 등 모든 것이 기본은 전통이지만 새롭게 각색했다는 점. 전통에서도 새로운 시도지만, 현대적인 것에도 전통을 가미한 크로스오버야말로 구름에의 모토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세월은 가도 집은 남는다. 선조가 남긴 고유한 문화유산, 우리 고택의 그윽함과 지혜가 어우러진 구름에. 무엇보다 죽은 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집으로 이렇게 이용되는 것이 여간 신통방통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 안동에 방치된 고택을 활용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뜻으로 구름에를 기획한 행복나눔재단 유도형 사회적기업본부 팀장, 행복전통마을 구름에 이헌구 사무국장 그리고 구름에를 운영하는 직원들이 계남고택 대청에 모였다.
구름에에서 묵으려면
객실 정보 계남고택과 칠곡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등 객실 5~7, 팔회당재사는 안채와 작은 방 등 객실 3개, 갑동재사와 박산정은 객실 2개, 서운정과 청옹정은 객실 1개로 구성. 안채는 객실 2개 30만 원, 3개 32만 원, 4개 34만 원. 사랑채는 23만 원. 작은 방은 10만 원. 정자는 27만~32만 원(성수기 가격 추가, 계남 고택・칠곡고택・팔회당재사는 전관 이용 시 15% 할인).
주소 경북 안동시 민속촌길 190
예약 문의 www.gurume-andong.com

취재 협조 SK 행복나눔재단(www.skhappiness.org), 행복전통마을 구름에(054-823-9001)




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