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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 출간한 소설가 정세랑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을 축하한다. 소설상 공모전 최종 심의에서 아홉 번이나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해피 엔딩인가? 하하, 고맙다. 카페에서 쿠폰에 도장을 아홉 번 찍었으면 한 잔은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농을 하곤 했다. 최종 2인, 항상 그랬다. 장르적이라는 평가에는 아쉬움이 있다. 공모전은 소설의 고전적 가치를 지키겠다는 기준이 있는 것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는 청춘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삶이 많이 투영된 느낌이다. 맞다. 학창 시절 당시 일산 신도시의 첫 이주민이었다. 개발 과정에 있는 신도시는 풍경이 독특하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외에는 땅을 깊이 파놓은 공사장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조금만 나가면 개구리가 사는 거다. 고층 아파트 단지와 논밭 사이, 그 경계가 흥미로웠다. 문학동네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파주로 출퇴근 했는데, 비슷한 공간의 이미지를 경험했다. 그 낯선 풍경을 접하는 삶이 반복되면서 공간의 이미지를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주연, 송이, 수미, 민웅, 찬겸, 주완 등 명료한 캐릭터의 인물 또한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되었나? 내 주변 인물이 많이 혼합됐다. 한 인물에 다섯 명의 캐릭터가 조합된 것 같다. 해당하는 모든 친구에게 허락을 받았다. 취향이 흥미로운 친구가 많은데, 글을 쓰는 데 큰 자산이다. 패션, 음악, 영화, 유행 등 공감 문화 코드가 많이 녹아 있는데, 주변 친구들의 영향이 크다. 접촉면이 넓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때 섭취한 자양분을 평생 까먹고 살지 않을까?

서로 본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후후, 그럴 수 있다. 인물을 통해 다양한 관계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친밀감과 신뢰, 여백의 정도가 다르다. 주인공과 주연의 관계처럼 지나치게 긴밀해서 병적인 관계도 있고, 찬겸이는 모범적이고 건조한 성격이지만 의외의 매력을 발산한다. 그렇게 인물이 스스로 진화하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송이다. 가장 친한 친구 세 명의 모습이 스며들어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심신이 건강한 인물이다. 주인공의 첫사랑 주완을 통해서는 ‘예민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부조리한 것에 항변하고 고치려는 사람들. 사회를 향한 민감함은 무척 중요한 가치다. 내면에 갇혀 있고, 상처에 흔들리지만 그 성장통을 잘 극복했으면 좋은 어른이 되었을 인물이다.

소설의 호흡이 무척 짧다. 쉼 없이 수다를 떠는 기분이랄까? 내가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더라. 후후. 그래서 숨을 한 번 돌리고, 환기 작용을 하기위해 완충 장치로 중간중간 영상 촬영 장면을 넣었다. 영상 신이 영화의 시놉시스 같은 느낌이라는 면에서 굉장히 시각적이다. 시각적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또 5년간 시집 편집자로 일하면서 시각적 표현이나 아름다운 문구 등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인에게 빚을 많이 졌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 손을 움직이는 일을 주로 한다. 바느질이나 캘리그래피, 에코백이나 스카프 만들기처럼 천을 만지고 손을 움직여 완성하는 소소한 일을 좋아한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뇌세포 운동에도 좋지 않나. 작가는 뇌세포를 쓰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니까 도움이 된다. 다음 주에 작가들이 참여하는 난치병 어린이 돕기 행사가 있다. 파우치, 에코백 등 닥치는 대로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이만큼 가까이>는 결국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현시대에 ‘우정’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정은 끊임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에 나와서 같은 문제의식, 사회 가치, 공감 등을 나누는 우정을 많이 경험했다. 요즘 젊은이는 정당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세대다. 부조리한 상황에 쉽게 순응하기보다 함께 항변할 수 있는 사람, 친구를 강조하고 싶었다. 또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이만큼 가까이>가 공기를 포착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건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다. 장미꽃이 담긴 오래된 박스를 열었을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향의 여운 같은 세밀한 것. 문장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세밀한 정서를 포착하고 싶다.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
파주와 일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30대에 이른 남녀 동창 여섯 명의 성장담을 다룬 작품으로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지금 30대에 이른 세대가 경험한 영화, 음악, 패션, 유행 등의 문화 코드 아래 청춘의 우정과 사랑, 상실의 고통을 재치 있는 문장으로 공감 있게 다룬다. 창비.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서송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